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1b><colcolor=white> 빈센트 프라이스 Vincent Price | |
본명 | 빈센트 레너드 프라이스 2세 Vincent Leonard Price Jr.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11년 5월 27일 |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 |
사망 | 1993년 10월 25일 (향년 82세) |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신장 | 193cm |
직업 | 배우, 예술 역사가, 예술품 수집가, 요리사[1] |
활동기간 | 1935년 – 1992년 |
데뷔 | 1938년 영화 'Service de Luxe' |
부모 | 아버지 빈센트 레너드 프라이스 어머니 마르게리트 코브 프라이스[2] |
배우자 | 이디스 배럿(1938 ~ 1948) 메리 그랜트(1949 ~ 1973) 코럴 브라운(1974 ~ 1991) |
자녀 | 아들 빈센트 배럿 프라이스(1940. 8. 30 ~ )([age(1940-08-30)]세)[3] 딸 빅토리아 프라이스(1962. 4. 27 ~ )([age(1962-04-27)]세)[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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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50~60년대 미스터리 호러 장르를 제패한 대표 3인방 (좌) 피터 쿠싱, (중) 빈센트 프라이스, (우) 크리스토퍼 리 |
미국의 영화배우.
2. 생애
예일 대학교에서 미술사학 석사학위를 받은 재자이며, 1930년대부터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연으로 머물렀으나 1950년대부터 저예산 호러영화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193cm 큰 키에 독특한 비음과 웃음소리, 치켜 뜬 눈썹과 광기 어린 눈빛은 등 공포영화에 최적화된 배우였다. 악당으로 나와도 동정심과 웃음을 불러 일으키는 묘한 매력의 소유자.로저 코먼이 제작, 감독하던 영화에 단골로 나왔으며 팀 버튼은 그를 열렬히 좋아해서 단편만화영화 빈센트를 만들 정도였고 후일 가위손에 출연하기도 했다. 에드워드 가위손을 만든 발명가로 잠깐 얼굴을 보였다. 마지막 영화는 1992년 TV 영화 하트 오브 저스티스로, 1년 후인 1993년 폐암으로 사망한다.
현실에서는 자상한 성격이었으며 요리책을 펴내고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할 정도로 미식가이자, 갤러리를 설립한 미술 수집가였다.
3. 출연작
- 돌아온 투명인간 (1940)
- 로라 (1944)
- 하우스 오브 왁스 (1953)
- 십계 (1956) - 건축사 바카 역
- 플라이 (1958)
- 헌티드 힐 (1959)
- 어셔가의 몰락 (1960)
- 정복자 로뷔르 (1961)
- 붉은 죽음의 가면 (1964)
- 지구 최후의 사나이 (1964) (나는 전설이다 영화화)
- 큐컴버 캐슬 (1970)
- 빈센트 (1982) - 나레이션
- 위대한 명탐정 바실 (1986) (더빙)[5]
- 가위손 (1990)
- 욤욤 공주와 도둑 (1993) (더빙)
빈센트 프라이스가 나온 공포영화나 소설, 시 낭독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게 많다.
4. 기타
- 앨리스 쿠퍼의 유명한 앨범 <Welcome to My Nightmare>에서 나레이션으로 참여하였다.
- 마이클 잭슨의 명곡 '스릴러' 뮤직비디오의 후반에 나오는 나레이션도 그가 맡았다.[6] 라이브에서도 선보인 적이 있다.
4.1. 웃음 소리
호러 영화의 거장인 빈센트 프라이스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그의 웃음소리이다. 마이클 잭슨의 불후의 역작 Thriller에 사용된 것으로 유명하며, 워낙 유명하다 보니 빈센트 프라이스에 대해 모른느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본 웃음소리로, 대한민국 힙합 그룹 배치기도 '볕뜰날 있어'에서 이 웃음소리를 사용된 바 있다.
4.2. 닥터 스트레인지
- 빈센트 프라이스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바로 닥터 스트레인지. 단순히 특정인의 외형을 모티브로 삼은 얼티밋 유니버스의 닉 퓨리 등의 예시와 다르게 닥터 스트레인지는 캐릭터의 정체성이나 컨셉 자체가 호러 마스터였던 빈센트 프라이스의 커리어에 직접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