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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 삼척 | 강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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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 청간정 | [[고성군(북한)| 북 ]] 삼일포 | 북 총석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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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팔경 關東八景 |
1. 개요
강원도와 경상북도 동해안 일대의 여덟 명승지.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청간정과 삼일포,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과 월송정을 일컫는다.
대관령의 동쪽이라 하여 '관동'이라는 말이 붙여졌지만, 현재는 망양정과 월송정이 경상북도에 편입되었고, 삼일포와 총석정은 북한지역에 들어있다.
예로부터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문인들이 풍류를 즐긴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조선 선조 때의 시인인 정철은 가사인 <관동별곡>에서 그 아름다운 경치를 찬양하기도 하였다.
관동팔경 안내문
대관령의 동쪽이라 하여 '관동'이라는 말이 붙여졌지만, 현재는 망양정과 월송정이 경상북도에 편입되었고, 삼일포와 총석정은 북한지역에 들어있다.
예로부터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널리 알려져, 문인들이 풍류를 즐긴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조선 선조 때의 시인인 정철은 가사인 <관동별곡>에서 그 아름다운 경치를 찬양하기도 하였다.
관동팔경 안내문
관동지방(강원도)의 8가지 명승지를 말한다. 영동 지방을 따라 남북으로 늘어서 있다. 팔경 중 망양정과 월송정이 소재하는 울진군은 현재 경상북도지만 관동팔경이란 말이 만들어졌던 당시에는 강원도였다.
팔경 중 대부분이 신라의 전설적인 화랑 신라사선과 관련된 곳들이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관동팔경을 모두 방문하는 것은 월북을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며, 고령층에서나 간간히 모두 방문한 사람을 볼 수 있다.
이중환은 저서인 택리지에서 낙산사 대신 청초호, 월송정 대신 시중대를 넣었다. 그리고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7경은 언급했으나 월송정은 언급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망양정이 평해군에 위치해 월송정과 가까웠기 때문에 멀어서 안갔다고 보기도 어렵다. 즉 8경중 6경은 뭘로 해도 들어가지만 나머지 2경은 공식적으로는 낙산사와 월송정이며 비공식적으로 이들 대신 청초호와 시중대가 들어가기도 한다는걸 알수 있다.
2. 상세
김홍도가 그린 총석정 그림
북한 강원도 통천군 고저읍 총석리 바닷가에 있는 누각. 바다 위에 빽빽이 솟아 있는 돌기둥(총석)위에 세워 총석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현무암이 오랜 세월 비바람과 파도에 부딪혀 그 면들이 갈려지고 떨어지면서 생긴 육각 혹은 사각 모양을 한 돌기둥으로 이뤄진 총석들은 동해와 어우려져 예로부터 신선이 즐길 경관이라 불리었다.
고려의 김극기와 안축, 조선의 성현과 김창업 등이 이곳을 찾아 경관을 읊은 이들의 시문과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고려의 김극기와 안축, 조선의 성현과 김창업 등이 이곳을 찾아 경관을 읊은 이들의 시문과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북한 강원도 고성군 삼일포리에 있는 자연호수.
본래 만이었는데 남강의 모래가 바닷물의 작용을 받아 쌓이면서 입구를 막아 생긴 석호이다. 신라 시대 사선이 뱃놀이하다가 절경에 매료되어 삼 일간 돌아가는 것을 잊어 삼일포라 불린다는 서설이 있다. 북한 천연 기념물 제 218호이다.
수면이 맑고 36개의 봉우리가 호수에 비치어 절경을 이루는 삼일포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호수 중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힌다. 금강산관광이 1998년 시작되면서 삼일포를 직접 찾을 수 있게 되었었다.
관동팔경 안내판
본래 만이었는데 남강의 모래가 바닷물의 작용을 받아 쌓이면서 입구를 막아 생긴 석호이다. 신라 시대 사선이 뱃놀이하다가 절경에 매료되어 삼 일간 돌아가는 것을 잊어 삼일포라 불린다는 서설이 있다. 북한 천연 기념물 제 218호이다.
