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19:41:51

김정미(가수)

파일:Semi_protect2.svg   가입 후 15일이 지나야 편집 가능한 문서입니다.
(~ KST )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혼성그룹 자자의 멤버 김정미에 대한 내용은 자자(혼성그룹)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김정미
Kim Jung-mi
파일:김정미.jpg
<colbgcolor=#361776><colcolor=#fff> 출생 1953년 4월 23일 ([age(1953-04-23)]세)
서울특별시
가족 아버지 김순성, 1남 5녀 중 둘째
학력 정신여자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 학사)
데뷔 1971년 영화 '대합실 여인', '늑대와 고양이' OST

1. 개요2. 생애3. 정규 앨범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가수. 김추자와 함께 1970년대를 풍미하던 비운의 여성 가수로 알려져 있다.

2. 생애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정미는 본래부터 예술가의 길을 지망하던 유년시절을 지내오다, 이후 신중현의 눈에 들어 신중현 사단의 일원으로 가요계에 발을 딛게 된다. 박광수가 부른 아름다운 강산 초기 곡의 코러스로도 참여하는 등[1] 경력을 쌓아올리다 신중현의 지원 속에서 그의 수려한 곡들을 페르소나로서 소화하곤 했다.

이러한 신중현의 지원을 등에 업은 김정미는 단숨에 가요계의 기대주로 떠올랐고 선배격이던 가수의 명망을 이어받을 제2의 김추자라는 수식어도 따라오곤 했다. 그래도 마냥 같은 스타일만은 아니었고 김추자가 성량 풍부한 소울이었다면, 김정미는 특유의 중저음과 콧소리 섞인 음색은 토종 사이키델릭과 어우러졌고, 신중현 본인도 곡 스타일을 잘 이해하는 가수로 평가했을 정도였다. 1973년 출시한 앨범 Now는 영미권, 국내 통틀어 작품성을 인정받는 고전으로 등극할 정도로 신중현과 찰떡 같은 조화를 보여 주었다.

그렇게 가수로서 도약하던 김정미였지만, 승승장구하기도 전에 1975년 대마초 파동을 겪고서는 신중현은 음악활동 면에서 큰 억압을 받게 되었고 그의 휘하에 있던 김정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심지어 김정미는 대마초를 피웠다는 정황도 없었음에도. 결국 김정미의 앨범은 전부 몰수되어 폐기처분을 받는 등 큰 곤욕을 겪으며 김추자처럼 인기를 누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후로도 몇년간 활동하며 트로트를 소화하는 등 활로를 찾긴 했지만, 1978년 발표된 '처음만나/저녁목장' 음반이 가수 김정미의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국내 연예계에 염증을 느낀 김정미는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며 가요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렇게 탄압 속에 잊혀져가는 가수로 남는 듯 싶었으나, 2000년대 이후 신중현을 재조명하는 과정에서 김정미의 작품들 또한 국내, 영미권 가릴 것 없이 재발굴되었고, weiv를 중심으로 각종 평론가들도 2000년대 초반부터 음반을 소개하며 점차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now의 재발굴과 함께 사이키델릭 향유층과 인디를 중심으로 퍼져나가 2010년대를 기점으로 산울림, 김민기 등과 비견될만한 고전으로 등극하기도 했다.[2] 이렇게 비록 당대에는 큰 반향이 없었지만, 한국에서도 당대에 수준 높은 사이키델릭 작품이 존재했다는 걸 증명하는 효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서양의 재니스 조플린, 제퍼슨 에어플레인 등과는 차별화된 토종스런 유니크한 음색들도 뒤늦게라도 록계에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평은 드높아지는 추세다.(2016 김정미 트리뷰트 축제 실황)

한편 재평가 기류 속에서도 김정미 본인은 은퇴 이후로는 어떠한 매체나 인터뷰에서도 매스컴에 모습을 일절 보인 적 없고[3] 신중현과도 연락이 끊어졌을 정도로 한국 내에 커넥션은 더이상 없다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그녀는 오늘날까지도 신비 속의 가수로서만 머물러있는 중이다. 이후론 미국으로 이민으로 완전히 정착하여 로스엔젤레스에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으며, 가족을 통해 소소한 근황을 알린다고 한다.미국에 정착한 뒤 모습이라 알려진 사진

2013년 영국 영화 <더블 : 달콤한 악몽>에, 2018년 미국 영화 <덕 버터>에 '햇님'이 엔딩곡으로 수록되어 해외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고, 이 곡이 해외에서 커버되기도 할 정도로 소소한 인기를 얻었다.(##) 또한 2018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마약왕에 '바람'이 수록되며 다시 한 번 대중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3. 정규 앨범

  • <1971> 신중현 Sound Vol.2
  • <1972> 김정미 최신가요집
  • <1972> 간다고 하지마오/아니야
  • <1973> 바람
  • <1973> Now
  • <1975> 이건 너무 하잖아요/갈대
  • <1977> 나는 바본가봐/난 정말 몰라요
  • <1978> 김정미 독집 (처음만나/저녁목장)


[1] 훗날 김정미가 메인으로 부른 버전도 출시하기도 한다.[2]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리스트를 보면 알 수 있듯이 2000년대 선정엔 등재되지 않다가 2018년 선정엔 58위로 치고 올라오는 대기만성을 보여주고 있다.[3] 김정미 본인이 팬카페에 남겼다고 알려진 글이 존재하지만, 원본과 진위 여부 모두 불투명한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