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08 15:17:36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 폐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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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대한민국의 젠더 논란·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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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개3. 결과4. 반응5. 대안기구 신설 관련
5.1. 비판 측 입장5.2.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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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1년 9월 27일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총여학생회[1] 폐지를 두고 벌어진 투표에서 찬성 63.45%, 반대 36.55%로 총여 폐지가 확정된 사건이다.

2. 전개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총여학생회는 2018년도부터 4년 연속 총여학생회장이 궐위 상태에 있는 등 정상적인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 2020년 11월, 53대 총학생회 선거운동본부가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 존폐 및 재편에 관한 공론장을 형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총학생회 임기 중 실제로 이를 추진하였다.

2021년 8월 10일, 경희대 서울캠퍼스 총여학생회 해산 투표에 대한 유권자를 여학생으로 한정하는 안이 확운위에서 발의되었다. 이 날 서울캠 확대운영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은 부결되었으나, 9월 7일 회의에서 여학우 투표안이 가결되었다.

9월 7일에 발의된 안건과 8월 10일에 발의된 안건의 차이점은 투표율이 50% 미만일 시 여학우들의 자치권 행사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총여학생회를 학생 회칙에서 삭제하는 안건으로 학생 총투표를 상정한다는 단서조항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해당 단서조항이 마련되자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재적인원 133명 중 101명 출석, 75명 찬성, 반대 2명, 기권 24명으로 의결이 이뤄졌다.

이러한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의 결정은 다른 학교의 총여 폐지 투표에서 남녀 학생 모두를 유권자로 설정했던 것과 대조된다. 이에 일부 학생들은 모든 학생의 등록금 및 자치회비가 총여에도 지원된다며 이러한 결정에 반발하였다. 반발하는 측에서는 남학생과 여학생은 총여에 똑같은 재원의 부담을 지므로, 서로 동일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에 대한 별도의 간담회[2]를 가지는 것은,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서 참여율을 낮추는 결과를 만들려는 수작이라고 주장했다.

'34년 만에 폐지 수순' 경희대 총여학생회..투표 자격 안건 부결로 '차질'
경희대 '총여 폐지' 투표 시작..남학생 "왜 우리만 제외" 반발

이에 대해 학교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서는 학생들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일부 제시됐다. 실제로 총학생회는 확대운영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하기 전 비대면 온라인 공개 간담회 2회 개최, 구글폼 등을 통한 의견 수렴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했지만 정작 학생들의 참여도가 저조했다. 실제로 에브리타임에서는 남녀 총투표를 주장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왔지만 정작 1차 간담회 당시 남녀 총투표를 주장한 학생은 2명에 불과했고 2차 간담회에서는 남녀 총투표를 아무도 주장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남우석 회장은 "물론 총여라는 기구가 성별로 갈리긴 하지만, 총여의 재원이 어디서 오느냐가 곧바로 투표권의 문제로 이어질 순 없다"라고 주장했다. 자치회비 관련 추가 답변이 포함된 입장문(2번 항목)

이후 투표율이 저조하자, 투표 안내 카드뉴스 영어 및 중국어 번역본을 공식 SNS에 게시하였다. 영어본 중국어본 그럼에도 투표율이 50%에 미달하자 선거시행세칙에 따라 최대 2일 동안 투표를 연장했다.

3. 결과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총여학생회 해산 결정의 건
투표권자 선거인 수 투표 수 (투표율)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총여학생회 정회원 8,378명 (100%) 4,224명 (50.42%)
[3]찬성 | 2,680명 (63.45%)
1,544명 (36.55%) | 반대[4]
9월 27일까지 기간을 연장하여 투표를 진행한 결과 전체 여학우 중 50.42%인 4,224명이 투표하여 개표 요건을 충족했다.

개표 결과 찬성 2,680명(63.45%), 반대 1,544명(36.55%)으로 가결되면서 총여학생회 폐지가 확정되었다.

4. 반응

회칙에 의한 결정이긴 했으나 투표율이 미달되자 두 차례에 걸쳐 투표 기간을 연장[5]한 것, 무엇보다 여학생만 투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았다. 총여를 지지하며 해산에 반대하는 주 세력이 여학생임이 뻔한 상황에서, 첫 투표에서 어떻게든 과반의 투표율을 달성해 총여를 존속시키려 한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6]

하지만 총학생회 중운위는 이전에 "중앙운영위원회 위원 모두가 '지금의 총여학생회는 해산되는 것이 적절하다'라는 최소한의 합치된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라는 입장을 발표한 바 있다. 공식 입장문 게시물

즉 총학생회는 총여 해산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에서 기타 자치권 보장 등을 이유로 여학생 투표라는 방식을 선택했고, 이를 확운위에서 의결받아 총투표를 진행한 것이라는 입장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커뮤니티 등의 예측과는 달리 상당히 높은 총여 해산 찬성 비율을 달성하면서, 여학생들만의 힘으로 총여를 자진 해산했다는 상당히 의미있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총학생회 중운위가 총여 해산을 염두에 두고 투표 이전에 발표한 입장문의 내용처럼 성폭력 대응, 인권 의제 등을 담당할 대안기구 설립이 가시화될 전망이다.

