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7 02:41:15

다이콘 필름

1. 개요2. 작품 목록
2.1. DAICON 3 오프닝 애니메이션2.2. 쾌걸 노덴키2.3. 애국전대 대일본2.4. 돌아온 울트라맨 MAT 애로우 1호 발진명령2.5. DAICON 4 오프닝 애니메이션2.6. 속사 켄의 대모험2.7. 아먀타노오로치의 역습
3. 기타4. 외부 링크

1. 개요

DAICON FILM (ダイコンフィルム)

1981년부터 1985년까지 활동한 일본동인 서클로, 애니메이션특촬 독립영화 제작을 중심으로 한 단체다. 1981년 오사카시에서 개최한 제20회 일본SF대회 DAICON 3[1]를 주최한 사이언스 픽션(SF) 팬들인 대학생 중심의 단체 DAICON 3 실행위원회[2]가 기원으로, 대회 종료 후에도 2년 뒤인 1983년에 다시 한 번 오사카에서 대회를 열기 위한 홍보 목적으로 영화 제작 등의 활동을 이어갔다. 다이콘 필름이라는 명칭도 대회의 별칭에서 유래했다.

오카다 토시오 본인 고백으로는 이 무렵 다이콘 3는 성공했는데, 축제가 끝나고 보니 정작 본인은 학교는 퇴학 당해서 할 일도 없는 백수였고, 주변 친구들은 다들 대기업에 취직도 하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아서 노력하고 있는데, 혼자서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한번 본인이 주연급 리더가 될 수 있는 다이콘 행사(다이콘 4)를 하기로 하고, 그 행사의 오프닝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 꾸준하게 활동할 수 있는 멤버를 모은 것이 다이콘 필름이라는 아마추어 영상 창작 집단이었다.

1983년 DAICON 4의 개최도 성공하고 활동도 계속 이어갔지만, 1984년 말 왕립우주군의 제작을 위해 해산하고 애니메이션 제작사 가이낙스를 설립했다. 따라서 몇몇 작품의 저작권은 가이낙스에서 관리한다. 다만 몇 개의 작품은 허가를 안 받은 패러디가 너무 많아서 공적으로 공개하거나 상업 이용할 수 없다고 한다.

2. 작품 목록

2.1. DAICON 3 오프닝 애니메이션

역대 성운상 수상작
파일:seiunprize.jpg
대회 미디어상
제13회
(1982년)
제14회
(1983년)
다이콘 3 오프닝 애니메이션 애국전대 대일본

DAICON III OPENING ANIMATION


DAICON 3 개회식에서 상영된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제작은 오사카예술대학에 다니던 안노 히데아키, 아카이 타카미, 야마가 히로유키 등이 맡았다.

연출은 안노 히데아키가 했고 캐릭터 작화는 아카이 타카미, 메카 작화는 안노 히데아키가 대부분 했다. 채색은 대학생들이 봉사로 해줬다고 한다.

제작비는 당시 부자였던 오카다 토시오가 댔으며 약 200만 엔. 그나마도 재료비 아끼고 대학생들이 봉사로 채색을 도와줘서 그 정도로 나온 거지 제대로 프로에게 돈 주고 만들었으면 그 이상 들었을 거라고 한다. 결국 170만 엔 적자가 났으며 적자를 매꾸려고 비디오로 팔았다. 오카다와 멤버들도 "이 짧은 걸 이렇게 비싸게 팔아도 팔릴까?" 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엄청나게 팔려서 흑자가 났다고 한다. 그래서 다이콘 필름의 영상물이 계속 제작되고 판매되었다고.

란도셀 소녀가 방해를 뚫으며 물컵을 운반해 말라가던 밭의 [3]에 물을 주자 무가 자라 커다란 우주선이 된다는 간단한 내용이다, 당시 SF 컨벤션 행사는 여러 도시를 옮겨가면서 했는데, 다이콘 3는 오사카에서 치루는 3번째 행사였다. 란도셀 소녀는 이 오사카 다이콘을 뜻하고 물을 운반하는 것은 다이콘 3를 성공적으로 치루고 다음 SF 컨벤션 행사로 무사히 바톤을 넘긴다는 의미였다.

파워드 슈트야마토, 고지라, 발탄 성인 등 온갖 패러디 요소들이 등장하는 이 단편은 대회에 참여한 SF 팬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이듬해 성운상 대회 미디어상을 수상했다.

데즈카 오사무가 보고 칭찬하는 동시에, 왜 자기 작품(아톰, 불새 등...)은 패러디하지 않았냐고 꼽을 주고 갔다고 한다. 이 일화는 다이콘 멤버들의 대학 동기인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자전적 만화 아오이 호노오에도 나온다.

