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 | 판테라 PANTERA | }}} | |
▲왼쪽부터 렉스 브라운, 필립 안젤모, 비니 폴, 다임백 대럴 | ||||
결성 | 1981년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텍사스 주 알링턴 | ||||
멤버 | 렉스 브라운 (베이스, 1982 - 2003, 2022-) 필립 안젤모 (보컬, 1987 - 2003, 2022-) | |||
전 멤버 | 비니 폴† (드럼, 1981-2003) 다임백 대럴† (기타, 1981-2003) 테리 글레이즈 (기타, 1981-1986) 도니 하트 (보컬, 1981-1982, 1986) 토미 D. 브래드포드 (베이스, 1981-1982) 맷 라무어 (보컬, 1986) 릭 미샤신 (보컬, 1986) 데이비드 피콕 (보컬, 1986) | |||
장르 | 그루브 메탈, 스래시 메탈, 헤비 메탈, 글램 메탈[1] | |||
활동 기간 | 1981년 – 2003년 | 2022년 – 현재 | |||
데뷔 | ||||
1983년 앨범 ‘Metal Magic’[2] | ||||
레이블 | 엘렉트라 레코드 | |||
링크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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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rowcolor=#fff> "The Power Groove" |
The Trend is Dead[3]
The Great Southern Trendkill 앨범의 수록곡 'The Underground In America' 中
The Great Southern Trendkill 앨범의 수록곡 'The Underground In America' 中
미국의 텍사스주에서 1981년 결성된 4인조 메탈 밴드.[4] 판테라는 초기에는 당대 주류였던 글램메탈 경향을 따랐으나, 곧 독자적인 음악적 정체성을 확립하며 헤비메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특히 1990년대 초, 드림시어터와 함께 헤비메탈 음악계의 지형을 변화시키고, 그루브 메탈이라는 혁신적인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판테라는 초기에는 스스로도 인정할 만큼 전형적인 글램 메탈 밴드였지만, 급진적인 음악적 변혁을 통해 강렬한 그루브와 독특한 음색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였다. 이는 미국 헤비메탈 씬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으며, 그루브 메탈을 주류 음악으로 끌어올리며 헤비메탈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밴드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5]
그들의 음악적 성취는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메탈 퍼포먼스 부문 4회 노미네이트[6]라는 영예로 이어졌으며, 전 세계적으로 약 2천만 장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하며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밴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면서도 내부적인 갈등에 직면하는데, 보컬 필립 안젤모의 독단적인 행보는 애벗 형제와의 불화로 심화되었고, 결국 2003년 멤버 교체 없이 해체를 결정하며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남겼다. 이후 기타리스트 다임백 대럴과 드러머 비니 폴의 비극적인 사망으로 재결합의 가능성마저 사라지면서 판테라는 역사 속 전설로 남게 되었다.
2. 멤버
<rowcolor=#fff> 렉스, 필립, 비니, 다임백 (1994) |
멤버는 보컬 필립 안젤모, 기타 다임백 대럴, 베이스 렉스 브라운, 드럼 비니 폴이다. 비니 폴과 다임백 대럴은 형제 관계이다.[7]
필립 안젤모의 샤우트, 그로울링 같은 익스트림 메탈 창법뿐만이 아니라 부드러운 발라드까지 소화가 가능한 폭발적인 가창력과 폭넓은 범용성, 비니 폴의 섬세한 테크닉과 엄청난 파워가 조화된 드러밍[8], 렉스 브라운의 파워풀 하면서도 단단한 고난도의 스트링 워크를 자랑하는 베이스라인, 다임백 대럴의 면도날을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피킹과 그루브감 넘치는 리프가 합쳐져서 메탈 역사에 길이 남을 밴드가 되었다.
