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1 22:23:38

사련

선락태자
사련
谢怜
파일:img_xie_lian.png
[스포일러]
방심국사 ▼
파일:천관사복 방심국사.jpg
<colcolor=#636363> 이름 사련(谢怜)
호칭 선락태자(仙乐太子)
태자열신(太子悦神)[1]
화관무신(花冠武神)
넝마선인(破烂仙人)[2]
-삼계의 웃음거리-
[스포일러]
화사(花谢)[3]
화장군(花将军)
방심국사(芳心国师)
-금지옥엽의 귀인-[4]
178cm[5]
생일 양력 7월 15일[6]
소속 천계[상천정]
성우 파일:중국 국기.svg 1대 장광타오[8][애니메이션]
파일:중국 국기.svg 2대 등유희[애니메이션]
파일:중국 국기.svg 쑤샹칭[오디오드라마]
파일:일본 국기.svg 카미야 히로시[애니메이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요한[애니메이션]
파일:미국 국기.svg 하워드 웡[애니메이션]
배우 파일:중국 국기.svg 적소문[길성고조]

1. 개요2. 작중 행적
2.1. 과거
2.1.1. 두 번의 폄적2.1.2. 중원의 국사와 장군
2.2. 현재2.3. 드라마 길성고조
3. 여담

파일:xl_anime.gif
파일:xl_anime_.gif
애니메이션

[clearfix]

1. 개요

묵향동후의 소설 천관사복의 주인수(受).

본편 기준 8백년 전 멸망한 선락국의 태자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명성이 높았다. 17살에 연례행사 중 망루에서 떨어지는 어린아이를 받아내 구하기도 하고, 일념교라는 다리의 악귀를 퇴치한 일로 상제로부터 훗날이 기대된다는 평을 받았다. 이후 실제로 등선하여 사명경(四名景) 중 하나인 태자열신(太子悦神)이 되었다. 한 손에는 검을 들고 한 손에는 꽃을 든다고 하여 화관무신(花冠武神)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80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는 두 번의 폄적을 겪고 넝마신, 고물신으로서의 지위를 갖고 있다. 일명 고물신선.

태자 시절에는 기본적으로 선량하고 인품도 좋기는 했으나 너무 귀하게 자란 탓에 세상 물정을 모르고 다소 황소고집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제지를 무릅쓰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 결과 상황이 점점 나빠지다가 끝내 최악으로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은 전적이 있다.

세 번째로 등선했을 때의 여파로 종이 떨어지고 다른 신관들의 궁이 무너지는 등 사고 친 것을 보상하기 위해 공덕[16]을 쌓으려고 천계의 임무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여군산 임무가 끝난 뒤에는 신앙과 공덕을 모으기 위해서 어느 시골 보제마을의 쓰러져가는 집에 자리 잡아 보제관이라고 이름 지은 후 신도를 모은다. 다만 이름도 안 알려진(정확히는 잊혀진) 고물신선의 사당이다 보니 신도는 잘 안 모이는 모양.

가진 법력이 없어 인간계에선 간단한 통령도 일일이 법력을 빌려야 하고, 법보도 사용할 수 없지만 예외로 흰 비단 약야만은 다루는 게 가능하다.[스포일러]
3권 이후부터는 자신의 패검이었던 방심을 돌려받아 검술을 펼치기도 한다.[스포일러2]

2. 작중 행적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시간순으로 행적이 나열되므로 작품을 우선 읽기를 권장한다.

2.1. 과거

2.1.1. 두 번의 폄적

과거 선락 태자였던 시절, 가뭄에 시달리던 영안을 구하기 위해 우사의 법보를 빌리는 등 애를 썼으나, 영안이 반란을 일으키자 선계의 법을 어기고 땅으로 내려와 선락 병사들과 함께 싸운다. 전쟁 도중 백무상이 선락국에 인면역을 퍼뜨리고 이를 막으려 했지만 환부를 잘라내도 퍼지는 병세와, 거기에 덮친 자연재해 탓에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고 전쟁에서도 패하게 된다.

