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3 02:41:32

라슬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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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2a3e><colcolor=#ffffff> 헝가리 왕국 아르파드 왕조 제15대 국왕
라슬로 2세
II. László
파일:라슬로 2세.jpg
출생 1131년
헝가리 왕국 세케슈페헤르바르
사망 1163년 1월 14일
헝가리 왕국 세케슈페헤르바르
재위 헝가리 왕국크로아트 왕국의 왕
1162년 ~ 1163년 1월 14일
아버지 벨러 2세
어머니 세르비아의 엘레니
형제 게저 2세, 이슈트반 4세, 알모스, 소피아, 엘리자베트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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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 왕국 제15대 국왕. 동로마 제국의 지원에 힘입어 조카 이슈트반 3세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나 얼마 안가 사망했다.

2. 생애

1131년경 헝가리 국왕 벨러 2세와 세르비아 공작 슈테판 우로슈 1세의 딸인 엘레니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형제로 게저 2세, 이슈트반 4세, 알모스, 소피아, 엘리자베트가 있었다. 1137년 봄 에스테르곰에서 아버지에 의해 보스니아 공작으로 선임되었다. 1152년 형 게저 2세가 5살된 아들 이슈트반 3세를 공동 통치자로 지명하자, 그는 이에 불만을 품고 형제 이슈트반과 함께 게저 2세에게 대항하기로 했다. 1157년, 이슈트반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동로마 제국으로 망명했다. 뒤이어 그가 1160년 반란을 일으켰으나 역시 실패하고 이슈트반이 머물고 있던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망명했다.

동로마 황제 마누일 1세는 이슈트반에게 조카딸 마리아 콤니니를 시집보낸 바 있었다. 황제는 그에게도 동로마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헝가리 귀족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우려해 제안을 거절했다. 1162년 5월 31일 게저 2세가 사망하고 아들 이슈트반 3세가 왕위에 오르자, 마누일 1세는 두 형제에게 군대를 맡겨 헝가리로 파견했다. 동로마 제국의 위세를 두려워한 데다 사전에 막대한 뇌물을 받았던 귀족들은 두 형제 중 하나를 왕으로 세우기로 했다. 그들은 논의 끝에 동로마 여자를 아내로 삼은 이슈트반보다는 그를 왕으로 세우기로 결의했다. 이슈트반은 그 대신에 헝가리 왕국의 1/3을 영지로 다스렸고, 마누일 1세는 헝가리를 봉신으로 삼았다. 한편 이슈트반 3세는 동로마 제국군을 피해 지지자들과 함께 포조니로 도주했다.

당시 헝가리 교회의 대표는 에스테르곰의 대주교 루카스였다. 루카스는 대관식을 집전해달라는 그의 요구를 거부하고, 왕위를 찬탈한 그를 저주했다. 그는 이에게 화가 나 루카스를 감옥에 가두고 1162년 7월 중순 컬로처 대주교 미코의 주관하에 대관식을 거행했다. 일찍이 게저 2세가 교황과 맺었던 "교황의 동의 없이 고위 성직자를 퇴임시키거나 이송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떠올리고 루카스를 석방했다. 그러나 루카스는 저주를 철회하지 않고 오히려 라슬로가 곧 죽을 거라고 예언했다. 라슬로는 이에 격분해 루카스를 다시 감옥에 집어넣었지만, 공교롭게도 1163년 1월 14일에 돌연 사망했다. 이후 라슬로의 추종자들은 그의 형제 이슈트반을 이슈트반 4세로 추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