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법정의 논란과 오해를 서술하는 항목.2. 무소유에 대한 오해
본인의 항목에도 나오는 것처럼, 법정은 생전에 무소유를 철저하게 지키면서 살아갔고, 이에 관련한 책을 동명의 제목으로 집필했다. 그러나 이 무소유의 의미에 대하여는 여전히 이를 접한 사람들 사이에서 찬반 및 논란에 놓여져 이에 대한 논의도 현재 진행 중에 있다.일반적으로 알려진 무소유에 대한 말뜻은 불교의 소욕지족, 즉 적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로, 쉽게 말하자면 '가지지 말자. 즉 가지더라도 많이 가질 필요는 없다.'는 뜻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무소유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시기에는 적은 물건으로 생활하는 미니멀 라이프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는데 즉, 가지지 말라는 것은 노숙자와 유사하게 빈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냐는 의견과 동시에 법정의 의견은 승려가 자주 밖에 나오지 않다보니 현대 시대의 시장 경제와 제도의 장점을 완전히 역행하는 것에 불과한 보수적인 발언이란 의견도 있다. 아예 이를 비판한 기사도 있을 정도이며 심한 경우에는 법정을 비하하는 정도에 이르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법정은 어디까지나 소유로 인한 부작용 및 사회 문제를 우려해서 무소유를 하라고 주장했을 뿐이지 시장 경제와 사유 재산 제도 자체를 부정한 적은 없다. 또한 무소유 항목에 나와있듯이, 법정이 말한 무소유는 '가지지 말자'가 아니라 '가져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1]는 의미라고 밝힌 바 있고, 법정이 생전에 화초에 대해 집착심이 생긴 것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망설임 없이 준 일화를 밝혔다. 즉 불필요한 소비로 자연과 경제를 무너뜨리지 말고 자연과 화합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도인데, 이를 잘못 해석해서 생긴 오해.[2][3]
법정의 무소유 건만이 아니라 법정 본인이 무소유를 실천하는지에 대한 오해도 있는데, 법정이 사실은 상당한 인세를 유럽, 인도 여행을 다니는데 사용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허위사실로, 유럽의 경우 프랑스 파리에 송광사 분원이 있어 법문을 위해 갔다오는 것으로 여비는 종단에서 내주고, 인도의 경우 기행기를 신문에 연재한다는 조건으로 조선일보에서 대줬다.[4] 정작 인세는 모두 장학금이나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했다고 한다.[5]
2.1. 법정의 사망 원인에 대한 논란
법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소수 있는데, 이건 그의 병명이 폐암이고 병원에 입원한 것에 대해 안 좋은 추측이 돌았기 때문인 듯 하다. 대개 폐암의 원인은 담배라는 인식 탓인데, 폐암의 원인은 절대 흡연만 있는 게 아니며 실제로 전체 폐암 환자의 15% 정도가 비흡연자임에도 폐암에 걸린다. 실례로 평생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는 최영의도 사인은 폐암에 의한 호흡부전이다. 이에 대한 말을 많이 들었는지 자신이 폐암에 걸린 건 집안 내력이라 따로 말하기까지 했다. 링크흡연 외에도 결핵 등 폐질환 병력이 있을 시 폐암 발병률이 높으며, 육식과 오신채를 금하는 식생활의 불균형과 무리한 수도 생활 역시 폐암의 원인이 될 수도 있는 등 의외로 폐암의 원인은 상당히 다양하다. 여성 비흡연자임에도 폐암에 걸린 환자가 많아 연구해보니 요리하면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원인이라고 한다. 향(香)을 피울 때 나오는 독한 연기가 그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독실한 불자 신성일은 자신이 폐암에 걸린 원인이 향(香)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6] 오랜 세월 부모 영정 앞에서 향을 피우고 앉아 있었다고 한다. 故신성일이 언급한 폐암 원인 ‘향’
2.2. 디시인사이드의 왜곡 짤방 사용
"믿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자식이라 하는 인간들을 지옥불에 던져버리는 당신네들의 신을 난 당최 이해 할 수가 없다... 차라니 난 지옥에 가서 당신네 신에게 버림받은 그 억울한 영혼들을 구제하겠다"
인터넷 방면으로 주로 전파된 짤방(삭제됨)
인터넷 방면으로 주로 전파된 짤방(삭제됨)
