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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트 판니스텔로이/클럽 경력/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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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트 판니스텔로이
2001-2006
파일:판니스텔루이 맨유 계약.jpg
▲ 2001년 계약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프리미어 리그)
등번호 10
기록
파일:프리미어 리그 로고(화이트).svg
150경기
95득점 14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43경기
35득점 10도움
파일:FA컵(잉글랜드)로고(화이트).svg
14경기
14득점 6도움
파일:카라바오 컵 로고 가로형.svg
6경기 2득점
파일:crR1Bvv.png
2경기 1득점
합산 성적
219경기
150득점 30도움
1. 개요
1.1. 2001-02 시즌1.2. 2002-03 시즌1.3. 2003-04 시즌1.4. 2004-05 시즌1.5. 2005-0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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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뤼트 판니스텔로이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

1.1. 2001-02 시즌

에레디비시에서 전전하던 시기에도 이름을 날렸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2001년 맨유에 입단한 시기부터였다. 좌측에서 긱스, 우측에서 베컴, 중앙에서 스콜스가 수시로 정교한 롱 패스를 날리던 맨유의 스타일과 딱 맞았던 판니스텔로이는 데뷔 시즌부터 PL 개막 후 8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세우고 23골을 작렬했고, 다음 시즌에는 PL 득점왕이 되었다. 그리고 2001/02, 2002/03, 2004/05 UEFA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2001/02 시즌: 49경기(선발 44경기) 36골 7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2 29 3 23 4
챔피언스 리그 14 14 0 10 3
FA컵 2 0 2 2 0
커뮤니티 실드 1 1 0 1 0
합계 49 44 5 36 7

1.2. 2002-03 시즌

2002/03 시즌 프리미어 리그 우승 이후의 세 시즌은 흔히 말하는 맨유의 암흑기였다. 아스날은 2003/04 시즌 무패 우승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으며,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첼시는 2004/05, 2005/06 시즌 리그를 재패했다. 허나 맨유는 로이 킨, 데이비드 베컴 등 주축 선수들과 퍼거슨 감독 간의 불화가 심화되는 등 갈등이 심각했다. 맨유에게 있어선 최악의 시즌이 계속되고 있었으니 판니스텔로이의 이러한 득점력은 팬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게다가 이 시기는 퍼거슨 경이 대륙 축구를 수용하던 시기라 중원 강화에 골몰하고 있었는데, 판니스텔로이가 있었기 때문에 공격수는 한 명만 두고 중원을 강화한다는 복안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킹 루드' 체제로 빗대기도 했다. 이 시기 챔스에서 판니스텔로이의 득점력은 매우 뛰어났다. 특히 그 절정이던 2002/03 시즌은 단순한 득점왕 정도가 아니었다. 9경기, 681분 출장, 12골을 기록했다.

이 시즌 챔스에서 필리포 인자기, 로이 마카이, 에르난 크레스포, 라울 곤살레스, 얀 콜레르 등이 각기 1,000분 전후로 뛰며 10골에서 8골을 기록했다. 이후 선수로 바꾸면 10/11 시즌 득점왕인 리오넬 메시가 13경기 1050분 출전해서 12골을 넣었다. 아무리 반니에게도 독보적인 '커리어 하이'라지만 이 정도면 거의 탈인간적 수준이었다. 또한 04/05 시즌 조별 라운드 4차전에서는 스파르타 프라하를 상대로 혼자 4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참고로 한 경기에서 4골을 넣은 다른 선수는 다도 프르쇼, 마르코 반 바스텐, 필리포 인자기, 안드리 셰브첸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가 있다. 5명이 공동 1등이었으나 2012년 리오넬 메시에 의해서 공동 콩등이 되었다. 판니스텔로이 이후 EPL에서 두각을 나타낸 에레디비시 득점왕 출신 스트라이커가 없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었지만,[1] 루이스 수아레스가 13-14 시즌 PL 득점왕을 차지하며 오랜만에 네덜란드 리그 출신 PL 득점왕이 탄생했다.

