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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1967)/지도자 경력/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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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감독의 연도별 시즌 일람
2016년 2017년 2018년
1. 시즌 전2. 페넌트 레이스
2.1. 3월 ~ 4월2.2. 5월2.3. 6월2.4. 7월2.5. 8월2.6. 9월2.7. 10월
3. 포스트시즌4. 총평

1. 시즌 전

두산 베어스 No.88
김태형(金泰亨)

재계약 이후 첫 시즌이자, 두산이 3연패를 달성하고 왕조를 열 수 있는 중요한 시즌이다. 하지만 김인식 전 감독이 wbc에 무려 8명의 두산 선수들을 차출해 가면서[1]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부상 등등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김태형 감독이 이런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2. 페넌트 레이스

2.1. 3월 ~ 4월


3월 31일 개막전에 니퍼트 카드를 꺼냈고, 상대 팀이 자멸하며 무난하게 3대0 승리를 따냈다.[2] 그러나 다음날 2번이나 도루저지 중 실책을 한 포수에게 '네 덕분에 살았다'는 농담이라기엔 무례한 발언을 하여 한화 팬들의 표적이 되었다. 저 말을 들은 포수 경기에서 멀티 히트를 허용했고, 팀이 역전패를 당해서 더더욱 까이는 중. 그래도 꾸준히 불펜진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상대의 실책과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투수 교체를 놓치지 않고 12회말 끝내기 승리를 거두어 위닝시리즈를 확보해서 다시 명장으로 평이 좋아졌다.

그러나 이후 부진을 거듭하던 넥센의 혈을 뚫어주며 스윕을 당하더니 4승 6패로 8위로 떨어졌고, 너무나도 태평하게 인터뷰를 하는지라 두산 베어스 갤에서 거칠게 까이고 있다. 투수들의 폼을 평범하게 만들어 공도 밋밋하게 만드는 권명철 코치와 잇따른 실책을 저지르는 박건우, 이현승, 홍상삼, 오재원 등 환장할 선수들을 당장 2군으로 내리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덤으로 김승회, 김성배, 김명신 등의 혹사 지수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기아와의 첫 시리즈에서 5선발로도 부족한 홍건희를 무난히 잡았으나 첫 선발 등판을 한 임기영과 에이스 헥터에 밀려 루징 시리즈를 기록한 뒤, NC에 다시 위닝을 기록했다. 그러나 초반치고 순위가 그리 높지 않고 팀의 타격감이 심각한 상태라서...

특히 타율 1할에 無장타, OPS가 4할대인 오재원을 매번 꿋꿋이 2번으로 출장시키는거에 반감을 가진 팬들이 많다. 대체 팀내 최악의 타자를 중요 상위타순 중 하나인 2번에 무슨 생각으로 배치하는지 모르겠다는 평. 그리고 오재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매번 병살[3] 등으로 기회를 끊어먹으며 쌍으로 까이고 있다. 마침 신성현도 트레이드로 왔겠다 팬들은 빨리 저 퇴물 먹튀 2루수를 내리고 2루수 허경민-3루수 신성현 체제를 요구하고 있으나 작년 잘나갈때도 항상 팀내 최악 타자 오재원을 2번에 두는 이해할 수 없는 운용을 보인지라 먹히기는 할련지...

4월 21일에는 아예 1할타자 을 벤치나 2군행 지시는 커녕 1,2번 테이블세터로 배치하는 반 승부조작급 실태를 보여줬다. 뭔가 믿을 구석이라도 있으면 또 모르겠고 출루라도 했으면 모르겠는데 역시나 두명은 나란히 무출루. 믿음의 야구도 반등의 기미가 있어보이거나 원래 클라스가 있는 선수 대상으로 해야지 변명의 여지라도 있지, 한명은 이미 작년부터 급격한 하락세에 누가봐도 타격폼자체가 글러먹었고 한명은 아예 배트에 공을 못맞춰서 3경기동안 9삼진을 먹고 있는, 흔히 말하는 법력타마저도 기대할수 없는데다가 냉정하게 말하면 그냥 딱 1년 보여준 선수일 뿐인데 도대체 뭘 기대하고 폼이 올라올거라고 계속해서 기용하는지 이해 불능이다. 게다가 그나마 하위타순에서 부담을 줄이면서 감을 올리려는거면 몰라도, 개막부터 꾸준히 2번에 오재원을 배치해서 흐름이란 흐름은 다 끊어먹고 있고 선수들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그 와중에 최주환은 드문 선발 기회에서도 계속해서 좋은 타격을 보여주고 있는데 3안타를 쳐도 다음날 선발에서 빠지고 1할짜리 타자한테 자리를 뺏기면 야구를 할 맛이 날까?

