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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하메드 살라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2. 유소년 시절
2002년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있는 아랍 콘트랙터스 SC(알-무카윌룬 알-아랍)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살라는 이집트 북부, 수도 카이로에서 130km 떨어진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 소위 말하는 동네에서 공 좀 차는 소년이었다고 한다. 아랍 콘트랙터스는 이 작은 재능을 발견하고 유소년 팀으로 살라를 스카웃했다. 살라는 버스로 3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를 주 5일 다니며 아랍 콘트랙터스 훈련에 참가하였고, 때때로 학교를 조퇴하고 훈련을 하러 갈 정도로 축구에 미쳐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훈련에 매진한 결과 아랍 콘트랙터스 최고의 유망주가 되었다. 원래 그의 유소년 시절 포지션은 측면 수비수였다. 아랍 콘트랙터스 U-16 감독이었던 엘 시시니는 "과감한 공격가담과 측면 돌파를 즐기는 스피드 레이서" 인 살라는 수비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였고 과감하게 측면 윙어로 기용하였다. 이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되어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3. 알 모콰룬 알 아랍 SC
2010년 1군 팀으로 승격하였으며 2010년 5월 3일 만수라와의 대결에서 이집트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하였다. 2010년 12월 25일 알 아흘리 SC와의 경기에서 첫 골을 넣었다. 2010-11 시즌부터 살라는 주전 선수로서 도약 하였다. 2011-12 시즌에도 주전 선수로서 계속 경기에 나섰다. 그러나 포트사이드 스타디움에 재난[1]이 닥치며 2012년 2월 이집트 프리미어 리그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이집트 축구협회는 2012년 3월 10일 공식적으로 시즌을 취소한다는 결정을 내렸다.4. FC 바젤
79경기 20골 |
2012년 3월, 당시 이집트 U-23 대표팀은 바젤과의 친선전에 나섰는데 바젤 관계자들은 빠른 스피드를 가진 살라의 플레이에 매료되었다. 계약을 위해 살라에게 접근하였고, 제안을 받아들인 살라는 2012년 6월 15일에 바젤에 공식적으로 입단했다. 살라는 비공식적으로는 2012년 6월 23일 친선경기인 FC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전에서 데뷔했고, 공식적인 데뷔는 8월 8일 챔피언스 리그 몰데 FK와의 경기였는데 74분에 교체로 투입되었다. 2012-13 시즌 스위스 수퍼리그에서 리그에서만 29경기 5골을 넣으며 팀의 우승에 크게 기여하였다. 2013-14 시즌도 18경기 4골을 넣으며 팀의 핵심선수로서 자리잡았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 첼시에 2번 모두 패배를 안겨주었고 이는 후일 첼시로의 이적을 가능케 하였다.
여담으로 이 시기 룸메이트가 박주호였다. 살라의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정리정돈이 서툴러 박주호가 잔소리를 많이 했다고 한다.
5. 첼시 FC
19경기 2골 |
2014년 1월 23일 첼시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1,100만 파운드로 추정된다.
5.1. 2013-14 시즌
그리고 31R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 교체출전하여 데뷔골을 넣었다.[2] 33라운드 스토크 시티와의 홈경기에서는 선발출장해 선제골을 넣고, PK를 유도한 뒤 윌리안의 쐐기골까지 어시스트하는 맹활약으로 3-0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경기에 거의 출전하지 못하고 있으며 첼시의 2선이[3] 포화인 것도 살라에겐 악재였다.한편, 2013-14 시즌 당시 우승 경쟁 중이던 리버풀이 4월 홈경기 첼시 전에서 스티븐 제라드의 실수로 뎀바 바에게 실점하면서 우승이 좌절되는 순간을 첼시의 선수로서 바로 뒤에서 보고 있었다.[4][5] 첼시 이적 당시 리버풀과도 숱한 링크가 있었고 현재의 살라는 리버풀의 에이스이며 심지어 6년 뒤 리버풀의 첫 프리미어 리그 우승의 주역임을 생각하면 살라와 리버풀의 인연은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그로부터 5년 뒤 다시 우승 경쟁 중인 리버풀과 첼시가 맞대결하면서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5.2. 2014-15 시즌
2014-15 시즌에는 에덴 아자르의 번호였던 17번을 이어받았으나 여전히 부진했다.그리고 입대를 해야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지만[6] 이집트의 국무 총리가 직접 군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여담으로 네이버 스포츠 뉴스에서 살라 관련 기사가 뜨면 '무리뉴가 드리블 짧게 치는 훈련 시키고 있음' 혹은 '무리뉴가 개인 레슨 시키고 있음' 따위의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살라가 리버풀에서 대성한 후 드록바의 증언에 따르면 이 시절 살라는 너무 자신감 없이 기가 죽어있었다고 한다. 자기한테 하소연한 적도 있다고 한다.
