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내가 히틀러라니!의 비판 및 논란에 대해 정리한 문서.2. 나치 미화 논란
히틀러, 나치라는 민감한 소재로 인해 독자댓글란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작가가 디시인사이드 기갑 갤러리에 남겼다(원문).히틀러와 나치를 소재로 삼는 것 그 자체는 작가의 말대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부분은, 히틀러의 몸에 빙의된 주인공의 행동 때문이다. 자신이 히틀러에게 빙의된 이후 행동 방침을 '나치를 쳐죽이고 정의를 구현하는' 방향이 아닌, 적기가 휘날리는 베를린이나 원폭이 투발되는 베를린을 막아서 히틀러에 빙의된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1] 따라서 주인공은 개인의 신변 안전을 최우선으로 본인의 역사적/군사적 배경지식을 총동원하였고, 그 결과 진행된 독일의 전쟁 및 국정 수행 방침은 나치 독일의 만행을 막기보다는 미국과의 전쟁 회피 및 이미 엎질러진 물인 소련 및 영국과의 전쟁에서의 승리로 잡히게 된다.[2]
작중 주인공의 캐릭터 자체도 비판의 여지를 피할 수는 없다. 주인공은 스스로가 나치 동조자가 아니며, 히틀러를 미친놈이라 규정하지만, 어쨌든 히틀러에 빙의되었으니 안락하게 살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변 여자들에 손을 대는데다가 거기다 빙의가 되면서 히틀러에 감정이입이라도 되는지, 1권서부터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연합국 정상들을 '빨갱이 물이 든 루즈벨트', '마누라가 일곱인 뚱땡이' 등으로 표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유대인 관련 에피소드에서 절정에 이른다. 반제 회의의 결과물을 뒤틀어 유대인 절멸 계획만은 중단시켰지만 여전히 유대인을 대상으로 잔혹한 탄압이 계속되고 있으며, 절멸 정책 대신 '팔레스타인으로의 대외 추방'을 결정하고 실시하며 그 과정에서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간 뒤 아랍인에게 공격당하거나 영국, 프랑스가 설치한 임시수용소에서 병이나 굶주림으로 또 숱하게 죽어나간다. 해상에서는 입국을 막으려는 영국 해군과 어떻게든 돌아가지 않으려는 유대인 난민들 사이에 사격전이 벌어져 다수 사상자가 발생하기까지 했다. 한 마디로 홀로코스트를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로 만든 것이다. 다만 작중에서 기술된 사망자 숫자는 아랍인에게, 영국군에게, 수용소에서 죽은 숫자를 합쳐서 5만 명을 좀 넘는 정도로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인원에 비하면 극소수이긴 하다. 그 외에 격화된 아랍인과의 충돌로 인한 사망자는 명확히 기술하지 않았다.
