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191919> 제1차 세계 대전의 황립 및 왕립 해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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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 <colbgcolor=#8da9c5><colcolor=#191919> 전 드레드노트급 | 합스부르크급, 에르츠헤르초크 카를급, 라데츠키급 | |||
드레드노트급 | 테게토프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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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lachtschiff der Radetzky-Klasse |
1. 개요
라데츠키급 전함은 1908년 취역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2. 제원
라데츠키급 전함 | ||||
선행함 | 에르츠헤르초크 카를급 전함 | |||
후계함 | 테게토프급 전함 | |||
기준배수량 | 14,741 메트릭 톤 (14,508 롱 톤) | |||
만재배수량 | 16,099 메트릭 톤 (15,845 롱 톤) | |||
전장 | 137.5 m (451 ft 1 in) | |||
전폭 | 24.6m (80 ft 9 in) | |||
흘수 | 8.1m (26 ft 7 in) | |||
보일러 | 야로우 보일러 12기 | |||
추진방식 | 증기터빈 2축 | |||
최대출력 | 19,800 shp (14,800 kW) | |||
속력 | 20.5 kt (23.6 km/h, 38 mph) | |||
항속거리 | 10 kt (19 km/h, 12 mph)에서 4,000nmi(7,400 km) | |||
연료 | 석탄 1,350톤 | |||
무장 | 주포: 2연장 30.5cm L/45 K10 2문 | |||
중간포: 2연장 24cm L/45 4문 | ||||
부포: 10cm L/50 K10 20문 | ||||
대구경 대공포: Sk 7cm L/45 K10 4문 | ||||
소구경 대공포: Sk 4,7cm L/44 4문 | ||||
어뢰: 45cm 어뢰 발사관 3문 | ||||
장갑 | 주장갑대 9.1인치 (230 mm) | |||
갑판 1.9인치 (48 mm) | ||||
벌크헤드 2.1 인치 (54 mm) | ||||
주포탑 9.8인치 (250 mm) | ||||
중간포탑 7.9인치 (200 mm) | ||||
포곽 4.7인치 (120 mm) | ||||
함교 9.8인치 (250 mm) | ||||
승조원 | 890명 | |||
운용 현황 | 3척 건조, 3척 퇴역 | |||
운용 기간 | 1908년-1918년 |
3. 설명
라데츠키급 전함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함선 중 최초로 타국 전함급의 화력을 보유한 함이다.[1] 라데츠키급 전함은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서는 우수한 편이었으나, 취역하기 2년 전 HMS 드레드노트가 취역한 상태였기 때문에 다소 시대에 뒤처지는 감은 있었다. 하지만 타국 대비 전력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뒤떨어지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군을 발전시키는 데 한 역할을 하였다.전술했듯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타국 해군에 비해 뒤처져 있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확장된 오스트리아-헝가리 함대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전함 12척, 장갑 순양함 4척, 정찰 순양함 8척, 구축함 18척, 대형 어뢰정 36척, 잠수함 6척 등이 포함됐다. 1905년 9월 25일에서 29일 사이에 새로운 전함의 5가지 안을 평가했다. 이는 해군 전력 건설에 관심이 많았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지원을 받았다.[2]
라데츠키급 전함의 설계가 시작될 무렵에는 중간포를 장착한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주력이었다. 라데츠키급 전함도 이를 따라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설계된다. 첫 번째 안은 280 mm (11인치) 주포 4문, 240 mm (9.4인치) 중간포 4문, 포곽에 190 mm (7.5인치) 부포 8문을 탑재하고 있었다. 두 번째 안은 첫 번째 안과 마찬가지로 280 mm와 240 mm 포 조합을 유지했지만, 부포를 100 mm (3.9인치) 12문으로 변경했다. 다른 해양강국들의 해군에서 건조 중이었던[3] 드레드노트 전함의 대표격인 세 번째 디자인은 4개의 연장 포탑에 8문의 280 mm 주포와 100 mm 부포 16문을 탑재하고 있었다. 네 번째 안은 세 번째 안의 변경으로, 8문의 280 mm 주포는 2개의 연장포탑 2개와 단장포탑 2개에 탑재된 6개의 305 mm (12인치) 주포으로 교체되었다. 100 mm의 부포는 그대로였다.