수면이 맑고 36개의 봉우리가 호수에 비치어 절경을 이루는 삼일포는 예로부터 우리나라 호수 중 가장 아름다운 호수로 꼽힌다. 금강산관광이 1998년 시작되면서 삼일포를 직접 찾을 수 있게 되었었다.
관동팔경 안내판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위치한 누각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어 있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종 15년(1520)에 간성군수 최청이 수리하였고, 갑신정변 당시 불타 없어진 것을 1928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추녀 밑에 걸린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설악산에서 흘러나오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구릉 위에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 풍경이 일품이다.
관동팔경 안내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중종 15년(1520)에 간성군수 최청이 수리하였고, 갑신정변 당시 불타 없어진 것을 1928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추녀 밑에 걸린 현판은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쓴 것이다.
설악산에서 흘러나오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구릉 위에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 풍경이 일품이다.
관동팔경 안내판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오봉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사찰로서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 도량 중 하나이다.
신라 문무왕 11년(671)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낙산은 관세음보살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으로 범어 보타락가(Poltalaka)에서 유래했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비롯해 주변 산불로 여러 차례 화재를 경험한 낙산사는 2005년 강원도 산불로 다시 사찰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는 위기를 겪었으나 현재 복원이 마무리되었다.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1362호)과 칠층석탑(보물 제499호)뿐만 아니라 의상대사의 전설이 깃든 홍련암과 의상대 등 사찰 곳곳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신라 문무왕 11년(671)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낙산은 관세음보살이 머무르는 곳이라는 뜻으로 범어 보타락가(Poltalaka)에서 유래했다.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비롯해 주변 산불로 여러 차례 화재를 경험한 낙산사는 2005년 강원도 산불로 다시 사찰의 상당 부분이 소실되는 위기를 겪었으나 현재 복원이 마무리되었다.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1362호)과 칠층석탑(보물 제499호)뿐만 아니라 의상대사의 전설이 깃든 홍련암과 의상대 등 사찰 곳곳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강원도 강릉시 저동의 경포호 북쪽에 있는 누각으로 보물 제2046호로 지정되어 있다.
경포대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인월사 옛터에 창건하였다.
내부에는 숙종이 직접 지은 시와 율곡 이이가 열 살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해 여러 명사의 글이 걸려있다.
누각 주위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알맞게 우거져 운치 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 경포대와 주변 호수는 1982년 경포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바닷게에는 경포해수욕장이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경포대는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인월사 옛터에 창건하였다.
내부에는 숙종이 직접 지은 시와 율곡 이이가 열 살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해 여러 명사의 글이 걸려있다.
누각 주위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알맞게 우거져 운치 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 경포대와 주변 호수는 1982년 경포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바닷게에는 경포해수욕장이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누각으로 보물 제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건축연대는 미상이나, 고려 말 이승휴의 <동안거사문집>에 의하면 고려 원종 7년(1266)에 이승휴가 이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해 그 이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 태종 3년(1403)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각 동쪽의 죽상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인 죽죽선녀의 집을 따와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삼척시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을 내려다보며 벼랑 위에 서 있는 죽서루는 자연 암반을 초석 삼아 높고 낮게 기둥을 세워서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라 여겨질 만큼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삼척시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을 내려다보며 벼랑 위에 서 있는 죽서루는 자연 암반을 초석 삼아 높고 낮게 기둥을 세워서 그 자체로 자연의 일부라 여겨질 만큼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관동팔경 안내판
- 망양정(울진)[5] - 왼쪽으로는 왕피천이 흐르고 있으며 앞에는 망양정 해수욕장이 있는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望洋이란 이름에 걸맞은 탁트인 풍광을 자랑한다. 내부에 숙종과 설공찬전을 지은 채수등의 글씨가 있다.
이 정자는 관동팔경의 하나로 넓은 동해를 바라보며 산 정상에 날을 듯 앉아 아름다운 경관 자랑하고 있다.
