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22:07:04

북런던 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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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런던 더비 (North London Der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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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FC
Arsenal F.C.
토트넘 홋스퍼 FC
Tottenham Hotspur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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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FC의 주장 마르틴 외데고르토트넘 홋스퍼 FC의 주장 손흥민
종합 전적
아스날 FC
Arsenal FC
무승부 토트넘 홋스퍼 FC
Tottenham Hotspur FC
83 52 61
최근 5경기 전적
일시 장소 결과 대회
2022년 10월 1일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아스날 3 - 1 토트넘 프리미어 리그
2023년 1월 16일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토트넘 0 - 2 아스날 프리미어 리그
2023년 9월 24일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아스날 2 - 2 토트넘 프리미어 리그
2024년 4월 28일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토트넘 2 - 3 아스날 프리미어 리그
2024년 9월 15일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 토트넘 0 - 1 아스날 프리미어 리그

1. 소개2. 더비 현장3. 역사
3.1. 연고지 이전3.2. 승격 스캔들3.3. St. Totteringham's Day3.4. 선수 이적
3.4.1. 솔 캠벨 아스날 이적 사건3.4.2. 양 팀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프로계약이 아닌 유스기록 제외)
3.5. 라자냐 사건3.6. 손흥민맨시티전 빅 찬스 미스
4. 이영표의 증언5. 현지팬들 증언6. 전적7. 토트넘의 감독 경질 트리거8. 한국과의 인연9. 여담10. 관련 문서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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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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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London Derby[1]
▲ 1인칭 시점에서 본 양 팬의 모습. 서로 온갖 조롱과 욕설을 퍼붓는 걸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북런던 더비는 잉글랜드 런던 북부의 축구팀들인 아스날 FC토트넘 홋스퍼 FC 간의 경기를 일컫는다. 양팀의 첫 만남은 1887년이었지만, 라이벌 의식이 나타난 시기는 아스날이 템스강 남쪽에 위치한 울리치(Woolwich)에서 북런던으로 옮긴 1913년부터였다.

단순한 지역 라이벌이었던 이 두 팀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잉글랜드의 1부 리그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승격 스캔들이 일어나면서 철천지 원수지간이 되어 현재 프리미어 리그에서 가장 주목받는 더비 매치 중 하나가 되었다.

두 팀의 역대 전적은 위 '종합 전적' 표와 같으며, 풋볼 리그 참가 이전의 기록까지 합할 경우 총 208번의 만남을 가졌으며, 아스날이 86승, 토트넘이 67승, 그리고 무승부는 56번이다.[2]

이슬링턴(Islington)에 위치한 아스날의 홈 구장 에미레이트 스타디움과 해링게이(Haringey)에 위치한 토트넘의 홈 구장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불과 6.4km 떨어져 있다. 아스날은 2006년 이전에는 하이버리 스타디움을 사용했으며, 토트넘은 2017년까지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경기를 치르다가 현재 홈 구장의 공사가 완료되는 2019년 전까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치렀다.

2. 더비 현장

▲ 토트넘 팬들이 아스날 팬들을 열렬히(?) 환영하고 있다.
▲ 아스날 구장에 도착한 토트넘 팬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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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결과.[3]

3. 역사


캡션


캡션


양 팀 라이벌 관계는 처음부터 치열했던 것은 아니다. 1913년 북런던 토트넘 인근에 아스날이 이사를 오게 되면서 북런던 더비가 시작되었다.

3.1. 연고지 이전

1910년, 풀럼의 회장이었던 헨리 노리스는 재정위기를 겪으며 파산직전에 있던 '울리치 아스날'(Woolwich Arsenal)을 인수했다. 풀럼의 헨리 노리스가 아스날을 인수한 데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는데, 풀럼과 아스날 두 클럽을 합병하여 하나의 축구클럽을 만들어서 런던을 대표하는 최고의 팀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런던 연고팀 중 역사가 깊은 두 클럽인 아스날과 풀럼의 합병이라는 노리스의 황당한 목표는 풋볼리그와 축구협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리고 헨리 노리스는 잉글랜드 축구계에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다.

1913년, 헨리 노리스에 의한 아스날의 북런던 이전

아스날은 재정난을 악화시키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들이 연고로 했던 지역인 울리치 지역이 지리적인(또는 교통적인), 그리고 낮은 인구에서 비롯된 문제로 경기장에 입장하는 관중의 수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현대와는 달리 쉽게 멀리 이동할 수 없는, 입장권 수입이 팀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20세기 초반에 있어 그런 문제는 결국 아스널의 재정파탄 위기에 직면했다.

파일:북런던더비a.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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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2부리그로 강등된뒤 아스날은 토트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홈구장을 버리고 연고지 이전을 강행했다. 아스날은 연고지를 남부 울리치의 매너 그라운드에서 북런던의 하이버리로 옮겼다. 이사한 아스날 홈 스타디움은 당시 미들섹스[4]에 위치한 토트넘의 화이트 레인에서 불과 4마일(약 6.4km) 정도 떨어진 장소.

그리고 그들은 이듬해 구단 이름에서 울리치를 빼고 현재의 아스날 FC로 바꾼다.

3.2. 승격 스캔들

2부 리그 5위였던 아스날이 1부 리그로 승격, 1부 리그 20위였던 토트넘의 강등 사건.

토트넘과 아스날의 맹렬한 라이벌관계는 아스날이 북런던으로 이주한 것에서 촉발되어 1919년, 헨리 노리스에 의해 토트넘이 강등 당하는 대신 아스널이 승격하는 스캔들이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아스날의 헨리 노리스 구단주는 아스널을 1부리그로 승격시켰고, 1부리그로 승격한 아스날 대신 2부리그로 강등당한 것이 다름 아닌 지역 라이벌 토트넘이었다.

1914-15 시즌, 1부 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한 두 팀은 첼시(19위)와 토트넘(20위)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도중에 중단되었던 리그가 재개되면서, 리그측에서 참가팀을 20팀에서 22개팀으로 늘리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이 알려지면서 투표를 통해서 참가팀을 확정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신문을 통해 알려짐에 따라[5] 각 팀들은 각자 자신의 팀이 승격되어야 하는 이유를 로비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중에는 토트넘도 있었다. 아스날은 같은 시즌 2부 리그 5위를 기록해, 2부 리그 1, 2위가 아니므로 정상적으로는 승격이 어려운 상황. 이에 헨리 노리스 구단주는 아스널의 승격을 이끌기 위해 활발하게 로비를 해서 아스날에게 유리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9년, 19위였던 첼시 FC는 잔류, 2부리그 1, 2위 팀인 더비 카운티 FC프레스턴 노스 엔드 FC는 승격, 남은 한 자리는 1부리그 꼴찌팀인 토트넘과 2부리그 3-7위였던 반즐리 FC, 울버햄튼 원더러스, 아스날, 버밍엄 시티 그리고 헐 시티가 입후보해 투표로 결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게 된다. 결국 아스날이 이 투표에서 승리해 아스날이 1부리그로 승격되었다. 이로인해 아스날 대신 2부 리그에서 뛰게 된 토트넘은 아스날과 질기고 질긴 악연을 이어가게 된다.

1927년에 헨리 노리스는 팀 버스를 매각한 자금을 횡령하여 £125를 그의 주머니로 챙긴 죄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또, 그는 자신의 운전수 월급을 클럽의 비용에서 지급했고, 선수 연봉지불에 대한 규정을 어긴 사건[6] 등으로 인해 FA는 그를 축구계에서 영구 제명했다. 이러한 헨리 노리스의 행실로 비추어볼 때 토트넘 팬들은 헨리 노리스가 선거에서 뇌물을 주는 등 부적절한 방법을 통해 부정선거를 저질렀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나, 그에 대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토트넘이 당시에 다른 팀 보드진들에게 인기가 크게 없었다는 증거 역시 존재한다. 당시 맨체스터 이브닝 크로니클 기사를 찾아보면, 실제로 토트넘이 그다지 타 구단 보드진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언급이 되어 있으며, 그 이유를 토트넘의 과거 행적에서 밝히고 있다.