오카다 토시오가 "먼저 저질러야 한다." 라고 해서 저작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만든 작품인데 이건 4와 다르게 패러디의 대상이 된 작품이 대부분 일본 작품이고, 그 수도 적어 가이낙스 쪽에서 협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라 발표 후에는 허가를 다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아오이 호노오의 블루레이 특전으로도 수록되었다.

2.2. 쾌걸 노덴키

快傑のうてんき



쾌걸 즈밧토를 패러디한 특촬 시리즈. 원작 비슷하게 사립탐정 하야카와 켄이 친구인 아스카 고로가 악의 조직 배커에게 살해당하고, 복수를 위해 싸워간다는 내용이자만 여기서는 우스꽝스런 복장의 쾌걸 노덴키로 변신한다. 주역은 타케다 야스히로가 맡았다.

시리즈 목록
  • 쾌걸 노덴키
  • 쾌걸 노덴키 2 순애항 거리편(純愛港町)
  • 쾌걸 노덴키 in USA
  • 롤플레잉 노덴키 in 소울[4]

2.3. 애국전대 대일본

愛國戰隊大日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애국전대 대일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4. 돌아온 울트라맨 MAT 애로우 1호 발진명령

帰ってきたウルトラマン マットアロー1号発進命令

파일:external/25.media.tumblr.com/tumblr_m7qwyzasbj1r9l7xlo1_1280.jpg

DAICON 4의 프로모션으로 DAICON IV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함께 상영되었다. 각본은 오카다 토시오가 썼고#, 총감독과 콘티는 안노 히데아키. 더불어 울트라맨 역도 담당했다. 그것도 맨 얼굴로.

안노는 예전에 대학 시절에 두 번 만든 적이 있는데, 하나는 과제로 가면 쓰고 만들었고, 또 하나는 울트라맨 DX(디럭스)라고 민낯으로 나온다. 그걸 좀 더 많은 돈을 들여서 새로 만든 것이 이 영상이다. 같은 대학동기이기도 했던 시마모토 카즈히코아오이 호노오 만화와 드라마에서 안노가 대학생 시절 만든 버전이 언급된다. 그게 이 작품이라고 잘못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마모토 말로는 다른 것이라고 한다.

또한 아내인 안노 모요코가 그린 감독부적격에도 나온다. 오카다 토시오의 증언에 의하면 안노가 일을 안하고 질질 끌어서 시간과 예산이 늘어나게 되고 이대로는 영화가 완성이 안 될 것 같아서 감독직에서 짤리고, 특수촬영을 담당한 아카이 타카미가 나머지를 완성했다. 오카다 토시오가 카페에서 만나 "너 감독 그만둬라."고 통보했는데, 안노는 충격을 먹었는지 반나절 동안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고 한다.

제목은 돌아온 울트라맨에서 따왔지만, 변신 장면이나 방위대의 묘사는 울트라 세븐에 가깝다.

여기에 나오는 메카닉과 미니어처는 전부 종이로 만들었으며, 오프닝도 NG 주제가인 싸워라! 울트라맨에서 가져왔다. 총 제작비는 100만 엔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메디콤토이에서 피규어로도 나왔다.

츠부라야 프로덕션TBS 테레비의 허락을 받지 않아서 비디오로 이벤트 회장이나 제네럴 프로덕츠에서 판매하다가 걸려서 필름 원본를 없애라 비디오도 회수하라고 통보를 받고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했다고 한다. 이후 안노 히데아키가 유명해지자, 2001년 츠부라야 프로덕션의 허가를 얻어 DVD로 제작되었는데, 본가와 구별을 두기 위해 앞에 DAICON FILM판이라 불렀다. 기간한정으로 판매하는 것이어서 2004년 종료되었다가. 안노가 직접 기획한 특촬박물관의 전람회에서 판매되었다.

2022년 11월 18일 프라임 비디오에서 신 울트라맨이 독점공개되면서 DAICON FILM판 돌아온 울트라맨도 같이 공개되었다. 원본 필름 자체를 싸구려를 썼고 상태가 안 좋아서 극적인 화질 상승은 없으나 일단 복원판이다.

안노는 신 에반게리온 극장판 𝄇을 만들면서 자신이 대학생 시절에 만든 버전과 이 작품을 오마주했다. 후반에 뭔가 어설픈 CG 전투신이 이 작품을 오마주해서 그렇게 된 것. 오카다 토시오는 "이게 자신의 창작의 원점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라고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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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DAICON 4 오프닝 애니메이션

DAICON IV OPENING ANIMATION


DAICON IV 개회식에서 상영된 애니메이션 단편 영화. 프로그레시브 록밴드인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곡, Twilight를 BGM으로 사용했는데, 다이콘 3 때와 동일하게 영상에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패러디들도 그렇지만 이 음악도 당연히 저작권 없이 무단 사용했다.