<rowcolor=#fff> Dimebag Darrell - Randall Clinic (1993. 06. 03.)[9] |
기타리스트 다임백 대럴은 천재로 불린다. 대부분의 밴드들이 트윈 기타, 혹은 원 기타에 원 키보드 체재로 밴드를 운용하는데 반해서, 판테라는 다임 백 대럴 오직 한 명이 맡고 있다. 하지만 원 기타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트윈 기타를 능가하는 강렬한 리프, 솔로를 보여 준다. 사실 스튜디오 연주는 대부분 투 기타, 혹은 쓰리 기타 연주로, 원 기타 곡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연주는 모두 다임백이 오버더빙했다.
하모닉스 또한 예술이라 기교파 기타리스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무려 메가데스의 데이브 머스테인이 그를 탐내기도 했다.
다임백은 당시의 기타리스트들 중에서는 좀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당대의 라이벌로 꼽힌 잭 와일드의 경우 브리티시 헤비메탈의 카피로 시작해서 미국의 고전 헤비메탈 스타일을 계승해왔지만 다임백 대럴은 어쿠스틱 팝, 포크, 하드 락, 블루스로 시작해서 고전 헤비메탈을 거쳐서 스래시 메탈, 글램 메탈까지 섭렵하며 굉장히 폭넓은 연주를 할 수 있는 테크니션이 되어 독자적인 스타일을 창시했다.[10]
다임백은 어렸을 때 동네 기타 연주 대회에서 우승해 상으로 Dean ML을 받은 후부터 쭉 Dean ML을 개조하여 사용했으며, 이후 유명해지자 워시번에서 이를 바탕으로 한 시그네쳐 모델을 공급받았다. 워시번과의 계약이 끝나고 나서 다시 Dean과 계약하였으나 얼마 안 되어 사망하였다. 사실 다임백 시그네쳐는 여러 회사에서 수도 없이 많이 나온다. 기타에서부터 와우 페달까지, 죽고 나서도 새로운 시그네쳐가 나오는 거 보면 제대로 뽑아먹으려고 작정한 듯.
<rowcolor=#fff> Dean ML 79 Floyd Brazilia Burst | Dean Dimebag Darrell Razorback Explosion Signature |
유명한 다임백의 시그네쳐라면 위에서 언급한 Dean ML 과 Razorback. Dean 특유의 엄청 큰 기타 헤드에다가 깁슨 익스플로러와 플라잉브이를 합쳐놓은 듯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Razorback은 이걸 바탕으로 훨씬 더 뾰족뾰족하게 디자인한 물건. 물론 사운드는 익스플로러나 플라잉 브이와는 상관없다. Razorback은 다임백이 디자인에 참여해서 만든 물건이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얼마 써보지도 못하고 사망하였다.
3. 음악 스타일
판테라는 초기에는 1980년대 글램메탈 씬의 영향 아래 있었으나, 1990년대에 들어 드롭 D 튜닝과 파워 코드를 중심으로 한 그루브 메탈 이라는 새로운 하위 장르를 개척했다. 이들의 음악은 단순히 무겁고 강렬한 사운드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텍사스 블루스와 서던 록의 요소를 융합하여 독자적인 음악적 정체성도 확립했다. 앨범마다 펜타토닉 스케일과 블루지한 멜로디를 사용한 발라드 트랙을 수록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고, 이러한 발라드들은 기존의 감성적인 발라드와는 차별화된 남성적인 에너지와 거친 매력을 담고 있다.텍사스와 뉴올리언스 출신 멤버들로 구성된 판테라는 글램메탈의 화려함보다는 자신들의 뿌리인 미국 남부 지역의 정서를 음악에 녹여냈다. 특히 보컬 필립 안젤모의 영입은 밴드의 음악적 방향성을 더욱 남부 지향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공격적인 보컬 스타일과 다임백 대럴의 육중한 리듬 기타, 렉스 브라운의 묵직한 베이스 라인, 그리고 비니 폴의 정교하고 강력한 드럼 연주는 판테라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판테라의 음악은 스래쉬 메탈의 속도감보다는 묵직한 리프와 다운 튜닝된 기타, 그리고 싱코페이션 리듬을 강조하여 그루브와 무게감을 극대화했다. 이는 당시 얼터너티브 메탈과 뉴 메탈의 트렌드와도 맞물려 묵직하고 강렬한 사운드를 선호하는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며, 밴드의 사운드는 1996년 발매된 6집 'The Great Southern Trendkill'에서 절정에 치닫는다.
