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20:30:36

모살기

1. 개요2. 특색3. 내용
3.1. 일라3.2. 김가기3.3. 지진기3.4. 모살기
4. 이모저모

1. 개요

작가 곽재식의 2010년작 소설로, 2013년에 나온 중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곽재식은 보통 과학소설 요소가 일부 들어간 현대를 배경으로한 밝은 소설로 인기를 끌었는데, 이 책은 대부분 어두운 분위기의 역사 소설이라는 점이 특징. 실린 소설들 중에는 표제작 모살기가 가장 인기를 끌었다.

2. 특색

책에 실린 중편인 모살기와 지진기는 보다 현실적인 묘사가 많고 당대 사람들의 풍습이 자주 나오며 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반면에 보다 앞부분에 실린 단편인 일라와 김가기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환상적인 내용이 많다.

대개 몇줄 남지 않은 간략한 기록을 작가인 곽재식이 당대의 몇몇 기록과 상상력을 덧붙여 그 내용을 재구성하여 만들었다. 내용과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울 뿐만 아니라 과거의 일을 현대에 빗대어 풍자하는 듯한 묘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정말 고전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신비스럽고 예스러운 문체도 주목할만한 점이다. 모르고 읽으면 한문소설을 번역해 놓은 것을 읽는 듯한 독특한 느낌이 난다.

한편 삼국시대를 다룬 대부분의 역사 소설들이 대개 '민족의 웅혼한 기상' 따위를 다루고 있으나 본작에서는 그런 것들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도 신선한 점이다. 애초에 작가가 의도한 바도 그런 것임을 책에 실린 후기에서 밝히고 있을 정도.

3. 내용

3.1. 일라

가야 출신으로 왜국 왜왕에게 등용된 백제의 달솔인 일라라는 인물을 다룬 단편 소설.

본래 가야 사람의 후손으로서 백제에서 달솔 벼슬을 지내고 있는 일라는 평생에 걸쳐 수많은 서책을 읽고 5만여명의 사람들의 일생을 두뇌에 집어넣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신기를 얻게 된다.

일라의 이러한 능력이 널리 알려지자 왜국왕은 사람을 보내 일라를 왜국으로 스카웃해오게 된다. 본국인 백제에서는 지나치게 뛰어난 능력 때문에 되려 심한 견제를 받아 정사에서 밀려났던 일라는 왜국 조정의 호의와 접대에 감격하여 혼심의 힘을 다해 정사를 돌보고 왜국의 국력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보통 사람과는 세상을 보는 시선 자체가 다른 일라는 계속해서 상상도 못할 과격한 정책을 밀어 붙이게 되고, 그로 인하여 왜국 신료들과의 사이도 벌어지게 된다. 급기야 일라가 백제에서 대려온 애첩인 한부는 왜국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등 갈등을 일으키게 되며, 일라는 점차 심신이 피폐해지게된다. 그 와중에 백제에서는 나라를 배신한 일라를 제거하기 위해 자객을 보내온다.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백제의 달솔인 일라에 관한 기록을 토대로 하였다. 일라가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한 카산드라의 설화와 같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꾸며내고 있는 것이 특징.[1] 역사 소설이지만, 일라가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 현대의 빅데이터원리와 통하는 등 이 책에 실린 이야기 중에서 과학소설적인 작가의 특색이 상당히 많이 들어간 내용이다.

3.2. 김가기

신라신선으로 기록에 남아 있는 김가기를 다룬 단편 소설.

당나라내시인 중사가 황제를 미혹하여 재물을 챙기려는 정체불명의 인물인 신라 사람 김가기의 정체를 밝히려고 하다가 온갖 이상한 일들을 겪는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신라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와 시험을 쳐서 진사가 된 김가기는 당나라 황제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곧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하며 재물을 요구한다. 평소에 미신을 가까이하던 황제는 김가기의 말을 듣고는 신기하게 여기면서 주인공인 내시 중사에게 명하여 산속에 숨어사는 김가기에게 재물을 전달할 것을 명한다.

