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한국경제 - "황복사, 웅장했던 신라 왕실사찰" 낭산에 건물터 길이만 57m, 금동입불상 등 1000점 출토
1. 개요
2018년 1월에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경상북도 경주시 낭산(狼山) 일원의 구황동 황복사지에서 발견한 신라시대 금동불입상 및 보살상 7점. 기타 황복사지 목간 및 공예품 1,000여점과 함께 출토되었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위치한 황복사(皇福寺)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일반 대중에게는 692년(효소왕 1년)에 왕이 아버지인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한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이 유명하다.대표적인 신라 왕실사찰 중 하나로 여겨져 이미 1940년대에도 3층석탑을 비롯한 해당 지역을 조사하였고, 이때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은과 동으로 만든 고배(高杯), 무수한 유리구슬, 팔찌·금실, 도금청동함(鍍金靑銅函) 등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후 문화재청과 성림문화재연구원에서 황복사지(皇福寺址)의 실체 규명과 유적의 보존정비를 위해 2016년 6월부터 2017년 4월까지 경주시 구황동 100번지 일대의 과수원과 경작지(4,628㎡)를 대상으로 1차 발굴을 진행하였고, 이때 신라시대 기단 건물터 등 각종 건물터와 배수로, 도로, 연못 등 신라왕실 사찰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규모 유구를 발견하였다. 이후 2017년 하반기부터 황복사지 삼층석탑 동쪽으로부터 약 30m 떨어진 터를 대상으로 시작된 2차 발굴 조사과정에서 금동불상 7점을 비롯, 비석조각, 목간, 치미, 십이지신상, 녹유전 등 1,000여 점의 신라시대 유물이 추가로 출토되었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이 금동 불상들은 바로 옆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순황금 불상들인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과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2점보다는 격이 떨어지는 작품들이지만, 신라의 금속공예술과 불교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사진 출처 : 경향신문 - [단독] "1300년전 정식 스님이 된 자식을 위해 보내는 택배일까"…경주 황복사터 출토 목간의 정체는?
출토 당시 이 불상들과 함께 1,000여점의 다양한 신라시대 유물들이 발견되었는데, 대표적으로 당시 황복사에서 사용된 신라 목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로 위의 목간은 21살의 나이로 구족계를 받아 승려가 된 황복사의 영담 사미승을 위해 폐백을 보내는 택배 물품 꼬리표로, ‘사미(沙彌)’와 ‘이십일년(卄一年)’이라는 명문을 통해 사용처를 알 수 있는데, 사미는 불교 교단에 처음 입문하여 사미십계(沙彌十戒)를 받고 수행하는 남자 승려를 가리키는 것으로, 즉 남자가 처음 출가하면 6개월 또는 1년 동안 행자 생활을 하여 그 기간 승려의 자질을 가다듬고 은사를 정한 뒤 사미계를 받아 사미가 되는데 그러다 만 20살이 되면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비구(승려)가 되는 것으로 ‘만 20살’은 ‘한국 나이’로 21살이다. 따라서 이 목간에는 ‘영담’이라는 이름의 사미승이 21살이 되어 구족계를 받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 목간의 맨 밑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어 물품에 달았던 꼬리표임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신라왕실사원 '황복사'터에서 금동 불상 등 1천 여점 유물 추가 발굴
함께 발견된 신라시대 십이지상은 4구(묘(卯, 토끼), 사(巳, 뱀), 오(午, 말), 미(未, 양))가 조각된 석재가 불규칙한 간격으로 놓여 있으며, 신라 왕릉에서 확인된 십이지신상 탱석과 비교했을 때 조금 더 발달한 형태를 보인다. 축조 당시 십이지신상 탱석은 다른 왕릉에서 옮겨와 건물지의 기단석으로 다시 사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황복사에서 발견된 신라시대의 불상 7점과 기타 공예품 1,000여점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현재 문화재청은 2차 발굴 지역과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이의 구역을 제3차로 발굴할 계획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