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28 22:12:27

IBK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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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계열사4. 관계사5. 공익재단6.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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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소기업은행을 주축으로 하는 금융 특화 기업 집단. 아직 지주 회사가 없다.

2. 역사

기업은행이 금융사업 확장에 나선 것은 1986년 한국기업리스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같은 해에 기은개발금융 및 한국기업개발금융을 세우고 1991년 기은전산개발, 1992년 기은할부금융, 1993년 송탄상호신용금고 등을 각각 인수하거나 설립해서 사세를 확장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 후 일부 자회사들을 정리하고 2007년에는 CI를 바꾸면서 각 사명을 'IBK'로 일원화시켰다. 2008년엔 IBK투자증권, 2010년 IBK연금보험을 각각 세워 증권보험업에 각각 진출했다. 2023년 벤처캐피탈 IBK벤처투자를 출범하였다.

3. 계열사

4. 관계사

  • KDR한국기업서비스: 행우회 출자 인력/관리업체로 1986년 12월에 설립하였다.

5. 공익재단

  • IBK행복나눔재단

6. 스포츠

  • 은행을 설립하면서 함께 만든 남자 실업농구 팀이 가장 유명했다. 김영기 전 한국농구연맹 총재를 비롯해 김승규[2], 신동파, 곽현채, 김동광, 최철권, 이민현[3], 정재섭, 장일 같은 걸출한 스타를 배출해 내며 1970~80년대 전성기를 누렸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의 삼성전자, 현대전자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기아자동차, SBS와의 스카우트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신인들로 무장한 고려대학교, 연세대학교 같은 대학팀들이 급부상하면서 약화되었다. 하지만 최하위를 맴돌던 한국은행, 한국산업은행과 달리 김상식, 이민형을 주축으로 하여 1995 코리안리그 1차 대회 준우승을 기록하는 등 실업팀들과 대등한 경기력을 보여 주면서 다크호스로 떠오르던 팀이었다. 1997년 프로농구 불참을 선언한 후 나산그룹이 농구단을 인수하여 기존 선수들을 거의 받아들이고 광주 나산 플라망스, 여수 골드뱅크 및 코리아텐더가 되었다가 현재의 수원 kt 소닉붐에 이르고 있지만 kt측은 기업은행 시절의 기록을 승계하지 않는다.
  • 이외에 기업은행 실업 야구단(1962~1977년)과 기업은행 실업 축구단(1969~1997년)을 운영하기도 했으며 김성근이 투수 코치로 일한 적이 있다. 1977년 사격단도 창단해 1997년 외환 위기 여파로 해체했다가 2004년 재창단했다.
  • 2011년 경기도 화성시를 연고지로 하는 V-리그 여자 배구단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를 창단했다. 당초엔 남자 농구 재진출을 염두에 뒀지만 '남북통일 이전까지 신규 창단 구단을 받지 않는다'는 KBL의 방침 때문에[4] 계획을 바꿔 여자 배구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2020년대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농구의 인기가 많이 떨어졌고 매각을 추진 중인 기업도 몇 곳 생겼다. 게다가 고양 데이원 점퍼스 관련 일련의 사태로 최초의 제명 사례까지 나왔는데 결국 대명소노그룹의 소노인터내셔널이 농구단 창단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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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 송탄상호신용금고 인수 기준.[2] 은퇴 후 명지대 감독을 거쳐 1996년까지 KBS와 SBS에서 리포터로 명성을 날렸고, 독립프로덕션 스포츠아트와 게스트하우스 '킴스카라반'도 운영했다.[3] 전 조선대학교 감독.[4] 매각하려던 기업 역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