5.3. ACF 피오렌티나 (임대)
26경기 9골 |
첼시에서의 부진 때문에 2015년 2월 2일 ACF 피오렌티나로 임대되었다. 임대 기간은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이고 완전 이적 옵션도 붙어있다. 등번호는 74번.
임대 이후 세리에 A에서 4경기 3골 1도움, UEFA 유로파 리그에서 2경기 1골로 순항 중이다. 나이가 어린만큼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재능. 코파 이탈리아 4강 1차전 유벤투스전에서도 두 골을 넣으며 유벤투스의 47경기 홈무패 행진과 41경기 무패행진을 끝냈다. 7경기 6골, 72분당 한골이라는 어마어마한 페이스로 피렌체를 이끌고 있다. 빈첸조 몬텔라 감독이 호아킨과 살라를 윙어로 내세우는 4-3-3 포메이션에 전방 압박을 통해 볼을 따내 빠른 역습을 하는 전술을 쓰면서 살라의 파괴력이 극대화되었다. 당연히 피렌체는 완전 영입을 준비하고 있다. 15-16시즌 임대 연장에 100만 유로, 그리고 15-16 시즌이 끝난 후 1,700만 유로의 바이아웃이 발동된다고 한다.
5.4. 이적 사가
시즌 후반기부터 인테르, AS 로마 등 다른 세리에 A팀으로 이적할 것이라는 떡밥을 날리다가, 15-16 시즌부터 임대로 결국 AS 로마에서 뛰게 되었다. 1년 임대료는 100만 유로이고 일정 경기 수를 초과했을 시 자동으로 1,500만 유로 완전 이적 옵션이 발동된다고 한다. 등번호는 11번.논란이 매우 컸던 이적으로 이 이적이 어떻게 성사되었냐면,
- 후안 콰드라도의 첼시 이적 딜에 살라가 끼게 되어 6개월 임대 + 임대연장 시 완전이적 조항으로 피렌체에 임대
- 살라가 의외로 활약을 펼치자 피오렌티나는 첼시 측에 임대 연장을 요청했고 살라는 처음에 동의하더니 그 후 거절. 이 과정이 문제가 되는데 살라 측은 살라에게 임대 연장 거부권이 있었으며, 연장에 동의한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으니 정당하게 임대 연장을 거부한 것이라는 입장, 피오렌티나 측은 살라의 거부권은 계약상으로 명시된 것이 아니며, 살라 측에서 임대 연장 및 연봉 계약 협상을 파토내기까지 했으므로 부당하다는 입장.
- 살라의 인테르 등 타 이탈리아 클럽으로의 이적설 제기.
- 살라 측에서 인테르와 이미 연초에 이적하기로 했다고 밝힘.[7]
- 피오렌티나 측에서 인테르에 대한 강력한 비난을 보냄과 동시에 이 건을 피파에 제소해서 선수 자격을 정지시키겠다고 발언. 인테르 측에서는 피오렌티나의 비난에 대해 경고를 보냄과 동시에 살라가 제소될 경우 영입해도 뛸 수가 없게 되어 살라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는 떨어지게 됨.
- AS 로마, SSC 나폴리 등에서 살라에 오퍼.
- 피오렌티나 측에서 살라 이적에 대해 피파의 개입을 요청하고, 첼시에 보상을 요구.[8] 첼시 측에서는 법정으로 가도 좋다는 입장을 밝히며, 역으로 피파에 임시 이적 승인을 요청.
- 로마와 살라가 이적에 합의. 피파 측에서 살라의 임시 이적을 승인.
이 일은 전적으로 살라의 에이전트인 라미 압바스 측이 피오렌티나와 살라가 헤어질 때 상당히 안 좋은 모습을 보였고 지금도 압바스는 피오렌티나를 조롱하는 트윗을 올리는 등, 피오렌티나 팬들의 속을 박박 긁고 있으며 피오렌티나와 살라의 관계는 이로써 완전히 틀어졌다. 더구나 이 이적건에 관여된 첼시와 로마 모두 피오렌티나와 사이가 벌어지게 됐다. 원래 피오렌티나와 로마는 리그 내에서 사이가 좋은 클럽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 아직도 피오렌티나와 로마의 사이는 좋지 못하다. 최근에 로마 측이 페데리코 키에사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지만 피오렌티나는 단칼에 거절을 했다. 또한 첼시에게 후안 콰드라도를 판매한 이후 피오렌티나는 첼시와 친선경기를 벌이는 등 비즈니스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게 됐지만 이 일로 인해 첼시에게 반감을 가지게 되면서 훗날 마르코스 알론소 협상에서 첼시 측의 디스카운트 요구에 대해서 비협조적으로 일관했고, 결국 이적 시장이 끝나갈 무렵이 되자 백기를 든 첼시로부터 원하는 가격에 팔게 된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 첼시를 떠난게 본인에게 있어 신의 한수가 되었다. 유망주 시절에 가장 필요한 것은 빅클럽의 유니폼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정기적인 출전이 보장되는 팀이다. 그런 살라에게 있어 첼시로의 이적은 실패라 할 수밖에 없다.
