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2. 다두정(Polyarchy)
2.1. 준민주정(Anocracy)2.2. 식민지 정부(Colonial Government)2.3. 국가민주주의(National Democracy)2.4. 과두정(Oligarchy)2.5. 금권주의(Plutocracy)2.6. 친위대 과두정(Praetorian Oligarchy)2.7. 임시정부(Provisional Government)
3. 무정부주의(Anarchism)3.1. 개인주의적 아나키즘(Individualist Anarchism)3.2. 신비주의적 아나키즘(Mystical Anarchism)3.3. 국민 아나키즘(National Anarchism)3.4. 사회 아나키즘(Social Anarchism)3.5. 무법상태(Statelessness)
4. 반동주의(Reactionary)4.1. 귀족반동(Aristocratic Reaction)4.2. 반동 밀교주의(Reactionary Esotericism)4.3. 반동 대중주의(Reactionary Populism)4.4. 종교 근본주의(Religious Fundamentalism)
5. 수정사회주의(Revisionist Socialism)5.1. 농경사회주의(Agrarian Socialism)5.2.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5.3. 밀교사회주의(Esoteric Socialism)5.4. 민족주의적 사회주의(Nationalist Socialism)5.5. 종교사회주의(Religious Socialism)5.6. 공상적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
6. 인민사회주의 (Popular Socialism)7. 자유주의(Liberalism)8. 전위사회주의(Vanguard Socialism)9. 전제주의(Despotism)10. 진보주의(Progressivism)11. 촉진주의(Accelerationism)1. 개요
게임 Hearts of Iron IV의 모드인 Red Flood에서 등장하는 사상을 다루는 문서.2. 다두정(Polyarchy)
다두정(Polyarchy)는 예전에 사용된 우익권위주의(Right-Wing Authoritarian) 이념을 대체합니다. 우익권위주의의 설명은 실 상황에서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애매모호했습니다. 이 이념에 해당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원 역사에서 "우익"에 속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고 정확하게 정치 체제나 그 뒤에 있는 신념 체계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몇몇 하위 이념들은 우익에 속하거나 적어도 약간 보수적인 성격을 가지면서 보수주의에 포함되는 하위 이념들보다 민주적이지 않기도 합니다. 이 이념의 일반적인 특성은 이제 이름 그 자체인 다두정(Polyarchy), 즉 여러 명의 통한 지배로 더 분류됩니다. |
2.1. 준민주정(Anocracy)
준민주정(Anocracy)는 공화국과 왕국, 반동적인 것과 혁명적인 것, 자유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한 이념적 갈등을 간단하게 분류하고자 하는 시도에서 나온 이념적 해석입니다. 그러나 세계 대전 이후 발생한 공산주의, 촉진주의등의 새로운 국제 운동들 처럼 이 이념에 속하는 정부들은 "자유롭지 못한 것" 과 "자유로운 것" 의 잣대 하에 간단히 분류되지 않습니다. 대전 이후의 불안정한 상황에서 발생한 국가들 중에서는 어떠한 이념적 공동체하에 묶이지 않은 예를들면 대표적인 군사 독재국가와도같은 정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정부들을 '준민주정국가'라고 분류합니다. 준민주정(Anocracy)에는 다양한 정부들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제 2제국은 가끔씩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국민투표를 기반으로 왕위의 합법성을 보증했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압력으로 국가와 경제가 자유롭게 개방되는 방식으로 발전했습니다. 준민주정(Anocracy)는 때로는 말로는 헌법적이고 시민의 의지를 대표한다고 선언하나 사실상 한 정당이 국가 기관과 후견인들로 구성된 인적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지배 정당으로 행동합니다. 또 다른 경우에는 권위주의적으로 정의되지만 내부 당 선거 및 일부 문제에 대한 공개 투표와 같은 민주적 특징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혼합 정부는 처음부터 "의도한 설계"가 아니라 내부 및 외부 압력으로 인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준민주정(Anocracy)의 개념에는 이상적인 것이나 교리주의적인 것이 거의 없습니다. 반(半)독재 정부와 지배적 당 기반 민주주의들을 통합하려는 인터네셔널 준 민주정 기구(Anocractic International)도 없습니다. 그러나 잘 관리될 경우 이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안정적이고 결정적인 지배력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리더십의 질은 이 시스템이 진화의 정부인지, 그리고 그것이 정체의 정부인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
2.2. 식민지 정부(Colonial Government)
심지어 식민주의라는 것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해왔습니다. 땅, 시장, 자원을 찾거나 자신의 종교와 제국을 넓히는 것과 같은 정당한 이유를 주장하는 것 같은 일부 요소는 계속해서 유지되는 것처럼 보인다만 관할하는 영역이 넓어지고 기술과 행정 전문성이 함께 성장함에 따라 통치 체제도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그래도 식민지 정부의 건전성을 검토하는 요소 중 하나는 , 통제 수단은 항상 지배국의 지시하에서 감독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식민지는 지배국의 분리불가능한 일부는 아니다. 이것은 식민 과정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직접적인 정착이 장려될 수 있으나 같은 행정 체제가 대체로 바다 건너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대신 식민지 정부는 법과 통치 법률 등을 승인 받는 정도의 사한에 대해서만 제국 수도에 보고합니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쳐 정착이 줄어들고 경제적, 전략적 이유로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하게 됨에 따라 안정된 통치와 자원 추출을 보장하기 위해 행정 항목은 보다 복잡해졌습니다. 한편 조국의 일에 대한 의견을 제공하지 않는 식민지들조차 지역 정부의 권한을 점차 더더욱 많이 위임 받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임명된 해당 지방의 정치 세력이나 자문단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데 행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 반면 기존의 권위자들인 왕, 장로들 등은 식민 제도에 점점 통합되며 수도로 세금과 인력을 동원하는 동안에 일정한 자율성을 부여 받게 됩니다. 따라서 식민정부는 외국 국가를 확보하기 위해 그린 지도위의 쭉쭉 그어진 선들 이상입니다. 이들 땅을 본국 출신의 정착민과 고비용의 주둔군 없이 통치할 수 있도록 가능케 하는 정치적, 상업적인 관계는 속임수 같이 복잡합니다. 대체적으로, 대외전쟁의 비용과 그것이 일으킨 사회 정치적 긴장감 때문에 식민지의 자치권이 증대하는 추세입니다. 세계의 나머지 식민지들이 후기의 대영제국 라자들 처럼 극적인 분리점을 맞이할지, 아니면 제국 간 관계를 계속해서 재검토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