판테라의 그루브 중심적인 음악 스타일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확보했으며, 특히 베이시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임백 대럴의 기타 리프와 렉스 브라운의 베이스 라인은 그루브 메탈의 교과서로 불리며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4. 역사
자세한 내용은 판테라(밴드)/역사 문서 참고하십시오.5. 평가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당시까지의 공식처럼 존재했던 메탈의 일부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메탈 사운드의 제시라는 점이다. Cowboys from Hell에서 보여준 사운드가 적당히 새로운 것이었다면, Vulgar Display of Power는 지금까지의 메탈 사운드와는 다른 독특함을 가진 새로운 영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의 하드락, 메탈의 영향력을 완벽하게 단절하고 이 모든 걸 판테라 혼자 해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밴드의 이런 강한 색채는 평론가와 팬들로 하여금 새로운 장르로 취급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판테라는 “그루브 메탈”이란 장르로 불리게 된다.[11] 그리고 이 앨범을 기점으로 훗날 나오는 신예 메탈 밴드 및 메탈적 요소가 들어있는 다양한 밴드들은 그루브 메탈의 공식을 너도 나도 참고하여 사용하게 된다.
드림 시어터의 6집에 실린 'The Glass Prison'은 이들의 음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본인들이 앞서 말했고[12], 스키드로우 같은 과거 LA메탈 쪽으로 분류되던 밴드 중 일부도 판테라의 어프로치를 적극 수용하는 면모를 보였다.[13] 판테라 본인들의 우상이자 롤 모델이었던 블랙 사바스, 밴 헤일런, 키스 같은 전설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기존의 헤비메탈 히어로마저도 영향을 받았음을 어필하는 매우 고무적인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쥬다스 프리스트, 앤스랙스, 네이팜 데스, 오버킬과 같은 밴드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임펠리테리와 같은 밴드까지도 판테라의 새로운 메탈 사운드에 호평을 보냈고, 많은 메이저 밴드들이 이들의 스타일을 자신들의 사운드에 적용해보려는 노력과 리스크를 짊어 매는 모습까지도 보여 주었다.
<rowcolor=#fff> 다임백 대럴 (1992) |
이러한 사운드의 원동력이 되는 다임백 대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얼터너티브로 인해 소홀히 되던 기타 연주의 화려함과 세심함을 다시 부각시켰다는 점, 그동안 거리감이 느껴지던 메탈 기타 속주를 강력한 사운드의 메탈에도 어울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제대로 안착시켰다는 점은 어마어마한 의미를 지닌다.
사운드적 메시지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부분에서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얼터너티브로 초토화되던 90년대에 유일한 메이저 메탈, 게다가 새로움과 강경함으로만 점철된 이 밴드가 메이저에서 먹혔다는 점은 의미가 엄청났다. 이 밴드를 기점으로 새로운 사운드와 메시지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의 메탈헤드들이 탄생했고, 이들은 메탈 암흑기를 밝혀 나가 또 다른 메탈의 새로운 면모를 뽐냈다.
