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le of Man Tourist Troph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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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 Isle of Man Tourist Trophy |
한글 명칭 | 맨섬 투어리스트 트로피 |
지역 | 맨섬 |
코스 | 맨섬 TT 마운틴 서킷 |
유형 | 로드 레이스 |
코스 담당자 | 게리 톰슨 MBE BEM |
이벤트 주최자 | ACU 이벤트 주식회사 |
주 스폰서 | 맨섬 기업부(Department for Enterprise) |
창설 연도 | 1907년 |
레이스 개최 수 | 103회(2024년까지) |
최초 우승자 | 렘 파울러(1907년) |
최다 우승자 | 마이클 던롭(27회) |
랩 기록 | 피터 힉맨(16m 36.114s - 136.358mph (219.447km/h, 2023)) |
홈페이지 |
Isle of Man Tourist Trophy
1. 개요
모터스포츠 대회 중 하나로 영국 왕실 속령인 맨섬에서 해마다 열리는 이륜차 레이스. 한국에서는 ‘맨섬 TT', 'TT 레이스' 등의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단일 레이스로는 세계 최대의 인지도를 가진 모터사이클 레이스이다.
2. 특징
2023 맨섬 TT 온보드 영상[1]리처드 "밀키" 퀘일(Richard "Milky" Quayle)이다.] | 2023 밀워키 시니어 TT 하이라이트 |
맨 섬 TT 역대 최고 랩 기록[2]피터 힉맨(Peter Hickman)이 슈퍼스톡 TT 레이스 2에서 세운 기록이며, 평균 속도 136.358mph(219.447 km/h)에 랩 기록은 16분 36초 114.] | 사이드카 100주년 기념 퍼레이드 랩 |
1907년부터 시작되었고[5] 1949년 FIM(국제 모터사이클 연맹)의 WGP 대회 캘린더에 포함되면서[6] 규모가 커진 매우 유서 깊으면서 유명한 대회다. 하지만 서킷이 아닌 공도 레이싱이라는 WGP의 다른 그랑프리들과는 차별되는 이질적인 요소, 그리고 바이크의 속도 향상에 코스 정비가 따라잡지 못하는 위험성 등의 문제로 많은 라이더들이 보이콧해[7] 결국 1976년을 마지막으로 FIM은 맨섬 TT를 WGP 캘린더에서 제외하게 된다.
이때부터 WGP와 분리된 별개의 레이스가 되었으며, 맨섬에서는 맨섬 TT의 국제적인 레이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1977년부터 1990년까지 맨섬에서의 레이스를 포함하고 포뮬러 1[8], 포뮬러 2[9], 포뮬러 3[10]의 3가지 범주로 나누어지는 새로운 레이싱 시리즈 TT 포뮬러를 개최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TT 포뮬러가 WGP와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양산형 바이크들이 참가하는 레이스라는 점으로,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맨섬 TT의 시작은 바로 여기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11] 그 후 마이크 헤일우드 같은 탑 라이더들의 참가, 조이 던롭을 비롯한 새로운 스타 라이더들의 탄생으로 맨섬 TT는 다시금 주목받으면서 인기를 회복하게 되며, 『영웅을 낳는 레이스』라고 불려지게 되어 현재까지도 많은 라이더들이 명예를 얻기 위해 참가하고 있다.
맨섬에 있어서는 최대의 관광 수입원이며, 주택가 앞 도로에서 경주가 열리기 때문에 주민들은 자신들의 마당을 갤러리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들어오게 하거나 공터 같은 부지는 일부러 선점해서 자릿세를 받고 양도한다.
시니어 TT | 슈퍼바이크 TT |
슈퍼스포츠 TT | 슈퍼스톡 TT |
슈퍼트윈 TT | 사이드카 TT |
상술한 것처럼 바이크는 레이스용으로 튜닝된 양산형 바이크들이 참가한다. 슈퍼스포츠는 대체로 BMW의 S1000RR이나 스즈키의 GSX-R1000이 강세이며, 사이드카는 혼다의 CBR 사이드카가 강세이다.