2.3. 국가민주주의(National Democracy)
이상주의자들이 말한 것과는 관계없이 국가 간의 경쟁은 제로섬 게임입니다. 지난 대전쟁은 충분한 증거였다. 이 기본적인 진실을 잊고 지속적인 투쟁을 무시하면 모든 것을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국가 혼란과 정치적 교착 상태의 산파가 되었던 부도덕한 자유주의는 이를 대표합니다. 그러나 대중들을 대변하지 않는 귀족 대신에 자신들의 정부에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 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테네와 로마의 시민 민주주의는 선의와 군사 의무와 밀접하게 연결되었습니다. 일부는 그 자유주의적 특성, 약점을 버리고 개념을 순화하고 강화시키는 것이 나온다 그것이 바로 국가민주주의(National Democracy)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을 정의하는 비-자유주의 공화주의의 모호한 개념 이외에 무엇이 있을까? 아마도 이 이름을 만든 첫 이론가는 폴란드 국가주의자인 로만 두모프스키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 제국과의 타협으로 인해 그 정당성이 크게 손상되었지만 그가 꾸린 단체 엔데차(Endecja)는 민주적이지만 반다양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폴란드 적 정치 체제를 건립하는 것을 추진했습니다. 잠시 존재한 전후 프랑스의 극우 정부는 주로 군주제와 관련이 있었지만 제3공화국의 파벌주의를 규탄하는 공화주의 파벌도 있었습니다. 그들의 후계자 중 일부는 민주주의를 완전히 버릴 수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국민과 국가의 단결이 정당과 민주적 과정을 통해 표현될 수 있으며 때로는 리더가 데모스(민중)의 현신으로 표현되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국가민주주의는 강력한 정부 권력을 선호합니다. 지도자나 정당이 국민의 대변자로 대표된다면 자유주의 입법에 의해 제한되는 대다수의 의지를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권한을 부여받으면 체제는 국가 통합, 정치 및 문화적 위협으로 간주되는 것을 배제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러한 방식이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로 대변되는 각 이념 이름의 두 부분을 서로 상충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당내와 당외에서 여전히 민주주의 구조를 유지하고 독재정 체제를 막아내는 있는 정부를 가리킨다. 이 이념은 자유주의의 구조적 부패에서 벗어나면 역사의 페이지에 사라지지 않을 유일한 종류의 대표 정부를 허용한다는 것을 주장합니다. |
2.4. 과두정(Oligarchy)
과두정(Oligarchy)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조직 형태 중 하나이며, 개념적으로는 특정한 사람들이 피, 지위, 부, 직책 등으로 서로 묶여 결합된 형태의 정치체제다. 적은 수의 인물들이 다수를 지배하는 이 기본적인 원리는 모든 시대를 통해 지속되어 왔으며, 필요에 따라 세분화되고 명료화되었습니다. 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 현상이 우리 시대까지 진화하면서 다양성, 형태, 기능, 모든 복잡한 발전을 이루는 잠재성을 지닙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왕정과 민주주의의 중간 지점인 "중용(中庸)"으로 간주되어 왔기에 이의 미덕은 국가를 효과적으로 다스리면서 법을 적용할 때 제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위기의 시기에는 지방의 권력자들이 입법자가 없는 상황에서 지방을 방어하고 법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연합을 이루었습니다. 그리스나 스페인 반도의 전쟁의 군벌 등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는 정부의 필요해지는 순간 영역내 세력 사이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것이고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과두정(Oligarchy)은 지역의 엘리트들과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현대 세계에서 부유한 사업가들의 세력, 준봉건적 카시케스(남미 제도의 부족) 그룹, 강력한 정당체제, 혹은 분권적인 권위주의 정권 등과 비슷할 수 있습니다. 명시적으로 엘리트적인 것이든, 무언의 부족들로 이루어진 것이든, 과두정(Oligarchy)정권은 모든 관련 당사자들 간의 복잡한 필요성, 연합, 불만, 이해관계 등을 다루는 네트워크망을 자랑합니다. 과두정(Oligarchy)은 수많은 움직이는 부분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기계이며 그 안에는 그것의 약점과 강점이 있습니다. 위대한 정치가는 그것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거나 보다 위대한 목적을 위해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지만 시스템 속 숨겨진 이해관계들은 그들의 권력이 침해 받게 된다면 모두 함께 연합해 저항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는 지배의 과잉을 경계하기 위한 정당한 경고로써 작동합니다. |
2.5. 금권주의(Plutocracy)
왕위의 왕관과 의복만이 신분의 표시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럽의 중세 상업 공화국, 혁명 이후의 자유주의 국가, 심지어 옛 로마 공화국에서도 귀족 출신이 아닌 부와 그를 통해 제공된 영향력으로 지위를 유지하는 시민 계급이 있었습니다. 인두껍을쓴 채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상종 못할 상놈들에서부터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 등 이 돈으로 만들어진 귀족들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비판이 가는 곳마다 이어졌습니다.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사례는 많지만 상속재산을 통해 부와 권력이 축적되는 상속 지배층과 달리 금권주의(Plutocracy)는 오로지 부를 바탕으로 엘리트를 선발해 정부를 다스립니다. 그러나 흠이 있는 민주주의나 권위주의 체제를 금권주의(Plutocracy)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실제로 부의 기준만으로 직접 지명된 인물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엘리트 계급의 영향력을 활용하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대표하기 위한 로비로 선출된 공직자가 되어 기존의 시스템을 훼손하는 과정에서 금권주의(Plutocracy)가 성장합니다. 