산레모 이탈리아어 : Sanremo | |||
국가 | 이탈리아 | ||
지역 | 리구리아 | ||
면적 | 54.7km2 | ||
인구 | 53,045명[1] | ||
시장 | Alessandro Mager | ||
시간대 | UTC+1 (서머타임: UTC+2) | ||
1. 개요
이탈리아의 도시로 프랑스 국경에 위치해 있다. 이탈리아 화훼 재배의 중심지로 꽃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다. 이탈리아에 있는 4개의 카지노 중 하나가 이곳에 있다.2. 역사
산레모 지역에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로마 제국의 영향 아래 있었다. 중세에는 여러 지방 귀족과 도시 국가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려고 다투었으며, 특히 제노바 공화국이 이곳을 중요한 해안 방어 거점으로 사용하였다. 산레모는 중세 시대 부터 해상 항해를 자랑으로 여겼다. 특히 기후가 매우 온화하고 감귤류 재배가 활발했기 때문에 이러한 과일의 무역은 거의 전적으로 바다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1753년, 20년간의 치열한 갈등 끝에 제노바의 패권적 시도에 맞서 봉기하였고 결국 제노바 공화국으로 부터 독립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산레모를 점령하면서 독립은 끝이났다. 나폴레옹의 몰락 후 산레모는 사르데냐 왕국에 합병되었다. 18세기 중반부터 이 마을은 관광업의 발달로 인해 급속히 성장하였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인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여공작,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의 할머니 헤센의 마리 공녀, 그리고 스웨덴의 화학자인 알프레드 노벨이 산레모에서 휴가를 보내었다.1920년 4월 19일부터 26일까지 열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 최고회의 산레모 회의에서 승리한 강대국들이 옛 오스만 제국이 통치하던 중동 지역의 행정을 위해 클래스 "A" 국제 연맹의 권한 배분이 결정되었다. 이 회의에서 영국이 다스리는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이 만들어졌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산레모는 이탈리아 내에서도 인기 있는 휴양 도시로 발전해, 카지노, 페스티벌, 음악 축제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고 있다.
3. 경제
산레모는 지중해성 기후와 이탈리아 리비에라의 매력적인 해안 환경 덕분에 매우 인기있는 관광지로 발전하였다. 또한 이탈리아에서 가장 많은 꽃을 재배하며 엑스트라 버진 등급 올리브 오일 생산에도 매우 적극적이다.4. 관광
- 산레모 카지노 (Casinò Municipale di Sanremo) : 1905년 1월 14일 개장한 카지노로 피에트로 마스카니, 루이지 피란델로 등 이탈리아의 유명 예술가들이 이 카지노의 단골 고객이었다.
- 구세주 그리스도 교회 (Chiesa di Cristo Salvatore) : 산레모에 러시아인이 천 명 이상 정착하자 세운 정교회 교회.
5. 산레모 음악제
1951년부터 매년 개최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권위 있고 인기 있는 대중가요 경연 대회로 보통 2월에 약 1주일간 진행한다. 산레모 음악제는 이탈리아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참가자를 선정하는 예선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축제는 이탈리아 대중문화의 중심축이며, 매년 TV 생중계로 수백만 명이 시청한다.6. 자매도시
7. 여담
[1] 2024년 12월 31일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