이후 주가[19]를 찬 채로 폄적당하고 부모님, 풍신, 모정과 함께 숨어 지낸다. 하지만 궁핍한 상황에서 모정과 마찰을 빚게 되고, 모정이 떠난 후 수련을 위해 산을 찾았지만 해당 산에서 수련하러 온 신관들에게 견제당하는 것으로 모자라 신으로 등선한 모정마저 자신을 외면하자 수련도 포기한다. 이때 백무상을 만나 폭행당하고 앞으로도 네 곁에 머물 사람이 남아있겠냐는 말에 정신이 흔들린다. 이후 미친듯이 은신처로 도망쳤고 식량을 전해주러 온 모정을 마주치자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며 휴식을 취하는 중에도 백무상의 환영을 보는 등 정신이 불안정해진다.

결국 어머니와 싸우고 태자묘로 달려가 쉬고 있었으나 백무상이 태자묘로 몇백의 사람들을 유인해 들여보내고 인면역이 퍼진 환자들을 주위에 등장시켜 위협하자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하지만 '살인을 저지르면 인면역에 걸리지 않는다'는 백무상의 간계로 사람들에게 제압당해 몇백번이나 칼로 찔리는 고난을 겪는다.[20]

피폐해진 몰골로 돌아온 사련은 이후로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이를 때려눕히거나 '천것'이라고 욕하고, 망설임없이 도둑질을 하는 등 서서히 인격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결국 풍신과 싸워 그마저 곁을 떠나버리고, 다음 날 자신의 부모가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 광경을 목도해 똑같이 목을 매려하지만 죽지 못하는 몸이라 몇 번이나 자살에 실패했고 누가 날 좀 죽여달라며 울부짖는다.

이때 영안국의 낙성을 축하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흑화해 희비면을 쓰고 상복으로 갈아입은 채 영안국 국주를 살해하러 떠난다. 하지만 도착한 황궁의 낭영은 이미 죽어가는 신세였기에 영안에 똑같이 인면역을 퍼뜨리려고 한다. 그러나 인면역을 퍼뜨리기 전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고 자신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가 있는지 한차례 더 시험한다. 칼을 뽑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 칼은 백무상이 뽑아줬지만 비가 오던 날 자신에게 삿갓을 건네준 사내에게 감화되어 백무상에게서 다시 돌아서고 사람들을 지키는 길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미 인면역은 창궐하기 시작했고 사련은 위에 일어났던 상황과는 반대로 자신이 직접 사람들에게 자신을 찌르라고 한다. 그렇게 백무상이 했던 방법 그대로 다시 사련은 칼에 찔리나 싶었지만 물장수의 말을 시작으로 행인들이 반대하며 거부한다. 이에 인면역을 막기 위해 직접 몸으로 원령을 받아내려 했으나 자신을 보필해주던 소년 무인이 이를 대신 받아내고 소멸한다.[21] 고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두 번째로 선경에 올랐으나, 사련은 자신이 저지른 과오를 참회하고자 군오에게 직접 자신을 폄적시켜달라 요구한다. 더불어 잘못을 범했는데 다른 이가 대신 벌을 받았으니 주가를 두 개[22] 내려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마땅한 사유가 없으면 폄적시킬 수 없다는 군오의 말에 사련은 자신과 직접 겨루자고 제안해 이를 빌미로 다시 폄적된다.

2.1.2. 중원의 국사와 장군

세상을 떠돌던 사련은 우연히 영안국의 태자 낭천추를 구한 것을 계기로 영안의 국사로 추대된다. 가면으로 정체를 숨기며 방심 국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던 사련은 돌연 황족 대다수를 무참히 살해한 죄로 심장에 대못이 박힌 채 관 속에 매장되고 만다.[23]

사실 류금연 사건 자체는 청귀척용과 안락왕이 꾸민 일이었으나, 훗날 영안과 선락의 갈등으로 이어질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세 사람의 목숨(영안의 국주, 안락왕, 방심 국사)과 몇 세대의 평안을 맞바꾼 사련의 계책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제자의 부친과 선락 황실의 마지막 후손을 제 손으로 죽인 것에 괴로움을 느꼈는지 다시는 검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였고, 그의 검 방심은 낭천추의 손에 보관된다.