한때 법정이 '믿지 않는다고 자기 신자들을 지옥불에 던지는 기독교가 혐오스럽다고 차라리 난 지옥에 가서 버려진 영혼들을 구제하겠다.'는 기독교 비하 발언을 한 바가 있고 이를 디시인사이드의 종교 갤러리에서 짤로 사용한 게 인터넷 상에 전파되었다. 이로 인해 법정이 불교 외의 다른 종교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하다며 그에 대한 비난도 많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를 혐오하는 반기독교 세력들이 '한 승려'가 한 이야기라 주장한 게 퍼진 것이 와전되었고, 애초에 이 발언이 사실인지도 그 말을 법정이 한 말이란 근거조차도 없는 카더라 통신이다. 이를 진짜로 믿은 어리석은 케이스도 있다. 어찌나 심각한지 길상사에서 직접 사실이 아니라고 공문을 올리기도 했다. (길상사의 해명 공지)[7]
거기다 법정이 사망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름 있는 고승에 대해 짤로 고인비하 및 종교 비하를 저지른, 디시인사이드 특유의 문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2.3. 타 종교 비하 논란
생전 법정은 타 종교에 대해 호의적인 편으로 크리스천인 함석헌을 존경하거나 이해인과 교류를 가지는 등 타종교인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천주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려는 사람에게 "천주교나 불교나 사랑의 근본은 모두 같으니 개종하지 말라"고 권유했다. 이 부분에 대해 "사람이 어느 종교에 지내든 종교를 개종하든 그 사람의 자유인데 사랑의 근본은 모두 같다고 개종을 반대하였다"며 종교의 자유를 가로막을 수도 있는 위험 발언이 아니냐고 비판을 하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 일화는 초당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 문현철이 법정을 추모하는 기고문을 모은 <법정, 나를 물들이다>에 서술한 실제 일화로(#), 이를 지나치게 과장하여 해석하거나 전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판단한 오류에 가깝다.문현철이 법정을 처음 만난 것은 고교 2학년 때인 1982년 12월 초였다. 시골 중학교에서 전교 1~2등을 하다 광주에 올라와 떨어진 성적 때문에 말 못할 방황을 할 때 학교 상담 교사가 법정의 책 <산방한담>을 읽어볼 것을 권했고, 하룻밤 만에 <산방한담>을 읽은 지 일주일 후 평소 좋아하던 광주광역시 금남로1가에 있는 클래식음악감상실 '베토벤'[8]에서 실제로 법정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9] 그는 법정 앞에 앉아 “군인도 되고 싶고, 교수도 되고 싶은데 뭐가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당돌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법정은 “‘무엇이 될 것이냐’보다 ‘어떻게 살 것이냐’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톨릭 입문을 준비하던 문현철은 다음해(1983년) 3월 다니던 명동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는데,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된 바로 그날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다 1주일 만에 깨어났다.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자가 된 바로 당일에 교통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맬 지경이 되었던 문현철은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까지 품게 되어, 당시 김수환을 찾아가 "하느님이 의로우시다면 왜 내가 세례를 받은 바로 첫날부터 이렇게 내 목숨을 거둬가려 하셨느냐?"며 따지듯 물었고 김수환이 "하느님께서도 생각이 있으셨던 것"이라며 그를 위로했지만, 의문이 가시지 않아서 5월 말 퇴원하자마자 법정이 있던 조계산 불일암을 찾았다. 이때 문현철이 법정에게도 김수환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하느님이 계시다면 나를 친 차를 붙잡아주지 않고 영세받은 바로 그날 들이받게 내버려둘 수 있겠느냐”고 질문하자, 법정은 “천주님은 그런 만화 같은 일을 하는 분은 아니다. 이런 아픔을 통해 네가 더 성숙해져, 더 큰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문현철은 어려서 부모를 잃고 할머니의 도움으로 살면서[10] 조선대 법대 1학년 1학기를 겨우 마친 뒤 등록금을 마련 못해 학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고, 문현철은 1987년 6월 항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법정에게 이러한 생각을 털어놓으며 "차라리 스님 따라서 불교로 개종할까 싶습니다."