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7-29 02:31:50

사토시 나카모토

사토시 나카모토
サトシ・ナカモト| Satoshi Nakamoto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Satoshi Nakamoto
사토시 나카모토
일본식 이름 サトシ・ナカモト
[ruby(中, ruby=なか)][ruby(本, ruby=もと)][ruby(哲, ruby=さと)][ruby(史, ruby=し)](비공식 표기)
거주지 알 수 없음[1]
국적 [[일본|]]
[2]
출생 1975년 (47세)[3]
연구분야 암호학, 컴퓨터과학, 주식, 금융공학
업적 블록체인 기술 창시
최초의 개방형 암호화폐 창시
비트코인 네트워크 창시
Bitcoin Core 창시
자산 최소 100만 BTC[4]
링크 P2P foundation

1. 개요2. 정체 예측
2.1. 도리언 사토시 나카모토2.2. 할 토마스 핀니 2세(Harold Thomas Finney II, 1956 ~ 2014)2.3. 닉 자보2.4. 모치즈키 신이치( 望月 新一, 1969 ~ )2.5. 크레이그 라이트, 데이브 클라이먼2.6. 제임스 칸2.7. 일론 머스크
3. 기타
3.1. 딜레마3.2. 그 밖에

1. 개요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최초로 창시한 인물이다.

2007년, 비트코인 코드작성을 시작으로 2008년 10월에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제목의 9쪽짜리 논문을 암호기술 메일링 리스트(The Cryptography Mailing List)에 올렸고, 2009년도에 Bitcoin Core 프로그램이 공개되며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되었다.

위치 추적이 어려운 토어 등을 이용해 비트코인 활동을 했고, 영어만을 사용했으며 신기하게도 모국어인 일본어는 쓰지 않았다.

프로필에는 일본인이라고 적혀있지만 일본 시간대로 오후 2시~8시에 인터넷 활동이 급감하여 수면 시간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해외에 국적을 둔 일본인이거나 해외에 체류중일 일본인일 가능성, 혹은 일본인 가명을 쓴 외국인일 가능성도 있다.

한자명은 비록 밝히지 않았지만 일단 가장 일반적으로 인명에 사용되는 한자를 통해 '中本哲史'라는 표기로 사용한다. 일본 이름에서는 '사토시'가 성씨로서 거의 사용되지 않고 나카모토는 흔하게 있는 성씨인 점, 그리고 동양권은 영어로 이름을 소개할 때 성씨와 이름을 바꾸어 쓰기때문에 본래대로 읽는다면 나카모토 사토시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본인이 사토시 나카모토로 사용했기에 이 문서에서는 존중차원에서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부른다.

Bitcoin Core도 사토시 나카모토가 최초 개발자다.

그는 2010년까지 다른 개발진들과 직접 비트코인 소스코드를 수정하였고, 2011년을 마지막으로 인사만 남긴채 돌아오지 않았다.

2021년 2월을 기준으로 세계 27위의 부자이다.# 이 재산 규모는 오로지 그가 갖고 있는 비트코인으로만 계산된 것이다. 비트코인의 가치가 현재의 페이스로 계속 오르고 보유량도 늘어난다면 몇년 안에 압도적인 세계 1위의 부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2009년 초 사토시 혼자서 비트코인 첫 채굴을 시작한 이후 현재까지 사토시가 가진 지갑들[5]에 있는 비트코인을 단 한 번도 판 적이 없다.[6] 즉 사토시는 자기가 만든 비트코인의 값어치가 수천만 배로 늘어나고, 90% 이상의 하락폭을 수차례 겪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출금하지 않고 수 년간 계속해서 채굴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토시가 비트코인의 미래를 다른 수많은 학자들과는 달리 굉장히 낙관적으로 판단했으며,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강심장이라는 결론이 나온다.[7][8] 오히려 이에 따라 암호화폐 유저나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이 진짜 멸망의 길을 걷는다면 그것은 사토시의 지갑에서 비트코인이 빠져나갔을 때"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2021년 기준으로 밝혀진 것만 최소 100만 BTC(약 80조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9] 이는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암호화폐 투자회사 그레이스케일 트러스트가 보유한 65만여개의 1.7배에 이르고, 전문 암호화폐 투자회사는 아니지만 엄청난 양을 보유하고 있는 MicroStrategy가 보유한 10만 5천개의 10배 이상이다.