주인공 만행의 극치로 이 과정에서 유대인 4,000명이 탑승한 화물선을 영국군이 돌려보내자 주인공은 망설임 없이 승무원들만을 내리게 한 다음 화물선을 시범케이스로 격침시켜 4,000명을 배와 함께 수장한다. 이 행동의 목적은 돌아오면/돌려보내면 죽인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함인데, 역설적으로 주인공의 본심은 원래의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천명하며 권좌에 올랐기 때문에 여기서 취소했다간 도리어 역풍을 맞아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고, 유대인들을 계속 독일 안에 두다간 언젠가는 다시 학살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내가 유대인을 죽인 학살자가 되기는 싫으니 팔레스타인으로 보내서 어떻게든 살인을 떠넘기고 나는 끔찍한 일을 하지 않겠다는 책임 회피다. 정작 4천 명을 한 방에 날리면서도 "그래도 진짜 히틀러보다는 덜 죽인 거 아니냐"는 말을 하고 있으니, 할 말이 없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히틀러로 오래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나 발버둥쳤건만 정작 진짜 히틀러보다 겨우 193일밖에 더 살지 못했다. 진짜 히틀러가 저질렀을 학살을 상당 부분 막아냈기에 유럽에서의 사망자 수는 실제 역사에서보다 상당히 적을 것이다. 하지만 히틀러보다 덜 죽였다고 해서 유대인들을 지중해에 수장시키고 런던을 불바다로 만든 주인공이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는지는 한 번 고민해보자.[3]
또한 작품의 지나친 반일, 혐일 묘사도 비판을 받고 있는데 2차대전이란 주제에서 아무리 시대상 반일감정이 없을 수 없다곤 하나 주인공은 작중 시시때때로 일본인을 쪽빠리 원숭이라고 욕하고 일본에 대해 경멸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일본인을 몰락 작전으로 4500만명 이상이나 사망시켜 결과적으로 2차대전의 총 사망자 수로 보자면 실제 역사보다 더 많게 만드는 등 과도한 반일,혐일감정 묘사가 거북하게 작품의 맥락을 끊기까지 한다는 평이 있기도 하다. 이 반일감정의 정점은 (주인공이 빙의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가 일본 제국과 일본인을 사악하다고 욕하는 장면에서 극치를 이루는데[4] 허나 이 부분은 반대로 히틀러가 미국 공격에 개념없이 동참한 것을 돌려 까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으로 고립주의가 박살났는데 그걸 좋아라 하고 동참하면 더 답없는 나치 미화물 자체이지 않는가? 또한 결국은 한국이 잘 되는 수많은 대체역사물의 변주란 비평도 존재한다.
더 나아가서 최대 물주 노릇이 가능한 미국이 반공 친미적 한국인이 권력을 잡게 할 수 있는 지원 가능한 분기가 분명 있음에도 작품의 주인공은 신분제의 우위를 가진 이우를 선택한 시점에서 이미 디스토피아는 시작된 셈이다.
작가 역시 이러한 주인공의 태도나 나치가 승리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작가의 개인 가치관이 곧 주인공의 가치관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지나친 비약이다. 자신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 등을 통해서도 주인공의 결말에 대해 '나치 따위와 연관을 맺고 끝이 행복하면 벌받습니다' 라고 촌평을 하기도 한다. 작품의 집필 의도 자체가 나치 체제 및 독일의 미화에 있기보다는, 군사 매니아적 입장에서 나치가 승리한 IF를 묘사하는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원래 역사에선 진즉에 전역한 평범한 군필 젊은이였던 주인공은 안락한 일생과 생존을 보장받으려다 어설프게[5] 나치의 도움을 받아 독립한 역사가 변화된 이후의 세계 속 한국에서 세뇌 교육의 영향으로 공기처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국민 모두가 민주주의에 냉소적인 살벌한 파시즘적 세상에서 그 자신도 잔여 복무기한이 생겨 전쟁터에서 굴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자기 자신도 일종의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2.1. 흥미 본위의 대체역사물 자체의 문제?
