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06 16:59:59

KCT(네덜란드)

KCT
Korps Commandotroepen
파일:Kl-korps-commandotroepen-kct.svg
<colbgcolor=#000000><colcolor=#E42B21> 활동 1942년 ~ 1945년
1950년 ~ 현재
국가
#!if 행정구 == null && 속령 == null
[[네덜란드|{{{#!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네덜란드 국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네덜란드}}}{{{#!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속령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특별행정구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행정구}}}{{{#!if 출력 != null
}}}}}}]]
#!if 국명 == null && 행정구 == null
[[틀:국기|{{{#!wiki style="display: inline; color: ;" dark-style="color: ;"
{{{#!wiki style="display: inline-flex; vertical-align: middle; border: .0625rem solid #ddd;" dark-style="border-color: #383b40;"
[[파일: 기.svg|width=24]]}}} {{{#!if 출력 == null
속령}}}{{{#!if 출력 != null
}}}}}}]]
소속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네덜란드 육군
상급부대 네덜란드 특수작전사령부
분류 특수부대
역할 특수작전[1]
본부 노르트브라반트 로센달
표어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
Nunc aut nunquam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링크드인 로고.png

1. 개요2. 역사3. 편제4. 선발5. 장비6.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Korps Commandotroepen.jpg
Korps Commandotroepen
네덜란드 육군의 특수부대로 대테러, 직접타격, 특수정찰, 군사훈련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2. 역사

파일:KCT.History.jpg
마켓 가든 작전에 참가한 제2네덜란드군 병사들
KCT의 기원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창설된 인슐린데 군단(Korps Insulinde)과 영국군 코만도 제10코만도에 배속되었던 제2네덜란드군에서 찾을 수 있다. 두 부대는 1942년 3월 창설되었으며 아이린 공주여단 출신 부대원들로 구성되었다.

인슐린데 군단은 1942년 1월 네덜란드의 방어 강화를 위해 아이린 공주여단 1대대에서 약 150명의 인원이 차출되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파견된 것이 시작으로 당시 일제의 침공 때문에 부대원들은 영국령 실론[2]에 갇히게 되었다.

1942년 3월 7일, 부대가 콜롬보에 도착했을땐 네덜란드령 동인도 회사가 일본군 손에 함락된 뒤였고 부대는 수마트라 섬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코만도 부대로 변모하였다. 이들은 동아시아에서 특수작전을 수행하는 영국 조직 제136부대(Force 136)에 배속되었다.

같은해 여름 부대원들은 코만도 훈련 및 공수 훈련, 정글전 훈련을 거친 뒤 1943년에서 1944년까지 수마트라 섬에서 해안에서 17번의 상륙작전과 비정규전, 사보타주,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했다.[3] 인슐린데 군단은 일본 항복 후 네덜란드 포로를 수색, 구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한편 1942년 3월 아이린 공주여단에서 48명이 자발적으로 지원하여 이중 25명이 코만도 훈련을 마쳤고 이들은 제2네덜란드부대를 구성하였다.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인원이 증가한 제2네덜란드군은 원래 말레이시아와 수마트라 섬에 파병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고 1943년 아라칸 전역에서 일본군과 맞서기 위해 버마에 파병되어 1944년 7월 귀환했다.

귀환한 부대는 1944년 9월 네덜란드의 레지스탕스 세력과 접촉하기 위해 독일에 투입되었고 연합군 공수부대와 합류하여 마켓 가든 작전에 참가했다. 또한 같은해 11월 네덜란드의 발헬렌 섬을 해방시키기 위해 투입되기도 했다. 1945년 5월엔 인슐리데 군단과 제2네덜란드군, 특임사령부를 포함한 154명으로 인원이 증가하였고 같은해 7월, 여러 팀이 수마트라 상공에 공수작전으로 투입되었다.

이후 1945년 10월 네덜란드 해방 후 제2네덜란드군이 해산되었고 다음달인 11월에 인슐린데 군단 역시 해체되면서 대원들은 각각 블루멘달의 훈련사령부인 Stormschool에 배치되거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들어가 식민지 관리에 투입되었다.