한편 중원에서 화사라는 이름을 쓰며 교위직을 맡았던 적도 있다. 걸핏하면 전장에서의 학살에 훼방을 놓는 탓에 좌천을 거듭하는 신세였으나, 이에 신세를 진 사람들이 그를 장군으로 호칭하였고 주로 화 장군이라 불렸다. 당시 가까이 교류하던 인물로는 반월국의 소녀 반월또 다른 소년이 있었으며, 교전 도중 언제나처럼 전투에 끼어든 사련은 그대로 분노한 양국 병사들에게 마구 짓밟히고 난도질당해 화사로서의 삶을 비참하게 끝마친다. 애써 죽은 척해 강에 떠내려가 그곳을 벗어났지만 4년 남짓을 요양해야 했다고 한다.

요도 쌍사인 방심 국사와 반월 국사 사이에 적어도 백 년은 시간차가 존재하며, 사련이 반월국에서 지낼 적이 이백 년 전이라고만 알 수 있을 뿐 어느 시기가 우선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2.2. 현재

세 번째 비승 후 사련은 보제관을 새 거처로 마련하고, 고물은 줍고 돌아오는 길에 신비한 소년 삼랑을 만난다. 삼랑과 함께 사건을 겪으며 이 소년의 정체가 사대해 중 하나인 혈우탐화 화성이라는 것을 간파하지만, 이후로도 둘은 친분을 유지하며 관계를 발전시켜간다.

동로산에 새로운 '절' 등급이 탄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싸우다 군오의 부름을 받고 선계로 올라간 사련은, 그곳에서 매념경에 의해 백무상의 정체가 군오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탓에 다른 신관들과 상천정에 감금당해 있던 것을 화성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뒤 동로산에서 화성과 함께 군오를 쓰러뜨린다.

그러나 화성은 사련에게 내내 법력을 빌려 준 데다가 주가를 풀기 위해 더욱 방대한 법력을 내어줬기에 모습을 유지할 수 없게 되고, 이별하면서 사련은 마침내 자신의 과거와 엮인 화성의 비밀을 깨닫는다.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믿으며 이후 1년 동안 상천정을 재건하고 집을 지으며 고물을 줍는 등의 생활을 이어나가다, 돌아온 화성과 재회하며 본편은 끝이 난다.

2.3. 드라마 길성고조

천관사복의 드라마판인 길성고조에서는 적소문이 사련 역을 맡았다.