황제와는 달리 평소에 미신을 믿지 않던 중사는 비록 김가기를 사기꾼이라 의심하지만, 충성심이 남다른 탓에 황제의 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직접 김가기의 집을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 곳에서 중사는 기이한 환각을 체험하고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현실 속의 자신을 증명하려는 집착에 빠져든 중사는 스스로 벼슬조자 내쳐버리고는 산 속에 들어가 생사를 넘나드는 고행을 하게된다.

그러던 중에 김가기가 하늘로 올라간다는 날이 다가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김가기가 살던 산골짜기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김가기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며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진 중사는 김가기의 거짓말이 들통나는 순간을 지켜보겠다며 다시 김가기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중국의 기록인 속선전에서 신라 출신으로서 당나라에 건너와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김가기에 관한 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야기로, 장르는 호러 판타지에 가깝다. 특이한 점은 보통 이런 신선 이야기에서 김가기와 같은 신선은 선하고 긍정적인 인물인 경우가 많으나 이 이야기에서는 악인에 가깝게 나와 있다.

3.3. 지진기

고구려 봉상왕 때 일어난 지진을 소재로 한 중편 소설.

고구려의 재상인 창조리의 정책에 따라 일종의 전시행정에 시달리는 말단 관리들의 시각에서 관찰한 지진으로 인한 고구려 각계 각층의 소동을 다루고 있다.

고구려 봉상왕 때에 달탄이라는 한 지방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백성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크나큰 피해를 입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자 달탄에서 별자리를 살펴 앞날을 점치는 직책을 담당하고 있었던 영성관의 일관들은 이를 미리 알지 못한 일로 큰 곤혹을 치르게 된다.

한편 고구려의 국상으로서 국정을 장악하고 있던 창조리는 '백성들을 즐겁게 한다'는 정치 이념을 내세우고 있었는데, 그런 와중에 이런 사건이 일어나자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파악하고, 그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중앙의 관리들을 달탄으로 파견하도록 한다.

이에 식겁한 일관들은 지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달탄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곧 세상이 망한다'는 기괴한 소문이 돌아 그나마 남은 재산을 멋대로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버리는 사람들이 속출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청년들이 도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더욱이 혼란을 틈타 범죄자들과 사기꾼들이 판을 치면서 달탄 지역의 상황은 점차 막장으로 치닫게 된다.

한편 무능력한데다가 이기적이고 찌질한 성격 탓에 젊은 세월을 다 보내고도 일관 중에서도 말단직인 소대일자에 머물고 있던 조금 얼빵한(...) 주인공[2]은 도리어 이런 상황 속에서 뜻하지않게 승진을 하고 재물을 얻는 등 출세의 기회를 노리게 된다.

삼국사기에서 봉상왕 재위 중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기록을 토대로 지은 단편 소설로, 현대의 사회상이나 관료제의 모순 등을 고대 관리들의 추잡한 행태에 빗대어 풍자하는 듯한 느낌이 난다. 대체로 암울한 내용이 다수를 차지하는 모살기에 수록된 소설인만큼 그리 밝은 내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코믹하고 풍자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3.4. 모살기

고구려 봉상왕 때 안국군 달가에 관련된 짧은 기록을 토대로한 중편 소설.

주인공은 말단 관리인 조위 벼슬의 우랑인데, 강직하게 법규를 준수하려고 하다가 좌천되어 왕의 숙부인 안국군 달가가 지배하고 있는 숙신족의 땅으로 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성격이 강직하여 어떤 일에도 원칙을 고수하는 우랑은 출중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도록 관직 생활을 하면서 그 벼슬이 말단인 조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우랑은 도성의 성문을 지키다가 밤에 잠긴 성문을 넘어가려던 사람을 제지하는데, 그는 사실 봉상왕의 양어머니이자 선왕의 비(妃)였던 소태후에게 전해질 뇌물을 전달하던 사람이었다. 우랑은 이를 알고도 원칙을 고수하여 성문 출입을 가로막은 탓에 높으신 분들의 눈에 찍혀 좌천당하고, 왕의 숙부인 안국군 달가가 다스리는 북쪽의 단로성으로 쫓겨가게 된다.