거기에다가 팀이 딱히 잘 나가지도 않는데 불펜을 엄청나게 갈아먹고 있다. 작년에도 정재훈을 엄청나게 갈아먹었지만 그 땐 그래도 팀이 넉넉하게 선두를 질주하고 있었고 소위 말하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식의 운용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성적은 성적대로 놓치면서 불펜은 불펜대로 혹사당하고 있다. 작년에도 결국 불펜 혹사 때문에 7월 큰 위기를 겪었고 미리 벌어둔 승수 덕에 우승을 했는데, 올해는 승수도 못 벌어들이면서 지금처럼 불펜을 혹사시킨다면 여름에 순위경쟁이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하다.

결론적으로 주전들이 다 자기 몫을 할 때는 시즌을 잘 이끌어가지만, 사실 그건 그렇게 못 하는 감독이 더 이상한거고 두 세 명이 부진해서 팀이 전체적으로 삐걱거릴 때 대처는 아주 형편없음을 제대로 보여줬다. 사실 2015년 초보감독 시절 선발진이 처참하게 붕괴될 때는 조바심내며 선발을 당겨쓰는 대신 멀리 보면서 적재적소에 대체자원을 뚝심있게 운용하였고, 이 점이 김태형의 고평가요소 중 하나였는데 왜 타선과 불펜에 대해서는 무너지던 당시의 선발진처럼 운용하지 못하고 이토록 답답하고 융통성없는 운용만 반복하는지 팬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2.2. 5월

어린이날 시리즈에서 LG에게 스윕당했다,정말 오랜만에 어린이날 시리즈 스윕패라서 팬들도 아쉬워 했다.

2.3. 6월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7062301002191500155851_20170623162619959.jpg
6월 23일 롯데와의 경기 전
6월 1일 유희관의 7.2이닝 6실점의 역투로 간신히 한화와의 3연전에서 스윕은 면했다. 그런데 유희관은 전 게임과 전전 게임 모두 9이닝을 소화한 상태였고 이날 역시 8회까지 공을 던져 3경기 352구를 투구하게 되어 선발 혹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후 오재원이 잘하고 있다는 인터뷰로 다시 욕을 한 사발로 먹었다.

6월 2일 니퍼트의 호투와 타선의 대폭발로 넥센에 11점차 대승을 거두어 감독 통산 200승을 거두게 되었다. 두산 사상 최소 경기 기록이라고 한다.

선발과 불펜을 모두 혹사시키다 결국 사달이 났다. 6월 24일 잠실 롯데전에서 8회에만 김승회-이용찬이 연속 안타를 지속적으로 처맞으면서 1이닝에 무려 7실점으로 역전패를 당한 것.

2.4. 7월

니퍼트, 장원준, 유희관 등 선발들에게 100구 이상씩을 맡기면서도 불펜 운용이 비효율적인 것이 계속 이어지며 9일 유희관, 김승회가 완벽하게 퍼졌음을 드러냈다. 경질론도 슬슬 나오고 있는 중.

그런데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투타조화가 잘 되는 모습을 보여주며 갑자기 경기력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후반기 첫 1주간 4승1무1패의 성적을 기록했으며 특히 1위팀 KIA를 만나 1승1무1패의 성적을 거둔 것은 나름대로 칭찬받고 있다. 특히 김강률의 성적이 압도적인데, 한주간 5경기3연투에 나와 5.2이닝을 던지는동안 단 1자책점빆에 없고, 심지어 자신의 통산 2,3번째 세이브까지 달성하며 2홀드 2세이브로 좋은 활약을 했다.

2.5. 8월

8월 첫 주 삼성 라이온즈와의 3연전 동안에는 31점이나 뽑아내고 실점은 11점으로 막아내며 시원하게 스윕하였다. 특히 에반스가 이 세 경기동안 타율이 무려 0.692에 육박한다.

그러나 유희관이 일찍 퍼져버렸다. 공이 죽어버려서 난타 당하는 탓에 주춤하고 있다. 분명히 엄청나게 굴렀고 그렇게 굴린 것은 김태형이므로 이 부분에 있어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20일 게실염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아 21일 한용덕 코치를 임시 감독으로 세우고 결장했다. 그런데 22일 SK전에서 한용덕이 대타, 대주자 교체로 야수를 모두 소모하며 지명타자 에반스가 3루로, 투수 김강률이 타석으로 들어서는 일까지 벌어지자 팬들은 '없는 동안 튼동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며 고해성사를 했다.[4]

23일 퇴원해 24일 다시 합류한다고 한다.

2.6. 9월


24일 드디어 기아와 공동 1위 자리를 확보했다. 이 기세로 승차없이 시즌이 끝나 승률이 동률 경우 상대전적에서 8승 1무 7패로 앞서는 두산이 우승하게 된다.