6. AS 로마
83경기 34골 20도움 |
6.1. 2015-16 시즌 (임대)
시끄러웠던 이적시장을 뒤로 하고 로마로 합류해 초반엔 Salah is Allah 같은 드립이 흥할 만큼 빼어난 모습을 보이다가 시즌 중반에 들어선 상당히 부진했으나 스팔레티 부임과 함께 귀신같이 부활, 로마의 연승행진을 이끌었다.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만나 두 경기 모두 빠른 발로 레알 마드리드 수비진을 곤혹스럽게 했다. 아쉽게도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여러 차례 뒷공간을 파고들며 인상적인 활약을 했다.
15-16 시즌, 리그 34경기에 나서 14골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9] 챔피언스 리그에선 7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넣었다.[10] 8월 3일, 훌륭한 활약과 꾸준한 출전 덕에 로마로 완전 이적이 자동으로 확정되었다.
2015/16시즌: 42경기 15골 7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4 | 32 | 2 | 14 | 6 |
챔피언스 리그 | 7 | 6 | 1 | 1 | 0 |
코파 이탈리아 | 1 | 1 | 0 | 0 | 0 |
합계 | 42 | 39 | 3 | 15 | 6 |
6.2. 2016-17 시즌
2016년 11월 6일 볼로냐와의 홈경기에선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16-17 시즌은 15-16 시즌에 비해 더 파괴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로마의 확실한 에이스로 거듭났다.16-17 시즌 리그에서 31경기 15골 13도움이라는 무시무시한 스탯을 기록했다. 다른 대회까지 포함하면 총 41경기 19골 13도움. 이게 왜 대단하냐면 중간에 네이션스컵을 갔다 왔는데 복귀하자마자 후유증없이 바로 다시 클럽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2016/17시즌: 41경기 19골 14도움
대회 | 경기 | 선발 | 교체 | 득점 | 도움 |
세리에 A | 31 | 29 | 2 | 15 | 13 |
유로파 리그 | 6 | 4 | 2 | 2 | 1 |
챔피언스 리그 예선 | 2 | 2 | 0 | 0 | 0 |
코파 이탈리아 | 2 | 2 | 0 | 2 | 0 |
합계 | 41 | 37 | 4 | 19 | 14 |
리버풀과 진하게 연결되는 중이다. 리버풀이 살라에게 접근한 건 13-14 시즌 겨울 이적 시장 때[11] 이후로 두 번째인데 위르겐 클롭의 빠른 역습에 잘 맞는 선수라 그런지 구애가 제법 적극적. 결국 리버풀 에코와 BBC까지 던딜 기사가 나며 사실상 이적 확정.[12]
7. 리버풀 FC
[1] 축구 경기 중 관중들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져 79명이 사망하고 1,000여명이 다치는 참사가 벌어졌다.[2] 이 경기는 알렉스 옥슬레이드체임벌린이 반칙을 하고 키어런 깁스가 대신 퇴장당한 그 경기다.[3] 에덴 아자르, 윌리안, 오스카르, 안드레 쉬얼레, 살라. 결국 2014년 겨울에 후안 마타와 케빈 더 브라위너가 첼시를 떠났고 살라는 1년 뒤에 쉬얼레와 함께 첼시를 떠났다.[4]
[5] 짤에서 제일 첫번째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선수가 바로 살라다.[6] 이집트는 옆동네 이스라엘처럼 같은 징병제다. 이집트 리그에도 군팀, 경찰팀이 다 존재한다.[7] 물론 이적 시장에서 클럽과 선수 간 사전 접촉은 엄연한 불법 행위이지만, 구두 약속 정도는 대놓고 다들 하는 분위기이긴 하다. 이 편이 편리하기 때문. 단, 살라와 인테르 측의 사전 접촉이 문서화된 수준인지, 에이전트와 구두로 약속한 수준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대체로 흔히 있는 구두 약속 정도로 여겨지는 중.[8] 피오렌티나가 살라 임대 연장을 위해 임대료를 이미 지불했다는 얘기가 있었다. 첼시와 살라 측에서는 부정.[9] 팀 내 득점 1위[10] 2016년 5월 10일 레버쿠젠과의 홈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었다.[11] 당시 첼시로 이적하게 되었다.[12] 이적을 총괄한 로마 단장 몬치는 구단의 챔스 진출 실패로 인한 적자를 메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라와 안토니오 뤼디거를 팔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