또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와 같이 자체적인 외교, 사법 및 화폐 발행 권한을 가지는 투자자들의 이사회가 직접 정부를 조종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국가의 붕괴로 인해 발생한 것 일 수 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금권주의(Plutocracy)는 비난적인 의미로써 사용되어왔습니다. 좌파, 우파, 심지어 일반 대중으로부터도 이 시스템의 우선순위는 이 계급의 직접적인 이익과 일치한다는 의심이 존재합니다. 이는 상류층에서는 재산적 이익이 축적되는 반면 하류층은 이로 인해 손해를 입는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국내 투자보다 국제 투자에 우선되어 질 수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가장 자비로운 상황에서는 금융 엘리트는 자신들의 투자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맹목적인 재산 획득에 대해 거리를 두고 이를 나라의 이익과 조화롭게 유지하려는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용병과도 같이 이 경우 물질적 이익을 위한 시각은 가치 있는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
2.6. 친위대 과두정(Praetorian Oligarchy)
군대는 모든 결점과 영광과 함께 인류 문명의 기반 중 하나이며 역사를 통틀어 중요한 정치적 요소였습니다. 이는 정권과 국가 전체에 대한 운명의 바퀴 역할을 하였으며,오늘날에도 이름값에 걸맞은 모든 국가에서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이러한 현실의 어두운 진실은 때로 권력에 대한 탐욕만을 일으킵니다. 필요성이나 야심에 따라 '군부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 원형은 가능성과 위험이 모두 있습니다. 때로는 군사적 조직의 창설이 필요한 결정적인 정치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곧 움직임은 군복을 입고, 전쟁 북소리에 맞추어 행진하게 되고 그 기관은 엄격한 규율과 명령 체계를 따릅니다. 그들의 지도자는 이젠 엄중한 경례로 환영 받으며 그들의 전설은 군인의 신조로 변모합니다. 또는 시민 정부가 국가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빠르게 군사 당국에게 교체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국가의 마지막 방어선은 그 목적을 충실히 이행합니다. 임시적이든 영구적이든 국가가 군대에 예외적인 미사용 권한을 부여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군인들에게 바친 경의는 분명합니다. 카우디요와 같은 폭군이 뿜어내는 매력적인 카리스마와 이를 혼동하면 안되는 것이 단순히 한 사람에 의해서 휘둘리는 전제정의 형태가 아니다. 우리가 지켜보는 것은 군대가 기관으로서 정치체제에 복종하며 군벌이나 권한이 약한 단일 독재자를 통해 규칙, 사회, 상징을 갖는 길드와 같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사의 자연적 권리가 그들 카스트에 기반하여 사무직들과 상인들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
2.7. 임시정부(Provisional Government)
가끔씩 구 세계가 죽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곤 합니다. 정치적이거나 무장한 투쟁을 통해 독립이 쟁취되어집니다. 국민에 의해 정부가 전복되곤 합니다. 헌법 개혁이 심각한 필요성을 띠게 되어 체제는 스스로 분해되고 재조립하며 이전 정치 계층이나 외부에서 온 정치인들과의 계약 조건을 다시 협상하곤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의 거친 짐승은 권력을 향해 무릎꿇고 태어나며, 미래에 대한 추상적인 질문들은 "그래서 이제 뭐함?"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로 대체됩니다. 이런 중간 단계에서 새로운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종종 임시 정부(Provisional Government)입니다. 이 용어는 일시적인 시스템을 묘사하는 것으로 정부의 첫 구조가 구성될 때까지 사회의 일상적인 기능을 유지합니다. 정치의 현실은 대규모 변화를 위한 운동은 특히 행정의 세부 사항에 대한 일관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화를 관리하고 임시 기간 동안 공공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임명 또는 집단적인 지도력이 필요하다. 이전 기간이 끝나면 이를 조율한 정부에게 권력이 이전 되며, 종종 취임을 위한 선거가 생깁니다. 이 용어는 이데올로기보다는 타협으로서, 정부의 첫 구조가 구성되는 동안 사회의 일상적 기능을 유지하는 일시적인 체제를 설명합니다. 정치의 현실은 대대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이 행정의 미세한 세부사항을 포함하여 이후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대한 통일된 비전을 갖기는 드물다는 것입니다. 잠정 기간 내에서 논의를 관리하고 공공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메커니즘이 활용되어야 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임명 또는 집단 지도를 포함합니다. 이전 기간이 끝나면 일반적으로 선거를 통해 이 체제의 창설을 조장한 정부에 권력이 양도 됩니다. 임시 정부의 모순점은 딱보기에도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최종적인 정부 계획이 민주적이더라도 그것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은 대개 대중 참여에 대한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습니다. 과정의 안정성이 중요하지만 그것은 때가 지나면 해체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강한 지도력이 집행 과정을 감시하는 것은 독재가 다가오는 징조일까요? 그리고 조율 작업의 조심스러운 협상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조율을 이른 시기에 완화 시키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임시 기간 동안에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정치에서 미봉책보다 더 영구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
3. 무정부주의(Anarchism)
과거에 사용된 개인주의 아나키/사회 아나키/무법상태 라는 삼분법은 "이와 다른 경로는 실패한 것"이라는 편견이 포함된 엉성한 분류였습니다. 새로운 하위 이념들은 아나키스트의 복잡성을 더 잘 반영하며 정치적 형태나 정부 또는 비정부의 신념을 포함합니다. 1930년대가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좌우라는 이념적 잣대로 분류하기 더욱 어려운 아나키즘의 사례들 까지도 설명 하고 있습니다. |
3.1. 개인주의적 아나키즘(Individualist Anarchism)