이는 어느 정도는 흥미 본위로 근대사(혹은 그 이전까지도)에서의 거시적인 흐름을 비트는 대체역사물 자체의[6], 필연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게 상대적이며, 더욱이 같은 의견을 공유하더라도 이를 얼마나 더 중요하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는 사람, 지역마다 다르다. 예를들어 한국에서는 단순히 흥미와 재미로 이야기하는 트루롬 드립도 터키나 그리스인들에게는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국인들 상당수가 나치를 악으로 생각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또 나치를 묘사함에 있어 얼마나 허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선 역시 나라나 민족마다 다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나치가 실제 역사보다 덜 타락해서 잘 되는 대체역사도 누군가에겐 나치가 나쁘긴 해도 먼 나라의 일이기도 하고 단순히 흥미 본위의 if로 다루는 게 용인되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이것은 서구권의 대체역사 프로젝트인 일 베티사드의 논란과도 통하는데, 해당 작에서 일본은 군국주의적 성향이 약해져서 한국을 류큐와 함께 연방제 형식으로 병합하고 조선 왕조도 남겨두는데, 군국주의 중국이 1920년에 일본 제국의 식민지 조선을 침공해서 실 역사의 일본처럼 악독하게 식민지배를 시작하고, 생체실험등의 전쟁범죄를 저지른다. 이에 일본이 조선의 독립군을 지원하고 이후 중국이 몰락하며 한국이 독립한다. 이후 일본이 한국에 군대를 보내 새 임시정부를 세우고 한국의 정치세력과 합의 하에 왕정을 복원하고 천황이 조선 왕을 겸하는 형태로 다시 식민지 조선과 병합하게 된다. 해당 작에서의 일본은 가혹한 식민통치를 벌인 중국에 비해 몹시 유화적인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이것도 달리보면 서구권에서도 일제가 악하다는 인식은 있긴 하지만, 자신과는 멀리 느껴지는 동아시아 역사에 대해 단순히 흥미 본위로 비틀고, 선악 구도를 바꾸다보니, 당사자인 한국인들 입장에서는 몹시도 민감하면서도 불쾌한 묘사로 보이게 된다. 물론 당연히 일제 식민지배의 당사자인 한국인 입장에서 이를 비판하는 것 역시도 잘못되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비단 해당 문서의 작품에 국한하지 않더라도, 해당 지역의 작가나 소비자층 입장에서는 '자기네 역사와 별 관련없는' 멀어보이는 역사에 대해 대체역사 소재로서 흥미 본위로 비트는 대체역사물에 대해, 다른 누군가에겐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문제를 가볍게 다루게 되는 것에 대해 논란이 생길 소지는 다분해지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3. 가정에 대한 현실성
사실 평가와 논란을 잠시 제쳐두고서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스러운 점들이 있다. 제일 문제는 히틀러만 바뀐다고 전황이 확 바뀔 거라는 가정 자체가 무리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소설의 전개 자체가 불가능하니 넘어가자.- 북아프리카 전선
영국군이 모로코에 상륙하고 비시 프랑스군이 통째로 영국군에 합류하여 추축군을 북아프리카에서 내모는데, 실제론 비시 프랑스군은 미군은 몰라도 영국군과는 캐터필러 작전으로 서로 악연이었으며 치열하게 싸웠을 정도였다. 따라서 비시 프랑스군이 영국군에 붙을 가능성보다 되려 독일, 이탈리아군과 힘을 합쳐 역공을 가해 영국군을 도로 쫓아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군이 없는데 영국군이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을 몰아낼 수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 부분은 작중에서 다를랑이 영국군과 싸우겠다며, 툴롱에 기항하고 있던 함대를 모조리 끌고나가서는 지중해 한가운데서 "우린 지금부터 연합군이다!" 선포하고 돌아서버린 탓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군에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다를랑이, 조만간 미국이 유럽 전선에도 참전할 것으로 예상하고 일찌감치 입지를 확보할 생각으로 함대를 끌고 전향해버린 것.[7][8] 프랑스 함대가 적이 되어버린 이상 북아프리카 주둔 비시군은 본토와 연결이 완전히 끊겨 버렸고, 계속 싸우기 힘들어졌다. 이 상황에서도 튀니지 주둔 비시군은 한참을 더 싸우고서야 투항해서 독일-이탈리아군이 튀니지 교두보를 구축할 시간을 벌어준다. 또한 영국군이 비시군을 압도할 수 있는 전력을 투입할 수 있었던 까닭은 히틀러가 된 주인공이 북아프리카에서 현상유지를 택하는 바람에 이집트 방면에서 엘 알라메인 전투를 비롯한 격전이 일어나지 않았고, 여기 쓰였을 병력을 절약한 영국군이 그 병력으로 횃불 작전을 벌인 나비 효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도 튀니지 교두보는 실제 역사보다 1년 이상 더 버티다가 주인공의 철수 결정에 따라 천천히 철수한다.
