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과 성북구 정릉동을 연결하는 편도 2차선(왕복 4차선), 길이 810m, 폭 12.1m, 높이 6.25m의 터널이다.2. 역사
개통 당시의 모습
- 1971년 9월 10일 : 개통 및 개통식. 박정희 대통령과 양택식 서울시장 등이 준공식에 참여하였다.
- 1979년 5월 : 전면 보수계획 수립
- 1979년 8월 14일 : 통행료 인상
- 1982년 7월 ~ 1983년 10월 : 터널 보수로 인해 심야시간대 통행 제한(0시~5시)
- 1982년 7월 31일 : 차종 통행료를 100원으로 단일화
- 1988년 6월 : 교통체증으로 인한 4차로 확장계획 수립[2]
- 1989년 8월 4일 : 4차로 확장공사 착공 당시 기사 [3]
- 1991년 12월 7일 : 신터널 개통당시 기사
- 1995년 : 무료화
- 2007년 11월 4일 : 내부순환로 국민대입구 램프 개통으로 인해 정릉동 쪽 입구 인근에 U턴 지하차도(정릉지하차도)가 개통하였다.
- 2008년 중반 : 북악터널의 조명이 오렌지색 나트륨등에서 흰색 고효율 형광등 조명으로 교체되었다.
- 2010년 : 북악터널 평창동 방면 터널에 보행로가 조성되었다.
- 2015년 4월 : 노후화된 터널 환풍기가 철거되어 환풍기 없는 터널이 되었다.
3. 개통 목적
당시 날로 늘어가던 서울 인구로 인해 미아리고개가 폭증된 교통량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서울 동북부권에서 도심을 향하는 교통량을 분산시키고, 서울 동-서부 연결을 위해 착공하게 되었다.4. 기타
북악터널은 국내 최초로 이폴시특수방수제를 도입하고, 일본 기술을 이용해 지었으나 준공 2년 뒤인 1973년경부터 터널 환기장치가 고장나고, 반원형 구조로 인해 터널 내부 방수가 제대로 안되어 물이 새는 등 문제가 심했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남산1호터널과 유사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로 인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꾸준히 보수 공사를 이어나갔다. 또한 개통 당시부터 정릉로와 평창문화로는(당시 세검로) 4차선 규모였는데, 터널만 2차선 규모라 병목 현상이 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89년 북쪽에 신터널을 착공하여 2년 뒤 개통했다.2차선 규모 당시 요금소의 모습 (1981년) | |
4차선 규모 당시 요금소의 모습 (1994년) |
개통 당시부터 유료로 운영했는데, 유료 운영으로 인해 북악터널을 기피하는 운전자도 있는 편이었다. 게다가 톨게이트가 병목 현상을 부추기고 통행 속도를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도 있었다.[4] 서울 시내에 눈이 쌓이면 자주 통제되기도 하는 구간이었다.
2007년에는 내부순환로 국민대입구 램프 개통으로 인해 램프 진출차량이 신호 없이 U턴하도록 정릉지하차도를 개통했다.
요금소는 정릉동 국민대학교 인근에 위치해 있었으며 동전을 미리 준비해서 바구니에 던지는 식으로 수납했다.
터널 내부에 평창동 방향으로 상구배가 존재한다. 자전거를 타 보면 평창동 측 출구까지 계속 오르막이라 힘들 수 있다. 반대로 구기터널은 은평구 쪽으로 내부에 하구배가 있다.
[1] 착공 당시부터 유료 터널로 계획되었다.[2] 당시 좌우측 도로는 모두 4차선이었는데, 터널만 2차선이어서 병목 현상이 심했다. 정릉에서 평창동 방면은 톨게이트까지 있어서 더 심각했다.[3] 현재 평창동 방향으로 가는 터널이 이때 착공된 것이다. 반대 정릉방향이 구터널.[4] 남산터널과 달리 톨게이트가 오르막에 위치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