태초부터 인간은 노예의 멍에를 지어왔습니다. 봉건적 귀족, 절대군주, 그리고 현대 의회 의원 나으리들 까지 모두 그들의 아랫 사람들의 몸과 영혼에 무거운 족쇄를 채워 빈약한 존재로 제한시킴으로써 그 쇠사슬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꿈을 꾸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혁명가들 사이에서도 국가의 명령에 따라 비참하게 노예로 미끄러지는 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가장 기초가 되는 사회 단위인 개인이 여전히 쇠사슬에 묶여있는 한 혁명이 무슨 소용인가요? 이러한 쇠사슬을 깨기 위해서는 정당이나 국가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 바로 자신에 대한 헌신이 필요합니다. 막스 슈티르너의 작품, 그리고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은 노조의 진부한 팜플렛이나 당사자들의 달콤한 말이 아니라, 각각 국가의 잠식하는 마이스마(역주 : 독성 기체를 이름)를 밀어내기로 결심한 영웅적 개인들의 행동이 가장 강력한 표현법이라는 것을 알아냅니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많은 이념들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정치 교리가 있지만 개인주의자들의 핵심 원칙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사회 조직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으나 집단의 힘은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좋게 활용 될 때와 나쁘게 게 활용 될 때 모두 이해하고있습니다. 그들에게 그것들은 단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즉 국가를 파괴하기 위한 도구로써 만 사용되어야 하며 혁명이 힘을 얻으면 차례로 폐기처분해야 한다 주장합니다. 개인을 질식시키는 각각의 연속적인 위계구조는 상승의 투지로 분쇄시켜야 합니다. 슈티르너의 추종자부터 줄스 보노 같은 불법주의자, 보스턴 학파와 같은 시장주의 아나키스트까지 각 개인은 자신의 영혼에서 태어나는 자유를 얻기 위해 자신만의 길을 찾으며 할수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이를 이루고자 합니다. |
3.2. 신비주의적 아나키즘(Mystical Anarchism)
많은 선동가들은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영역 이상의 혁명과 사회적 진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일부는 문화와 사회적인 세부사항에 뛰어들며 최상의 정책과 상호작용을 논한다. 그러나 일부 프로메테우스적인 영혼들은 영혼의 영역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신비주의적 아나키즘(Mystical Anarchism)은 정신적인 혁명이 사회적 혁명만큼 중요하며 아니 그보다 더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인류 집단의 영혼이야말로 우리가 정말로 해방될 수 있는 수단이다. 과거의 낡은 구조를 철저히 철거하고 인간 영혼을 가두는 제도와 개념으로부터 맹목적인 종속을 해방시킴으로써 궁극적인 해방이 가능합니다. 무엇이 "정통적인" 신비주의적 아나키즘(Mystical Anarchism)로 묘사될 수 있습니까? 이는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드미트리 메레시콥스키와 게오르기 출코프를 비롯한 상징주의 그룹들이 만들어낸 정신적인 수행과 신비주의 철학에 주류 무정부주의 이론이 종합되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마르게리트 포레트의 중세 서적이나 고대 영지주의적인 작품과 같이 훨씬 이전에서부터 이러한 발화점 시작되었다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후 이러한 이론은 더욱 확산되어 세계적으로 유사한 결론을 내리며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신비주의적 아나키스트(Mystical Anarchist)들은 그들의 아나키스트 형제들과 구분되는 몇 가지 요인을 통해 대체적으로 구별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요인은 영적 관대함으로 종종 애매한 기독교적 도덕적 가치를 주장하기도합니다. 그러나 일부는 이 길을 따르는 대신 더 이상적이거나 동양철학적인 탐구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둘째, 신비에 대한 인식 능력으로 환경과 은유적 텍스트에서 영적 측면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우주의 궁극적인 원리에 대한 깊은 욕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
3.3. 국민 아나키즘(National Anarchism)
무정부주의와 국가주의가 서로 절친한 친구가 되었던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의 사회주의 좌파적 친척 이념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아나키즘적인 시각에서는 민족주의는 인류의 형제애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며 군국주의를 가속화하는 도구이자 아마도 현대적 예속 국가 형성을 촉진시킨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나키즘적인 원칙에서는 이것은 전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례도 존재한다. 피우메 운동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빛나는 아나키즘의 선각자이자 미하일 바쿠닌은 1848년 반(反)빈체제 혁명에 민족주의 운동가들과의 공조를 통해 대규모 반란을 촉발하여 유럽의 대제국을 파괴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많은 다른 이념들의 하위 학파들과 마찬가지로 세계 대전과 그 이후의 여파는 무정부주의적인 전통의 균형을 무너뜨렸습니다. 일부 사회주의계 정당들이 자국의 전쟁 노력을 지지하는 것처럼 표트르 크로포트킨과 장 그레이브 같은 유명한 아나키스트들은 혁명의 장애물인 동맹국들에 대한 협상국의 승리를 공개적으로 선호한다 말했다. 이것은 형식적으로 규정된 이념의 연합은 아니었지만 무정부주의적인 원칙이 국가 이익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 더욱 역동적으로는 있었던 것은 "실제로 미래주의의 권위자 마리네티와 이탈리아 아나키스트들과의 연합"으로 부르주아적 정치 및 도덕을 파괴하고하는 공통된 열망으로 뭉쳐서 서로를 옹호했던 것이다. 이것은 기회주의적이고 도발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이들이 완전히 모순적인 것은 아니란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국민 아나키즘(National Anarchism)은 그럴싸하게 표현하자면 인본주의적 율법 따위 무시할 수 있는 아나키스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는 싫지만 극단적 국수주의로까지 빠질 수 있는 애국은 좋다는 사람들까지 포함된 광범위한 개념이다. 이들 조직 중 일부는 전후에 강경한 우익적 발언이 포함된 비판을 활용하여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그들 중 일부는 지금의 정부가 엘리트적이거나 영웅적인 국가적 이상에 방해가 되기에 이를 더 자율적인 단위로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나라 자체를 파괴하고 원시적인 정체성을 반영하는 동질적인 공동체로 분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 확실한 것은 중앙집권체제가 무너지면 국민들이 옳고 필요한 일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
3.4. 사회 아나키즘(Social Anarchism)
