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피터 쿠싱 Peter Cushing OBE | |
본명 | 피터 윌튼 쿠싱 Peter Wilton Cushing |
출생 | 1913년 5월 26일 |
잉글랜드 서리주 켄리[1] | |
사망 | 1994년 8월 11일 (향년 81세) |
잉글랜드 켄트주 캔터베리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배우 |
활동 | 1935년 ~ 1991년 |
신체 | 183cm[2] |
배우자 | 바이얼럿 헬런 벡(1943년~1971년 사별) |
[clearfix]
1. 개요
영국의 배우. 대표적으로 맡은 캐릭터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윌허프 타킨.호러 영화 제작사로 유명한 해머 영화사의 초창기부터 전성기를 이끈 배우로 아브라함 반 헬싱, 셜록 홈즈, 프랑켄슈타인 박사 등 이지적이고 냉철한 인물 연기를 주로 맡아 했으며 드라큘라 역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리의 상대 역(주로 적대자)으로 많이 출연했다. 미이라(1959)에서는 크리스토퍼 리는 부활한 미이라로, 피터 쿠싱은 고고학자로 등장하여 서로 맞서 싸웠다. 영화에서 맡은 배역과는 반대로 리와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2. 특징
자기가 맡은 캐릭터의 연구가 철저했는지 일부 유명한 장면은 피터 쿠싱의 제안으로 본래 각본과 바뀐 경우가 여럿 있다. 일례로 드라큘라의 공포에선 원래 반 헬싱이 숨겨둔 십자가를 꺼내 드라큘라를 죽이는 것이었지만 쿠싱이 "반 헬싱이 무슨 십자가 장사꾼이냐"고 태클을 걸어 커튼을 걷고 햇빛으로 드라큘라를 불태우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크리스토퍼 리와 더불어 1950-70년대 영국 호러 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배우인지라, 호러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아직도 자주 회자된다.두 가지 다른 버전의 바스커빌 가의 개 영화판에서 셜록 홈즈 역을 맡았다. 드라마판을 찍을 땐 본인이 셜록 홈즈의 팬이라 원작에 더 비슷하게 각본을 바꾸게 했다고 한다. 당시 아내가 병에 걸려서 거기에 신경 쓰느라 본인은 연기에 만족하지 못했지만 충분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 외에 잘 안 알려졌지만 미묘하게 닥터로도 등장했다. 다른 게 아니라 달렉이 나오고 타디스가 나오는 건 딱 닥터후인데 그가 등장한 영화 〈Dr. Who and the Daleks〉(1965)의 닥터는 인간인 데다가 타디스를 발명한 걸로 나온다. 거기다가 진짜로 성이 Who다.[3][4] 속편으로 〈Daleks' Invasion Earth 2150 A.D.〉(1966)가 있다.
그러나 영국 배우인 것도 있고, 출연했던 영화 대부분이 이제는 옛날 영화가 되어 버린지라 다른 역할보다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4의 윌허프 타킨 대총독 정도가 한국 사람들에게는 많이 익숙할 것이다. 당시 스타워즈 출연 주 조연 배우 대부분이 무명이었고, 알렉 기네스와 쿠싱만이 그나마 알려진 배우였다. 그 중 기네스는 당시에도 전성기는 살짝 지난 상태였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3 - 시스의 복수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도 수십년만에 타킨 역으로 재등장하지만, 이 때는 이미 작고한지 오래 된 후라 진짜 본인이 등장하는 게 아니라 연기는 영국인 배우인 가이 헨리가 하고 얼굴은 CG 합성으로 재현했다. 일부 민감한 관객들은 CG 티가 난다고 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크게 이질감이 없다고 여겨졌으며, 특히 목소리는 쿠싱의 그것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
3. 기타
- 영화 배우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TV 배우로 유명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TV란 피터 쿠싱에 안테나만 달린 것'이라는 농담이 나왔을 정도였다.
- 스크린에서의 냉철한 모습과는 반대로 아주 온화하고 선량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영화 중에서 레아 오가나가 "냄새나는 더러운 제국의 앞잡이"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레아 오르가나 역을 맡았던 캐리 피셔가 여기서 NG를 내며 했던 말이, 너무나 향기로운 라벤더향 향수를 뿌린 신사분에게 저런 대사를 하기가 어려워서였다고 한다.음성 프로 배우들이 아무것도 없는 초록색 막 앞에서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연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배역 몰입력을 가진 것을 생각해보면, 겨우 향수 냄새가 좋다고 연기를 못 할 정도는 아닐 테니 악역 연기와 실제 모습 사이의 갭이 그 정도로 컸던 것으로 보인다.
- 아내와 사이가 굉장히 좋았는데 그런 아내가 죽자 너무 슬퍼했던 나머지 빈센트 프라이스가 걱정도 했었다고. 이후 촬영장에 항상 아내 사진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어 무명 배우 시절에는 그림을 그려서 팔기도 했다. 캐릭터 연구를 할 때 대본에 직접 캐릭터를 그리기도 했다.[5]또한 밀리터리 디오라마 제작이 취미였으며, 실력도 꽤 좋았다.
[1] 현재는 런던 크로이던 켄리[2] 자서전에 나와있는 키이다. '나는 간신히 6피트(약 183cm)를 넘었고 몸무게는 12스톤 5파운드(약 78.5kg)였다. #[3] 국내에서는 이 영화를 적절히 편집해서 닥터후 첫 에피소드와 동일한 제목을 붙인 영상이 닥터후의 첫 에피소드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었다.[4] 닥터후 50주년 기념 에피소드 이후 스티븐 모팻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 영화들이 닥터후 세계관에도 존재한다는 암시로서 이 영화의 포스터를 등장시키려고 했다가 저작권문제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다만 소설판에서는 포스터가 언급이 되기는 한다.[5] 1959년작 셜록 홈즈 대본에 홈즈를 그린 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