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15 00:37:33

각혜황귀비 동가씨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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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강희제의 후궁
각혜황귀비 | 悫惠皇貴妃
파일:각혜황귀비.jpg
생몰년도 <colbgcolor=#fff,#1f2023>1668년 8월 26일 ~ 1743년 4월 24일(74세)
시호 각혜황귀비(悫惠皇貴妃)
지위 서(庶)비⇒귀비⇒황고황귀비(皇考皇貴妃)⇒황조수기황귀태비(皇祖壽祺皇貴太妃)
동가씨
가계 부친 영시위내대신 승은공 동국유(潁侍衛內大臣 承恩公 佟國維)
언니 효의인황후
부군 강희제
자녀 슬하 자녀 없음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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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성조 강희제의 후궁이자 효의인황후의 이복 동생. 고모는 순치제의 후궁이자 강희제의 친모인 효강장황후로, 언니 효의인황후와 마찬가지로 강희제의 외사촌이다.

2. 생애

강희 7년(1668년) 8월생이다. 동가씨가 언제 입궐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정식 책봉이 있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강희제 시기는 청나라 황실의 후궁제도가 완성되기 전이어서, 초중기에는 정식 책봉을 받은 후궁과 책봉을 못받은 비정식 후궁이 공존했다. 특히 후궁들의 품계에 관해선 강희제 중기까지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정식으로 책봉받지 못한 후궁들이 있었는데 동가씨는 그러한 후궁 중 한명이었다. 효의인황후의 여동생으로 본인도 손꼽히는 명문가의 규수였던만큼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비(妃)로 책봉될 4명이 이미 다 찼기 때문에 20년 동안 비 대우를 받는 비공식 후궁이었다.[1]

강희 36년(1697년)에 선비(宣妃)와 마찬가지로 비(妃)의 대우를 받다가 강희 39년(1700년)에 귀비로 책봉되었다. 당시 효성인황후, 효소인황후, 효의인황후, 온희귀비 뉴호록씨가 모두 세상을 떠나 황후와 황귀비도 없었기 때문에, 귀비로 승격된 동가씨가 강희제의 후궁들을 다스리며 육궁의 실질적인 수장이 되었다. 이후 강희제가 승하할 때까지 내명부를 관리하며 황후로서의 역할을 대신했고, 말년에는 화비 과이가씨와 함께 강희제의 손자인 애신각라 홍력을 키우기도 했다.

강희 61년에서 옹정 2년(1724년)에는 황태후의 의지를 받들어 "효의인황후는 옹정황제를 양육했고, 귀비는 효의황후의 여동생이기 때문에 귀비를 황귀비로 책봉해야 한다."고 했다. 관례에 따라 귀비와 여러 선조의 비빈들과 함께 살아있을 때 봉호를 승격시켜주었는데, 동가씨는 황고황귀비(皇考皇貴妃)에 봉해졌다. 강희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옹정제효의인황후의 양자였고 그녀의 남동생인 융과다도 옹정제를 전적으로 지지했으며, 후궁의 수장인 동가씨 또한 효의인황후와 융과다의 여동생으로서 옹정제를 다음 황제로 지지하며 존재 자체만으로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건륭 원년(1736년)에도 그녀는 황조수기황귀태비(皇祖壽祺皇貴太妃)로 봉해졌다. 건륭 8년(1743년)에 74세의 나이로 훙서할 때까지 청 제국 황실 여인의 원로로서 예우되었다. 건륭제가 그녀의 궁을 직접 방문하여 제사를 지내고, 각혜황귀비(慤惠皇貴妃)로 추존해주었다.
[1] 온희귀비 사후 6년간 귀비 자리가 공석이었는데 이 6년동안은 강희 4비(혜비, 의비, 덕비, 영비)가 내명부를 통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