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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타자)/선수 경력/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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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의 연도별 시즌 일람
데뷔 2009년 2010년
1. 개요2. 시즌 전3. 페넌트레이스4. 총평

1. 개요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인 김상수의 2009년 활약을 정리한 문서이다.

2. 시즌 전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 감독은 시즌 시작 전에 김상수를 1번 타자에 주전 2루수로 기용할 것이라는 선언을 하게 되고, 실제로 시범경기서 타율 0.348(2위), 안타 16개(공동 1위), 도루 8개(1위)로 맹활약하며 주목을 받았다.

3. 페넌트레이스

그리고 본 시즌에서는 4월 초반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침체된 상황에서 빠른 발과 고감도 타격을 선보이며 2루타 머신, 제 2의 이종범 등의 수식어를 들으며 맹활약하였다. 개막 직후 8경기 연속 안타를 쳐내는건 물론, 이 8경기 중 2루타를 뽑아낸 경기만 무려 6경기며, 2루타를 뽑지 못해도 최소 2출루는 기본으로 해주면서 타율 0.382로 완전히 펄펄 날아다녔었다.

그러나 4월 14일 한화전 홈 경기에서 5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침묵하면서 기세가 한풀 꺾이기 시작했고, 마침 우천으로 순연된 15일 휴식을 취한 후 16일 다시 선발 2루수/1번타자로 라인업을 올렸지만 또 5타수 무안타를 치면서 금세 3할이 붕괴되었었다. 심지어 다음 날 17일 두산전 홈 경기에서도 3회까지 2타수 무안타로 완전히 감을 잃어버린 모습을 보이면서 4회부터는 신명철과 교체되기에 이른다.[1]

이후 18일 두산전에 5타수 1안타(2루타) 무안타 침묵에서 벗어나더니, 19일 두산전과 21일 LG전에서 연속 멀티히트를 치며 시즌타율이 다시 3할을 찍었으나, 22일 5타수 1안타를 친 이후 23일부터 26일까지 또 다시 총 13타수 1안타[2]라는 부진에 빠졌었다. 다행히 28일부터 30일까지 히어로즈전에서는 총 13타수 4안타(2루타 1개) 3도루를 해내며 극복해내는 모양새였었다.

그러나 5월 들면서 몸쪽 변화구의 약점이 명확히 드러나고, 데뷔 하자마자 4월 거의 모든 경기에 선발 라인업으로 1번타자 역할까지 하다보니 체력 저하 문제까지 겹치는 등 신인의 한계가 드러나며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김상수 입단 전 원래의 2루수 주전으로, 성적이 영 시원치 않아서 영원한 1할 타자라는 비아냥을 듣던 신명철이 5월부터 포텐셜이 대폭발하며 3할대 타율을 찍기 시작, 시즌 시작 전 김상수의 자리로 내정되어 있었던 주전 2루수와 1번 타자 자리를 모두를 꿰차게 된다.

그리고 6월 중순, 지승민과 함께 A형 간염에 걸려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리고 김상수가 1군 엔트리에서 빠지자, 신명철도 다시 1할을 찍기 시작. 다행히 7월 14일 부로 김상수가 복귀하자 신명철의 타율은 3할으로 복귀하였다.

복귀 후 7월 월간 타율 0.261을 기록한데다 8월 16일까지 월간 타율 0.310을 기록하면서 시즌 타율 또한 0.267까지 올랐고, 4월에 보여줬던 2루타 머신의 기질까지 다시 발동[3]되면서 다시 신인왕 레이스에도 참여하는 듯 했으나, 이후 8월 말까지 10경기 동안 18타수 1안타라는 저조한 타격 지표로 인해 8월 말 경부터는 대수비 or 대주자로 역할을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8월 30일 SK와의 홈 경기에서는 2대0으로 뒤진 7회말 1사 1, 3루 찬스에서 1루주자였던 박석민을 대신해 대주자로 투입되었으나, 선발 투수였던 게리 글로버의 집중 견제를 받다가, 결국 추격에 찬 물을 끼얹는 견제사를 당하였다. 그 후 안타가 나오면서 이 견제사는 너무 뼈아팠다.[4]

9월 역시 세 경기 정도 선발 출장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대수비 or 대주자로써만 역할 수행을 했고, 결국 시즌 최종 타율 0.244라는 기대치에는 많이 못미치는 수준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요소라면 컨디션이 괜찮을 때는 2루타도 곧잘 때릴 정도의 고감도 타격의 포텐이 있어보였다는 점[5], 그리고 18개의 도루를 기록할 정도의 빠른 발은 향후 미래의 1번타자 감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봤었다.[6] 한편 팀은 13년만에 가을야구를 탈락하는 수모까지 겪음에 따라 포스트시즌 출장의 기회도 다음 해로 미루게 되었다.

4. 총평

최종 성적은 타율 0.244 OPS 0.631 59안타 17타점 18도루.

시즌 초반에는 맹활약으로 신인왕이 무난할 거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A형 간염에 걸린 후 경기감이 떨어지며 신인왕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2009 시즌 신인왕은 세이브 타이틀을 차지했던 두산 베어스이용찬이 가져갔다.

일각에선 김상수의 1군 엔트리 등재 여부에 따라 신명철의 활약도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점에서, 김상수의 팀내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신명철의 부스터 라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일명 상수로이드였다. 또한, 시즌 시작 전 선동열 감독의 인터뷰로 김상수의 주전 등극이 예상되자, 삼성 라이온즈 응원단 측에서는 만년 쩌리 백업 선수 강봉규의 응원가를 용도 변경하여 김상수의 응원가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7], 강봉규도 신명철이랑 함께 포텐이 터졌다!


[1] 이날 신명철은 3타수 1안타를 기록.[2] 그래도 25일 기아전 에서는 2볼넷으로 멀티 출루를 하긴 했었다.[3] 8월 16일까지 9개의 안타 중 2루타만 6개를 때렸다.[4] 8월 중순 이후 다시 퍼지게된 이유로는 A형 간염에서 복귀한 직후가 한여름이었는데다, 홈 구장이었던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이 특히 펄펄 찌는 더위를 두배는 더 덥게만드는 환경적 요인이 있었기 때문에 체력이 다소 약해진 신인 1년차의 김상수에게는 버티기 힘들었던 것으로 추측된다.[5] 겨우 242타수만에 2루타를 19개나 쳐냈는데 이는 당시 리그 공동 28위의 기록이었으며 같이 2루타 개수를 나란히 한 타자로는 정성훈, 연경흠, 조성환이 있었다.[6] 김상수가 데뷔했던 2009년은 타선 역시 굉장히 활발하게 돌아가면서 리빌딩이 안착됐던 해로, 홈런같은 장타력 뿐만 아니라 스피드 또한 개선이 되었던 해였다. 당장 신명철조동찬이 21도루 씩, 강봉규가 20도루를, 이영욱이 16도루를 하는 등 팀 컬러가 전년도에 비해 급격히 바뀌었었는데 그 바뀌는 분위기에 일조했던 선수로 신인 1년차인 김상수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7] 참고로 그 응원가가 다들 잘 아는 이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