9월부터 셋업맨에서 마무리까지 신분상승한 김강률이 시즌동안 거진 90이닝을 던지게 되면서 그간 선발 전환 전 함덕주, 김명신, 이현승, 정재훈, 윤명준 등을 혹사시킨 것이 재조명되고 있다. 다만 접전이 이어지는데다가 1위 싸움이 막바지인 가운데 최근 마무리로 전향한 투수를 안 쓰는건 그거대로 또 문제라...

2.7. 10월

비록 우승은 못 했지만 전반기 5위에서 2위로 정규시즌을 마쳐 미라클두라는 별명을 다시 각인시켰다.

그러나 베어스포티비 영상에서 이용찬의 뺨을 싸대기로 힘껏 때린 모습이 발각되었다. 이용찬의 표정이 안 좋은 데다, 맞은 직후 이용찬이 뺨에 댄 손을 강압적으로 뿌려친 터라 두산팬들도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 선수 시절 인성 어디 안 간다고[5], 괜히 튼동님이라는 별명이 있겠냐며 욕을 먹었다. 두산에서의 커리어는 역대 최고지만 저 태도에 대해선 최고에 걸맞지 못하다는 비판.

3. 포스트시즌

3.1. 플레이오프


타선의 폭발에 힘입어 NC와의 플레이오프를 무난히 3승 1패로 통과하였다. 그러나 시리즈 내내 선발이 영 좋지 못했고 그에 비해 구원진은 훨씬 좋은 투구를 선보였는데 선발을 너무 오래 끌어서 점수를 필요 이상으로 줬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선발을 오래 끈 만큼 이닝을 확실히 더 먹은 것도 아니니...[6]

그리고 또 그놈의 2번 타자 장난질은 여전히 계속됐다. 1차전에는 오재원, 2~4차전에서는 류지혁을 박아서 팀 득점력을 스스로 감소시켰다. 그나마 팀 타선이 미친듯이 터져서 큰 티는 안났지만 저 둘의 성적은 다른 팀 타자들에 비해서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후반기 내내 타격감이 좋지 않았고 1차전에서도 폭풍삼진을 먹던 닉 에반스를 어줍잖은 믿음의 야구를 하지 않고 빠르게 벤치로 내린 것은 확실히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만 하다. 그리고 그 대신 들어온 최주환은 2차전 역전 만루홈런을 때리는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전체적으로 야수 운용은 2번 타자 문제만 제외하면 명장다웠고, 반대로 투수 운용은 포스트시즌임에도 좋지 않은 선발을 계속 끌고 가려는 등 보완해야 할 점이 드러났다. 15,16년도 포스트시즌에는 선발진이 워낙 좋았었기 때문에 이번 시즌처럼 선발진 전체가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땐 어떤 운용을 보여줄 지 시험대에 올랐다.

3.2. 한국시리즈

3차전 함덕주, 김승회, 김강률을 시도때도 없이 올렸지만 결과는 패배.

4차전 2할대 타율로 부진한 오재원을 2번 타선에 올리고, 양아들 김재호, 양의지를 올려서 또 패배.

5차전 다시 오재원을 2번에 두고, 기어이 김재호에 기회를 주었지만 이날까지 10타수 무안타에 그쳐 배신당했다. 9회말 1점차 만루 찬스에서 파울플라이로 기아 우승의 허용타자가 된것은 덤.

4. 총평

한국시리즈 3년 연속 진출했지만, 3연패 달성은 실패.

시즌내내 사마태형 돌태형 오가다 결국 자신의 꾀에 걸려들어 비밀호랑이의 최종보스가 된 시즌이다


[1] 단일 팀에서, 성적에 따른 병역 면제가 걸리지 않았음에도 저렇게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차출한 전례는 없었다. 심지어 삼성, sk가 왕조를 열었던 기간이 포함되 있는 2008년~2017년까지의 10년 동안 국가대표 차출 1위는 두산이었다. 오죽하면 팬들은 '두산의 유일한 대항마는 LG/NC가 아니라 WBC'라고 하겠는가.[2] 김성근 감독은 결국 개막전 3연패로 임기 내내 개막전 승리를 얻지 못한 감독이 되었다.[3] 애초에 장타가 하나도 없다는게 무슨 뜻이겠는가? 매번 땅볼이나 치고 그게 어쩌다가 운좋아서 수비수 빠져나가면 안타라는 뜻이지...[4] 그렇다고 진 건 아니고, 김강률은 백인식을 상대로 1타점 쐐기 적시타를 때리며 박세혁을 홈으로 불러들였다.[5] 잊은 사람도 있겠지만 김태형은 기아 감독 김기태와 함께 선수협 사건 5적으로 선수들과 마찰을 일으킨 당사자다.[6] 시리즈 내내 1/3~2/3이닝 더 먹이려다 한두점 더 실점하는 경우가 계속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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