- 제정복고
나치당 관료들이 군부와 타협하여 군주정을 되살리는 것도 무리수. 진짜 히틀러는 군주정 혐오자였으며 나치당 관계자 상당수도 군주정을 싫어했고 국민들도 군주정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들이 적었다. 군부는 군주정에 대해 긍정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되살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9] 차라리 온건파적인 인물이 주도권을 잡아 점진적인 민주화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이 더 현실성 있었을 듯.
- 일본 패망
일본이 몰락 작전에서 완전히 캐발살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전쟁 이전 인구가 7000만 일본인이 몰락 작전 이후 2500만(!)으로 인구가 감소하였다. 한 마디로 자그마치 4500만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인데 이는 아무리 일본 본토전의 전시 상태란 대체역사라 치더라도 홀로코스트를 훨씬 초월했다. 사망자가 비현실적으로 너무 많다. 차라리 사망자 숫자를 좀 줄였더라면 현실감이 있었을 것이다.
- 전후 한국 사회의 전개 방향
민주화 운동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국가주의+전체주의+군국주의에 물든다. 반공 교육을 받았지만, 민주화 운동의 주축이 되었던 민주열사들의 현실과 비교해보면 영 좋지 않다.[10] 이 부분에 대한 작중 설정은 딱 '한 세대'만 걸러내면 된다는 것이다. 해방 이전에 성장한 노년층은 기본적으로 왕실에 대한 충성이 살아 있고, 독립영웅인 이우에 대한 존경심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게다가 중국 본토가 공산화되고 조공과의 교전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실 하에서 이우의 지도력을 흔들기 조심스러워지는 점도 있다. 여기에 더해서 이우 및 이종이 모두 개인적으로도 부패하지 않고, 공직자들의 부정행위도 엄하게 단속한 점이 평가를 올렸다.[11] 해방 이후 태어나 70년대까지 잠시 미국식 민주주의 맛을 보면서 자라난 세대는 이우 독재에 대한 불만도 있고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있지만, 이 세대에서도 이우 지지 세력은 있어서 힘을 합치지 못하고 분열되었다. 또한 거의 무조건적으로 이우를 지지하는 대부분의 윗세대와 이종에 의해 시작된 철저한 '의식화 교육'을 받은 아랫세대에 끼어 사회적 주도권도 쥐지 못했다. 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친 민주화 운동은 이들이 올린 최대 전과라고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 뒤로 이어지는 동력이 공급되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천안문 사태에서 중국인들이 보인 모습과 달리 그 이후의 중국의 젊은 세대가 보인 모습을 보면 의외로 가능성이 있는데 공산당은 천안문 이후 비판적 젊은 세대의 출현을 막으려 강력한 애국주의 교육과 운동을 벌였다. 공산당 업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당을 불신하고 천안문 사건이 발생했다고 봐서 근현대사 교육을 중시했고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외국에 대해 비이성적·감정적·극단적 성향을 갖게 됐다. 서양 제국주의 침략을 강조하고, 위대한 고대와 굴욕적 근대에 대한 기억이 청소년들 마음속에서 극도의 분노를 유발하고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를 악마화하며 6·25 전쟁도 자신들이 미국으로부터 한반도를 구해준 전쟁이라고 교육받는 현대 중국 젊은 세대를 생각하면 이 전개는 의외로 근거가 있다.