단로성은 본래 숙신족의 땅이었는데, 봉상왕의 숙부인 안국군 달가가 이끄는 고구려군이 이를 점령하여 개척한 변방의 요새였다. 달가가 숙신족을 평정하기 전까지 그 지역에서는 고구려인과 숙신족 간의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기에 서로 감정의 골이 깊었고, 달가는 해당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숙신족 주민들을 상대로 극렬한 탄압정책을 펼친다. 그러던 와중에 어느 숙신족 여인이 죄도 없이 억울하게 폭행당하는 것을 본 우랑은 강직한 성격 탓에 이를 막아 서다가 숙신족과 내통한 첩자로 몰려 굴속의 감옥에 감금당한다.

한편 달가는 끝까지 고구려에 반항하는 숙신족들을 몰살시키려고 생각하다가 마침 첩자의 누명을 쓰고 갇힌 우랑을 이용해 단로성 외부의 숙신족을 상대로 인종청소를 할 계획을 꾸미게 된다. 이에 따라 우랑은 자신이 구해주려던 숙신족 여성을 구해주는 댓가로 숙신족의 일부가 고구려 조정을 배반하고 역모를 꾀했다는 거짓 자백을 한다. 그러나 그때 마침 봉상왕과 사이가 좋지 않던 소태후가 단로성을 방문하면서 큰 소란이 일어났고, 우랑은 어수선한 틈을 타서 꾀를 내어 탈옥을 시도한다.

마냥 강직하고 착하기만 했던 우랑은 달가의 음모로 인해 굴속의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하게 된 데다가, 숙신족을 상대로 극렬한 인종차별을 일삼는 단로성의 행태를 보고는 이에 대하여 강한 원한과 증오심을 품게 된다. 결국 탈출에 성공한 우랑은 그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잔혹한 복수를 계획하게 된다.

하드보일드한 분위기에 빠르게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전개되고, 주요 인물들이 저마다 다 매력을 갖고 있는 와중에 다들 음모에 말려들면서 파국적인 결말로 가는 것이 재미인 소설이며[3], 사건의 변화가 다양하고 기막힌 상황에 계속 처해가는 인물들의 심리 표현 때문에 빨리 읽어가게 되기 쉽다. 책에 실린 작품 중에서도 가장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4.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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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살기는 특이하게도 고구려오랑캐 때려잡고 땅 잘 넓히네 짱이다!!! 라는 내용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여러 민족들을 정복한 고구려 내에서 민족간의 갈등에서 벌어지는 정치문제와 문화 충돌을 다룬다. 가끔씩은 정복자인 고구려가 악한 침략자라는 면이 느껴질 정도. 이것은 현대 한국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유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당시 말갈족에 대한 역사적인 문제의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 지진기에서는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창조리가 백성이 즐거워야 하늘의 뜻이 따른다는 주장을 펴는데, 당시 관리들이 여기에 비위를 맞추기 위해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두고도 어떻게든 백성을 즐겁게 한답시고 지진으로 피해를 입어 괴로워하는 백성들에게 술을 마시며 춤을 추라고 강요하는 내용이 나온다. 예스러운 문체로 되어 있는 이야기지만 현대 한국의 공무원들을 강렬히 풍자하는 내용으로 보인다.
  • 김가기는 신선으로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작중에서는 일종의 마약 밀매범처럼 약으로 사람들을 가상현실에 빠지게 해서 원하는 욕망을 모두 경험하게 해 주는 사람으로 나온다.


[1] 심지어 일라는 백제의 멸망과 백촌강 전투의 참패까지 예측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2] 끝까지 '소대일자'라고 불릴 뿐, 본명은 언급되지 않는다.[3] 다만 주인공은 관직을 버리긴 했어도 복수에 성공하였고, 숙신족 여성도 말을 조금 밖에 못하는 벙어리가 되었지만 둘 다 살아남아 재회하였으니 어떻게 보면 해피엔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