한편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이 발발한 뒤 네덜란드는 DST(Depot Speciale Troepen)라는 특수부대를 창설하여 전직 인슐린데 군단, 혹은 제2네덜란드군 출신 대원들을 배속시켰는데 레이먼드 웨스털링 대위가 이들을 지휘했다. DST는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 제거 및 반게릴라 작전을 수행했고 여러 가혹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1948년 DST는 KST(Korps Speciale Troepen)로 이름이 변경되었고 까마귀 작전(Operatie Kraai)에 투입되어 네덜란드군과 함께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임시수도인 족자카르타를 점령, 수카르노 대통령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고위 지도자들을 체포했다.

네덜란드의 이런 행보에 1948년 12월 24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63호를 채택하면서 네덜란드에 인도네시아를 향한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대통령과 정치범들을 석방할 것을 촉구하였고 유엔의 압력으로 1949년 6월 29일 네덜란드군이 족자카르타에서 후퇴하게 된다.

이후 미국의 개입까지 거쳐 네덜란드가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되면서 인도네시아가 독립하면서 부대는 네덜란드로 귀환했고 1950년 7월 1일 의회권고로 KST와 Stormschool이 통합되어 현재의 KCT(Korps Commandotroepen)가 창설되었다.

1950년대 당시 KCT는 장교 및 부사관, 징집병으로 구성된 3개 중대로 구성되었으며 냉전 동안 NATO바르샤바 조약 기구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전쟁 발발시 적진 뒤에서 특수정찰, 사보타주, 정보 수집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1960년대에 국제 정세가 변화하고 예산이 삭감되면서 KCT는 한개 중대로 축소되어 제104 관측 및 정찰 중대[4]로 변경, 네덜란드 육군 제1군단 사령관 직속부대가 되었다. 당시 KCT는 소현 침공 시 레지스탕스를 양성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후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면서 냉전 위협이 줄어들어 부대 임무가 대폭 변경되면서 KCT는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게 된다. 소련 붕괴 이후인 1991년 이라크에 6명의 KCT 대원이 파견되어 정보 및 통신을 제공한 걸 시작으로 1994년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유엔 보호군 평화 유지 임무를 수행하면서 산악 지역에서 특수 정찰 및 순찰 임무를 수행했고 1995년부터 1996년까지는 IFOR에서 1996년에서 1998년까지는 SFOR 에 배속되어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이들은 네덜란드 해상특수작전부대의 전신부대인 제11보병중대/특수지원해병부대[5]와 협력하여 크로아티아 전범 등을 체포했고 2001년 귀환했다. KCT는 2001년 미국에 벌어진 9.11 테러를 계기로 대테러 역량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편 같은해 알바니아 공화국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의 긴장상태가 고조되자 NATO가 개입하면서 KCT가 태스크포스 폭스에 배속되어 북마케도니아에서 적들의 무기를 노획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다음해인 2002년 12월에 임무는 종결되었다.

2003년엔 네덜란드도 본격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에 참전하면서 KCT가 ISAF에 배속되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인 카불에 파병되었고 KCT는 정찰임무를 수행했다. 임무 중 대원 한명이 급조폭발물(IED) 때문에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서 부대는 2003년 말 귀국했다.

한편 2004년 11월 10일엔 네덜란드 외무부가 코트디부아르 내전으로 아비장에 있는 네덜란드 시민과 외교관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하면서 11월 11일 KCT가 네덜란드 공군 함께 아비장에 파병되었다. KCT는 프랑스군과 협력하여 네덜란인 59명의 대피를 마친 후 네덜란드 대사관 보안 임무도 수행했다 KCT는 11월 14일 마지막 외교관을 데리고 네덜란드로 귀국했다.

또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KCT는 SFIR에 배속되어 마약 밀수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무탄나 사막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이들은 마약 밀수 세력을 급습하고 이라크 주민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했다. 부대는 2005년 귀환했다.

같은해 2월엔 네덜란드 정부가 미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 지방에 KCT와 해상작전부대, 네덜란드 공군의 치누크 헬기 4대와 군수부대로 이루어진 태스크 그룹 오렌지(Task Group Orange)가 파병되었다. 태스크 그룹 오렌지는 반군을 찾아 무력화하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감시하며 파키스탄으로 탈레반이 이동하는 걸 방지했다. 이후 2006년 오렌지는 치열한 전투가 잦았던 헬만드 지방에 파견되었다.