당시 영국 축구 리그는 분할되어 있었다. 영국 북부 팀들은 EFL(English Football League) 소속이었고, 영국 남부 팀들은 남부 리그(Southern League)라는 다른 리그 소속이었다.

1890년대 후반에 토트넘은 오늘날의 EPL의 전신이 되는 EFL(English Football League)의 일원이 아니라, 남부 리그(Southern League)라는 EFL과 경쟁하는 리그의 일원이었던 것. 당시 아스날은 런던이 영국 남부인만큼 원래는 남부 리그 소속이었는데 프로 리그 전환 관련해서 남부 리그하고 충돌하다가 1893년에 EFL로 옮겨있었던 상태.

두 리그는 서로 규칙 등도 완전히 달랐고, 별개의 리그에 있는 두 팀 사이에 이적이 이루어질 시에는 이적료조차 내지 않아도 되었다. 먼저, EFL에서는 연봉 상한제가 1893년부터 도입되어 있었는데, 남부 리그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또한, 잉글리시 풋볼 리그와 남부 리그 간 협의가 안되었기 때문에 EFL과 남부 리그 사이에서는 이적료를 내지 않고도 선수를 계약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7]

이러한 상황속에서 토트넘는 당시에는 재정상황이 꽤 괜찮았고, 이적료도 안 내도 되고 연봉상한제도가 없었다보니, EFL 소속 구단들에게서 실질적으로 자유계약이나 마찬가지로 연봉을 얹어주고 선수를 막 빼왔던 것이다. 실제로 1897년에서 1900년 사이에, 그 당시 꽤나 부유했던 팀이었던 토트넘은 EFL에 있는 셰필드, 뉴턴 히스(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에버튼, 스토크 시티, 프레스턴 등 여러 구단들에게서 도합 적어도 14명의 선수를 영입했던 기록이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선수를 이적료 보상료조차 받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하는 일은 EFL 소속 구단들로서는 달가운 일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908년이 되어서야 토트넘은 남부리그에서 EFL로 적을 옮겨서 뛰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선수이적 관련으로 감정이 쌓여 있던 EFL 소속 구단 입장에서 토트넘에게 표를 주고 싶을 마음이 들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실제로 이에 따라 1900년에 FA에서는 리그 사이에서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선수를 빼올 수 없게 하기 위해 두 리그 모두에 대해 주급의 상한선을 도입했다. 리그 간 이적료의 도입은 1910년 5월이나 돼서야 남부 리그와 EFL간의 합의를 통해 도입되었다.

요약하자면 애초에 토트넘은 EFL 소속 구단들에게 있어 별로 인기가 없었고, 이를 잘 활용해 아스날이 토트넘을 떨어뜨렸을 개연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만, 승격과정에서 이상한 부분이 없다고는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였다.

3.3. St. Totteringham's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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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이후 리그에서 누가 상대보다 더 높은 순위를 연속으로 유지했는지 기록한 표. 아르센 벵거가 21년 동안 우세한 이후 6시즌째 토트넘의 우위가 있다가 2022/23 시즌 아스날은 2위, 토트넘이 8위로 끝마치게 되면서 다시 아스날이 앞서게 되었다.

아스날 팬들이 1년 중 가장 즐거워하는 날 중 하나는 ‘성 토터링엄의 날(St. Totteringham‘s Day)’이다. 시즌 막판, 자신들의 순위가 토트넘보다 높다는 것이 확정된 날을 기념일로 정해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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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1년만에 토트넘이 아스날을 앞서는 시즌이 나올 뻔했으나 막판에 토트넘이 강등이 확정된 뉴캐슬에 5-1 대패를 하는 등 자멸하면서 이번에도 St. Totteringham's day가 실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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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7 시즌이 되어서야 1994-95 시즌 이후 22년간 이어져온 St. Totteringham's day가 끝난 것을 기념하는 플래카드.

2016-17 시즌에 토트넘이 안방에서 열린 북런던 더비에서 2-0으로 승리하면서 1994-95 시즌 이후 처음으로 아스날보다 윗 순위의 시즌을 확정짓고 22년만에 St. Totteringham's day가 열리지 않게 되었다.

2016-17 시즌부터는 매 시즌 토트넘이 아스날보다 윗 순위로 시즌을 마감해 아스날은 St. Totteringham's day를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2022-23 시즌, 토트넘이 유로파권에서 허덕이고 있을 때 아스날이 우승 경쟁권을 꾸준히 유지하다 결국 아스날이 토트넘보다 윗 순위에 있는 것이 확정되면서 7년만에 St. Totteringham's day가 열리게 되었다. 23-24 시즌에는 아스날이 4월 28일(현지시간) 북런던 더비를 이기며 토트넘의 홈에서 St. Totteringham's day을 기념했다.

3.4. 선수 이적

3.4.1. 솔 캠벨 아스날 이적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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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솔 캠벨 토트넘 아스날.jpg


워낙 사이가 안좋은 두 팀인지라 서로간의 선수 이적도 극히 드물었는데, 2001년에 토트넘 팬들을 충격에 빠뜨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토트넘의 주장이자 구단 유스출신이기도 한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 수비수 솔 캠벨아스날자유계약 이적을 한 것이다.

당시 캠벨은 계약 만료가 코앞인 상황에서 재계약을 미루고 있어서 토트넘 팬들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팀의 리더이자 핵심 선수이기도 하거니와 이런 선수를 돈 한푼 못 받고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 더욱 더 그랬다. 캠벨은 토트넘의 로컬보이로서 토트넘에는 큰 애정을 품고 있었지만, 팀이 우승권에 들지 못하자 한계를 느끼고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 수비수라는 위상에 걸맞게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을 할 수도 있다며 조금씩 간을 보기 시작한다.

2000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즈 유나이티드는 캠벨의 이적료로 18m 파운드를 제의했다. 만약 그때 토트넘이 선수가 남을 생각이 1도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았다면 매각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 정도 금액은 클럽의 가치 평가보다 크게 못 미치긴 해도, 두 세 명의 준수한 대체자들을 사와 월클 선수 하나를 팔고 팀을 전체적으로 리빌딩하며 발전시킬 기회에 보태는 정도는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면서 그의 비협조적인 태도는 바뀔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캠벨의 시장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져 갔다. 돌이켜보면, 당시 토트넘은 캠벨에게 끌려다니고 있었다.

데이비드 플리트조지 그레이엄 감독은 정말 옛날 축구에 익숙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은 보스만 룰이 중요하다는 걸 알지 못했죠.” 슈가 회장는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 솔 캠벨이라는 친구는, 그의 에이전트인 스카이 앤드류와 함께 일하고 있어요… 그는 토트넘에 남지 않을 겁니다. 계약 기간 끝까지 기다렸다가 팀을 떠날 거라고요. 아시겠어요?’라고 말하자, 그들은 내게 ‘아니에요 ㅋㅋㅋ 회장님. 그냥 놔두세요. 우릴 믿으시면 캠벨은 남을 겁니다.’라고 했죠.”
“나는 당신들이 보스만 룰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라고 했어요. 우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오퍼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내게 전화를 걸어 솔 캠벨에게 18m 파운드를 배팅했고, 나는 그들에게 180m 파운드를 가져오라고 했어요 (뭐 별다른 의미를 가진 말은 아니죠). 문제는 선수가 기다렸다 자유계약으로 걸어나가는 걸 노리고 있기 때문에 이적도 안될 거라는 겁니다. 그래서 난 맨유의 마틴 에드워즈에게 1800만 파운드가 아니라 80펜스를 줘도 될 거라고 했어요. 그는 절대로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8]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캠벨를 팔 수 있지 않았냐고 말하죠. 그러나 그의 계획을 알아차렸을 땐, 그의 허락 없이는 그를 팔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어요.” 그제서야 슈가 회장의 생각에 동의하게 된 그레이엄 감독은 말했다. "캠벨은 팀에 남지도, 대화를 하지도 않을 겁니다. 토트넘의 제안을 신경도 쓰지 않을 거예요. 솔 켐벨의 계획은 계약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거니까요.”