3. 여담

  • 17세에 세상을 구하고자 신념을 품었으나 참담하게 실패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전작 마도조사효성진과 비슷하다. 차이라면 후에 사련은 어떤 계기로 그 절망을 이겨냈지만 효성진은 끝내 무너져 일어서지 못했다.
  • 묵향동후 작품의 주인수(受)들이 그렇듯, 사련 또한 매우 비범한 요리 솜씨를 지녔다. 그가 만든 '백년호합탕', '옥결빙청환', '전란도봉' 등은 보통 인간들은 물론이고 신관이나 웬만한 귀신도 감히 엄두를 못 내는 위력을 자랑한다. 매번 등장할 때마다 암살 무기 취급이고, 음식을 먹은 자는 보통 구역질과 혼절, 경우에 따라 환각이나 정신착란이 발생하거나, 몇 권에 걸쳐서 말에 쉼표를 제대로 찍지 못하거나, 재료로 넣은 뱀이 정괴로 변하기까지 한다. 그렇기에 현재까지로서는 사련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인물은 화성이 유일하다.
  • 사련이 자신의 요리에 화려한 이름을 짓는 버릇은 어머니로부터 비롯된 걸로 보인다. 다만 사련이 태자 시절에 만든 음식은 맛이 좋았는데, 두 번째 폄적때 자신이 가진 운수를 없앤 후로 맛이 없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 군오와 신상에 타고 싸울 때 신관들이 ‘무신이긴 하셨군요’라는 말을 할 정도로 잊혀진데다가, 작중에서는 주가 때문에 실력발휘를 잘 못하고, 백의화세에게 쫓기며, 곁에 있는 화성의 존재감이 강렬하기도 해서 그닥 부각되는 편은 아니지만 굉장히 강한 무위를 지닌듯 하다. 그 예로 나름 큰 세력을 자랑하는 모정을 손쉽게 이길 수 있다는 발언을 하고, 모정은 짜증은 낼지언정 그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을 무렵에도 성벽에서 뛰어내려도 문제없다는 식의 묘사가 나오고, 신선들도 쩔쩔맬 악귀를 가뿐히 베어내고 상천정에 올랐다. 법력이 아니라 아주 오래 수련한 무인처럼 섬세한 힘의 조절이나 무술실력 그 자체가 매우 뛰어난 모양인데, 이는 원래의 재능과 더불어 800년이나 법력이 봉인된채 세상을 떠돌아 다닌 것을 생각하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남을 제압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공격은 하지만, 남을 다치게 할 목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없었던 탓에 스스로도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는 잘 모르는 듯 하다.
  • 꽃을 좋아한다. 작가에 따르면 초기 설정에서의 사련은 추방되었을 때 화신(花神)으로서 꽃이 피고 지는 일을 주관했다고 한다.


[1] 신을 기쁘게 한 태자[2] 두 번의 폄적을 겪고 인간계에서 고물을 주워다 판 전적 때문에 붙여진 이름[3] 화관무신(花冠武神)에서 첫 글자를 따 성을 붙인 가명[4] 화성이 은애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호칭[5] 180cm처럼 위장이 가능하다.[6] 음력 6월 12일[상천정] [8] 논란으로 인해 현재는 등유희 성우로 교체됨[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오디오드라마]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길성고조] [16] 신도들이 바치는 향불과 공양[스포일러] 정확히는 비단에 혼이 깃들어 생겨난 정괴이다. 백무상이 법력을 불어넣었고, 사련의 피가 묻고, 그의 부모인 두 황족의 숨을 끊으면서 원기와 사기가 묻어 변화한 것.[스포일러2] 인면역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사련을 찌르는 데에 사용한 물건이었으며 이를 백무상이 사련에게 주었고, 그가 영안에 인면역을 퍼뜨리려던 때 원혼들을 모으는 매개로 쓰였다. 방심의 진짜 이름은 ‘주심’으로, 본래 이천 년 전 오용 태자의 패검이었다.[19] 신관을 인간계로 쫓아낼 때 채우는 물건이다. 보통의 경우 폄적된 신관들은 나이를 느리게 먹지만 군오의 자비로 인해 사련은 주가를 통해 불로불사로 살게 되었다.[20] 사람들은 초반에 그런 행위에 거부감을 표했으나 사람들 내에서 인면역이 퍼지기 시작하고, 백무상의 '사련은 신이니 찔려도 죽지 않는다'라는 말과 사련에게 강도질을 당할 뻔한 부자의 발언으로 선동되었다.[21] 사실 소년은 원혼이 약해졌을 뿐 소멸하진 않았다. 이후 이 소년은 동로산에서 고난을 이겨내고 '절' 등급의 귀왕으로써 재탄생한다. 즉, 이 소년이 바로 화성이다.[22] 하나는 법력을 봉하고, 또 하나는 운수를 거둔다.[23] 외전에서 이 당시를 회상할 때 그 무덤 안에 얼마나 있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었고 나중에는 고통과 후회 속에서 거의 미쳐갔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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