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2 03:35:24

구리스 히로오미

파일:일본 통합막료장기.svg
통합막료감부 통합막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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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막료회의 의장 (1954년 ~ 2006년)
제1대

하야시 게이조
제2대

스기에 이치조
제3대

아마노 요시후사
제4대

무타 히로쿠니
제5대

이타야 류이치
제6대

기누가사 하야오
제7대

나카무라 류헤이
제8대

시라카와 모토하루
제9대

사메시마 히로이치
제10대

구리스 히로오미
제11대

다카시나 다케히코
제12대

다케다 고로
제13대

야다 쓰기오
제14대

무라이 스미오
제15대

와타나베 게이타로
제16대

모리 시게히로
제17대

이시이 마사오
제18대

데라시마 다이조
제19대

사쿠마 마코토
제20대

니시모토 데쓰야
제21대

스기야마 시게루
제22대

나쓰카와 가즈야
제23대

후지나와 유지
제24대

다케고치 쇼지
제25대

이시카와 도루
제26대

맛사키 하지메
통합막료장 (2006년 ~ 현재)
제1대

맛사키 하지메
제2대

사이토 다카시
제3대

오리키 료이치
제4대

이와사키 시게루
제5대

가와노 가쓰토시
제6대

야마자키 코우지
제7대

요시다 요시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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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자위대 육상막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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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예비대 중앙본부장 겸 총감
하야시 게이조
보안대 제1막료장
하야시 게이조
초대
쓰쓰이 다케오
제2대
스기야마 시게루
제3대
스기타 이치지
제4대
오모리 간
제5대
아마노 요시후사
제6대
요시에 세이이치
제7대
야마다 마사오
제8대
기누가사 하야오
제9대
나카무라 류헤이
제10대
마가리 도시로
제11대
미요시 히데오
제12대
구리스 히로오미
제13대
다카시나 다케히코
제14대
나가노 시게토
제15대
스즈키 도시미치
제16대
무라이 스미오
제17대
와타나베 게이타로
제18대
나카무라 모리오
제19대
이시이 마사오
제20대
데라시마 다이조
제21대
시마 아쓰시
제22대
니시모토 데쓰야
제23대
도미자와 히카루
제24대
와타나베 노부토시
제25대
후지나와 유지
제26대
이소지마 쓰네오
제27대
나카타니 마사히로
제28대
맛사키 하지메
제29대
모리 쓰토무
제30대
오리키 료이치
제31대
히바코 요시후미
제32대
기미쓰카 에이지
제33대
이와타 기요후미
제34대
오카베 도시야
제35대
야마자키 코우지
제36대
유아사 고로
제37대
요시다 요시히데
제38대
모리시타 야스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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栗栖弘臣 (くりす ひろおみ)

1920년 2월 27일 ~ 2004년 7월 19일

1. 개요2. 생애

1. 개요

일본의 군인, 자위관.

2. 생애

일본육군사관학교가 아닌 도쿄대학 출신이다. 1920년구레시에서 태어났다. 구레(呉) 제1중학교, 도쿄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43년도쿄대학 법학부에 진학하였다. 고등문관시험을 수석 합격해 일본제국 내무성에 입성했으나 일본 해군 단기장교를 지원해 군법무관이 되었다. 1945년 일본의 패전 당시 계급은 대위였고, 전범 재판 등에서 변호인을 맡았다.

귀향 후에 변호사로 근무하던 중에 1951년 경찰예비대에 입대했고 주프랑스 일본방위주재관, 제13사단장, 동부방면대 총감 등을 거쳐 1976년미요시 히데오에 이어 육상막료장에 올랐다.[1] 1977년에 육막장은 다카시나 다케히코에게 이임하고 사메시마 히로이치에 이어 10대 통합막료회의의장에 올랐다.

의장으로 재직하던 당시에 "지금의 자위대 관계법으로는 침략한 군대가 자위대원들에게 발포를 하게 되어도 총리의 출동명령이 내려올 때까지는 자위대원들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즉각응전조차 할 수 없다. 결국 자위대원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초법규대응으로 전투를 하게 된다. 따라서 이를 해결할 유사법제의 제정의 필요하다"라고 발언하여 초법규 대응 문제를 일으켰다. 자위관이 정견을 밝히는 것은 문민통제에 중대한 도전이었기에 자위대의 장관급 장교들을 두둔하던 가네마루 신 당시 방위청장관은 그를 사임시켰다. 후임자는 육막장과 마찬가지로 다카시나 다케히코였다.

어쨌거나 2003년에 관련 유사법제는 정리되어 이 문제는 일단락 되었고 자위대 관련 주요 이슈로 유명하다. 구리스는 방위청장관을 방위대신으로 격상시킬 것을 요구하기도 했고 2007년에 북핵 실험의 여파로 방위청은 방위성이 되었다.

1980년에 참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4년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1] 1등육좌 시절에 일본의 보유를 주장하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