“캠벨의 속셈만 알 수 있었다면 나는 그 정도까지 했을 거예요… 솔을 리저브로 보내버리는 거죠.” 슈가 회장은 덧붙였다. “난 그가 뛰지 못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네가 날 위해 뛰지 않을 거라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요,) 그냥 벤치로 가라. 네가 날 위해 뛰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넌 모든 경기를 뛰진 못할 거야’ 이런 식인 거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때의 나는 내 생각을 관철시킬 수 있을 만한 권한이 없었어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난 곧바로 이 일을 실행할 겁니다.”

“우리는 솔 캠벨과 여러 차례 미팅을 가졌고 소위 말하는 ‘중립 구역’이었던 호텔에서 가식적인 대화를 했어요. 그리고 [플리트와 그레이엄은] ‘보세요 회장님. 캠벨은 내일부터 우리와 함께 할 겁니다’라고 말하죠. 물론 그 내일이 되면 언제나 ‘솔은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길 원합니다’라는 소식이 들려오고요. 그냥 그런 것들의 반복이었습니다.”

“난 스카이 앤드류와 솔 캠벨이 뭘 하려는지 알 수 있었어요. 일단 캠벨이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클럽의 그 어떤 사람도 자신에게 재계약을 제의하지 않았다고 말했죠.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어요. 난 분통을 터트리며 스카이 스포츠 뉴스로 찾아가 그의 말이 명백한 거짓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감독과 풋볼 디렉터와 회의를 하려 했지만 그들은 캠벨이 자신들과 함께 경기를 뛰고 있다고 했고, 불행히도 그들은 이 보스만 룰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난 솔을 드레싱룸에서 보고 ‘무슨 거짓말을 한 거야? 왜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해?’라고 했죠. 솔은 ‘난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진짜로요. 그들이 거짓 기사를 낸 겁니다’라고 했고, 난 다시 ‘아냐.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라고 말했죠. 계속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다 알고 있었지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토트넘이 신년에 7경기에서 6클린시트를 기록하며 쾌조의 성적을 내자 스카이 스포츠의 클레어 톰린슨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솔? 토트넘에 남을 건가요?”
캠벨은 잠깐 턱을 긁고 허공을 바라보다가, 짧은 답변을 남겼다.
“난 남습니다.”


캡션


슈가 회장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그의 주식 매각은 성공했고, 이제 팀이 바뀌어 가는 걸 보여줘야 하는 사람들은 버처와 다니엘 레비, 그리고 ENIC이 되었다.
다니엘 레비와 캠벨은 런던 중부의 로얄 런캐스터 호텔에서 만나 미팅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런던 메이페어에 위치한 버처-필립스의 사무실에서 열린 이어진 회담에는 에이전트 앤드류까지 참여했다. 그 날 미팅에도 참여했던 플리트는 토트넘이 선수를 잃을 것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다른 이들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5월 말 토트넘의 훈련장이었던 치그웰에서 열린 구단과의 마지막 미팅에는 레비, 플리트, 호들, 캠벨, 앤드류가 모두 참여했다. 테이블에는 매우 구체적인 재계약 제의가 올라왔다. 켐벨을 클럽 역대 최고주급자로 만들어줬을 재계약은 빠르게 거절됐다.

5월 27일 일요일, 토트넘은 캠벨이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선수들 중 하나로 만들어주겠다는 우리의 오퍼가 있었음에도 이적을 택했다’라는 성명을 냈다. 그들은 선수가 3년 총액 20만 파운드 규모에 2001-02 시즌이 끝날 때 팀이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면 자유계약으로 풀어준다는 조항을 포함하는 계약을 원하며, 구단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가 빅클럽으로 이적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려면 토트넘 측에서 솔 캠벨의 주급을 대폭 인상한 계약 조건을 내미는 수 밖에 없었는데 토트넘도 팀의 재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재계약이 계속해서 결렬되면서 일단 솔 캠벨은 거의 토트넘을 떠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캠벨은 "재계약을 할 수도 있고 이적할 수도 있는데, 이탈리아에서 연락이 오고 있어서 고려 중임. 프리미어리그의 다른 팀은 맨유나 리버풀 쪽으로 생각하고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스날은 안 감." 이런 식으로 발표하여 팬들은 최악의 경우는 없을거라며 안도하고 있었고, 서포터 그룹쪽에서도 "캠벨에게 그동안 활약에 대해서 감사하며 앞으로 다른 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길 빈다."라는 성명까지 발표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었다.[9]

하지만, 바로 얼마후 솔 캠벨은 토트넘 팬들의 뒷통수를 치면서 아스날과 계약을 해버린다. 토트넘 팬들은 유스 때부터 토트넘 맨이자 주장이었고 토트넘 수비의 핵심이었던 솔 캠벨의 이적을 눈뜨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웬수와도 같은 라이벌 구단으로. 일부 과격한 팬들은 솔 캠벨에게 유다 새끼라고 욕했고, 심지어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캠벨의 새로운 아스날 동료들도 그의 합류를 믿지 못했다. 몇 주 전만 해도 그들의 숙적인 토트넘의 주장이었던 켐벨이 어떻게 이젠 아스날의 편이 되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앙리딕슨은 "켐벨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이적 루머야 있긴 했지만, 실제로 아스날로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네요.” 라고 말했다.
“누구나 아스날과 토트넘의 라이벌리를 알고 있습니다. 런던 어디를 가든, 양팀의 팬들은 서로를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난 내 스스로에게 그런 이적이 자신의 사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 안다면 왜 켐벨이 아스날을 선택했는지 되물었어요. 레스토랑이나 작은 구멍가게를 가는 것도 힘들어질 겁니다. 훈련장에 있을 땐 괜찮겠죠. 하지만 일상적인 삶을 사는 평소에는, 팬들의 표적이 되는 겁니다. 그게 내가 켐벨의 결정을 놀라워했던 가장 큰 이유예요. 그런 이적은 삶을 한순간에 180도 바꿔 놓습니다.” -레이 클레멘스 -

토트넘은 결국 대체자로 호들 휘하의 사우스햄튼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던 딘 리차즈를 8.1m 파운드에 영입했지만, 그걸로 쏟아진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그해 11월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치러진 ‘웰컴’ 경기에서는 분노에 찬 토트넘 팬들이 가로등 기둥에 그 선수의 비열함을 욕하는 전단지를 붙였다. 4,000여명의 토트넘팬들은 '유다'라고 쓰여진 배너를 들고 풍선을 흔들며, 캠밸을 비난했다. 한 토트넘 팬은 "유다가 빵조각을 받아들자..."로 시작하는 요한복음 13장 27절을 읊었다. 캠벨이 잠시 사이드라인으로 벗어나자, 그는 음료수병 세례를 맞아야 했다

그래서 솔 캠벨의 배신은 루이스 피구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과 더불어 축구판에서 가장 충격적인 선수 이적 사례이라고 볼 수 있다.국제적인 파장은 1년전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FC 바르셀로나 소속이었던 루이스 피구레알 마드리드 이적에 비하면 덜한 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피구가 선수로서의 급[10]이 더 높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고 엄밀히 따지면 솔 캠벨의 이적이 한 술 더 뜨는 사건이다. 적어도, 피구는 바이아웃으로 이적했기 때문에 돈은 많이 안겨주고 갔기 때문이다.[11] 하지만, 캠벨은 자유계약이었기 때문에 토트넘은 단 한 푼도 얻지 못했다. 게다가, 루이스 피구는 바르셀로나의 부주장이고 팬들에게 인기가 많긴 했어도 어디까지나 포르투갈 출신이라서 외국인 선수였다. 반면에, 솔 캠벨은 토트넘이 발굴한 로컬 보이 유스 출신에다 주장으로 핵심 선수로 활약했었고 자국 잉글랜드 국가대표 주전 멤버로서 토트넘 팬들에게는 솔 캠벨의 빈 자리를 대체할 수 없을 만큼 자부심을 심어줄만한 선수였기 때문에 더더욱 배신감은 더 컸을 것이다.

