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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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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f4e><colcolor=#ffffff> 리먼 브라더스
Lehman Brothers Holdings Inc.
파일:리먼 브라더스 로고.svg파일:리먼 브라더스 로고 화이트.svg
국가
[[미국|]][[틀:국기|]][[틀:국기|]](다국적 기업)
업종명 투자은행
설립일 1849년
해체일 2008년 9월 15일[1]
창업주 헨리 리먼(Henry Lehman)
후신 노무라 증권, 바클리스

1. 개요2. 역사
2.1. 2008년 이전2.2. 산업은행의 리만 브라더스 인수전2.3. 파산 이후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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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때 미국의 4대 투자은행[2]이었던 거대 금융그룹.

2. 역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Lehman_Brothers_Times_Square_by_David_Shankbone.jpg
뉴욕에 위치했 리먼 브라더스 본사[3]

2.1. 2008년 이전

1850년 독일에서 미국 남부로 이민 온 유대인 허버트 헨리 리먼(Herbert Henry Lehman, 1822 ~ 1855)[4], 이매뉴얼 리먼(Emanuel Lehman, 1827 ~ 1907), 그리고 메이어 리먼(Mayer Lehman, 1830 ~ 1897) 형제가 목화 중개무역업[5]을 시작했고 뉴욕으로 진출하여 유통, 교역, 조사 및 연구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가면서 명성을 쌓아갔다.[6] 1980년대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자회사로 편입되었고 1994년에 다시 분리(Spin-off)되었다.

2.2. 산업은행의 리만 브라더스 인수전

투자은행 중 채권 및 모기지 관련 투자가 많았고 수입 중 상당 부분을 M&A 관련 서비스에서 창출했다. 또한 부채비율이 굉장히 높았던 편이라 경기가 좋지 않을 경우 재무구조가 위험해질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2007년 미국 부동산 가격 하락과 함께 대규모 손실을 입었고 추가 투자가 없을 경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의 3대 국책은행[7] 중 하나인 KDB산업은행이 이 리먼브라더스의 일부분에 대한 인수를 시도[8]하였고 실제로 협상 타결 직전까지 갔으나 국정감사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막판에 협상이 결렬되면서 무산되었다는 것.[9] 물론 당시 산업은행도 호구가 아니기 때문에 리만이 지고 있는 리스크를 이용해서 가격을 마구 후려치긴 했다. 당시 1주당 가격이 30달러에서 18달러까지 내려가는 상황이었는데 산은에서 제시한 1주당 가격은 고작 $6.4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배드섹터는 버리고 수익이 남을만한 영역만 인수하는 조건을 제시했던 점을 보면 알 수 있다.[10] 하지만 리만이 떠맡고 있던 리스크의 크기는 산은이 예상하는 수준 이상이었고, 게다가 당시 달러 유동성이 극도로 제약받던 시점에서 리만 인수 소식이 국감에서 포화를 맞자 결국 인수를 포기한 것이다. 다만 협상에 직접 참가한 산은 외에 한국에서 리만의 리스크를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의문 기호가 붙는 상황으로, 유력 언론들이 '월스트리트로 가는 금융 고속도로'라는 표현을 써가며 사설과 칼럼을 통해 리먼 인수를 강력히 주장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초기에는 리먼 브러더스 인수를 찬성하는 여론이 대단히 높았다. 하지만 부채가 너무 심각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면서 서서히 여론이 돌아서기 시작했고, 전문가들이 직설적으로 위험성을 경고[11]하면서 결국 정부가 발을 빼기 시작했다.

결국 산은은 9월 10일 리먼 인수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한국 산은의 인수 협상 결과가 최후의 생존 수단이었던 리먼의 주가는 '협상 결렬' 소식이 보도된 9월 9일(미 현지시각) 하루 만에 45% 폭락했으며, 6일 뒤인 9월 15일 파산을 선언했고 그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게 됐다. 여담으로 리먼이 챕터 11 파산보호 신청을 한 9월 15일은 한국의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연휴가 끝남과 동시에 세계 경제의 악몽이 시작된 것.

당시 출범 7개월차의 초창기였던 이명박 정부는 결과적으로 산은의 인수 포기 결정 덕에 최악의 경제 충격을 그나마 피하게 됐다. 리먼의 총 부채가 10여 년 전 당시 물가로도 6130억 달러(약 660조원), 대한민국의 1년 세입액보다도 많은 셈이니 산은이 그 당시 여론에 따라 실제로 인수를 진행했다면 대한민국 경제는 큰 어려움에 빠졌을 것이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뒤흔들 정도의 파급력을 지닌 파산이었는데 한국이 그것을 온전히 버텨낼 재간이 있을리가.