2002/03 시즌: 52경기(선발 50경기) 44골 8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4 33 1 25 4
챔피언스 리그 9 8 1 12 3
FA컵 3 3 0 4 1
EFL컵 4 4 0 1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2 0
합계 52 50 2 44 8

1.3. 2003-04 시즌

2003/04 시즌: 44경기(선발 42경기) 30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2 31 1 20 2
챔피언스 리그 7 7 0 4 2
FA컵 4 3 1 6 0
커뮤니티 실드 1 1 0 0 0
합계 44 42 2 30 4

1.4. 2004-05 시즌

2004/05 시즌: 27경기(선발 25경기) 16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7 16 1 6 1
챔피언스 리그 7 6 1 8 1
FA컵 3 3 0 2 4
합계 27 25 2 16 6

1.5. 2005-06 시즌

비록 2005/06 시즌에는 나이가 들어 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득점력은 죽지 않아 21골이나 집어넣어 클래스는 영원함을 보여주었다. 허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폼이 떨어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리 없었고, 결국 벤치를 달구는 일이 잦자 자연스레 불화 역시 생겨났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당시 감독인 마르코 반 바스텐과 자신의 주전 기용 문제로 불화를 겪었다. 결국 2005/06 시즌과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난 후 레알 마드리드로 훌쩍 이적했는데, 풋볼 리그컵 결승전에서 자신 대신 루이 사하를 퍼거슨이 기용하자[2] 퍼거슨에게 쌍욕을 하며 달려들려고 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찍혀버려 결국 팀을 떠나게 된다.[3]

여기서 한 가지 일화가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훈련 도중 충돌이 있었는데, 이때 판니스텔로이는 호날두에게 "너네 아버지한테 가서 고자질해라"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판니스텔로이가 지칭한 아버지는 수석 코치였던 카를로스 케이로스였다. 같은 포르투갈 국적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유독 친했고, 호날두가 케이로스를 잘 따랐기 때문에 비꼰 것이다. 그런데 호날두는 그 아버지를 진짜 자신의 아버지라 알아 듣고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셨어"라고 하며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4][5] 이 대화가 언론을 통해 공개된 후 판니스텔로이는 엄청 까여야만 했다.[6]

호날두와는 불화가 꽤 심했다. 판니스텔로이는 호날두가 자신에게 패스와 크로스를 안 한다고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호날두와 도저히 같이 못 뛰겠다고 늘 투덜댔는데, 리오 퍼디난드의 증언에 따르면은 트레이닝 도중에 판니스텔로이와 호날두가 싸우는 건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여느 날처럼 호날두와 말 다툼을 하던 판니스텔로이가 호날두를 발로 찼는데, 퍼디난드는 어린 호날두를 보호하기 위해 판니스텔로이를 살짝 발로 찼고, 그러자 판니스텔로이는 퍼디난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판니스텔로이는 다음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고, 결국 시즌이 끝나고 레알 마드리드로 쫓겨나듯 이적한다.[7]

2005/06 시즌: 47경기(선발 39경기) 24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5 28 7 21 3
챔피언스 리그 6 6 0 1 0
FA컵 2 2 0 0 1
EFL컵 2 1 1 1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2 0 1 0
합계 47 39 8 24 4
219경기 150골 30도움

[1] 판니스텔로이 이후 네덜란드를 제패한 마테야 케즈만은 PL에서 완벽하게 망했고, 디르크 카윗은 스타일을 바꾸고 나서야 정착할 수 있었다.[2] 정확히는 교체로라도 출전시켜줄 것을 약속했으나 끝끝내 출전시켜주지 않은 것에 대해 폭발했다. 실제로 이때 경기를 보면 알겠지만 맨유가 골을 넣을때마다 몸푸는 경기장 뒤쪽에서 계속해서 환호하는 반니를 볼 수 있다.[3] 시간이 지나 철이 좀 든 반니는 이를 후회하며 퍼거슨에게 전화해서 사죄했다고 한다.[4] 당시 호날두는 아버지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5] 이 부분은 사람마다 증언이 다르다. 대부분의 목격자들이 호날두가 그 자리에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울음을 터뜨렸다고 이야기했으나, 퍼거슨 감독의 자서전에는 호날두가 판니스텔로이에게 화가 나서 덤벼들었다고 쓰여 있다.[6] 물론 후에 "호날두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라는 드립을 쳤던 주제 무리뉴가 이 당시 판니스텔로이보다 훨씬 많이 까였다.[7] 아이러니하게도 판니스텔로이가 이적한 뒤 맨유가 06/07 시즌 판니의 대체자로 선택한 루이 사하는 유리몸으로 인해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하고 앨런 스미스는 05/06시즌의 무리한 포지션 변경의 여파로 인해 스트라이커 포지션 경쟁에서 밀린데다가 솔샤르는 나이로 인해 주로 특급조커로 쓰는 공격수 정도에 불과하다 등의 문제로 인해 맨유는 최전방 공격수 문제에 시달려야했었고 07/08시즌에 가서야 카를로스 테베즈를 영입하고 나서야 이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