투표 참여율이 50%에 근접하였던 당시, 안티 페미니즘 성향의 커뮤니티에서는 결과가 공개되기도 전에 여성들을 비난하는 글이 줄을 이었고, 반대인 페미니즘 성향 커뮤니티에서는 섣불리 승리를 자축하며 남성들을 조롱했다. 물론 총여 폐지로 결론이 난 후에도 양측 커뮤니티의 태도는 개선되지 않아 페미니즘 성향의 커뮤니티는 총여 폐지에 찬성한 여학생들을 흉자라고 단정지은 채 비난하거나 질책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애초에 총여 존치를 찬성하냐, 반대하냐의 문제를 오로지 페미니즘으로만 바라보는 데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경희대 총여는 지난 4년 동안 아무도 출마하지 않아 비어있는 궐위 상태였다는 점, 그래서 여학생들이 동아리처럼 시험이나 취업준비 등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실질적으로 운영 가능한 대안기구를 원했을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총여 존치를 찬성하면 무조건 페미니스트, 폐지를 원하면 안티 페미니스트라고 단정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페미니스트 측에서는 총여 폐지 투표를 실시하는 것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을 정도로 그들에게는 총여의 정상화가 가장 이상적인 방향인 만큼 찬성표는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의 표라고 단정지어도 무방하다. 관련 기사

일각에서는 서정범 교수 무고 사건의 가해 당사자들인 경희대 여학생회가 폐지되자 서정범 교수를 추모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기권만 해도 총여에 타격이 될 수 있음에도 굳이 여학생들이 투표를 참여해 찬성 의사를 표명한 데에는 이 사건에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정치권에서도 반응이 나왔는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유승민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는 '수명을 다한 조직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하며, 마찬가지로 여성가족부도 사라져야 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냈다. #1, #2

5. 대안기구 신설 관련

5.1. 비판 측 입장

총여학생회 해산 투표 이후 총학은 총여를 대체할 대안기구의 출범을 준비할 TF팀을 모집하는 게시물을 게시하였다. 총여 해산 찬성 측에서는 총학 측이 총여학생회를 폐지하는 대신 총여학생회의 역할을 상당 부분 물려받을 대인기구의 TF팀을 설립함으로써, 사실상 학생투표 결과를 사문화하고 총여 해산 찬성 측을 기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산 찬성 측은 학생들이 투표를 통해 드러낸 의사를 총학 측이 무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총학 중운위가 대안기구 설립 추진 의사를 사전에 밝힌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계획이 학생들에게 잘 공지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기에 해산 찬성 측은 대안기구 설립 계획에 비판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5.2. 반론

총학 중운위는 이미 이전에 총여학생회 해산 투표 결과가 해산으로 결정된다면 대학 내 혐오와 차별, 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기구의 신설을 2021년 이내에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었다. 8/5 총학 게시물 투표결과를 무효화하기 위해 급히 TF팀을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총여 해산 -> 대안기구 설립 준비' 라는 원래 계획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 임시변통으로 실행하는 정책이 아니다.

비판 문단에서 대안기구 신설 약속이 잘 홍보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입장문이 게시되었으며, 총학 측의 대안기구 신설 관련 내용은 간담회, 확운위, 언론보도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다루어졌다. 학생들에게 관련 내용이 충분히 숙지되지 않았다는 근거는 전무하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홍보나 학생자치의 무관심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이지 홍보를 대안기구 신설 자체의 정당성을 공격하는 소재로 삼는 것은 부당한 비판이다.

또한 교내의 절차로 인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구성되는 성폭력대책위원회의 학생위원으로서 그동안 총여학생회장, 총여학생회 추천 1인, 총학생회 추천 1인,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추천 1인이 포함되어 왔는데, 이 공석을 대체할 인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1] 국제캠퍼스 총여의 경우 2019년에 이미 해산되었다.[2]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총학생회는 투표 전에 총여학생회 폐지 방식을 두고 간담회를 2회 진행했다.[3] 해산에 찬성[4] 해산에 반대[5] 현재 경희대는 투표율 미달 시 이틀간 투표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애초에 총여 해산 총투표 공고문에도 기재되어 있는 내용이다.[6] 특히 당시 총학생회장이 정의당 소속의 PD계열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런 의혹이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실제로 임기 후에 총여의 후속 기구인 학소위에 바로 가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