4. 결말 관련 논란
2차 대전이 독일의 판정승으로 끝난 후 주인공이 폭탄테러로 비명횡사하고 수십 년 후의 한국에서 깨어나는 결말에 많은 독자들이 불만을 터트렸다. 나치 독일이 승리하고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기대한 독자들은 어거지스러운 왕정복고로 독일이 민주화되었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정작 독일과 비교되게 한국은 그대로 독재가 유지되어 꿈도 희망도 없는 것으로 묘사되어 더욱 그러했다. 둘다 독재도 아니고, 둘다 민주화도 아니고, 한국만 민주화가 되는 것도 아닌, 제일 가능성이 낮은 결말을 채택해버린 것.이에 대해 작가는 <내가 히틀러라니!>는 웹소설만이 아닌 종이책으로도 출판할 것을 염두에 둔 소설이기에 검열을 신경 써서 그런 결말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링크 주인공이 나치 독일의 지도자로 오래도록 잘 먹고 잘 살거나 나치 독일이 승승장구하는 내용이었으면 절대로 출판될 수 없었을 것이며 작가도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나치즘이 지속되는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1] 다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나치의 대빵인 히틀러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단지 밀덕일 뿐이었던 평범한 소시민인 주인공에게는 히틀러가 여태 해왔던 악행을 그나마 덜한 수준으로 제동을 거는 정도가 최선이었다. 갑자기 자국을 향해 사보타주 정책을 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만악의 근원인 히틀러(자기 자신)를 없애자니 생존이 최우선 과제인 사람이 자결을 생각할 리가 없으니까.[2] 위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자신(히틀러)가 너무 갑자기 정책+행동방침을 선회해버리면 오히려 강경파 나치들에게 암살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가지고 있었다.[3] 작중에서 주인공이 전쟁에 패배한다면 원래대로였으면 학살당했을 수백만 명을 살려낸 것은 아무도 모른 채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학살자가 되어 사형을 당할 텐데 그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나온다.[4] 다만 이 장면은 서방 연합국에게 독일을 공격하지 말고 대일 연합전선을 결성하자고 촉구하는 선전의 일부로서, 저 문구는 노골적인 프로파간다용 멘트이다.[5] 조국인 대한민국을 위해 도왔다지만 자신이 현재 어느 나라의 수장인지, 그 나라의 도움이 과연 어떤 성격을 가지게 될 지 등의 파급효과를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다면. 거기에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미국의 참전을 돌리기 위해 한인 독립운동세력에 대한 투자와 친미적 성향을 지닌 한인 지도부 구성 및 그들을 이용한 한국인으로 구성된 야전군 구성까지 광범위하게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나름 국외정보까지 뻗으려는 존 에드거 후버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가능성은 높았다. 즉, 미국의 잠재성을 말로만 인정한 독빠의 한계인 셈이다. 한마디로 스탈린만도 못한 시각.[6] 당신들의 조국처럼 특정 단체나 무언가에 비판적인 관점을 갖고 어느 정도 그런 비판을 목적으로 디스토피아물로 묘사하는 작품이 아닌 이상.[7] 단 외전에서 밝혀진 바로는 이 함대는 자유 프랑스에도 제대로 엿을 먹인다.[8] 실제 역사에서는 다를랑 원수가 비시 프랑스 최고함대 사령관 장 드 라보르드 대장에게 툴롱 항의 프랑스 함대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가 쌍욕을 들었다. 다를랑이 연합군에 붙은 것도 있으나 장 드 라보르드가 반다를랑 성향이라.[9] 독일 군부가 국가 안의 국가라 불릴 만큼 막강한 권한을 누릴수 있었던 이유가 프로이센에서 독일 제국으로 이어지는 통수권 체제 덕분이었기 때문. 군부의 보수파 내에서는 문민통제를 벗어난 자율성과 권한의 극대화를 보장해 준 군주정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다만 군부의 권한만 보장해준다면야 그것이 카이저든 대통령이든 총통이든 크게 상관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10] '반공'의 반대말이 '민주주의'라는 의미가 아니다. 반공 교육에 국가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적 요소가 있었다.[11] 현실역사의 독재자들은 정통성 없는 집권을 유지할 친위세력을 키우느라 공직자 부정행위를 방조하거나 권장하기까지 했지만 이우는 애초에 왕실 후계에 전쟁영웅이라서 정통성이 충분하므로 거리낌없이 때려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