2.1. 위험성
일명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레이스. 공공 도로를 통제하고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300km/h의 속도로 달리는 레이스 특성상 매해마다 심하면 사망자, 최소 중상자가 나오는 엄청나게 위험한 레이스다.# 애초에 레이스 전용 서킷을 주행하는 것이 아닌 공공 도로를 주행하는 것이다 보니 레이스 코스도 평소에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공 도로 그대로이기 때문에 도로 상태가 영 개판이고, 가드레일 같은 것도 없는지라 참가하는 레이서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달린다. 자칫 실수하면 그대로 가정집 돌 담벼락에 충돌해서 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점은 코너의 대부분이 앞이 보이지 않는 블라인드 코너라는 것이다. 코너를 벗어나면 슬립하여 도로에 넘어져 있는 바이크나 선수가 있을 수도 있음이 서킷에 비해 최대의 위험이다. 일부 구간에는 임시 완충벽을 세우지만 상설 서킷이 아닌 공도 서킷의 한계로 안전시설이 엄청나게 부실하다. 심지어 관중이 사고에 휘말려 죽거나 다치기도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1976년부터 FIM에서 TT 레이스를 공식 캘린더에서 빼버리고 맨섬이 독자적으로 대회를 유지하였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바이크의 성능은 300km/h를 넘나들 만큼 엄청나게 향상됐는데도 불구하고 안전 규정 강화에는 소홀했던 것 때문이다. 안전 규정이 강화돼서 다른 모터스포츠에서는 사망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2010년대에도 이 레이스만큼은 매년 사망자가 두세 명, 또는 그 이상 나온다. 1907년 시작 이후로 2019년까지 사망자가 모터스포츠에서도 독보적인 숫자인 260명이다. 거의 매 시즌마다 평균적으로 레이서 두 명이 사고로 죽는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 위험한 오토바이 레이싱 대회를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런 위험함이 오히려 유명세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어 관련 대형 스폰서들이 붙으며 대회 규모가 커졌다. 섬 입장에서는 매우 큰 수입원인 데다, 기업들이 '상남자들이 벌이는 죽음의 레이스'라는 이미지를 맘에 들어 해 너도 나도 스폰서를 자처하는 것. 게다가 다카르 랠리처럼 이 레이스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레이서에게는 최고의 영광과 명예인지라 엄청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후술할 가이 마틴은 죽는 게 무섭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는 저승사자보다 빠르다."라는 패기 넘치는 대답을 날린 것으로 유명하다.
맨섬 투어리스트 트로피의 역사와 배경
3. 취소된 경기들
몇 번이나 취소된 적이 있는데, 사유는 다음과 같다.- 1915년부터 1918년까지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열리지 못했고, 종전된 지 약 1년이 지난 1919년에도 재건에 집중하느라 열리지 못했다. 1920년에서야 재개.
- 1940년부터 1945년까지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열리지 못했다. 종전된 지 약 1년이 지난 1946년에는 망스 그랑프리(Manx Grand Prix)라는 명칭으로 따로 열렸고, 1947년에 맨섬 투어리스트 트로피가 재개됐다.
- 2001년에는 영국 내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대회가 취소됐다.
- 2020년과 2021년에는 2년 연속으로 코로나 19 여파로 대회가 열리지 않았고 2022년 5월 말에 대회가 재개됐다.
4. 이야깃거리
- 한때 필 카트 그랑프리(Peel Kart Grand Prix)라는 카트 레이싱 대회도 열렸었으나, 2005년 맨섬 카트 경주 협회 사무총장인 샘 애드콕(Sam Adcock)의 아내 헬렌 애드콕(Helen Adcock)이 사망한 사고 이후로는 전면 중단되었다.
- 이벤트성으로 자동차의 타임 트라이얼이 진행되기도 한다.