2. 정체 예측

비트코인 시스템을 발명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군지 그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다양한 음모론이 만들어졌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P2P재단 웹 사이트에 등록해 놓은 정보를 보면 2019년 기준 44세이며, 일본에 거주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일본어를 사용한 적이 없으므로 나이, 거주지, 이름 등 어떤 것도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정도 영향력이면 각국의 정보기관들이 추적할 만한데 아직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10]

반대로 사토시 나카모토 사망설도 있는데, 시간이 이 정도로 흘렀는데 전 세계가 가장 관심갖는 사람이 안 밝혀진다는 건, 자신을 잘 숨긴 채 정보기관들의 본격적 추적 이전 시점[11]에 질병이나 사고로 죽었기에 추가 활동을 전혀 안 해서 못 찾는 것이거나, 이미 죽은 걸 정보기관이 확인했기에 공개 안 하는 것일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알려지다시피 사토시의 조력자 할 핀니나 데이브 클라이만 역시 이미 사망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용하는 영어는 매끄러운 영국식 영어였고 가끔씩 미국식 표현도 혼재되어 있던 점으로 보아 사토시 나카모토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으로 구성된 집단일 것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특히 그가 2년 동안에 작업했다고 주장하는 비트코인 프로그래밍 작업은 한 사람이 수행하기에는 힘든 작업이라는 점으로 보아 사토시 나카모토가 개인이 아닌 '집단'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며 영국식 영어를 쓰다가 미국식 영어를 가끔 섞어 쓰는 것이 의도적으로 신분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일 수도 있다.[12]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의 유래가 사실은 'Samsung', 'Toshiba', 'Nakamichi', 'Motorola'로, 4개 기업 이름의 조합으로 상기한 네 기업이 비트코인을 개발했다는 설이 있지만 억지로 끼워 맞추기식에 가깝다. 학습만화 Why의 '암호 화폐와 블록체인'편은 이 설을 차용했다.

SBS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에 대한 제보를 받았었다. 이것을 찾아내면 그알 팀은 CNN, BBC, NHK도 못해낸 세계적인 탐정방송 팀으로 주목받을 정도로 큰 소재. 1000여 개 소재 중에서 비교하자면 나머지 모든 소재를 합친 것보다 국제적으로 관심도 높은 이슈이기도 하다.

코인시장이 상상이상으로 커지면서 오히려 철저하게 익명성을 유지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그가 가지고 있는 100만 비트코인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기 위해 목숨까지 노릴 사람들이 세상에 널렸으니, 살고 싶다면 익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수록 익명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비트코인의 신뢰도는 계속 높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약 살아 있는 개인이라면, 비트코인의 위상이 그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로 공공에 모습을 비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1. 도리언 사토시 나카모토

2014년에 뉴스위크에서 나카모토 사토시의 정체에 관한 특종 기사를 올렸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이고 칼텍을 졸업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이름은 도리언 프렌티스 사토시 나카모토(Dorian Prentice Satoshi Nakamoto, 1949 ~ )[13]이며 자신이 비트코인의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밝혔다. 하지만 뉴스위크의 보도 직후 AP통신은 인터뷰 당사자인 나카모토가 자신은 실제 비트코인 창시자가 아니며 영어실력 부족으로 인터뷰를 잘못 알아들었다는 해명 기사를 올렸다.

그는 인터뷰에 게재된 자신의 가족, 이력 등에 대한 얘기는 옳지만 비트코인과는 무관하다고 밝혔고, 뉴스위크와의 인터뷰 3주 전에 아들에게서 처음으로 비트코인이 무엇인가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뉴스위크가 보도한 "더 이상 그것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는 말은 뉴스위크에서 자신의 말을 오역한 결과라고 밝혔다.

더불어, 2009년 P2P foundation에 비트코인을 설명하는 게시글을 올린 사토시 나카모토의 계정이 직접 "I am not Dorian Nakamoto."라는 내용의 댓글을 같은 계정으로 작성한 것이 확인되었다. 여담으로 이 댓글 이후 사토시 나카모토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가 7년만인 2021년 12월 24일에 활동을 재개했다.#. 이것으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진 상태. 근데 이 또한 본인이 1인 다역을 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확실치 않다. 여담으로 도리안 나카모토가 뉴스위크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모금운동을 했는데 수많은 비트코인러들이 도리안 나카모토에게 비트코인을 하나씩 기부해 풍족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