이적한 시즌에 아스날은 캠벨의 합류 덕분에 노쇠화된 수비[12]의 약점을 보완하면서 리그과 FA컵을 우승하면서 더블을 달성했고 아스날 팬들은 토트넘 팬을 조롱하는 응원가를 불렀다.
우리는 솔 캠벨을 얻었다. 우리는 솔 캠벨을 얻었다. (화이트하트)레인에서 솔 캠벨을 뺏어왔다. 더블 (X3) 솔 캠벨은 더블을 했다. 레인에 있는 선수들 중에 더블 해본 놈 있냐? 하지만 솔 캠벨을 더블을 했다. 이봐 거기 토트넘 양반들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지. 느그들 주장 어디갔냐 쓰레기들아?

토트넘 서포터 그룹의 성명대로 솔 캠벨은 다른 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긴 한 셈이다. 그 다른 팀이 하필 더비 라이벌 아스날이었던 게 문제였지만.

그리고 2003-04 시즌에도 북런던 더비에서 아스날은 토트넘 원정에서 2-2로 비기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바로 이 시즌이 그 유명한 아스날의 무패 우승 시즌이다. 당시에도 아스날 원정 팬들이 토트넘 팬들을 도발하는 문구를 걸었다.

결국, 솔 캠벨이 포츠머스 FC로 이적한 후에도 토트넘과의 경기가 있으면 당연히 토트넘 팬들은 신나게 온갖 쌍욕과 야유를 퍼부었다. 2009년 포츠머스 시절에도 4명의 토트넘 팬들이 캠벨에게 동성애 구호를 외쳐 3년간 경기장 입장 금지 처분을 받았다.

2021년, 유로 2020를 보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를 찾은 솔 캠벨은 한 레스토랑에서 봉변을 당했는데. 캠벨의 존재를 확인한 한 토트넘팬이 "여기 있었네, 솔 캠벨. 이 배신자 새X"라고 소리치며 "떠날 때 젤리와 아이스크림을 가져가라고 친구"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

3.4.2. 양 팀에서 모두 뛰었던 선수(프로계약이 아닌 유스기록 제외)


솔 캠벨의 이적 사건이 터지기 전만해도 인터넷에서는 조지 베스트의 북아일랜드 국가대표 동료로 유명했던 팻 제닝스의 이적으로 논란이 일었고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는 정보를 실었으나 이 사건 이후에는 거의 다 캠벨의 이적사건만 다룬다.

팻 제닝스의 경우에는 토트넘에서 FA컵 우승과 UEFA컵 우승 등 커리어를 다 이루고 난 뒤 아스날로 이적했기 때문에 아직도 토트넘 팬들은 레전드로 기억하고 있으며, 은퇴 후에 토트넘에서 골키퍼 코치를 하기도 했다. 반대로, 솔 캠벨의 경우는 감독이 글렌 호들로 바뀌고 새로운 투자자의 등장으로 재도약을 노리는 시점에서 터졌던 사건이었기 때문에 토트넘 팬들의 실망이 컸다.

솔 캠벨의 이적 사건 이후 9년 뒤, 2010년에는 반대로 아스날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윌리엄 갈라스가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다만, 아스날 팬들은 솔 캠벨 이적 당시의 토트넘 팬과는 다르게 잘 나갔다라는 반응이다. 애초에 첼시에 있다가 애슐리 콜이 아스날에서 불화를 일으키면서 첼시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트레이드 식으로 왔기에 본인이 아스날과 팬들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그다지 높지 않았고, 팬들 역시 그가 온다고 해서 딱히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데니스 베르캄프의 번호 10번을 과분하게 이어받은 주제에 주장이라면서 사미르 나스리와 불화를 일으키는[16] 등 팀 분위기를 개판으로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저 놈은 원래 그런 놈인줄 알았다. 아마 은퇴는 웨스트햄에서 하겠구만?"[17] 같은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후에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역시 아스날 - 맨체스터 시티 - 토트넘 순으로 이동했는데, 중간에 어디를 거쳤느냐를 떠나서 이 쪽은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역주행 세레모니 등으로 인해 아스날 팬들에게 갈라스보다 더 찍힌 존재라서 어딜가든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아데바요르는 토트넘 소속으로 아스날을 상대로 또 다시 화끈한 세리머니를 펼치면서 아스날 팬들의 증오를 재점화시켰다. 정작 아데바요르는 토트넘에서 주전에서 밀리고 떠난 이후 토트넘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는 바람에 토트넘 팬들마저 아데바요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2020년 여름이적시장에는 U-23 선수 조나단 딘제이가 토트넘에서 아스날로 이적했으며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은 자유이적이었다.

3.5. 라자냐 사건


Lasagne woooah! (라자냐 오오오!) Lasagne woooah! (라자냐 오오오!) We laughed ourselve to bits (우리는 엄청 웃었지) When Tottenham got the s**ts (토트넘이 그걸 쳐먹었을 때) - 라자냐송 가사 -

1995년 이후, 토트넘은 최종 리그 순위에서 아스날 위에 올라선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중간에 딱 한 번, 토트넘이 아스날을 넘을 뻔한 적이 있었다. 2005-06 시즌, 리그 한 경기를 남겨두고 토트넘은 4위, 아스날은 5위. 토트넘은 마지막 경기였던 웨스트햄전을 이기면 그대로 4위를 확정짓는 상황이었다. 4위는 챔피언스 리그, 5위는 한 단계 아래의 UEFA컵을 의미하므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위해 4위 자리는 아스날, 토트넘 모두에게 절실했다.[18]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토트넘은 4위, 아스날은 5위였다. 토트넘의 상대는 웨스트햄. 여기서 승리하면 (비록 예선을 치르긴해도) 토트넘만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1995년 이후로 11년간 아스날보다 순위가 높아봤던 적이 없던 토트넘이라 그 기대는 더욱 컸다. 당연히 아스날 팬들은 아스날이 최종전에서 위건을 이기고 토트넘이 져서 그 결과가 뒤집히기를 바랐다. 반대의 경우에는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이겨야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확보가 가능했다.

그런데 경기 전날 토트넘 선수들 대다수가 런던의 매리어트 호텔에서 라자냐를 비롯한 음식들을 먹었는데... 이것이 결국에는 화근이었다. 새벽 5시경, 사이먼 데이비스, 티무 타이니오, 로비 킨, 마이클 도슨, 마이클 캐릭, 아론 레넌, 라덱 체르니[19], 데이븐포트[20], 바나드[21], 이영표 등 토트넘의 주전 선수 10명이 갑작스런 구토와 설사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 중에서도 마이클 캐릭의 증세가 제일 심했고 걷는 것조차도 힘들어했다. [22] 이 때문에 토트넘의 회장 다니엘 레비는 프리미어 리그 측에 경기를 연기해줄 것을 요청했다. 프리미어 리그 최고 경영자였던 리차드 스쿠다모어는 클럽간 합의한 결정에 맡기되, 때에 따라서는 클럽을 처벌하거나 승점을 삭감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23]

이에 토트넘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잘 서있지도 못하는 10명의 선수를 데리고 중요한 경기를 치러서 4위에 오를 기회를 날리느냐, 혹은 승점 삭감을 감수하고 경기를 연기시키느냐. 어느 쪽으로든 챔피언스 리그에서 뛸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높았다. 상대팀이었던 웨스트햄은 경기를 연기하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다음 날로 미뤄지는 것은 원치 않았고, 3시 경기를 7시로 연기하는 것이 최선의 대안이었다. 토트넘도 4시간 정도면 선수들이 회복하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이때는 낮이었고 웨스트햄 팬들이 경기장 주변에 모여들어 있었다. 경찰은 갑작스레 경기 시간을 4시간이나 연기하면 이들을 안정시키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고, 2시간만 연기하는 것만을 허락했다.