대부분의 이론가들이 제시한 공산주의 운동의 최종 목표는 계급, 돈, 국가가 없는 사회이다. 간단히 말해서 아나키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이에대해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정치적 좌파 계열에서 무려 한 세기 동안 논쟁의 소재가 되었다. 사회주의 인터네셔널이 생기려는 초기부터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은 최종적인 유토피아에 이르는 방법에 대해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오늘날 사회 아나키즘(Social Anarchism)으로 불리는 것은 과거 평등주의 운동인 디거스(역주 : Diggers 17세기 영국 농본사회주의 운동)와 같은 것들을 제외하면, 미하일 바쿠닌의 "집산주의적 아나키스트"로 시작되었다. 이 그룹은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독재적이며 반쪽짜리인 이념이라 칭하며 엄하게 반대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차르보다 더 심각한 폭군이 나타나는 싱황을 야기시킬 수 있을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자유의지주의적 좌파의 입장을 결사코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바쿠닌이 생산수단의 집산화를 주장했다면 아나코-공산주의는 더욱이 생산된 모든 것이 공유되어 인간이 번영을 누릴수있도록 하자 주장했다. 어떤 사람들은 생디킬리즘과 교접하여 노동 조합을 자치의 우선적인 단위로 보았다. 일부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정당이나 운동에 가입하는 것이 운동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라 생각하여 혁명을 위한 폭력적이고 대담한 행동을 통해 대중들이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줄 수 있다고 봤다. 국가권력 사용에 대한 양심으로서의 역할을 하거나 혁명가의 낭만적 이미지로서 사회 아나키즘(Social Anarchism)은 여전히 정치적 가능성의 경계에 존재한다. 현대성의 지속적인 위기는 독재를 위한 대규모 운동을 일으키도하지만 반대로 더 이상 국가와 시장이 이를 유발시켰기에 많은 사람들을 국가에 저항하도록 만들고 있다. 물론 세계대전의 여파는 국가중심 사회주의자(State Socialist)들의 명성을 드높인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도 오래된 논쟁은 해결되지 않았다. 만약 파리 코뮌이후 혁명적인 권력의 중앙 집중화에 대해 마르크스가 자신에게 회의적이 되었다고 한다면 역사는 가르칠 더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
3.5. 무법상태(Statelessness)
무법상태(Statelessness)는 아나키즘을 이야기함에있어서 부담스러운 단어이면서도 동시에 아나키즘(무정부주의)자체나 마찬가지다. 아나키즘 운동의 최종 목표는 국가 또는 전반적인 계급 체제의 폐지와 그 대신 다른 자발적인 질서의 설정이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정의는 정부의 순전한 부재로 어떤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목표보다는 빠져들기 쉬운 상태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혁명적 무정부주의" 라벨 아래에 분류되는 세 가지 무법상태(Non-state)가 있다. 첫 번째는 붕괴된 공공질서의 상태다. 세계의 한 부분을 지배하는 점점 중앙집중화된 관료주의 국가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모든 것이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으로 바뀔 수 있다는 두려움이 남아있다. 재해나 전쟁으로 인해, 이제 영토는 당장 손을 뻗어서 도달할 수 있는 지역 이상의 분명한 정치권력이 부재한다. 두 번째로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나 식민지의 외진지역에는 전통적인 국가로서 실제로 행정적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는 정치체제가 있다. 권위가 힘, 연장자 또는 영적인 의미를 기반으로 존재할 수 있지만 전통적인 국가와 같이 씨족, 부족 또는 무리 등은 구체적인 경계가 부족하다. 그들은 지도상의 경계를 무시하는 이동하는 세력 또는 유목민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아나키즘 원칙의 전면적이자 총체적인 실현으로 인해 무법상태(Statelessness)가 나타날 수 있다. 이 경우 아마도 사회는 전반적으로 조정하는 기관이 없는 고도로 지역화된 단위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것이 해방적인 발전으로 나아가는 길인지, 루소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자연 본성으로의 귀환인지는 누구의 꿈인지에 따라 다르다. |
4. 반동주의(Reactionary)
반동주의 이념의 내용은 레드 플러드의 몇 가지 경향을 반영합니다. 파시즘이 전통주의자와 모더니스트를 하나의 깃발 아래 통합하지 못한 것도 그 중 하나이고, 러시아 제국의 표면적인 생존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것도 그 중 하나이지만 모든 반동주의자가 파시스트나 차르주의자가 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시계를 되돌리고 근대성과 깨끗하게 단절하려는 소망이며, 그 결과 전통주의 극우와 덜 고생물학적인 형태 사이에는 더 명확한 구분선이 존재합니다. |
4.1. 귀족반동(Aristocratic Reaction)
문명의 긴 행진은 더욱 세련된 계층의 형성을 가져왔다. 군사적 강함을 보유한 상류층은 신성함이나 가문의 출신으로 정당화된 지식과 위신을 보유한 상류층과 결합되었다. 대중들이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는 개념은 이단자와 강도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러한 시각은 후기 계몽주의가 오기전까지 대부분의 기간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기호는 그들이 소비하는 것과 같아졌다. 역사적으로는 찰나일 뿐이지만 대중주의와 평등주의의 유령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사회적 질서를 뒤집었다. 이제는 그러한 이상을 위해 흘린 피바다 위에서 현대 성의 오류에 대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군주적 반동은 왕좌에 유순히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질서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기반은 인간의 불평등과 그 결과를 인식하는 것에 있다. 대중의 정치가 어디로 이끌어지겠는가? 세계대전과 1919 혁명을 제외하고는 없다. 대의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것은 다음 선거까지만 이어지는 유혹과 계략일 뿐이다. 그에 따라 귀족이 통치하고 이끌며 그들의 주민들을 보호할 준비가 된 궁정정치는 권장되어야한다. 대중의 참여는 공식적으로 승인된 창구인 축제나 폭동 등에서만 허용되며 다른 곳에서는 억압된다. 귀족반동(Aristocratic Reaction)은 과거의 유산과 현대적 문제가 만나는 곳이다. 단두대, 산업화, 대규모 징집 이후의 세상은 과거와 달라졌지만,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전통을 창조함으로써 과거와 다시 연결될 수 있다. 이 모델이 기초하는 것은 과거 군주에게서 내려온 만세일계의 정통성이 아니라 문화, 신앙, 혈통과 같은 귀족적인특징이여야만 한다. 그 이유는 더욱이 프랑스 혁명의 특징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국가 방위의 필요성은 여전히 봉건제국이 아닌 중앙집권적인 국가로 향하기 때문이다. 또한 불결한 대중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잠자고 있었던 이러한 이념의 매력을 다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이 이념은 다시 한번 말을 타고 다가와서 우리의 세계의 몰락을 멈추고 한때 자연스러운 원리로 인식되었던 원칙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한다. |