2.2. 할 토마스 핀니 2세(Harold Thomas Finney II, 1956 ~ 2014)

세계적인 컴퓨터 과학자이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비트코인 출시 이전인 2004년에 독특한 작업 증명 시스템을 만들었던 바 있다. 핀니는 2번째 비트코인 채굴자이자 최초의 비트코인 수령자이다. 말년에는 루게릭병에 걸려 눈동자와 손가락 일부를 제외한 신체 대부분을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핀니는 비트코인의 핵심적인 개발에 매우 깊게 관여했으며 업계에서 알려진 사람들 중 그처럼 뛰어난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 없었기에 핀니가 사토시일 것이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핀니는 생전에 자신이 사토시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핀니는 유언에 따라 현재 냉동인간으로 보존된 상태이며 유품인 노트북에서 사토시와 주고 받은 이메일이 발견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회의적인 것은 신체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筋萎縮性側索硬化症; amyotrophic lateral sclerosi)[14] 환자가 가 어째서 자신의 업적을 숨기기 위해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조작했겠냐는 것이다.

할 핀니는 비트코인 포럼에 마지막 편지를 작성하고 2014년 8월 28일 국 애리조나 주 스코츠데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2.3. 닉 자보

세계 최초로 스마트 계약을 발명한 컴퓨터 과학자, 암호학자이다. 그는 '비트골드'라는 암호화폐를 1998년에 고안했으나 당시의 시대적, 기술적 문제로 인해 실제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나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과 금을 채굴하는 어려움 사이의 유사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퍼즐을 푸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은 가치있는 행위로 여겨질 수 있다. 그 솔루션의 문제를 푼 누군가에게 대가로 디지털 화폐를 보상할 수 있다."
- 닉 자보

이렇듯 초기 암호화폐 개발과 비트코인 탄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여러 사람들에게서 사토시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금융 저자인 도미닉 프리스비(Dominic Frisby)는 닉 자보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며 "나는 전 세계에 이러한 지식의 특이성뿐만 아니라 넓이를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사람이 바로 닉 자보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보는 "나는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오해받는데 익숙하며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라고 부인했다.

여담으로 닉 자보의 업적들은 훗날 러시아 출신 프로그래머 비탈릭 부테린에게 영향을 끼쳤고 당시 19세였던 비탈릭이 스마트 계약을 블록체인에 구현해 탄생한 암호화폐가 이더리움이다.

2.4. 모치즈키 신이치( 望月 新一, 1969 ~ )

월간 수학동아 2013년 12월호에서는 일본 교토대학의 수학교수 모치즈키 신이치로 추정했다.

모치즈키 교수는 암호학을 비롯한 계산 수학과 컴퓨터과학에 조예가 깊은 점, 2012년 말 경의 자신의 홈페이지에 비트코인의 기본 원리와 비슷한 세계적인 수학 난제 'ABC 추측'을 증명한 논문의 내용이 비트코인의 기본 원리와 비슷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모치즈키 교수가 학술지가 아닌 개인 홈페이지에 논문을 발표했다는 점과, ABC 추측을 증명하면서 '우주 간 기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다는 점이 비트코인 체계를 발표한 논문의 내용과 흡사하다고 한다. 그러나 모치즈키 본인은 한 신문을 통해 자신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고 밝혔다.

2.5. 크레이그 라이트, 데이브 클라이먼

IT 잡지 와이어드와 기즈모도에서 호주 국적의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Craig Steven Wright)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했다. Wired/Gizmodo 관련 기사(BBC) 한국어로의 인용 기사(ZDNet Korea) 2015년 12월 9일, 와이어드 매거진에서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되는 두 명의 신원이 공개되었다. *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된 두 사람은 바로 호주 시드니에 거주 중인 암호학자 크레이그 라이트와 그의 친구인 미국의 법의학자 데이브 클라이먼.

2016년 5월 2일에는 크레이그 라이트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임을 인정했다. 라이트 본인은 2009년의 비트코인 최초 거래 시에 사토시가 사용한 암호블록을 시연했다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그게 그냥 운좋게 거래 내역의 HEX값만 맞으면 되는 거라(...) 실제로 뭔가 증명이 된 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얽혀있는 탈세의혹에서 빠져나갈 요량으로 사토시 나카모토를 사칭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라이트는 이후 추가 증거들을 공개하여 이러한 의혹들을 일축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돌연 어차피 공개해도 믿지 않는다면서 증명을 포기해버렸다.

