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20:57:18

다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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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다클라 모로코.jpg파일:다클라 모로코 4.jpg
모로코 국기가 펼쳐진 시가지 (항공사진) 다클라 만에 들어서고 있는 리조트 시설
파일:모로코 다클라 5.jpg
파일:다클라.png파일:모로코 다클라 2.jpg
와드 앗다합 반도 남단에 조성된 도시 (위성사진) 도심부 전경

1. 개요2. 역사
2.1.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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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랍어 الداخلة
베르베르어 ⴷⴷⴰⵅⵍⴰ
스페인어 Dajla, Villa Cisneros
영어 Dakhla

모로코서사하라 제2의 도시. 엘아이운에서 남쪽으로 350km 해안에 위치한 인구 11만명의 도시이다. 리오 데 오로 (와드 앗-다합) 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시가지의 북쪽에는 다클라 공항이 있다. 역사적으로 어업 거점이었다가 스페인령 사하라, 모리타니를 거쳐 1979년부터 모로코가 실효 지배 중이다. 분쟁 지역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모로코 정부는 다클라 이래를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날씨가 덥기로 유명하다. 5월 ~ 10월까지 무려 6개월간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연중 최저 온도가 10도 안팎일 정도이다.

2. 역사

파일:모로코 사하라.jpg파일:사하라 모로코.jpg
1885년 1월의 스페인령 비야 시스네로스 거점 1930년의 비야 시스네로스 요새 항공사진

본래 베르베르인이 거주하였고, 12세기 힘야르 계열 울라드 딜름 베두인들도 유입되었다. 16세기 들어 카나리아 제도의 어부들이 바르바리 해적의 구애를 받지 않는 어업을 위해 근해에 왕래하였고, 고래나 물개 등을 잡아갔다. 그중 일부는 '금의 강'이란 뜻인 리오 데 오로 반도에 임시 거처를 짓고 살기도 하였고, 1881년에는 피항을 위한 부두가 세워졌다. 1884년 스페인은 1502년 교황 칙령에서 현지를 지칭한 비야 시스네로 (Villa Cisneros)[1] 마을을 세우고 스페인령 사하라 식민지의 설립을 공표하였다.

1940년 엘아이운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비야 시스네로스는 스페인령 사하라의 중심지였고, 요새 및 감옥과 성당 등이 들어섰다. 스페인 내전기 카나리아 출신의 공화파 시인 페드로 가르시아 카브레라가 이곳의 감옥에 수감되기도 하였다. 프랑코 정권기 비야 시스네로스에는 서사하라의 3개 뿐인 공항 중 하나가 세워졌다. 1975년 프랑코의 사망 및 녹색행군과 함께 스페인은 서사하라를 포기하였고, 1976년 1월 스페인 주둔군이 철수하였다. 이후 서사하라는 모로코와 모리타니 간에 분할되었고, 다클라는 모리타니령 티리스 알-가르비야 주의 치소가 되었다.

2.1. 현대

파일:모로코다클라.jpg
도심부 풍경
1979년 모리타니는 폴리사리오 전선의 지속적인 공격에 서사하라 남부를 포기했는데, 힘의 공백을 틈타 모로코가 기존 모리타니령 서사하라의 대부분을 무력 점령하였다. 이에 폴리사리오 전선은 현지 모로코 군과 충돌을 빚었고, 1991년에야 유엔 중재 하의 휴전이 체결되었다. 2000년을 전후로 하여 모로코 정부는 다클라에 대한 대대적인 개발에 나서고 있다. 1994년만 해도 3만이 안되던 인구는 2004년 5만을 넘고, 2014년 10만을 넘겼다. 비록 모로코의 서사하라 지배를 인정하는 국가는 적지만, 실효 지배가 반세기에 이르다보니 사실상 인정되고 있다. 2020년 콩고민주공화국, 기니, 기니비사우, 감비아, 라이베리아, 부르키나파소, 적도기니, 지부티에 이르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다클라에 영사관을 두었다.

[1] 16세기 초엽 스페인의 성직자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데 시스네로스에서 유래된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