4.2. 반동 밀교주의(Reactionary Esotericism)
몇몇 신념은 우리가 아는 정치 조직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동가들에 의해 뽑혀진 대중주의 정치의 물결이 과연 복잡한 진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전의 모든 역사적 증거들이 아니다고 말하는데도 유물론자들이나 부패한 귀족들이 그들 자신과 나라를 구원할 수 있을까? 교리로 태고로 부터 내려온 진리들을 덮어버린 종교 기관을 우리가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의미의 붕괴, 질서의 쇠락이자 퇴화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과거로 돌아가 깨어 있는 엘리트와 함께 전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반동 밀교주의(Reactionary Esotericism)가 있다. 숨겨진 영적 지식을 찾기 위한 비밀 결사는 문명의 오래된 요소들 중 하나이지만 이 형태가 과거와 다른 점은 과거에 대한 갈망이다. 분명히 모든 지역에서 금기시된 영성에 노골적으로 관심을 갖는 단체가 있었으며 종종 지역 주류 종교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단적 형태로 또는 해외의 믿음과 융합하여 활동했다. 유럽의 옛 정권의 붕괴 및 세계적으로 파괴되던 전통적 사회 질서라는 상황이 개인적인 단체가 자유주의, 세속주의 및 경험주의등의 새로운 현상을 대항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을 수 있다. 만약 계몽주의가 인간을 진정한 의미에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면 그것이 진정으로 의미 있는 것이었을까? 현대성으로부터 멀어진 이러한 반체제 인사들은 다양한 학파를 구성하지만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잃어버린 고대적인 형이상학적 지혜를 강조한다. 그들의 임무는 그것을 빛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반동 밀교주의(Reactionary Esotericism)을 정치 운동으로 번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너무 엘리트주의적인탓에 의회내에서 경쟁하기에는 무리가있기에 그 집단은 기존 정당들 속에서 암약해 들어간 뒤 그들 사이에서 만들어내는 병행적 정치적 구조를 통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또는 그들의 조직과 음모론적인 성격은 의회 외의 활동을 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밀교적 계획의 세부 내용은 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통치의 일정은 핵심적인 성격을 유지한다. 즉 미덕이 있는 국민들이 조직에 참여하고 지난 몇 세기 동안 스스로 통치에 실패한 나머지를 지배하는 위치에 자리 잡는 것이다. |
4.3. 반동 대중주의(Reactionary Populism)
진보에 고통을 겪은 사람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기이한 일일 것이다. 역사의 전환점과 일반적인 상식이 된 사건들은 그것을 되돌리려는 사람들에 의한 반대를 맞닥뜨렸다. 공화주의와 자유를 위한 프랑스 혁명이 있었다면, 왕좌, 제단, 옛 권한들을 위한 쇼안네리(반 프랑스 혁명파)도 있었다. 유럽의 권력과 영향력이 동아시아에 들어갈 때, 농민들은 황제를 숭배하고 야만인을 쫓아내자는 존황양이의 외침 사이에서 단결했다. 사람들의 손이 혼란을 일으킨 것을 부수기위해 일어날 때 그것은 반동 대중주의(Reactionary Populism)의 모습을 취한다. 그들이 반대하는 것이 현재 당장 변화하고 있는 것이란 것을 기억하는게 중요하다. 현재 반동적인 경향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화주의와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예를 들자면 "제 2차 산업 혁명"과 이로부터 촉발된 변화에 반대하는 것이다. 경제와 가정의 환경, 노동 불안과 무산 계급화, 그리고 공공생활의 세속화 증대에 대한 대규모 파괴에 직면하여, 반작용은 재앙과도 같을 수 가 있다. 확실히 이러한 좌절에 대한 치료로 개혁과 혁명이 권장되었지만 이 같은 환경은 프랑스의 반유대주의 연맹이나 러시아의 흑백동맹과 같은 국수주의, 반 사회주의 운동을 만들어냈다. 대 전쟁은 이러한 조직들이 구원을 찾기 위해 과거를 바라보는 욕구를 고착시켰다. 만약 현대성이 이러한 위기를 초래했다면 그것이 무엇에 쓸모가 있겠는가? 프랑스 군주주의의 실패와 백군 러시아의 실종된 황태자 궐위로 인해, 지금까지 전통주의적 경향은 일반 민중들과 그들의 이상을 기반으로 유지해왔다. 반동 대중주의(Reactionary Populism)가 돌아갈 이상적인 과거는 맥락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믿음, 전통, 그리고 인종, 국적 또는 기타 문화적 라벨 같은 동일한 핵심 원칙을 가지고 있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에 대적하는 반면 그 정치적 성격의 대중성은 종종 어떤 형태의 정치 참여를 허용하며 무자비하고 이빨이 날카로운 자본주의로부터의 탈출을 가능케 한다. 혼란의 마주하면서 이것은 멸시당한 백성들이 질서와 의미를 되찾기 위해 피를 흘릴 준비가 된 사람들에 의해 들어 올리는 깃발이다. |
4.4. 종교 근본주의(Religious Fundamentalism)
이 세상은 타락했다. 우리 영혼에 대한 맹세와 도덕 원칙은 왜곡되어 버렸고 진창 속으로 처박혔다. 신성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사제들은 찰나의 권력에 무릎을 꿇어 그들의 계명을 훼손시켰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망이나 물질적인 목적만을 따르며 그 대가가 무엇인지 알지못하나니 그로 말미암아 저들의 길을 잃어버렸다. 볼 것이어다 이것이 종말이 아니면 무엇이더냐? 환난이자 라그나로크, 칼리유가, 일곱 개의 태양이로다. 그러나 많은 조상들과 같이 어떤 이들은 이 존재에 대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저들의 문화의 태초를 향해 돌아가고 종교 근본주의(Religious Fundamentalism)의 임무를 맡는다. 진실로 이 이념이 읊는 만병통치약은 그들을 주도하는 믿음에 따라 변화할 수 있지만 그 구조는 유사하다. 종교의 교리에 따라 정치를 행하는 것을 결정하며 그것이 실용적인가? 재해석의 여지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않는다. 때로는 교회나 당파의 계급이 나라의 계급이 되어 성자가 평신도들과 함께 정부의 공무를 맡는이 되거나 그들을 완전히 대체하기도 한다. 일부 경우에는 신이나 물질세계에 들어오지 않은 존재가 공식적인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어 일상적인 통치에서는 어떤 가치가 실현되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나라는 저의 힘을 사용하여 세계를 영적 이상과 일치 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형태는 근대에 대한 매우 의식적인 반응이로다. 종교적으로서의 권력이 정치적으로서의 권력이 분리되는 추세는 한 예시로 언급될 수 있으며 다른 예시로는 무역 또는 식민주의를 통해 등장한 외국 기술과 생각이 대중들의 정치적 자율성과 영적 안녕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인간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위치, 목표,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의 소속감이 의문을 제기하며, 물질주의, 성상파괴, 그리고 개인주의적인 사고로 인해 분열되고 있는 불안정한 시대에 대한 반응이다. 이러한 시대의 분열, 소외, 그리고 무질서에 대한 다양한 대응책이 존재하지만 변화의 천년이나 세기 동안 강하게 버티며 이어져 온 가치관들은 자신을 지키며 산과 하늘을 흔들게 할 수 있다. |