2.3. 파산 이후

파산 이후 리먼 브라더스의 북미 지역은 바클리스 캐피털이, 아시아 지역과 유럽 지역의 일부는 일본의 노무라 증권이 인수했다. 노무라는 리먼의 자산을 인수해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도약할 기회로 삼고 과감히 배팅했지만, 인수 직후 유능했다던 우수 인력들이 대거 회사를 이탈해버린 영향으로 흑자보다는 적자를 기록할 때가 더 많았고, 리먼을 인수해서 노렸던 해외 기반을 다지는 데에도 실패했다. 바클리스도 답이 없다고 생각해 내놓았던 일부 유럽 지역까지도 야심차게 인수했던 노무라는 유로존 위기로 인한 금융시장 한파까지 겹치자 2016년엔 사업 중단을 선언하고 1,0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2018년 4분기엔 1조 원에 가까운 영업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건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2009년 1분기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적자폭이다. 언론은 '10년 골병에 빠졌다'고 혹평하는 상황. 브렉시트의 영향도 있다곤 하나 노무라는 2019년인 현재도 여전히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고, 일본 내의 다른 IB와의 합병 가능성까지 계속 언급되고 있다.

다만 반대로 뉴욕에 있는 부동산을 포함한 북미 지역의 리먼 자산을 17억 5천만 달러라는 저렴한 가격에 인수하는 데에 성공한 영국의 바클리스는 당장 1년도 지나지 않아 30억 달러가 넘는 순익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대박'을 쳤고, 바클리스를 유럽 내 최대 수준의 금융 그룹 중 하나로 성장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인터넷 상에서는 미국의 채권 시장에 목이 매여 있고 현재 일본은 채권 시장에서 큰 위험을 계속 넘기면서 간신히 살아 있는 도중이라고 우리나라의 경제의 특성상 이 리먼 브라더스를 인수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채권 가격이 리먼브라더스를 산다고 독립되는 게 아니다. 리먼브라더스는 금융회사로써 고객의 자금을 채권 인수에 투자하는 거지 리먼이 채권을 사서 운용하는게 아니다. 반대로 파산할 경우 고객의 투자금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더 위험하게 된다. 금융사의 핵심 자산은 오랜 거래와 신용으로 확보해온 고객 기반, 그리고 고객 기반과 자산을 관리하고 운용할 직원들의 역량인데 산은보다 규모도 크고 글로벌 경험도 더 풍부했던 노무라마저 그런 무형의 '자산'을 유지하는 데에 한계를 느끼고 현재까지 계속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인데 산은이 덩치와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컸던 리먼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었을지에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파일:external/file1.bobaedream.co.kr/ABw56fa43e01caea.jpg
파산 당시인 2008년 9월 런던 리먼 브라더스 직원들의 마지막 회의
파일:Lehman_Brothers_bankruptcy.jpg
간판을 내리게 된 리먼 브라더스[12]
파산 당시 리먼에 투자했던 여러 투자자들도 고꾸라졌는데 가장 크게 당한 곳이 AIG. 리먼이 서브프라임 신용도의 모기지들의 위험을 분산하면서 이 투자안이 고꾸라졌을 때 보상 받을 수 있게 만든 보험(CDS)을 저 AIG가 상당 부분 먹은 것. AIG에선 보험료 수억이 들어오니 좋고 리먼 브라더스의 경우는 손쉽게 고위험고수익 투자안의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리먼이 고꾸라진 순간... 결국 미의회의 구제금융안이 발동돼버렸다. AIG는 불행 중 다행으로 파산 직전에 구제금융을 통해 국영화되었지만[13], 그 여파로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만약 저기서 AIG마저 고꾸라졌다면?[14]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이 파산했을 때의 충격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기네스북세계 최대규모 파산으로 등재되었다. 2위인 월드컴 파산의 13배인 6,700억달러로 당시의 한국 원화 환율로 환산하면 무려 700조 원 상당의 파산이었다.

금융회사가 파산할 경우 일반 기업의 파산과 달리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본래 금융회사는 자기자본보다는 타인의 자본을 유치한 뒤 여러가지 자산에 투자를 하고 관련 제반비용에서 수익을 수취하는 구조를 띄고 있다. 또한 자기자본과 고객자산을 따로 운영하기 때문에 파산만으로는 고객자산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채권단이 청산 과정에서 고객들의 자산 중 손실이 난 부분을 보전할 목적으로 남은 자산의 회수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시장에 대규모 매도가 발생하게 된다. 큰 금융회사가 망할 경우 관련 대규모 자산이 매도되어 다른 건전한 회사까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이런 대형 은행의 파산은 대마불사 이론에 따라 대규모 공적자금을 지원받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임원진들은 대규모 보너스를 받는 형태로 먹튀를 하여 도덕적 해이를 저지른다. 이에 대해 버니 샌더스망하기에 너무 크다면 존재하기에도 너무 크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3. 기타