결국 당일날 경기를 그대로 강행할 수 밖에 없었고 우려했던 대로 마지막 라운드에서 토트넘은 패하고 아스날은 승리하면서, 두 팀의 순위는 토트넘 5위, 아스날 4위로 극적으로 뒤바뀌게 된다. 토트넘은 요시 베나윤에게 결승골을 얻어맞아 웨스트햄에 1:2로 지고 아스날은 티에리 앙리의 해트트릭으로 앞세워 위건에게 4:2로 승리하면서 최종적으로 아스날이 챔피언스 리그 진출, 토트넘은 UEFA 컵 진출로 밀려났다.[24] 한편 토트넘을 아스날 못지 않게 싫어 하던 상대팀인 웨스트햄[25]은 아예 토트넘 선수들과 팬들이 볼 수 있도록 아스날의 스코어를 전광판에 일부러 계속 띄우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이 사건의 영향으로 라자냐 송은 한동안 아스날 팬들의 북런던 더비 조롱 송으로 불리게 되었다.

3.6. 손흥민맨시티전 빅 찬스 미스

"엇? 아칸지를 압박, 그리고 손흥민이 침투합니다 - 우승컵이 달려있는 상황... 오오오오오!!!! 하지만 오르테가가! 그의 맨시티 커리어 중 가장 중요한 선방을 해냅니다!"[26]
2023-24시즌 토트넘의 34R 맨시티전 (순연된 경기여서 사실상 37R), 아스널과 맨시티가 승점 1~2점 차이로 우승을 다투고 있던 상황에서 토트넘이 맨시티에게 1대0으로 지고 있는 후반 막판이었다.[27]

종료를 겨우 4분 앞두고 아칸지의 볼터치 미스가 토트넘의 주장 손흥민이 연결 되었고, 손흥민은 특기인 빠른 주력으로 골대 앞까지 가서 결정적인 슛을 날렸으나 맨시티 키퍼 오르테가가 다리를 뻗어 공을 쳐내버렸다. 아칸지의 실책이 손흥민에게 간 순간에 과르디올라가 그대로 쓰러지는 역대급 리액션을 보일 정도로 극적인 상황이었고,[28] 원래대로라면 토트넘 팬들이 매우 화냈어야 할 상황이지만 오히려 크게 환호했는데, 골이 들어갔다면 사실상 이미 다음 시즌 챔스에 탈락한 마당[29]에 아스날에게 우승까지 선물해주는 최악의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것을 그것도 정규시간 종료 직전이라는 타이밍에 목격한 아스날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라이벌 팀의 주장을 저주했다. 혹자는 오르테가의 이 선방을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의 결승전 연장 후반 추가시간에 나온 마르티네즈의 무아니 슛 선방에 비견하는, 트로피를 지켜내는 선방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경기는 맨시티가 토트넘을 상대로 2:0 승리를 기록하면서 맨시티의 1위 복귀로 종료되었고, 이 실축은 토트넘-아스날 라이벌리의 유구한 역사에서 또 하나의 획을 그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엄밀히 따져보면 손흥민 때문에 우승이 날아간 것이 아니고 아스날이 최근 아스톤 빌라전 등의 경기에서 승점을 얻어내지 못한 탓이 크다.[30] 그러나, 이렇게 근원을 따지면 끝이 없고[31] 우승컵이 공중분해되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하필이면 가장 증오하는 라이벌 토트넘의 주장이 1대1 미스로 장식했기 때문에 그 임팩트의 뼈아픔은 엄청났다.[32]

그리고 바로 다음 경기이자 마지막 38R에서 아스날은 결국 손흥민의 미스로 맨시티에게 넘어간 승점 2점 차로 우승을 놓쳤다. 그게 들어갔다면 승점 동률과 골 득실차로 맨시티를 누를 수 있었기 때문에 아스날 입장으로는 두고두고 뼈가 아플 수 밖에 없다.

4. 이영표의 증언

토트넘 선수로서 이 더비를 겪어본 이영표는 2015년 토트넘에 입단한 손흥민에게 주의하라며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해준 바 있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토트넘 지역까지의 거리는 약 4km이다. 원정 경기를 마친 토트넘 선수들은 이 거리를 통과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경기가 끝나면 토트넘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3시간 가량 대기한다. 그 사이 경찰들이 밖에서 양 클럽의 팬들을 모두 해산시킨다. 팬들이 흩어지고 선수들이 버스에 오르면 경찰 차량 5~6대가 호위한다. 모든 신호를 미리 조작해 버스가 대기 시간 없이 자동 통과하도록 조치한다. 이렇게 해도 위협은 가해지기 마련. 갑자기 매니저가 버스 안 선수들에게 말한다. "고개를 숙여서 무릎 사이에 머리를 묻어."

당시 이영표는 무슨 영문인가 싶었지만 곧 이유를 깨닫게 된다. 갑자기 굉음과 함께 버스 유리창으로 맥주병과 돌이 날아든다. 온갖 물건들이 버스에 쳐박히고 유리창은 금이 가고 이영표는 기겁한다. 고개를 푹 숙여 매니저의 말대로 한다. 버스가 교차로를 지날 때 아스날 팬들이 튀어나와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영표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토트넘까지 4km 중 2km는 아스날 지역, 2km는 토트넘 지역이다. 매니저가 '이제 괜찮아. 고개를 들어'라고 하면 아스날 지역을 통과해 토트넘 지역으로 접어든 거다,"고 멋쩍은 웃음을 보인다.

겨우 토트넘 구역으로 들어오니 이런 공격이 뚝 줄었는데 나중에 이영표는 같은 팀에서 뛰었던 로비 킨에게 "아니 자기네 팀이 이겼잖아? 그랬는데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너무한 거 아냐?" 그러자 킨은 "쟤들에겐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토트넘이란 존재 자체가 좆같다는 거다." "우리 팬들은 어떨 것 같냐. 순순히 보내줄 것 같냐?" #

2008년 1월 23일, 칼링컵에서 토트넘이 5-1로 아스날을 개박살내자 5-1, 5-1 승리!라고 써있는 토트넘 기념 유니폼과 굿즈가 불티나게 팔렸다. 이영표에 의하면, "경기 다음날 모든 토트넘 팬 숍에 티셔츠가 걸렸는데 가슴에 크게 5-1이라고 쓰여 있었다"며 "토트넘 팬들은 다 그 옷만 입고 다녔다. 티셔츠 말고도 기념품이 무지하게 만들어졌는데 다 팔렸다. 5-1이라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컵을 들고 커피 마시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았다"고 한다. 이후 토트넘 서포터들은 아스날 차량이 지나가면 물건들을 던지고 이 굿즈들을 흔들며 5-1!, 5-1! 이라고 크게 외쳤다고 한다.

5. 현지팬들 증언

현지 아스날 팬 증언 현지 토트넘 팬 증언
북런던더비에 대한 현지팬들 증언

6. 전적

2023-24 시즌 종료 기준 아스날 83승, 52무, 토트넘 61승. 아스날이 우세하다.