또 2006년 여름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이 격화되면서 이스라엘이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폭격을 감행한 후 외무부는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고 같은해 7월 14일 KCT와 BSB 대원들이 대피를 돕기 위해 파병되었다. 이들은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동맹국의 군대와 통신하며 수도 베이루트에서 네덜란드 대사관을 확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나흘 뒤 대피를 요청한 네덜란드 국민들은 모두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같은해에는 KCT가 네덜란드 해상작전부대와 태스크포스 바이퍼(Task Force Viper)를 구성하고 우루즈간 주에 파병되었다. 병참부대가 기지를 건설하는 동안 태스크포스는 정찰 임무를 수행했고 2007년 봄, 초라 전투에서 적 진지의 측면을 공략하면서 네덜란드 군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2007년 말까지 KCT는 사망자 없이 임무를 수행했고 이때의 무공으로 2009년 마리위스 크룬(Marinus Kroon) 대위가 기사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2009년 KCT는 태스크포스 55에 배속되어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되었다. KCT는 파병기간동안 탈레반과 싸우며 적들을 교란하고 목표를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그만큼 많은 전투에 노출되었다. 이들은 지역의 마약카르텔, 민병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싸웠고 같은해 7월, 대원 9명이 적지에 공수 작전을 수행했다.

같은해 9월엔 작전 중 케빈 라이트 상병(Kevin Rijdt)이 헬만드 계곡에서 전투 중 치명상을 입었고 그의 동료 여섯명이 맹렬한 포격 속에서 그의 시신을 가지고 탈출하는데 성공해 훈장을 수여받았다. 태스크포스 55는 2010년 8월 네덜란드가 우르즈간의 태스크포스를 떠나면서 임무가 종료되었다. 기스 투인만(Gijs Tuinman) 소령은 당시 영웅적인 리더십을 보여준 공로로 2014년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에게 훈장을 수여받았다.

한편 2013년 12월 남수단에서 내전이 격화하자 같은달 19일 KCT가 C130 수송기를 타고 남수단 수도 조에바에 배치되어 다음날 80명을 대피시켰다. 대피한 인원 절반이 네덜란드인이었다.

2014년부터 KCT는 말리에서 지역 안정화의 일환으로 파병되었고 육상 태스크 그룹 스콜피온(Special Operations Land Task Group Scorpion)에 배속되어 사헬 지역에서 민병대 등의 활동 정보를 수집했다. 2016년 12월엔 대원 32명이 HAHO 점프를 수행하기도 했다. 또한 2015년부터는 대IS 군사 개입에 참가하여 2018년 봄까지 이라크 육군과 페쉬메르가를 훈련시켰고 바그다드에서 이라크 특수부대를 훈련시켰다.

또 같은해인 2018년 KCT가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독일 특수부대인 KSK와 함께 군사자문 임무를 수행하며 아프간 군을 훈련시켰으며 2019년 5월부터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배치허가를 받았다. 이런 자문 임무는 2021년 4월 30일까지 이어졌다.

같은해 12월 5일 네덜란드 특수작전사령부가 창설된 후 KCT를 비롯한 네덜란드군 특수부대가 특수작전사령부 휘하로 배속되었으며 KCT를 지원하기 위해 네덜란드 국방부는 참모중대를 지원중대로 전환하고 교육중대와 참모진에도 추가 인력을 지원했다.

이에 힘입어 2021년 6월 1일 지원 중대가 공식으로 설립되어 군수, 의료, 연락 소대는 새 인력과 장비를 제공받았다. 또한 전술 정보를 위한 정보 셀, 폭발물 탐지/제거를 위한 전문 EOD 및 엔지니어, 부대를 위한 이동 수술 팀이 추가되었으며 전투 통제팀은 헬리콥터 작전과 UAV 작전을 지원한다. 마지막으로 KCT의 군견 핸들러 팀이 추가되었다.