  • 2013년 영화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이 리먼브라더스 파산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다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회사는 리먼브라더스가 아닌 골드만삭스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리먼파산의 원인이 된 미국 부동산 붕괴의 시작점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 관련 파생상품들을 급히 처분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파산한 리먼브라더스는 아닐 것이다.
  • CNN에서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소식을 알리던 중 월스트리트의 리먼 브라더스 정문에서 두 남자가 벗고 껴안는 방송사고가 발생했다. 0:42초부터. 물론 진지하게 방송사고라기 보다는, 그냥 생방송 타는 걸 지켜보던 두 일반인이 진짜 신체 접촉이 아니라 '하는 척'만 하는 트롤링에 가깝다.
  • LTCM구제 금융에 리먼 브라더스가 소액만 냈다가 미국연방준비은행 및 다른 금융회사부터 미움받아 해당 금융위기 때 구제금융 대상에 제외되었다고 하는 음모론이 존재한다.
  • <인사이드 잡>, <빅쇼트>, BBC에서 만든 영화 <리먼 브라더스의 마지막 날(The Last Days of Lehman Brothers)> 등에 파산 당시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 파산한 이후 후폭풍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2008년 이후로 사실상 '금융시스템 위기'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은행뿐 아니라 규모가 큰 회사 하나가 터지려고 하면 '제2의 리먼'이 일어나는거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는 등 여러모로 망한 후에도 안좋은 의미로 회자되는 중이다. 이 사태의 여파가 너무 커서인지 특정 대기업이나 금융 기관이 침체나 파산 위기가 발생하면 'XX판 리먼 브라더스 사태'라고 이름 붙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 대표적으로 2021년 9월 중국 2위의 부동산 개발 기업 헝다그룹이 355조 원 상당의 부채를 견디지 못해 파산 위기에 놓이자, '중국판 리먼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리먼 브라더스 파산 당시 흑역사의 망령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헝다그룹의 파산 여부가 실질적으로 결판 나는 2021년 9월 23일은 한국의 추석연휴 종료 다음 날이다(!!!). 13년 전 리먼의 파산도 한국의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었음을 고려하면 묘한 데자뷔가 느껴지는 대목. 헝다그룹의 채권 구성 비율과 중국 부동산 건설업계의 건전성 정도를 근거로 "헝다가 파산해도 헝다 한 곳의 파산에 그칠 것이지, 시장 시스템 전반에 대한 파급력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는 전문가들이 많으나, 일각에선 "리먼 사태 났을 때도 파산 직전까지 비슷한 목소리가 우세했다"며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 2022년 5월에 암호화폐의 일종인 LUNA가 100%에 수렴하는 수준으로 가치가 폭락하자 한국판 또는 코인판 리먼 사태라고 부르고 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1] 대침체의 발단이 된 날.[2] 나머지 3곳은 골드만삭스, 모건 스탠리, 메릴린치. 5위 업체인 베어스턴스는 앞서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3] 2007년 8월 12일에 찍힌 사진으로, 지금은 바클리스 캐피털이 위치하고 있다.[4] 1855년에 뉴올리언스에 여행하던 중 황열병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만다.[5] 매매차익을 얻는 것이 목적으로 최초 수출자에게 상품을 수입하여 최종 수입자에게 수출하는 방식으로 하는 무역[6] 이들 형제 또한 자선사업가으로도 유명했다.[7] 한국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IBK기업은행[8] 이 당시 산업은행 총재는 2008년 6월 취임한 민유성이였는데, 그는 산업은행 총재로 취임하기 직전까지 리먼브라더스 서울사무소장이었다. 특히 리먼 브라더스의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산업은행 총재인 민유성이 리먼브라더스의 스톡옵션을 처분하지 않은 것이 밝혀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9] 국감을 떠나 당시 서울 외환 시장의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2008년 7월엔 '도시락 폭탄 사건'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외환 시장 개입을 비롯해 정부는 여러 차례 외환 안정에 나섰지만 환율은 계속 급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억 달러의 현금(달러)을 들여 리먼을 인수하고, 리먼을 안정시키기 위한 추가적인 리스크까지 국가적으로 부담할 수 있는 여유가 한국엔 존재하지 않았다.[10] 확인되지 않은 찌라시에 의하면 당시 산은 외에 리만 인수를 검토하고 있던 세력이 3군데 더 있었는데, 산은을 제외한 나머지 3군데에선 관망하는 상황에서 산은이 가장 협상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산은이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당시엔 비공개였던 협상가격(주당 6.4달러)를 다른 3군데에 까발려버리고 그나마도 국감 이후 인수를 포기해버리자, 다른 세력들은 '한국이 1주당 반토막도 안 되는 가격인데도 인수를 포기한 걸 보면 뭔가 있다'는 생각에 싹 다 인수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 결과 리만은 그대로 파산해버린다.[11] '이게 살릴 수 없을 정도로 망했으니까, 우리한테까지 순서가 온 것이다' 식의 칼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12] 배경에 있는 글자 CHRISTIE's는 유명한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스의 간판이다. 파산 등으로 망한 회사의 각종 자산은 경매를 거치는 일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사진이다.[13] 훗날 미국 정부가 되팔았다.[14] 리먼 브라더스 파산 당시에는 AIG의 파산 이야기까지 실제로 나올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