아스날은 1994-95 시즌부터 2015-16 시즌까지 리그 순위에서 앞섰다. 1999년 11월 7일 1-2 패배 이후 2010년 4월 14일 1-2 패배 전까지 리그에선 지지 않았다.

2007-08 시즌,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열린 칼링컵 준결승 2차전에선 아스날을 상대로 5대1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거의 10여년 만에 아스날을 상대로 첫 승을 거둔 토트넘 구단은 이를 기념해 DVD를 제작하기도 했을 정도.

2015-16 시즌, 토트넘이 리그 37라운드까지 2위를 사수하여 21년만에 아스날 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할 수 있었으나, 최종전에서 강등이 확정된 뉴캐슬에게 1-5 대패를 당하며 순위가 뒤바뀌었다.

하지만 2016-17 시즌, 토트넘이 리그 탑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이며 아스날을 뛰어넘기 시작했고 2017년 4월 30일 펼쳐진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의 마지막 더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24년 만에 2골 차 이상 승, 22년 만에 리그 순위에서 앞서게 된다.

2017-18 시즌, 에미레이츠에서는 2:0 아스날 승, 웸블리에서는 1:0 토트넘 승. 리그 순위는 토트넘 3위, 아스날 6위.

2018-19 시즌, 아스날이 새로 부임한 에메리의 첫 더비에서 4대2로 이겼으나, 보름 뒤 열린 리그컵 8강에서는 토트넘이 2:0으로 이기며 복수에 성공한다. 이 경기에서 손흥민이 결승골을 넣었다. 시즌 세 번째 더비에서는 경기 막판 요리스와 베르통언의 결정적인 오바메양 페널티 세이브로 1:1 무승부, 아주 중요한 승점을 가져간다.[36] 이 경기 결과에 힘입어 리그 최종 순위는 승점 1점 차이로 토트넘이 4위로 챔스, 아스날이 5위로 유로파로 가게 된다.

2019-20 시즌 아스날의 홈에서 펼쳐진 전반기 맞대결에서는 전반에만 토트넘이 2골을 넣으며 앞서갔지만, 후반전에 아스날이 다시 2골을 넣으며 추격에 성공한다. 결과는 2:2 무승부로 끝이났다.

이후 두 클럽이 동시에 부진하고 결국 두 팀 다 감독을 경질한다. 무리뉴 감독의 토트넘이 점점 순위를 회복하는 반면 융베리 감독대행의 아스날은 아직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으나... 아르테타 부임 이후 아스날도 반등에 성공했다. 시즌 막바지 토트넘이 다시 부진하고 있는 사이 아스날은 승점을 쌓아올리며 어느새 토트넘을 추월했다. 이에 오바메양이 토트넘을 조롱했다.

허나 후반기 맞대결에서 라카제트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토트넘이었지만 손흥민의 동점골과 85분에 코너킥에서 토비 알데르베이럴트의 역전골까지 나오며 2:1 역전승을 일궈내며 다시 순위를 역전시킨다. 경기 직후 오바메양은 토트넘 팬들의 무수한 역공을 당하고 말았고, 4시즌 연속 토트넘이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FA컵을 아스날이 우승하면서, 아스날은 유로파 리그 직행 티켓을 따게 되고, 자연히 6위 토트넘은 한자리 밀려 예정에도 없던 유로파 예선을 치르게 되었다. [37]

2020-21 시즌, 첫 더비를 앞두고 토트넘은 리그 1위, 아스날은 15위에 쳐져있다. 더비에서 양 팀의 순위 차이만큼 압도적 경기력으로 아스날을 2-0으로 찍어누르고 더비 2연승을 가져갔다. 손 & 케인의 두 번의 카운터 어택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아스날은 점유율은 가져갔으나 90분 내내 큰 위험 상황을 일으키지 못하고 패배했다.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의 맞대결을 앞둔 3월 14일 현재 순위는 토트넘이 7위, 아스날이 10위. 3월 15일 드디어 무려 6경기 만에 아스날이 홈에서 외데고르와 라카제트의 골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력 자체도 아스날이 압도했으며 케인의 몇 차례 프리킥 외에는 이렇다할 공격을 진행하지 못했고, 토트넘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유로파리그에서 맞대결이 기대되기도 했으나 토트넘은 자그레브에게 일격을 맞고 16강에서 조기 탈락하면서 무산되었다. 아스날은 4강까지 진출.

2020-21 시즌 최종전 토트넘이 지고 아스날이 이겨야 아스날이 유럽 대항전에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토트넘이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며 5시즌 연속 아스날보다 높은 순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2021-22 시즌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시즌 첫 번째 북런던 더비는 전반에 아스날이 3골을 몰아치는 등 누누 감독의 한계점을 보여주며 토트넘이 처참하게 패배했다. 아스날은 이 날 스미스로우가 선제골을 넣었고 오바메양이 두 번째 득점을 했으며 세번째 득점은 사카가 해결하며 전반에만 3골을 넣었다. 후반에는 토트넘이 공격을 조금 해나가기 시작했지만 이미 3점차인 이상 따라가기 어려웠고, 후반전에 손흥민의 만회골만이 나오며 최종 3:1로 아스날이 승리를 가져왔다.

2021-22 시즌 22라운드 시즌 두 번째 북런던 더비는 아스날의 선수 부족으로 프리미어리그 규정상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연기를 결정했고, 공교롭게도 이 경기는 두 팀이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권 막차 한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된 데다가 한국시간으로 5월 13일에 재편성되면서 이 경기가 사실상 양 팀의 4~5위 결정전으로 격상되었다. 아스날은 승리나 무승부만 거두어도 챔스 진출에 매우 유리했지만, 전반에 아스날 측의 거친 플레이로 파울이 누적되어 부여된 패널티 킥으로 부터 롭 홀딩의 퇴장까지 토트넘에게 완패를 당했다. 그리고 이 경기의 패배가 스노우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토트넘이 번리와 노리치를 연이어 격파하여 2연승을 달렸고, 아스날은 뉴캐슬에게 패배하면서 2연패를 기록했다. 이로써 승점 2점 차이로 토트넘이 리그 4위로 챔스, 아스날이 5위로 유로파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토트넘은 6시즌 연속 아스날보다 높은 순위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2022-23 시즌에는 9년 만에 아스날이 더블을 달성한다. 에미레이츠에서 열린 프리미어리그 9라운드는 수비 불안 및 에메르송 로얄의 퇴장이 겹치며 아스날이 3:1로 이겼고, 토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리미어리그 20라운드에서는 위고 요리스의 자책골과 아론 램스데일의 선방쇼에 힘입어 아스날이 2:0으로 이겼다.

2023-24 시즌에는 프리미어 리그 6R 아스날의 홈에서 시즌 처음으로 맞붙게 되었다. 지난 시즌과 달리 토트넘의 선수단과 경기력이 크게 향상되었고, 여전히 강세를 보이는 아스날과 2:2 무승부를 기록했다. 아스날은 부카요 사카가 훌륭한 활약으로 2골 득점에 모두 관여했고, 토트넘은 손흥민의 멀티골 활약에 힘입어 동점을 만들 수 있었다. 한편, 손흥민의 2번째 동점골 상황에서 조르지뉴가 치명적인 볼 빼앗김 실수를 범하여 아스날 팬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이후 35R에선 아스날이 하베르츠의 1골 1어시의 활약으로 3:2 승을 거뒀다.