사실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임을 증명하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본인임을 증명하려면 그냥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에서 다른 지갑으로 0.00000001BTC[15]라도 전송하면 되는 것이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을 갖고 있다는 증명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크레이그는 그걸 안하고 쓸데없는 행동을 한 것이며, 그렇기에 당연히 이 사람이 진짜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2.6. 제임스 칸

2019년 8월 20일 뜬금없이 자기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파키스탄에서 대학까지 나오고 영국으로 이주한 파키스탄계 영국인으로 컴퓨터 전공자이며 비트코인 92만개를 가지고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마스터키를 세탁소(!)에서 분실했다고 한다. 비트코인의 유래 등 여러가지를 자신의 과거나 파키스탄 민족 종교 등과 연계해서 주장했으나 내용이 이상하고, 비트코인 키를 잃어버려 쪽팔려서 잠적했다가(...) 책임감때문에 얼굴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하나도 증명한게 없다. 신뢰도는 크레이그 라이트보다 더 떨어진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1975년생이라 했지만, 칸 본인은 1978년생이라 한다. 기타 사토시 나카모토가 주장한 것과 자신의 신상정보가 다른 부분들은 모든게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해놓고 본인지갑 접근 툴을 다 잃어버리면 더욱 신뢰성만 떨어진다. 몇년전 사망한 할 핀니와 비트코인코어 작업을 동업한 얘기를 하는데 차라리 그 할 핀니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믿는 게 나을 지경. 비트코인 V1이라는 새로운 암호화폐를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만들 생각이라는 글까지 쓰고 유튜브채널까지 만들어 영상을 올리며 그 계획, 즉 새 암호화폐에 대한 백서를 독자들에게 기다리라고 한 뒤 쓰거나 새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출시하지는 않고 온라인에서 다시 잠적했다. 참고로 파키스탄과 유럽 이외의 장소, 즉 미국에는 가본 적 없고 영국에서만 살고 있다고 말했다. 부친은 젊었을때 파키스탄의 은행원이었다고 한다.

2.7. 일론 머스크

일각에서는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가 사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냐는 주장을 한다. 일론 머스크는 성공한 IT 기업가 출신으로 암호학과 경제학에 능통할 뿐 아니라, 억만장자이기 때문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현금화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계속 비트코인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러한 추측이 나오게 하는 배경이 된다.[16]

대외적으로 머스크와 비트코인의 관련성이 생긴 최초의 시발점은 2017년이다. SpaceX의 전 인턴직원이었던 사힐 굽타(Sahil Gupta)가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머스크일 것이라는 글을 작성했다. 근거로는 "페이팔이라는 세계 최초의 인터넷 은행을 만들었고 2000년대 초반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와 서로 이웃관계여서 이름을 따오기도 쉬웠고, 경제, 수학, 고급 프로그래밍에 조예가 깊으며 암호학 논문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굽타는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은행 간 신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개발했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17] 작서이에 머스크는 사토시 나카모토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으며 "몇 년 전 친구가 선물로 약간의 비트코인을 줬는데 잃어버린 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특별한 증거도 없고, 농담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일론 머스크 본인이 자신을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측하는 주장들에 대해 근거 없는 소리라며 직접 일축하여 논란을 종결했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일론 머스크는 가장 가능성 없는 후보인 게, 일단 사토시 나카모토 정신 즉 탈중앙화 정신과 비트코인이 투기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는 철학과 정반대로 행동하여 투기선동을 이끌며[18] 사토시의 비트코인 철학을 위협하는 태도만을 보이고 있으며, 그가 2021년 도지코인 어그로를 끌기 전인 2020년 12월[19]에 이미 본인이 트위터에서 "내가 비트코인이 뭔지 왜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비트코인 초기에 참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같은 어그로 트윗을 날리기 시작했고, 비트코인에 빨리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번 표현했었기 때문이다. 많은 대중들이 2021년에 그가 테슬라 비트코인 결제 도입으로 암호화폐세계에 등장한 줄 알고 있기에 오해가 있지만, 그는 비트코인에 대해 아쉬움만 표현하던 사람이다.