최종적으로 라데츠키급의 무장은 연장 포탑 2개에 탑재된 305 mm 주포 4문, 현측에 탑재된 중간포탑 4개에 190 mm 포 8문, 포곽에 100 mm 부포 12문으로 구성됐다. 3안과 4안의 드레드노트급에 가까운 설계는 배수량이 너무 많이 나가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조선소에서 선조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반려되었다. 조선소의 확장도 가능했지만 비용이 라데츠키급의 건조를 위해 확보된 예산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후 중간포의 구경은 190 mm에서 240 mm으로 늘어났다. 주포 구경이 280 mm에서 305 mm으로 늘어난 것은 280 mm 주포로는 타국 전함을 상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4]
기뢰와 어뢰의 위협에 맞서 수중 보호도 강조되었다. 1906년 8월과 11월 사이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30년 된 철갑함 카이저 막스를 이용해 수중 폭발 실험을 했다. 실험은 표준 100 kg (220 lb) 해군 기뢰의 폭발 효과를 1:10 규모로 조사하기 위해 10 kg(22 lb)으로 진행되었다. 실험 결과 이전 세대의 전함들은 수중 공격에 대해 그리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라데츠키급 전함에는 이중 선저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라데츠키급 전함은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서 여러모로 완성형 전함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웠으며, 이후 건조된 테게토프급 전함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보유하게 된다.
3.1. 무장
라데츠키급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포탑 2기에 각각 305 mm (12인치) 45구경장 주포 2문이 실려 있었다. 이 주포들은 스코다에 의해 제작되었다. 주포의 최대 발사 속도는 처음 1분은 분당 3발, 이후로는 분당 2발이었다. 철갑탄은 무게가 450 kg (990 lb)에 달했으며 장약의 무게는 138 kg (304 lb)였다. 포구초속은 800 m/s 이상이었다. 포탑의 부앙각은 -3°에서 +20°까지였다. 앙각 +20°로 발사할 경우 20,000 m (22,000 yd)까지 타격할 수 있었다.또한 중간포들은 4개의 연장포탑에 총 8개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구경은 240 mm (9.4인치)였다. 이는 라데츠키급 전함 이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전함들의 주포와 동급이었다. 관통력은 주포의 거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으며 사거리는 4분의 3 수준에 불과했다. 중간포탑은 선체 양쪽에 두 개씩 설치되었다. 부포는 100 mm 50구경장으로 수는 20문이었다. 부포는 분당 8~10발의 속도로 26.2 kg (58 lb)의 포탄을 포구초속 880 m/s (2,900 ft/s)로 발사할 수 있었다. 최대 사거리는 11,000 m (12,000 yd)였다.
라데츠키급 전함은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답게 다양한 구경의 소구경 보조 함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라데츠키급 전함에는 66 mm (2.6인치) 18구경장 예포 2문, 47 mm (1.9인치) 44구경장 속사포 4문, 47 mm 33구경장 속사포 1문 등 여러 발의 소구경포들이 탑재되어 있었다. 1916에서 1917년 사이에 실시된 개장으로 라데츠키급 전함에는 70 mm K16 대공포 4문이 설치되었다. 450 mm (17.7 인치) 어뢰관도 각 함선에 3문씩 실려 있었다. 이 중 2문은 현측에, 1문은 선미에 설치되어 있었다.
3.2. 장갑
테게토프급 전함은 중앙부에 230 mm (9.1인치) 두께의 주장갑대를 가지고 있었다. 주장갑대는 탄약고와 기관실, 그리고 함선의 다른 바이탈 파트들을 보호했다. 주포탑 바벳의 앞쪽과 뒤쪽으로 주장갑대의 두께는 100 mm (3.9인치)까지 줄어들었다. 54 mm (2.1인치) 두께의 어뢰 벌크헤드가 선체 전체에 깔려 있었다. 주중갑대가 관통될 경우 2중으로 보호 기능을 제공했다. 갑판장갑은 두께가 48 mm(1.9인치)으로 타국의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 혹은 그보다 약간 나은 수준이었다.주포탑은 중장갑을 두르고 있었다. 전면과 측면이 모두 250 mm (9.8인치) 두께였으며 주포탑의 상부 장갑은 60 mm (2.4인치) 두께였다. 240 mm 중간포탑은 전측면에 200 mm (7.9인치), 상부에 50 mm(2 인치) 장갑을 두르고 있었다. 100 mm 부포를 탑재한 포곽은 120 mm (4.7인치) 장갑으로 보호되었다. 함교는 측면에 250 mm 장갑을 두르고 있었으며 상부 장갑은 100 mm이었다.