원래 망양정은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11년(1860)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후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1958년에 중건하였으나,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에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었다.
특히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 하여 '관동제일루'란 현판을 하사하였으며, 망양정의 절경을 읊은 유명한 시와 글로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 정철의 관동별곡등이 전해오며, 그림으로는 정선의 배ㄱ납병, 관동명승첩에 있는 망양정도가 유명하다.
관동팔경 안내판
원래 망양정은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철종 11년(1860)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그 후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1958년에 중건하였으나, 다시 심하게 낡아 2005년에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었다.
특히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 중 망양정 경치가 최고라 하여 '관동제일루'란 현판을 하사하였으며, 망양정의 절경을 읊은 유명한 시와 글로는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 정철의 관동별곡등이 전해오며, 그림으로는 정선의 배ㄱ납병, 관동명승첩에 있는 망양정도가 유명하다.
관동팔경 안내판
- 월송정[6] (평해[7]) - 본래는 남쪽으로 4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다 현재 위치로 옮겼다. 앞에 월송정 해수욕장이 있어 해수욕하기 좋다. 내부에 절재 김종서와 아계 이산해등의 글씨가 있다.
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에 있는 누각이다. 신라의 네 화랑이 달밤에 이곳 솔밭에서 놀다 갔다 하여 월송정으로 불렀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중국 월나라의 소나무를 가져와 심었기 때문에 월송이라 했다고도 한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 존무사 박숙이 처음으로 지었다.
조선 중기 연산군 때 중건하였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 무너지자 고을 사람들이 다시 지었으나 일본군이 강제로 철거하여 터만 남았다. 1969년 울진 출신의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달라 해체하고 1980년 고려시대 양식을 본떠서 지금의 정자로 복원하였다. 망양정과 함께 동해안에서 손꼽히는 일출 명소이다.
관동팔경 안내판
고려 충숙왕 13년(1326) 존무사 박숙이 처음으로 지었다.
조선 중기 연산군 때 중건하였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낡아 무너지자 고을 사람들이 다시 지었으나 일본군이 강제로 철거하여 터만 남았다. 1969년 울진 출신의 재일교포들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달라 해체하고 1980년 고려시대 양식을 본떠서 지금의 정자로 복원하였다. 망양정과 함께 동해안에서 손꼽히는 일출 명소이다.
관동팔경 안내판
3. 참고항목
4. 언어별 표기
한자 및 중국어 | 關東八景, 関東八景 |
일본어 | 関東八景(かんとうはっけい, クァンドンパルギョン) |
영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인도네시아어, 자바어 | Gwandong Palgyeong |
5. 관련문서
*김만덕*영주10경
[1] 미수복 고성군까지 포함된 행정체계 상 고성군의 남부 지역. 본래 고성군과 간성군은 별개의 행정구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통합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이 수복한 고성군의 영역은 수동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옛 간성군의 영역이다.[2] 택리지 저자 이중환은 낙산사 대신 청초호(현재 속초시 소재이나 과거 양양의 영역이었다.)를 넣었다.[3] 엄밀히 말하면 낙산사 중에서도 사진에 있는 의상대가 8경에 속한다.[4] 삼척도호부사를 지낸적이 있다. 이때 환선굴도 탐험하였다.[5] 망양정은 1860년 이전까지는 평해에 있었다. 1860년, 울진에 관동팔경이 하나도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울진현령 이희호가 평해군에 망양정과 월송정 중 하나를 달라고 요청하여 망양정이 울진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옛 평해군의 영역이었던 울진군 기성면에 가면 망양정 옛터가 존재한다.[6] 택리지 저자 이중환은 월송정을 빼고 흡곡(현 북한 통천군 북부 지역. 본래 통천과 별개의 행정구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통천에 병합되었다.)의 시중대를 넣었다.[7] 현 울진군 남부 지역(기성면, 온정면, 평해읍, 후포면). 울진과 평해 또한 원래 별개의 행정구역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울진이 평해를 병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