2022년 3월에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삼성, 도시바, 나카미치, 모토로라의 명칭을 올렸는데 이들의 앞글자를 재조합하면 SATOSHI NAKAMOTO가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끼워맞추기에 불과하며 머스크가 이 트윗을 올린 목적도 불명이다. # 해당목적이 btcs라는 사토시팀의 두번째 암호화폐를 겨냥한거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해당 코인은 꾸준히 바이낸스와 일론머스크를 언급했는데 바이낸스는 협력관계임을 밝혔다.

3. 기타

3.1. 딜레마

2020년 5월 21일 블록체인을 모니터링하는 @whale_alert라는 트위터 계정에서 2009년 2월에 채굴된 40BTC가 다른 계정으로 이체되었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이 결과 비트코인은 일시적으로 4% 하락했다.

이는 사람들이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파는 것을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사토시는 수십조 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세계 20위권의 부자이지만 정작 자신이 비트코인을 매각하면 비트코인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대폭락하여 물거품이 될 수 있는 딜레마존에 놓여 있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여러개이며 사실 확실한 것도 있지만 추정인 것도 많은데, 옮겨진 BTC가 비트코인 역사의 극초기인 2009년에 채굴된 것은 맞지만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에서 나오는 고유한 패턴이 해당 지갑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면서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닐 것이라고 한다. # 그러니 그냥 초기 채굴자 중 한 명이 비트코인을 10년 넘게 안 건드리고 살다가, 긴 세월 후 큰돈이 필요해져서 전송한 걸 수도 있는 것이다.

의외로 2009년~2010년에 채굴된 비트코인 중 거래가 안되는 비트코인의 양은 매우 많다. 비트코인 코어의 구조가 초기에 많은 양을 채굴하게 되어 있어서 2년이면 2100만개 중 500만개 이상인 25퍼센트나 채굴된 시기이기 때문이고, 시간 내에서는 적은 분실[20] 비율이 나온다 해도 엄청난 양이 분실되기 때문이다.

3.2. 그 밖에

바티칸 기적 조사관의 작가 후지키 린이 소설 투고 사이트 카쿠요무(カクヨム)에 2019년 2월부터 올리고 있는 단편 《투명인간 살인사건(透明人間殺人事件)》에서는 로렌 디루카가 사용하는 가명 중 하나로 나온다. 가상화폐를 발명해 벌어들인 돈이 한 국가의 예산을 넘길 수준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사카시 나카모토, 나토시 사카모토 등 이름 오자 표기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당장 사카시 나카모토로 검색되는 기사들이 있을 정도.

2021년 9월 17일, 헝가리 암호화폐 단체들이 만든 사토시의 흉상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원에 설치되었다. #