3.3. 문제점
후속함인 테게토프급 전함과 마찬가지로 자잘한 문제점들이 있었다.주포탑에는 여러 가지의 설계 결함으로 인한 문제점들이 있었다. 주포탑 상부에 대형 큐폴라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여기에 포탄이 명중할 경우 장갑이 탈락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주포탑의 또 다른 문제는 환기 시스템의 결함이었다. 즉, 포탑이 전투 조건에서 환기될 때에도 포탑 내부에 유독성 추진제 가스가 유입되었다. 환기장치가 작동되는 도중에도 전투 상태로 15분 정도가 지나면 주포탑 내부에 유독성 가스가 가득차게 되었다.
4. 동형함
4.1. 1번함 라데츠키
Radetzky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불과 몇 년 전에 취역한 라데츠키는 실전 경력이 그리 많지 않다. 라데츠키는 1911년 영국에서 열린 스핏헤드 관함식에 참석했으며 자매함 2척과 함께 1912년 지중해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1913년에 라데츠키는 자매함 2척과 함께 발칸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이오니아 해에서 타국과 함께 시위 항해를 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함대의 원조는 독일 제국 지중해 함대가 요청했는데, 독일 지중해 함대는 순양전함 SMS 괴벤과 경순양함 SMS 브레슬라우로 구성되었다.[5] 독일 선박들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밀항하던 메시나를 탈출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영국 선박들은 독일 함대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시도로 메시나에 자국 함정을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는 여러 척의 보조함들과 함께 세 척의 라데츠키급 전함과 세 척의 테게토프급 전함을 투입할 수 있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아직 함대를 완전히 동원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고등 사령부는 대영제국과 전쟁 분위기에 놓이는 것을 경계하여 함대에게 영국 함정은 피하고, 독일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역에 있는 동안만 공개적으로 지원하라고 명령했다. 독일군이 메시나에서 탈출한 8월 7일, 라데츠키급 전함을 비롯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함대는 브린디시까지 남쪽으로 항해한 뒤 항구로 돌아왔다.
1914년 10월 라데츠키는 프랑스의 지원을 받는 몬테네그로군의 포병 진지를 제압하기 위해 파견되었으며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1915년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자 라데츠키는 자매함 2척과 함께 아드리아 해의 해안 도시인 안코나를 포격하여 이탈리아군의 동원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1915년 이후, 라데츠키와 2척의 자매함은 4척의 신형 테게토프급 전함에 밀려 별로 활약하지 못했다.
라데츠키는 2척의 자매함과 함께 1차대전이 끝난 후 함대를 유지하고자 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에 의해 유고슬라비아 해군에 이양이 시도되었으나 협상국에 의해 무시된 후 이탈리아에 배상함으로 넘겨졌고, 1920년-1921년 사이에 고철로 스크랩되었다.
4.2. 2번함 에르츠헤르초크 프란츠 페르디난트
Erzherzog Franz Ferdinand'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불과 몇 년 전에 취역한 에르츠헤르초크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실전 경력이 그리 많지 않다. 에르츠헤르초크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자매함 2척과 함께 1912년 지중해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1913년에 에르츠헤르초크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자매함 2척과 함께 발칸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이오니아 해에서 타국과 함께 시위 항해를 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함대의 원조는 독일 제국 지중해 함대가 요청했는데, 독일 지중해 함대는 순양전함 SMS 괴벤과 경순양함 SMS 브레슬라우로 구성되었다.[6] 독일 선박들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밀항하던 메시나를 탈출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영국 선박들은 독일 함대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시도로 메시나에 자국 함정을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는 여러 척의 보조함들과 함께 세 척의 라데츠키급 전함과 세 척의 테게토프급 전함을 투입할 수 있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아직 함대를 완전히 동원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고등 사령부는 대영제국과 전쟁 분위기에 놓이는 것을 경계하여 함대에게 영국 함정은 피하고, 독일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역에 있는 동안만 공개적으로 지원하라고 명령했다. 독일군이 메시나에서 탈출한 8월 7일, 라데츠키급 전함을 비롯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함대는 브린디시까지 남쪽으로 항해한 뒤 항구로 돌아왔다.