고 말을 던졌는데, 그때 법정이 “누구는 청국장을 좋아하고, 누구는 김치찌개를 좋아할 뿐이지만 천주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는 풀어보면 한 보따리다. 개종할 거 없으니 그대로 있어라.”며 개종을 말린 것이다.[11] 법정은 일부 개신교 목사들처럼 가톨릭의 교리를 공박하거나 가톨릭 자체를 비난하면서 개종을 권한 적도 없고, 문현철이 개종을 말한 것도 학업 스트레스나 시국의 불안 속에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어디가 마음 둘 데가 절실한 와중에 반쯤은 던지듯 나온 발언이라 그 점을 지적하면서 "굳이 개종까지 할 필요 없다"고 말린 것이다. 이는 전의 항목에서 말한 것처럼 개종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 아니라 개종까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고민하던 사람의 길을 잡아준 것에 가깝다. 문현철은 이에 대해서 "법정 스님 덕분에 내 가톨릭 신앙을 지키면서도 스님을 따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한 문현철이 법대 1학년 1학기를 겨우 마치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법정은 불현듯 “등록금 고지서를 베토벤에 맡겨놓으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졸업 때까지 빠짐없이 법정은 문현철에게 등록금을 지원해 준 것은 물론, 문현철에게 같은 대학 친구 가운데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사람 3명만 알아오라고 해서 그 학생들의 등록금도[12] 졸업 때까지 도와주었다. 그러면서도 문현철이나 베토벤의 주인에게 그가 도움을 준 사실을 일절 함구토록 해 지금까지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 이밖에도 법정은 자주 문현철에게 학문을 배우는 태도와 자세에 대한 조언을 해 주었으며, 문현철은 그 인연으로 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창립식에 참석해 법정을 만나 축하했고, 법정이 사망하자 장례식에도 참석했다. #
[1] 불교의 핵심 교리인 사성제에서 고통의 원인을 집착으로 본다는 점을 생각해보자.[2] 다만 이는 잘못 해석할 경우 자기가 가진 물건 및 주변 인물들에게 애정도 우정도 주지 않고 냉담하거나 무감정한 태도로 대해야 한다고 오해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일부 경전(특히 아함경)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해석해서 부처는 돈을 벌라고 했다며 주장하는 유사 경제학자도 있다.[3] 사실 법정의 이 발언 자체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는 부자나 재벌 등 기득권층은 가진 것에 집착하는 마치 졸부 그 자체로 인식될 수 있다. 다만 이는 지나치게 현실세계의 측면에서 바라본 관점으로, 불교에서 대개 집착에 대해 말할 때는 현실세계에서의 집착보다도 마음 속에서 가지고 있는 집착 그 자체를 이야기 하기 때문에, 단순히 부자라고 하여 집착한다고 말할수는 없다.[4] 이 기행기는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나왔다. 이것을 보면 1980년대 후반의 인도, 네팔 배낭여행이 어땠는지를 대략적으로 볼 수 있다.[5] 그 때문에 자신의 병원비를 댈 돈이 없었으나, 독실한 원불교 신자로 유명한 이건희의 부인 홍라희가 법정의 임종 직전 밀린 치료비 수천만 원을 대납해줬다.[6] 신성일 역시 평생 담배를 멀리했다.[7] 다만 성철의 열반송을 두고 개신교계에서 일방적인 해석을 들이대자 법정이 "진정한 참회와 함께 지옥에 가서라도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커다란 서원"이라고 풀이했는데, 1994년 PC통신 하이텔 상담실에 올라왔다는 이 해당 질의응답이 불교 신문에 게재된 적이 있는데 # 이게 어찌저찌 와전되어 전해진 결과일 수도 있다.[8] 1982년에 문을 열었으며, 전남도청 앞 금향빌딩 6층에 있고 지금도 운영한다. 2007년에 경영난을 겪어 문을 닫을 뻔했지만 준태, 성진기 등 단골 고객들의 도움으로 폐점되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9] 바로크 시대의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 법정은 불일암에서 광주에 올라오면 그 감상실에서 지인들을 만나곤 했다.[10] 법정 역시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다.[11] 출처: <법정, 나를 물들이다>에서[12] 학과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나 성적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