5. 수정사회주의(Revisionist Socialism)
수정사회주의(Revisionist Socialism) 이념은 때때로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레드 플러드에서 "수정주의" 개념이 중요한가? 전위사회주의자들이 일종의 수정주의자로 간주되는가? 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전까지는 "수정사회주의자는 계급혁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분류한다"와 같은 모호한 작업용 정의를 사용하였지만 모두 만족스러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좀 더 나은 분류 방법이 없기 때문에 수정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 계통의 사회주의가 아닌 다른 정치적 사상들이나 제 2 인터내셔날 외부의 정당 촉진주의자(전진파)나 전위주의자가 아닌 당들을 통합하는 대표적인 용어로 남아 있습니다. |
5.1. 농경사회주의(Agrarian Socialism)
유럽에서의 산업혁명은 생산 관계와 가족 구조, 임금 노동과 도시화와 같은 그야말로 거대한 사회 구조자체가 통째로 뒤바뀌어버린 총체적 변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 철학과 논쟁에도 비슷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면 이상할 것이다. 대규모 산업화는 문명의 다음 적절한 단계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이상현상인가? 새로운 세계의 충격에 대한 해석과 대응을 갖춘 마르크스주의 계열 사회주의는 유럽에서 우세하게 되어 전 세계로 퍼지게 되었지만 이전의 흐름을 완전히 대체하지는 않았다. 특히 산업혁명이 더딘 지역에서는 농민과 수정주의자들이 대규모 사회주의 개념을 자신들의 지역적 상황에 맞게 발전시킬 시간이 더 많았는데, 이를 농경 사회주의(Agrarian Socialism)라고 한다. 많은 사회주의 운동들은 혁명의 고향 베를린의 예를 따르는 반면 어떤 이들은 그날의 문제에서 다른 결론을 도출해왔다. 산업화 된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최종 추구 또는 혁명을 위해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도시 정당의 창설은 아직 대다수의 인구가 농민인 지구의 일부에서는 아직 저 멀리 떨어진 것일 수 있다. 일부는 스파르타쿠스 주의자들의 모델을 개조하여 농민들을 혁명적 계급으로 일으키고 마르크스적인 목표를 위한 대안적인 길을 계획하는데 집중했지만 다른 이들은 자신들의 상황의 실제적 현실에 집중했다. 여기서 농민들은 사실상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들은 부르주아일까? 그들이 잉여가치를 비축하는가? 농경 사회주의(Agrarian Socialism) 운동은 이에 따라 시골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한 개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땅과 생산 수단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목표로 하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먹을것을 생산하는 가장 오래되고 전통적인 수단이 있다. 러시아의 사회혁명당(트루도비키)과 같이 마르크스주의를 고려하면서도 의회정당으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은 미래의 혁명을 추종하기보다는 기존의 정치 체제 내에서 일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다른 상황에서는 정치 당으로 통합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정부에 제안할 요구 사항과 정치적 계획을 가지고 있다. 유토피아로의 과도기적 단계나 마치 무지성한 충성파라고 대접 받아온 이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한다. |
5.2.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
요즘에는 종종 잊어버리기 쉽지만 그들의 군에 대한 협조를 유도하기 위해 루덴도르프 대장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지와 상관없이 독일 제국 내에서 사회민주당은 주류 정치당이다. 그것은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만나 숙청 대상 목록을 작성하는 군사집단이 아니라 자신들이 대표하는 대중으로부터의 지원과 부르주아 국가로부터의 양보를 촉구하기 위해 전 세계에 알려진 공공단체였다. 만약 그들이 불법화로부터 발생한 전환점이 없었다면 1930년대의 사회민주당은 어떻게 보일까? 현실적으로 그들은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의 보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경향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특히 프롤레타리아가 발전한 영국에서는 19세기 차티스트들이 권력의 손잡이를 움직이기 위해 개혁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얻기 위한 공개적인 시위를 추진했다. 이는 당시로써는 폭동이 아닌 준법적 방식이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선거권이 확장됨에 따라 한때 혁명적인 투쟁으로 생각되었던 것을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가능해졌다. 결국 사회주의는 대중을 대표한다고 주장한다면 공정한 캠페인을 통해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민주사회주의(Democratic Socialism)는 따라서 해당 국가의 대표정부 체제를 매개로 한 프롤레타리아적 투쟁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투쟁은 권위주의적인 정치 운동을 형성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 내에서 작업하여 개혁하고 선거를 통해 국가 기관과 경제를 통제하려고 한다. 이러한 운동은 일부에서 점진주의적이고 부패하기 쉽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고 이들이 국가에 의해 억압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공공적인 이미지를 가진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민주사회주의 정당이 기반의 신뢰를 잃을 경우 평화적으로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 정치가 부패할 수 있지만, 일부 국가에서 발생한 권위주의적 헌법 교체와 같은 것은 없다. 사회주의로 가는 길은 여전히 자발적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아서 걸어갈 것이다. |