1915년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자 에르츠헤르초크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자매함 2척과 함께 아드리아 해의 해안 표적에 대해 포격했다. 1915년 이후, 에르츠헤르초크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2척의 자매함은 4척의 신형 테게토프급 전함에 밀려 별로 활약하지 못했다.
에르츠헤르초크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2척의 자매함과 함께 1차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함대를 유지하고자 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에 의해 유고슬라비아 해군에 이양이 시도되었으나 협상국에 의해 무시된 후 이탈리아에 배상함으로 넘겨졌고, 1926년에 고철로 스크랩되었다.
4.3. 3번함 즈리니
Zrínyi'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불과 몇 년 전에 취역한 즈리니는 실전 경력이 그리 많지 않다. 즈리니는 자매함 2척과 함께 1912년 지중해에서 훈련을 실시했다. 또한 같은 해 지중해 동부에서 테게토프급 전함 2척과 함께 훈련하기도 했다. 1913년에 즈리니는 자매함 2척과 함께 발칸 전쟁에 항의하기 위해 이오니아 해에서 타국과 함께 시위 항해를 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함대의 원조는 독일 제국 지중해 함대가 요청했는데, 독일 지중해 함대는 순양전함 SMS 괴벤과 경순양함 SMS 브레슬라우로 구성되었다.[7] 독일 선박들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밀항하던 메시나를 탈출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영국 선박들은 독일 함대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시도로 메시나에 자국 함정을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는 여러 척의 보조함들과 함께 세 척의 라데츠키급 전함과 세 척의 테게토프급 전함을 투입할 수 있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아직 함대를 완전히 동원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고등 사령부는 대영제국과 전쟁 분위기에 놓이는 것을 경계하여 함대에게 영국 함정은 피하고, 독일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역에 있는 동안만 공개적으로 지원하라고 명령했다. 독일군이 메시나에서 탈출한 8월 7일, 라데츠키급 전함을 비롯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함대는 브린디시까지 남쪽으로 항해한 뒤 항구로 돌아왔다.
1915년 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자 즈리니는 자매함 2척과 함께 아드리아 해의 해안 표적에 대해 포격했다. 1915년 이후, 즈리니와 2척의 자매함은 4척의 신형 테게토프급 전함에 밀려 별로 활약하지 못했다.
즈리니는 2척의 자매함과 함께 1차대전이 끝난 후 함대를 유지하고자 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에 의해 유고슬라비아 해군에 이양이 시도되었으나 협상국에 의해 무시되고 이탈리아에 배상함으로 넘겨졌고, 1920년-1921년 사이에 고철로 스크랩되었다.
5. 모형화
3번함 즈리니의 1/700 스케일의 레진 킷이 존재한다.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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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데츠키급 이전 전함들의 주포는 라데츠키급의 중간포 수준인 240mm(9.4인치)였다.[2] 이후 라데츠키급 전함 2번함에 그의 이름이 붙는다.[3] 당시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 건조 중이었고, 사쓰마급 전함도 초기 설계에 의하면 드레드노트급이 될 예정이었다.[4] 정작 독일 제국 해군은 자국의 주력 전함과 순양전함에 280 mm 주포를 탑재했고 이 포로 영국 주력함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5] 이 함선들은 후에 오스만 제국을 동맹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오스만 제국에 선물된다.[6] 이 함선들은 후에 오스만 제국을 동맹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오스만 제국에 선물된다.[7] 이 함선들은 후에 오스만 제국을 동맹국에 끌어들이기 위해 오스만 제국에 선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