- 혼다가 처음으로 도전한 모터스포츠이기도 하며, 1959년 최초로 참가해 1961년 125cc 및 250cc 클래스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 출전 레이서 중에서는 잉글랜드 출신의 가이 마틴(Guy Martin)이라는 레이서가 특히 유명하다. 이 레이서의 특이한 점은 우승 경험이 없다는 것. 20번 넘게 참가했지만 매년 우승을 목전에서 놓쳐 2등만 하는 걸로 유명한 선수이다. 가이 마틴은 현대 레이서들의 덕목인 미디어 앞에서 친절하고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캐릭터에서 벗어난, 과거 90년대까지의 레이서들[14]과 같은 일탈적 행동으로도 유명하다.[15] 예를 들면 미디어 미팅에 반바지를 입고 나타나거나[16], 피트로 복귀하기 위해 레이스 코스를 벗어나 일반 트랙으로 돌아서 오는 등의 행동이 있다. 이러한 솔직한 행동과 발언으로 팬들에게 보여지는 자유로운 모습은 기존의 제왕인 존 맥기네스와 마이클 던롭과 같은 상위권/타이틀 보유 로드 레이서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인기를 얻는 면도 있다. 가이 마틴은 2017년을 마지막으로 모터사이클 레이싱에서 은퇴했는데, 여자친구가 임신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5. 매체에서
- 세가의 MODEL2판 체감 게임인 MANX TT 슈퍼바이크가 바로 이 레이스를 모티브로 한 게임이다.
- 여고생들의 사이드카 레이싱을 다룬 애니메이션 츠우카아에서 주요 소재로 언급된다. 여주인공 콤비의 코치이자 연모 대상인 타나하시의 목표가 맨섬 TT에 출전해 사이드카 TT 클래스에서 우승하는 것. 두 여주인공의 목표도 자신들의 고향인 미야케섬의 레이스에서 우승해 맨섬 TT의 출전 자격을 얻어 영국에 가 코치에게 고백하고 코치의 레이스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1] 영상 속의 라이더는 2002년 경량 400cc 레이스에서 우승한[2] 2023년[3] 산악 도로와 교차하기 때문에 코스의 정식 명칭은 맨 섬 TT 마운틴 서킷이라 부른다.[4] 폭이 좁고 위험한 서킷 여건상 일반 레이스처럼 여러 대가 동시다발적으로 출발하여 경쟁 및 순위를 판가름하는 방식으로 할 수 없어서, 한 대씩 출발해서 가장 빨리 완주하는 사람이 이기는 방식인 타임 트라이얼로 진행한다. 10초마다 한 대씩 출발하는데 종종 앞차가 느리면 뒤차가 그 좁은 골목길에서 추월하기도 한다.[5] 1911년에 시작된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보다 4년 더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6] 즉, 인디카 시리즈의 인디애나폴리스 500마일이나 WEC의 르망 24시처럼 맨섬 TT도 한때는 모토 GP에 포함된 레이스였다.[7] 특히 모토 GP 역사상 최고의 라이더로 꼽히는 자코모 아고스티니는 1972년 절친한 친구인 질베르토 파를로티가 맨섬 TT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다시는 맨섬 TT에서 경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8] 600cc에서 1000cc까지 4행정(1984년부터 750cc로 감소) 및 2행정 350cc에서 500cc[9] 400~600cc의 4행정 및 250~350cc의 2행정[10] 200~400cc의 4행정 및 125~250cc의 2행정[11] 하지만 TT 포뮬러는 1988년 똑같이 양산형 바이크를 사용하는 라이벌 시리즈인 슈퍼바이크 월드 챔피언십이 시작되고, WSBK의 인기와 상업적 성공이 입증되자 1990년을 마지막으로 종료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맨섬 TT는 어떠한 레이싱 시리즈에도 속하지 않는 맨섬만의 독자적인 단일 레이스로서 남게 된다.[12] 놀랍게도 저 사고 장면의 당사자들은 모두 생존했다고 한다. 좌측 선수는 가이 마틴, 우측 선수는 코너 커민스이다. 경주용 라이딩 슈트의 충격 흡수 능력은 생각 이상으로 엄청나다. 항목 참조.[13] 보호 장구가 제 기능을 했기에 망정이지 사고 이후 인터뷰 영상을 보면 정말 사망했을 법한 사고였다. 가이 마틴, 코너 커민스[14] 영국에서 유명한 레이서로 F1에서는 제임스 헌트와 배리 신.[15] 금요일 도착, 토요일 연습, 일요일 예선인 레이스 스케줄에서 토요일 밤 파티에서 술에 진탕 취해 일요일 새벽에 숙소로 가다 자동차 사고를 내고 일요일 레이스 본선에 출전하는 지금으로서는 절대 생각도 할 수 없는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하던 선수들이 종종 있었다.[16] 대기업 면접에 반바지, 심지어 트레이닝복 반바지를 입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