24-25 시즌에는 4R 토트넘의 홈에서 북런던 더비가 성사 되었는데, 문제는 올렉산드르 진첸코, 리카르도 칼라피오리, 마르틴 외데고르, 미켈 메리노, 토미야스 다케히로, 키어런 티어니 까지 무려 7명이 부상으로 결장하였고 심지어 데클런 라이스까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였다는 것이다. 후보에도 유망주 선수들을 위주로 넣을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아스날 입장에선 주요 선수들이 대거 빠져 초비상에 걸렸다. 외데고르와 라이스의 부재로 약해진 중원을 조르지뉴와 트로사르를 배치하여 보강을 하였다. 그럼에도 아스날 라인업은 상대적으로 약해진건 사실이고 반대로 토트넘은 도미닉 솔랑케미키 판더벤의 복귀로 풀주전이며 심지어는 토트넘 홈이라 전반전 까지만 해도 점유율을 비롯해 기세가 토트넘쪽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토트넘은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고 결국 후반 64분 세트피스[38] 상황에서 가브리에우 마갈량이스에게 헤딩골을 먹히고 말았다. 경기는 이대로 1:0으로 종료. 주전 선수가 대거 이탈한 아스날을 홈에서도 잡지 못한 토트넘이다. 이로써 아스날은 북런던 더비 원정 3연승을 기록했고 최근 5경기 전적이 아스날의 4승 1무 라는 압도적인 우세로 아스날 팬 입장에선 라이벌 이라고 하기에도 껄끄러운 상황이다.

7. 토트넘의 감독 경질 트리거

2016-17 시즌이 되어서야 1994-95 시즌 이후 22년간 이어져온 St. Totteringham's day가 끝난 이후, 북런던더비의 관계는 감독경질의 트리거가 되고는 한다.

* 주제 무리뉴: 2021년 3월 15일 28R 아스날 전에서 2-1로 패배하며 경질설에 휘말리기 시작했고, 이후 4월 19일 토트넘에서 경질되었다. 당시 토트넘은 경기 수가 동일한 9위 아스날과의 승점 차이도 4점밖에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8. 한국과의 인연

북런던의 클럽들은 한국 선수들이 진출한 덕분에 국내에 팬들이 꽤 있는 편이다.[39] 이영표는 중박의 활약, 박주영은 최악의 시기, 손흥민은 클럽 레전드의 길[40]을 걷게 된다.

9. 여담

  • 우리나라에서는 "북런던 일에 끼지 마시죠" 드립으로 유명하다.[41] 하지만, 손흥민이 2015년 토트넘으로 이적 오면서 한국 사람들도 북런던 일에 끼어들게 되어버렸다.
  • 하이버리역에서는 눈을 감는 토트넘팬들: 토트넘 팬들은 아스날과 관계된 건 쳐다보지도 않는다. 화이트 하트 레인에서 열린 토트넘과 크리스탈 팰리스의 '런던 더비'를 보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던 한국 기자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고. 열차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승객들이 하이버리역에서 두 눈을 가리거나 감아버린 것. 화이트 하트 레인이 위치한 세븐 시스터즈역에 가기 위해선 하이버리역을 거쳐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곳엔 아스날이 2006년까지 홈 구장으로 사용한 하이버리 스타디움이 있었다.
  • 북런던더비 매치 데이 스카프 에피소드: 스카프 곳곳에서 북런던 더비 기념 ‘한정판’ 목도리를 한가득 둘러맨 상인들이 “매치데이 스카프(Matchday scarf)!”를 외쳤다. 가까이 가보니 목도리 양쪽 끝에 토트넘의 손흥민, 아스널 공격수 알렉상드르 라카제트의 얼굴이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한 장 사려고 돈을 꺼내는 순간 옆에 지나가던 젊은 토트넘 팬이 목도리를 낚아채며 “이따위 쓰레기는 사는 거 아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땅에 떨어진 목도리를 주우려고 하자 지나가던 중년 남성이 “오 신이시여(Jesus Christ)”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목도리 상인 줄리안 트라짓씨는 “원수보다 싫은 아스날 선수와 한 목도리에 인쇄돼 있는 게 못마땅해서 저러는 것이니 신경 쓸 것 없다”며 10파운드(15,000원) 지폐를 낚아챘다고 한다.
  • 2015년 9월 23일 캐피탈원컵 북런던 더비에서 아스날 팬이 토트넘 구단이 설치한 배너를 뜯어서 기물파손. 토트넘은 아스날 측에 배상을 요구했다.# 직관한 통신원은 경기가 끝난 후, 전철역으로 향하는 동안 양팀 팬들의 고함소리가 계속 들렸고, 부상당해 쓰러져 있는 사람을 경찰이 데리고 가는 모습을 봤다고 서술했다.# 난동부렸던 아스날 팬 10명은 체포되었다.#
  • 2016년 3월 5일, 경기 시작 전 화이트 하트 레인 바깥 원정 서포터 골목에서 토트넘 팬들과 아스날 팬들이 서로 충돌했다. 직관한 통신원은 화이트 하트 레인 주변에서 300여명의 경찰 병력과 20여기의 기마경찰을 보았다고 서술했다. 경찰 병력과 기마 경찰 그리고 경찰차로 원정 서포터석 가는 길에 바리케이트를 쳤다. 그래도 역부족이었다. 경찰 바리케이트 너머로 계속 욕설을 하고 이미 아래쪽에서는 난투극이 벌어졌다고 한다. # 광팬들 핵심 2명은 체포돼 별도로 구금되었다. #
  • 아스날의 옛 구장 하이버리에서의 마지막 북런던 더비는 1:1 무승부로 끝났고, 2006년 개장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의 첫 번째 북런던 더비는 3:0 대승을 거뒀다. 토트넘 아스날 둘 다 총합 4:1로 이기고 졌다.