아트랜드 소속이었던 이타노 이치로, 히라노 토시키, 카키노우치 나루미 등의 프로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했는데, 이 작품 제작 전에 안노 히데아키, 아카이 타카미, 야마가 히로유키 3인이 학생 신분으로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제작을 도왔던 인연에서 참여한 것이다. 그 외에도 아카이 타카미의 친구 사다모토 요시유키, 마에다 마히로도 참가. 3가 동인영상이면 이건 프로의 범행이다. 그래서 품질이 확 올랐다.

또한 다이콘 3 당시엔 이들과 관련이 없던 사다모토 요시유키도 참가했다.[5] 타카야마 후미히코는 이 작품을 보면서 아카이 타카미에게 "이 장면과 저 장면의 작화가 좋다." 라고 몇 장면을 칭찬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부 사다모토 요시유키 작화였다고 한다. 그때 사다모토가 천재라는 걸 알았다고.

전작에서 나왔던 란도셀 소녀가 바니걸로 다시 등장했다. 스토리는 딱히 없지만, 프로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한 덕분에 거의 극장판 애니급의 작화가 나왔다. 오카다 토시오의 말에 의하면, 당시 일본 SF 팬덤은 소설, 아니메, 만화, 영화, 특촬 등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따로 놀았는데 서로 갈등도 있고 하던 터라, SF 컨벤션 다이콘을 통해서 사이좋게 지내자는 바람을 그렸다고 한다. 바니걸이 갈등요소를 폭력으로 제압하고 평화를 달성하는 내용도 이런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3분 21초의 사다모토 요시유키가 그린 장면이 애니메이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바스트 모핑 장면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안노 히데아키 말로는 미야자키 하야오루팡 3세 죽음의 날개 알바트로스가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의 바스트 모핑이고 자신들은 그것을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키타쿠보 히로유키 말로는 그 미야자키도 서양 애니메이션을 따라한 것이며 일본에서 처음 한 게 아니라고 한다.

또한, 칼을 타고 공중에서 서핑하는 장면은 이후 가이낙스에서 제작한 프리크리에서 패러디되었다.

캐릭터 디자인은 3에 이어서 아카이 타카미가 담당하였다. 그의 그림체의 정체성이 확고해졌고, 이후 전뇌학원,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까지 그 화풍이 이어진다. 실제로 아카이 타카미가 프린세스 메이커의 딸 다음으로 자주 그리는 캐릭터가 3, 4의 주인공이다.

니시오 테츠야안노 히데아키에게 이거 복원해서 블루레이로 내보자고 했는데 안노는 저작권을 완전히 무시하고 만든 작품이라 여러 문제가 있고, 원본도 사라져서 복원 계획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다이콘 3보다 패러디가 몇 배는 많고 할리우드 작품 패러디도 많아서 협상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이건 3와 달리 봉인 작품이다.

2.6. 속사 켄의 대모험

早撃ちケンの大冒険

서부극으로, 머펫을 사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영어 제목은 'THE BIG HILL OF GONZALESS'.

2.7. 아먀타노오로치의 역습

八岐之大蛇の逆襲


2시간 분량의 장편 특촬 영화. 아카이 타카미가 감독을 맡았으며, 히구치 신지가 특촬감독을 맡았다.

고대 신화에 나오는 괴수 야마타노오로치가 사실 외계인이 보낸 침략병기였다는 설정으로, 2000년의 세월이 흘러 현대에 부활한 야마타노오로치와 방위대와의 싸움을 다루고 있다. 배경은 감독의 고향인 요나고시로, 정밀한 미니어처로 재현되었다. 많은 폭발 효과가 사용되다보니 스탭들이 촬영중 화상을 입는 일도 많았다. 감독은 모기를 퇴치하려고 등유를 뿌리다 손바닥을 태워먹었다고 한다.

이 작품 이후 다이콘 필름은 해산했기 때문에, 다이콘 필름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성운상 미디어 부문에 후보로도 올랐다.

3. 기타

목록에 있는 것들 외에도 인간판 썬더버드, 공산전대 다이러시안, 다이콘판 가면라이더, 다이콘판 마이티잭 등이 기획되었지만 제작되지 않았다.

4. 외부 링크



[1] 오사카(阪)에서 개최한 3번째 대회(Convention)라 이런 별칭으로 부른다. 는 일본어로 '오'라 읽을 수도, '다이'라 읽을 수도 있다. 도쿄(東京)에서 주최하는 행사는 TOKON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2] 당시 위원장은 이후 가이낙스의 이사가 되는 타케다 야스히로(武田康廣)[3] 무는 일본어로 '다이콘'이라 부른다.[4] 1988년 군마현에서 개최한 제27회 일본SF대회 MiG-CON에서 상영. 어드벤처 게임 형식을 하고 있다.[5] 당시 회상이 포함된 인터뷰. 사다모토의 안노의 첫인상은 “이상한 인간이네” 였다고 한다. 당시 안노는 밥 대신 영양액 앰풀로 연명하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밥 먹기 귀찮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