판테라가 닦아놓은 성공으로 가는 길을 통해 머신 헤드(밴드), 세풀투라, 슬립낫, 헤이트브리드 가 성공했다는 점, 어벤지드 세븐폴드[14] 같은 밴드들의 지속적인 언급, 램 오브 갓 같은 메탈 코어 쪽 후배 밴드들은 이들의 영향을 안 받은 밴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락 메탈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경이로운 상업적, 차트적 위세를 떨치는 메탈 밀레니엄의 분위기의 초석이 되었다는 점 역시 의미가 깊다. 또한 이들의 롱런은 차기 앨범 Far Beyond Driven이 강력한 사운드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첫 주에 거머쥐게 만드는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순위는 메탈 역사상 둘도 없는 암흑기인 90년대에 이뤄진 말도 안 되는 사건 중의 하나였다. 이런 강력한 메탈 1위의 기록은 슬립낫의 앨범 All Hope Is Gone이 나오기 전까지 14년 동안 깨어지지 않았다. 메탈이 메이저에서 먹혔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메탈 황금기인 80년대엔 정통 메탈, 스래시 같은 강력한 메탈조차 메이저에서의 상업적 어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판테라는 끝까지 비타협적이었고, 본인들의 음악을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rowcolor=#fff> 글램메탈 시절 판테라 | 이미지 변신 후 판테라 |
사운드의 한 특징인 블루스, 서던락적인 코드로 인해 그쪽 사운드가 메탈의 새로운 영감의 원천으로 다시금 새롭게 부각되었다는 점, 너무나도 뛰어난 음악적 오리지널리티와 기량으로 인해 메탈 헤드와 전혀 관계없는 얼터너티브, 힙스터 계열 언론들의 호평으로 인해 90년대 대표 밴드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는 점, 그로 인해 메탈 헤드용 밴드의 이미지와 동시에 누구나 접할 수 있는 메탈 밴드로의 이미지를 가지고 그에 합당한 대중적 팬들을 엄청나게 보유하여 앞서 말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와 이어지는 성공을 하게 만들었다는 점 등 다양하다.
6. 디스코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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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담
<rowcolor=#fff> 다임백 대럴에 대한 필립 안젤모의 회고 |
- 판테라의 음주 사랑은 여느 밴드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독보적이였다. 판테라가 콘서트를 했다고 하면 그날은 백스테이지가 소규모 주류 판매장으로 변할 만큼 빡센 파티를 벌여 술을 미친듯이 먹어댔는데, 사실상 술 때문에 밴드의 수명이 반쯤 까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밴드 맴버들 자체가 술을 정말 좋아했으며 그중에서도 다임백은 씬에서도 극한의 주당으로도 유명했다.[15] 다임백 사후 안젤모의 회고에 따르면 다임백은 오후 6시부터 그 다음날 정오까지도 술을 마실 정도로 극단적으로 술을 마실 수 있었으며 마신 후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 빵과 수프를 먹고 스트레칭 후 또 그 짓을 반복할 수 있을정도의 그야말로 미친 주당이였다고 한다.[16][17]
- 술을 이 정도로 마셔댔으니 인사불성이 되어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건 비일비재 했고, 이런 일들을 겪으며 밴드의 말로를 지켜본 렉스 브라운은 술을 완전히 끊었다고 하며, 필립 본인 역시 술과 약물에 몸이 많이 망가진 걸 인지하고 16년도 11월부터 음주를 중단했다고 한다. 또한 안젤모의 고질병이었던 허리 디스크 역시 2005년 수술에 들어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 판테라의 기타 리프는 대부분이 다임백이 만들었지만, 의외로 보컬인 안젤모가 상당수의 곡의 메인 리프를 다임백에게 제안을 하며 곡의 제작에 기여했다고 한다. 본인이 만든 리프를 다임백에게 들려주고 다임백은 필립의 리프를 기반으로 리프를 수정하고 사운드를 보강하는등의 작업으로 많은 명곡을 뽑아내기도하며 서로에게 좋은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 필립 안젤모는 가운데 머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밀어 버린 채, 남은 가운데 머리를 레게 파마하는 독특한 헤어 스타일로 유명하다. 필립 안젤모가 아나콘다를 몸에 두르고 찍은 흑백사진이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사진 작가는 존 카플란이다. 사진의 제목은 "Age twenty-one in America", 즉 미국의 21살이라는 의미이다.[18][19]
- 한국에서 1집 'COWBOYS FROM HELL'과 2집 'VULGAR DISPLAY OF POWER'는 금지곡이 너무 많아 발매되지 못했다. 금지곡을 추려낸 남은 곡들이 한 장 분량밖에 되지 않자 수입사는 이 곡들을 모아 'Vulgar Display of Cowboys'라는 편집 음반을 냈다. '지옥에서 온 카우보이들'과 '힘의 천박한 노출'이 합쳐져 '카우보이들의 저급한 노출'이 됐다. 의외로 이 앨범은 해외 판테라 팬들에게 희귀반 취급을 받고 있다. 1집과 2집은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된 이후에 정식 발매되었다.