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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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진은 티에리 앙리가 북런던 더비 경기에서 골을 넣고는 토트넘의 관중석에 세리머니를 시전하는 장면이다. 당연히 어마어마한 야유와 욕설이 쏟아지고 각종 물체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사진을 보면 거꾸로 V자를 하면서 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는 영국에서 통하는 손가락 욕인데 의미는 널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훗날 앙리가 아스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면서 이 세리머니 장면은 동상으로 만들어져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 세워졌다.[2] 2024년 8월 8일 기준[3] 피가 튄 사람의 사진도 있으니 클릭을 주의할 것.[4] 현재의 토트넘 지역이 런던에 편입된 것은 1965년이다[5] 당시 신문인 Athletic News에 20팀에서 22팀으로 리그 참가팀을 늘리자는 블랙풀의 제안과 함께 일종의 선거를 통해서 이를 결정할 것이라는 기사가 남아 있다. 또한, 당시에 투표를 통해서 1부리그 잔류팀을 정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1897-98 시즌이 끝난 후에, 다음 시즌에 리그 참가팀이 불어나게 되자 플레이오프를 통해서 잔류팀이 결정된 경우도 있었고, 1904-05 시즌이 끝난 이후에는 1919년의 경우와 같이 선거를 통해서 잔류팀을 결정했다. 당시 데일리 익스프레스 기사에 명백히 남아 있는 일이다.[6] 1925년에 선더랜드에서 뛰던 찰리 부칸이라는 선수에게 아스날로 오라고 하면서 허용되던 최대 연봉 이상의 금액을 제시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물론 당시에 이러한 규정위반은 비일비재했다.[7] 참고로 리그간 이적료는 1910년이 되어서야 스코틀랜드 리그랑 EFL하고 남부 리그 사이에서 합의가 되었다.[8] 약간의 변호를 하자면, 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지금과는 달리 보스만 룰을 이용해 자유계약으로 이적료 없이 선수가 걸어나가는 일이 몹시 드문 것도 사실이였다. 그리고 토트넘은 이 당시 구단주가 바뀌고 수뇌부들이 변하고 있는 과정이였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점도 있다.[9] 실제로 이 당시 아스날 이외에도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FC 바르셀로나로의 이적링크가 있었고, 구단주가 켐벨을 초청해 투어를 진행하는게 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심지어는 인테르 구단주는 켐벨 영입 직전이다는 언플까지 했다.[10] 캠벨이 아무리 세계 최고급 수비수라고 해도 발롱위너인 피구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다.[11] 오일 머니 등 각종 거대자본이 빅클럽들에 연달아 들어와 축구계에 돈 거품이 많이 낀 요즘에도 6200만 유로는 상당히 비싼 이적료인데 루이스 피구는 과거의 선수이다. 그 당시 피구의 이적할 때 들어간 이적료 6200만 유로는 계약 당시 역대 이적료 최고액이었고, 사람들은 저 바이아웃의 발동을 상상도 하지 않았었다.[12] 당시 아스날의 수비를 책임지던 토니 아담스, 리 딕슨, 마틴 키언은 전부 30대 중후반의 노장들이었다. 아담스와 딕슨은 실제로 2001-02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이에 비해서 캠벨은 그 당시엔 20대여서 한창 전성기였다.[13] 토트넘의 마지막 1부 리그 우승은 1960-61 시즌이다.[14] 토트넘과 아스날 두 팀에서 모두 레전드로 인정받는 유일한 사람이며 전성기는 토트넘에서 보냈다.[15] 첼시에서도 활약했다.[16] 그런데 사미르 나스리도 성격 개판이라서 아스날 팬들은 이 때의 대립을 에일리언 대 프레데터 수준으로 취급하고 있다.[17] 아스날 이전 소속팀이 첼시 FC였다. 런던 팀 순례자.[18] 한편 이 경기는 다음 시즌부터 새 구장으로 이사하는 아스날이 하이버리에서 치르는 역사상 마지막 경기로, 아스날에겐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19] 체코의 골키퍼.[20] 잉글랜드 출신 수비수.[21] 잉글랜드 출신 공격수.[22] 후에 잉글랜드 보건국이 직접 선수들이 섭취했던 호텔 음식들의 샘플을 가져가 조사했지만 음식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고, 선수들의 증상이 노로바이러스로 인한 바이러스성 장염이라는 것만 밝혀졌다.[23] 승부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리그의 마지막 경기는 모든 팀이 동시에 치르는 게 원칙이었기 때문에 원래 일정대로 강행될 수밖에 없었다. 정말 경기를 미루려면 폭탄 테러 협박 정도는 나와야 하고 이런 상황이면 당연히 모든 경기를 미뤄버린다.[24] 후에 이영표는 이때 토트넘이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다면 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더 빨리 발전할수 있었을꺼라면서 아쉬워 했다.[25] 이쪽도 같은 런던팀으로 정확히는 동런던 지역에 있는 팀이기에 직접적 라이벌 팀은 밀월이다.[26] FuboTV 중계 "Oh? Here's Akanji under pressure, and Son could be in and the title could be on the line - OOOOOOOH!!! BUT ORTEGA! Makes arguably the biggest save of his Manchester City career!"[27] 이때 아스날은 너무 간절한 나머지 주장 외데고르 등이 X에서 토트넘 저지를 입고 '토트넘이 맨시티를 이겼으면 좋겠다'라고 포스트하는 지경이었다.[28] 문자 그대로 저 실책 단 한 개 때문에 시즌 농사가 통째로 날라갈 수 있었다. 과르디올라로서는 기절할 상황.[29] 그러나 막상 38R 아스톤 빌라가 크리스탈 팰리스에 대패하고 토트넘이 셰필드 유나이티드 상대로 승리하면서 만약 맨시티전을 이겼다면 챔스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다만 빌라는 이미 챔스 진출 확정으로 동기부여가 떨어진 상황이었음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또한 손흥민이 이때 동정골을 넣었더라도 역전골을 넣지 못했다면 챔스 진출은 실패하고 아스날은 우승하는 팬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을 것이다.[30] 그래서 토트넘 팬들은 아스날 팬들이 '어떻게 손흥민이 일부러 골을 못 넣을 수 있냐 그러고도 프로냐'라는 도발에 '너네가 아스톤 빌라한테 한번이라도 덜 졌다면 어땠을까?'라면서 코웃음을 치며 응수하기도 한다. 해당 시즌엔 결국 토트넘이 아스톤 빌라한테 4위와 챔스 진출 자격을 넘겨주고 마무리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스톤 빌라가 토트넘에게 우위를 거둔 승점 중엔 아스날에게 따낸 승점 6점이 포함되었기 때문. 만약이란 건 없다지만 아스날이 한번이라도 빌라에게 덜 졌다면, 진짜 아스날과(우승) 토트넘이(챔스 복귀) 둘다 웃을 수도 있었다.[31] 이런 식으로 따지면 스티븐 제라드의 '그 사건'도 당시 리버풀의 5무 5패를 복기해야 한다. 여담으로 아칸지의 실책이 당시 제라드의 위치와 매우 유사했다.[32] 특히 평소에 넙죽 잘만 먹던 1대1을 찬스를 저렇게 날렸으니 더욱 그렇다. 제이미 캐러거도 해당 찬스에 대해 아스날 팬들을 10년 이상 괴롭힐 기억이라고 언급하였다.[33] 실제로 토트넘이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올린 선수들 영상을 보면 빨간색은 찾아볼 수 없다. 선수들이 입은 니트도 남색 계열이다. 다만 손흥민의 빨간색 국대 유니폼은 경우에 따라서 예외로 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실 이 부분은 외국인의 자국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논외의 대상이긴 하다.[34] 그리고 손흥민이 토트넘에 자리잡은지 시간이 오래 지나자 자연스레 한국에도 북런던 더비의 명성이 알려지게 되고, 손흥민이 크리스마스 시기에 활약을 펼친 하이라이트를 담은 유튜브 영상의 썸네일에도 파란 산타모를 쓴 손흥민의 모습이 걸려 있다.[35]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토트넘과 경기하는 상대팀이다. 특히 아스날에서 레드카드가 나올 경우 빨간색을 반기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36] 토트넘 입장에선 운이 좋았던 것이 베르통언이 키커 오바메양보다도 먼저 움직여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갔고, 그 결과 실축 후 이어진 이워비의 크로스도 막아냈다. 원래라면 오바메양이 다시 찼어야 한다. 그전에도 해리 케인이 PK를 얻어낸 상황이 오프사이드 상황이었던 등 토트넘은 이 경기에서 판정 득을 많이 봤다. 앨런 시어러는 상기한 모든 상황을 오심이었다고 평했다.[37] 더욱이 2020-21 시즌은 코로나 여파로 예년보다 빡빡한 일정 속에 진행됨에 따라, 토트넘은 시즌 개막 초부터 나홀로 박싱데이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토트넘은 어려움 없이 유로파 본선에 올라왔고 조 1위로 32강 토너먼트에 오른다.[38] 코너킥[39] 토트넘은 이영표와 손흥민의 팀으로 국내에 알려진 정도였지만, 아스날은 앙리, 베르캄프 등으로 대표되는 과거의 화려한 전성기와 눈이 즐거운 아름다운 축구로 인해 박주영이 입단하기 전에도 국내 해축팬들중에는 아스날 팬이 굉장히 많은 편이었다.[40] 2023~24 시즌에는 아예 주장까지 달았다.[41] 알싸가 아직 살아있던 시절 토트넘 팬과 아스널 팬이 분쟁이 붙자 리버풀 팬이 끼어들었는데, 한 토트넘 팬이 "북런던 일에 끼지 마시죠" 드립을 날리면서 유명해졌다. 처음에는 현지인 빙의하는 것이냐며 조롱했는데 놀랍게도 이 회원은 정말 런던에서 거주중인 교포였다.[42] 공교롭게도 한일전 역시 북런던 더비와 마찬가지로 빨강과 파랑의 대결이다.(아스날, 한국 - 빨강 vs 토트넘, 일본 - 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