[1] 영국이라는 설, 미국이라는 설, 일본이라는 설, 제4국 출신이라는 설 등 다양하다.[2] 본인 주장[3] 언론 추측[4] 2022년 07월 기준 약 27조 원(₩) 이상[5] 한 개의 지갑에 넣은 것이 아니라 십여개의 지갑을 만들어 분산 저금했다. 하지만 사토시 나카모토가 첫 채굴을 하면서 수많은 익명의 채굴자들이 등장했고 할 핀니나 훗날의 laszlo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중에게 신분을 공개하지 않았으므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들을 전부다 명확히 구별할 수는 없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당시 액션을 통해 명확하게 추정되는 지갑은 9개 정도가 있다. 2020년에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으로 추정되던 지갑에서 10년만에 거액의 비트코인이 출금되어 생존설이 나돌았으나, 이후 오히려 그 사람은 사토시가 아니라 그냥 정체를 알 수 없는 초기 채굴자들 중 한명이었다고 암호화폐 세계에서는 결론내렸다. 어떤 사연으로 프라이빗키를 써놓은걸 잃어버렸다가 세월이 흘러 찾았다거나 하는 경우로 간주된다. 지금도 사토시 나카모토소유로 추정되는 것 이외에도 장기간 출금 안된 비트코인 지갑들은 꽤 많이 존재하고, 주인이 프라이빗키를 잃어버린 죽은 지갑이라고도 불리지만, 주인이 오랜 세월이 지나 프라이빗키를 찾을 가능성은 있다는 대표 사례이다.[6] 초창기에 할 핀니(사토시에 이어 비트코인 채굴에 두 번째로 참여)에게 시범적으로 10BTC를 보낸 것외엔 지갑에서 꺼내지도 않았다.[7] 초기 비트코인은 화폐나 투자수단이라기보단일부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의 놀이(?)에 가까웠다. 그런데 장난삼아 5000원을 주고 모은 장난감 지폐가 갑자기 10억원이나 100억원으로 상승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놀이가 아닐 것이다. 심지어 몇 달 뒤 이것이 7천만원으로 급락했고, 시간이 지나 11억원이라는 최고점이 오는 등 급락이 심해 저점에서의 고통, 고점에서의 현금화 욕구를 반복해서 겪는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특히 세계의 경제 전문가들)이 이 장난감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이다. 상황이 이런데 안전한 현금자산으로 바꾸겠는가, 아니면 손해를 보면서도 몇 년에 걸쳐 돈과 시간을 써가며 장난감 지폐를 계속 수집하겠는가?[8] 다만 암호키나 비트코인을 저장한 하드웨어 지갑을 분실했을 가능성도 높다. 실제로 장난으로 비트코인 몇개 캐놨다가 떡상하니까 암호키, 혹은 하드를 분실해서 억울해하는 사람들은 전세계 적으로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잃어버려서 못빼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일 수 있다.[9] 사토시가 사용했던 컴퓨터에서 채굴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이며 이보다 많을 가능성도 존재한다.[10]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정보기관이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란 정보기관 입장에서 확실한 대어(大魚)이다. 찾아낸다면 그 자체로 정보기관의 실력을 입증하는 일이기 때문에 각국 정보기관이 사토시 나카모토를 찾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근데 사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정보기관이 찾지 못했다는 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긴 하다. 아니면 이미 찾았지만 비트코인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굳이 공개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후술하겠지만 암호화폐 시장 초기에 채굴된, 즉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는 40BTC가 다른 계정으로 이체되었다는 것만으로 가격이 4% 하락했는데 개발자의 정체가 알려지는 순간 무슨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11] 초기 비트코인은 딥웹용 거래수단이나 범죄용 화폐 정도 외의 효용이 없었고 이후에도 게임아이템 거래용 정도 화폐로 이용되곤 했기에 사토시 나카모토 역시 세계 여러 정부 측에 딥웹 운영자 정도의 관심 외에 큰 관심을 받지도 않았다. 지금 스타일의 거래소들이 세계적으로 늘기 시작하고 폭등한 2013년 연말쯤에야 관심을 이전보다 크게 받았다. 그 이후부터는 범죄 중에서도 세계규모의 범죄인 불법 마약 거래에서 소규모가 아닌 대규모 거래들이 비트코인으로 발생하며 FBI와 CIA에서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12] 딥웹의 위키백과인 히든위키만 봐도 수많은 트릭으로 자신을 감추라고 친절히 가르치고 있다. 딥웹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신분감추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여러 영어 화자들도 국제교류가 활성화하며 영국식, 미국식, 호주식, 인도식, 크리올(...)식 표현을 아무렇게나 섞어 쓰는 일이 점점 흔해지고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13] 출생지는 일본 오이타현 벳푸시[14] 수의근을 제어하는 신경세포가 소멸되는 병으로 근육이 딱딱해지고, 경련을 일으키며, 점차적으로 약해져서 그 크기가 줄어드는 위험한 질병.[15] 비트코인의 가치가 너무 커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10-8BTC를 일종의 비공식 액면분할 성격으로 사토시(약자로 sat)라 칭하곤 한다. 만약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의 바람대로 비트코인이 기축통화가 된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1개씩 가지는 것조차 불가능한 희귀템이 되어버렸을 BTC 단위가 아니라 사토시 단위가 실질적인 일상 속 거래 단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갑 소프트웨어의 단위만 적절히 업데이트해주면 2022년 현재도 여러 주요국 통화들에 비해 화폐단위에 0이 많이 붙는 편인 대한민국 원화와 비슷한 감으로 계산할 수 있다.[16] 그가 테슬라 자동차를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비트코인이 폭등하는 등 코인 시장이 크게 요동쳤다.[17]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사토시가 비트코인 백서를 작성하였을 당시엔, 미 금융위기 1년전이었던 2007년이였기 때문이다.[18] 주식으로 치면 자본시장법 위반이며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더 큰 중범죄로 처벌될 행동이다. 암호화폐에 단순한 법이 없고 주식같은 체계적인 법이 없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19] 당시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 직후, 즉 트럼프의 낙선이 확정적으로 가면서부터 갑자기 비트코인이 20퍼센트 이상 폭등하면서 역대 최고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20] 퍼블릭키나 프라이빗키를 분실하기 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