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마츠다 토코(松田東興)[1] |
본관 | 제주 부씨[2] |
출생 | 1927년 10월 4일[3] |
전라남도 제주도 구좌면 동복리 1602번지 (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 |
사망 | 1999년[4] 5월 26일 (향년 71세)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279호 |
상훈 | 대통령표창 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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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기업인. 1995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2. 생애
1927년 10월 4일 전라남도 제주도 구좌면(現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1602번지에서 아버지 부자도(夫子道, 1894. 2. 21 ~ 1966. 2. 15)와 어머니 청주 한씨 한생도(韓生道, 1889. 8. 19 ~ 1966. 7. 26)[5] 사이의 6남 7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일본 오사카부 동아전기통신공학교(東亞電氣通信工學校)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7월, 경상남도 동래군 출신의 동기생 나카노 요시오(中野吉雄)[6]와 히로시마시 산요(山陽)상업학교 재학 중이던 합천군 출신의 정주식(鄭周植)[7]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한 뒤 오사카부와 히로시마현 지역의 조선인 학생들을 동지로 포섭하여 자주 회합을 가졌다. 이들은 회합을 통해 ① 일본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 시기에 독립 쟁취를 위해 봉기할 것, ② 만주에 비밀결사의 본부를 설치해 독립국민군(獨立國民軍)을 편성할 것, ③ 만주를 조선의 영토로 할 것, ④ 전주 이씨 왕공족들은 매국의 책임자로 처단하고 공화국으로 조선 독립을 실현할 것 등 네 가지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여름방학을 이용해 고향 제주도로 돌아와 계몽소설 창작, 조선의 농촌 실정과 사상운동 동향에 대한 조사, 제주도 지역 진출 후 탈출 경로 탐색 등 임무를 수행하다가 1943년 11월 25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4년 6월 3일 오사카지방재판소 검사국에 송치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8.15 광복을 맞아 복학해 학교를 졸업했고, 귀국 후에는 신흥무진(新興無盡) 주식회사를 창립해 사장에 취임했다. 1967년 6월 27일에는 영륭산업(永隆産業) 전무이사로서 수출용 원자재 계약을 위해 일본항공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출국한 기록이 보인다.
1995년 광복절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 1999년 5월 26일 별세했고, 그의 유해는 2006년 6월 22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