[1] 1집 'Metal Magic'부터 4집 'Power Metal'까지[2] 대부분의 팬들은 실제 데뷔를 1990년 Cowboys from Hell로 친다.[3] 유행에 획일화 되지 않고, 본인들의 스타일을 지켜나간 그들에게 후일 이 가사는 판테라의 방향성과 음악 스타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문구가 된다.[4] 참고로 다임백, 비니, 렉스 3명은 텍사스 출신, 안젤모는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 출신으로 멤버 모두가 미국 남부 출신이다.[5] 여담으로 정작 본인들은 이런 파급효과를 일으킬 줄 몰랐다고.[6] 37TH ANNUAL GRAMMY AWARDS (1994)
39TH ANNUAL GRAMMY AWARDS (1996)
40TH ANNUAL GRAMMY AWARDS (1997)
43RD ANNUAL GRAMMY AWARDS (2000)[7] 이들의 본명은 각각 빈센트 폴 애벗(Vincent Paul Abbott), 대럴 랜스 애벗(Darrell Lance Abbott)이다.[8] 파워 드러밍을 위해 항상 2B 드럼 스틱을 거꾸로 쥐고 드럼을 친다.[9] 다임백 대럴 기타 클리닉 영상. 다임백 대럴의 레전드 영상하면 항상 손꼽히는 영상으로 영상의 중 후반부에 히트곡을 잼 형식으로 묶어서 연주하는 부분이 이 영상의 백미.[10] 한국과 달리 영미권의 기타리스트들은 보통 프로 데뷔 후에 장르나 스타일을 바꾸는 케이스가 적다.[11] 물론 판테라 이전에도 올드스쿨 그루브 메탈은 존재했다.[12] 이후 드림 시어터는 11집에 가서야 이때 도입한 판테라식 메탈 코어 물이 빠진다.[13] 스키드로우의 1집 'Skid Row'와 2집 'Slave to the Grind'를 3집 'sUBHUMAN rACE'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판테라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여기에는 스키드로우의 보컬인 세바스찬 바흐가 판테라와 상당히 친분이 있었다는 것도 한몫한다.[14] 어벤지드 세븐폴드의 "Walk" 커버 라이브, 스튜디오 버젼, 그리고 생전 비니 폴과 함께 했었던 "Mouth for war" 커버.[15] 우스갯소리로 당시 커뮤니티에서는 락 기타리스트 3대 주당으로 슬래쉬, 잭 와일드와 함께 언급하곤 했다.[16] 그냥 일반 맥주 같은 상대적으로 약한 술이 아니라 위스키, 보드카, 독한 와인들 같은 술을 저 정도로 먹어대고도 멀쩡했다는 걸 보아하니 일반적인 주당의 수준을 넘어섰다.[17] 참고로 이것 때문에 데뷔 초창기에는 상당한 말라깽이였던 다임백 대럴의 몸이 후기로 가면 갈수록 뚱뚱해져 형 비니 폴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살이 쪘었다.[18] 이 작품은 사실 단독 작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미국 21세 청년 8명의 사진을 모은 사진집의 제목이다. 가장 유명한 필립 안젤모의 사진 외에, NFL 선수인 마크, 뉴욕에서 가장 잘 나가는 모델이 된 아동 학대 피해자 타냐, 하버드 대학교 4학년생 말리의 삶과, 이와 대조되는 범죄자 로드니,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낙오된 청년 프랭크, 마약을 구하기 위해 매춘을 하는 젊은 남자 브라이언, 불법체류자 베아트리즈 등의 사진을 모은 작품이다. 특히 화려하고 멋진 필립 안젤모의 사진과, 가난에 찌든 프랭크 클라인의 이미 폭삭 늙어버린 얼굴 사진은 그 대비가 매우 커서 충격을 준다. 전체 연작을 다 보려면 여기로 가보자.[19] 필립 안젤모를 찍은 사진에는 "필: 10대들의 우상, 그러나 어느 어머니에겐 최악의 공포"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39TH ANNUAL GRAMMY AWARDS (1996)