2021년 8월 16일부터 KCT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대사관 직원 및, 통역사 및 네덜란드에 정보를 제공한 아프가니스탄인들의 대피를 위해 파병되었다. 카불이 함락된 후 KCT는 해상특수작전부대, BSB, 네덜란드 공군 제336비행편대, 외무부와 협력하여 대규모 대피작전을 수행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KCT는 목요일까지 2,500명 이상의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그리고 다음해인 2022년 12월 21일, 부대 내에 제102중대가 창설되었으며 이들은 KCT와 해상특수작전부대 대원으로 구성되어 적진 및 위험구역에서 정보 수집 및 전투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3. 편제

  • 코만도부대 (Korps Commandotroepen)
    • 본부 지원 중대 (Stafverzorgings Compagnie)
    • 특수작전 훈련 및 교육 중대(Opleidings- en trainings Compagnie Speciale Operaties)
    • 제102 중대 (102e Compagnie)
    • 제103 코만도 중대 (103e Commandotroepen Compagnie)
    • 제104 코만도 중대 (104e Commandotroepen Compagnie)
    • 제105 코만도 중대 (105e Commandotroepen Compagnie)
    • 제108 코만도 중대 (108e Commandotroepen Compagnie)

KCT의 편제는 다음과 같다. 코만도 중대 안에는 각각 수중, 산악, 고공 등 각각 임무환경에 특화된 팀이 여럿 배치되있으며 팀은 8명의 오퍼레이터로 구성되는데 의무주특기 2명, 폭파주특기 2명, 통신주특기 2명, 저격수 2명이 한 팀을 이룬다. 팀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 통신 주특기: 라디오부터 전술 위성까지 다양한 통신장비 사용. 이 외에도 정보 수집 혹은 표적의 신원 확인과 같은 사진 및 장비 취급을 전문으로 한다.
  • 폭파 주특기: 폭파를 전문으로 수행하며. 적의 고가치 목표물을 파괴하는 사보타주, 통로를 개척하는 브리쳐, 급조 폭발물(IED) 식별/처리 임무를 수행한다.
  • 의무 주특기: 전장에서 아군의 응급처치를 담당하며 1명 이상의 환자를 최대 72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응급처치나 치료 외에도 일반적인 의료 지원을 제공하기도 한다.
  • 저격수: 적 표적을 관찰하고 제거하는게 주임무이며 최대 1.8km 거리의 표적을 제거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위장도 수행한다.

4. 선발

네덜란드의 현역 군인, 혹은 민간인이라면 누구든 KCT에 지원할 수 있다. 최소 조건으로 중등교육을 마친 자여야 하며 여성도 지원이 가능하지만, 요구사항 때문에 선발을 통과하긴 힘들다.

민간인의 경우 20주 동안 기초 군사 훈련에 돌입하며 KCT 교관들에게 야영, 사격술, 독도법을 교육받고 이를 마친 지원자는 현역 군인들과 함께 예비 코만도 훈련을 시작할 수 있다.

예비 코만도 훈련동안 지원자는 기초 군사 기술을 더욱 심화하고 특수작전에 필요한 역량을 시험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장하며 팀원들간의 유대감을 형성하고 마지막인 시험주간에는 초급코만도 훈련을 수행하기 적합한지 판단하며 마지막날 부모님이나 친척을 불러 설명을 듣게 된다.

이 과정을 통과한 뒤 마침내 지원자는 8주간의 초급 코만도 훈련에 돌입하는데 로센달 근처에서 현장 활동 및 독도법 및 행군 등으로 지원자를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최종 테스트에선 명령 및 통제, 등반, 격리, 침투, 정찰, 심문 등을 평가하며 5일간 약 200km를 이동하는 행군으로 끝이 난다. 이를 피로라고 마지막에 배낭을 메고 25km 행군을 마치면 녹색 베레모를 받고 KCT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을 수료한 신입대원들은 이후 52주간의 고급 코만도 훈련에 돌입하는데 그동안 CQC, 기초 공수 훈련, 산악전, 정글전, 시가전, 공격 및 방어 운전, 헬기 이동 및 응급처치, 고공강하(HALO/HAHO), 수중 침투 등 각종 특수전 교육을 수료한다. 이 과정을 모두 수료한 대원은 KCT의 코만도 중대 중 한 곳에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5. 장비

6. 관련 문서


[1] 대테러, 직접타격, 특수정찰, 사보타주, 정보수집, 군사훈련, 비전투원 대피 등[2] 현재 스리랑카[3] 모든 작전이 성공한건 아니고 와인 밀링(Wijn malen)중위가 일본군에게 붙잡혀 고문 후 살해당하기도 했다.[4] 104 Waarnemings- en Verkenningscompagni[5] 11de Infanteriecompagnie/Bijzondere Bijstandseenheid Mariniers, BBE-Marini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