40TH ANNUAL GRAMMY AWARDS (1997)
43RD ANNUAL GRAMMY AWARDS (2000)[7] 이들의 본명은 각각 빈센트 폴 애벗(Vincent Paul Abbott), 대럴 랜스 애벗(Darrell Lance Abbott)이다.[8] 파워 드러밍을 위해 항상 2B 드럼 스틱을 거꾸로 쥐고 드럼을 친다.[9] 다임백 대럴 기타 클리닉 영상. 다임백 대럴의 레전드 영상하면 항상 손꼽히는 영상으로 영상의 중 후반부에 히트곡을 잼 형식으로 묶어서 연주하는 부분이 이 영상의 백미.[10] 한국과 달리 영미권의 기타리스트들은 보통 프로 데뷔 후에 장르나 스타일을 바꾸는 케이스가 적다.[11] 물론 판테라 이전에도 올드스쿨 그루브 메탈은 존재했다.[12] 이후 드림 시어터는 11집에 가서야 이때 도입한 판테라식 메탈 코어 물이 빠진다.[13] 스키드로우의 1집 'Skid Row'와 2집 'Slave to the Grind'를 3집 'sUBHUMAN rACE'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판테라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물론 여기에는 스키드로우의 보컬인 세바스찬 바흐가 판테라와 상당히 친분이 있었다는 것도 한몫한다.[14] 어벤지드 세븐폴드의 "Walk" 커버 라이브, 스튜디오 버젼, 그리고 생전 비니 폴과 함께 했었던 "Mouth for war" 커버.[15] 우스갯소리로 당시 커뮤니티에서는 락 기타리스트 3대 주당으로 슬래쉬, 잭 와일드와 함께 언급하곤 했다.[16] 그냥 일반 맥주 같은 상대적으로 약한 술이 아니라 위스키, 보드카, 독한 와인들 같은 술을 저 정도로 먹어대고도 멀쩡했다는 걸 보아하니 일반적인 주당의 수준을 넘어섰다.[17] 참고로 이것 때문에 데뷔 초창기에는 상당한 말라깽이였던 다임백 대럴의 몸이 후기로 가면 갈수록 뚱뚱해져 형 비니 폴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살이 쪘었다.[18] 이 작품은 사실 단독 작품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미국 21세 청년 8명의 사진을 모은 사진집의 제목이다. 가장 유명한 필립 안젤모의 사진 외에, NFL 선수인 마크, 뉴욕에서 가장 잘 나가는 모델이 된 아동 학대 피해자 타냐, 하버드 대학교 4학년생 말리의 삶과, 이와 대조되는 범죄자 로드니,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낙오된 청년 프랭크, 마약을 구하기 위해 매춘을 하는 젊은 남자 브라이언, 불법체류자 베아트리즈 등의 사진을 모은 작품이다. 특히 화려하고 멋진 필립 안젤모의 사진과, 가난에 찌든 프랭크 클라인의 이미 폭삭 늙어버린 얼굴 사진은 그 대비가 매우 커서 충격을 준다. 전체 연작을 다 보려면 여기로 가보자.[19] 필립 안젤모를 찍은 사진에는 "필: 10대들의 우상, 그러나 어느 어머니에겐 최악의 공포"라는 부제가 붙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