5.3. 밀교사회주의(Esoteric Socialism)
많은 세속적 신념 체계들이 종교와 같이 비난받았다. 이러한 용어는 종교적인 고착화된 사상과 마찬가지로 어떤 이데올로기나 운동의 실행과정을 보고 같은 방식으로 기술하는 것이 오래 전부터 사용된 말이다. 이러한 용어는 물질주의나 무신론적인 세계관에 대해 사용될 때 특히 유머러스하다. 그리고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용어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대 세계에서 의미를 찾기 위한 탐구는 다양한 종교단체나 학술 그룹들을 만들어 냈고 이들 중 일부는 사회주의를 특정 영적인 비전과 접목시켰다. 이러한 조직이 정치적 권력을 가지게 되면, 그 결과 나타나는 통치 형태는 밀교사회주의(Esoteric Socialism)로 불리게 된다. 만약 사람의 사회주의적인 생각이 물질주의적인 것이 아니거나, 혹은 영적인 비전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결과는 전형적인 사회주의 운동과 매우 다르게 된다. 밀교사회주의(Esoteric Socialism)모델은 일반적인 전위대나 의회 정당과는 달리 종교적이거나 비밀 결사를 주요 정치 권력의 중심으로 삼을 수 있으며 초기에는 이미 존재하는 정당 내에서 작동할 수도 있다. 이 조직의 구조는 종종 민주적이지 않고 계급적인 성격을 띈다. 그러나 회원이 가입 의식을 수행하는 의식들은 그들의 집단과의 결속력을 보장하고 그들의 정치 원칙에 대한 헌신을 보장할 수 있다. 인간은 평등을 추구하는 노력에서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고, 이러한 상황에서 작업에 영적인 차원을 더한다면, 자신의 동료들을 돌보거나 초심자들을 돌보는 의지를 강화할 수 있다. 1930년대에는 대부분 이론적인 수준에 머물렀기에 어떤 경향이 지배적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먼저 마르크스주의의 분파가 되거나 유사한 결론에 이르는 영적 세계관이 될지 모른다. 밀교사회주의(Esoteric Socialism)는 사회주의의 왜곡인가, 아니면 그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수단인가를 묻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고통스럽고 불안한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메신저는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영혼도 해방시켜야 한다고. |
5.4. 민족주의적 사회주의(Nationalist Socialism)
지속적인 연대는 찾기 어렵다 특히 다른 연대와의 충돌이 생기는 경우가 그러하다. 종종 반국가적이다 비난받게되지만 빨간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 중에는 자국의 깃발을 잊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이 일치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이 인식이 미흡한 탓인가? 아니면 조국을 부인하는 것은 그 나라의 노동자들과 함께 걷는 것에서 벗어난 것일까? 후자를 선택한 사회주의 정당들은 민족주의적 사회주의(Nationalist Socialism)의 이념을 정의하게 되었다. 이 현상은 20세기 초 몇 가지 추세의 정점이다. 일반적으로 덜 개발된 나라에서는 이것이 국가 건설 프로젝트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이 경우 이에 따르는 사람들은 국가 지도적 계획 경제를 생산적인 성장과 대중들 간의 국가적 연대감 조성의 수단으로 본다. 유럽에서는 제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국제적인 형제애보다 조국을 선택하기 시작했으며 일부는 전쟁 경제와 집단적인 일치감을 자신들의 목표와 유사하다고 보기도 했다. 그 이전에도 일부 이탈리아인들은 아프리카 제국의 확장과 대대적인 전쟁 참전을 혁명적인 임무로 보았다. 세계의 부유한 제국들에 대항하여 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무산계급"의 국가가 아니었는가? 민족주의적 사회주의(Nationalist Socialism)는 구체적인 이념이 아니다. 그들의 일부는 촉진주의나 권위적인 사회주의의 일부 차용하거나 가끔씩 그들이 버린 것들을 모아서 정의되기도 한다. 이들 운동은 여전히 보통 사회주의적이지만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구식 마르크스주의적 노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들은 본격적인 제2인터내셔널 들과 대립하게 됩니다. 또한 실용적인 발전을 목표로 한 이유나 연대 의식으로 인해 이러한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산업과 부를 통해서 사회주의적인 과제에 기여할 수 있는 "애국적인 부르주아"들을 훨씬 더 수용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문장과 정신적으로 수정주의자로 비난되기는 하지만, 베를린의 사회민주당이 모든 프롤레타리아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
5.5. 종교사회주의(Religious Socialism)
사회학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그것에 이름을 붙이기 전에도 연대는 여전히 존재했다. 공동체와 자선은 신앙의 공동체와 그의 선한 행동에 자리를 두었다. 유럽과 미국의 1800년대 혁명적인 정치는 종교 반감이나 완전한 무신론적인 성향을 띠었지만 사회주의 운동 내에서는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조직화된 종교에 대해 편안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영국 정치의 노동당파가 마르크스보다 오히려 감리교회의 신조에 더 많이 의존한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결국 사안으로 여겨졌던 그를 통해서 얻는 이익 없는 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가 중요해졌고 이에 명백하게 종교사회주의(Religious Socialism)가 제시되었다. 개혁주의 패러다임의 개인주의로부터 돌아오려는 운동 중 하나일 뿐이지만, 노동자 운동에 대한 의의는 분명하다. 신념을 버리고 신을 죽인 유럽을 떠도는 어떤 유령이 나타나면 사회주의에 대한 설득력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논지가 되지 않는 토지개혁 약속만으로 시골을 설득하는 것보다 그들의 전통이 사회주의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 지를 명확하게 밝힘으로써 의심을 해소할 수 있다. 교회의 보수적인 계급 집단들은 여전히 이러한 추세를 이단으로 비판하지만 교황 보니파티우스 10세가 독일 혁명가들을 인정한 결정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종교적인 결속과 계급적인 결속이 불안한 옛 질서를 대체하기 위한 필수적인 융합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종교사회주의(Religious Socialism)의 해석은 학파에 따라 다양하며 이들 운동의 모든 정책에 종교적 영향이 미치는 정도도 다르다. 일부는 정당에서 다른 일부는 교회나 농민 조직에서 활동한다. 그리스도의 말씀, 불교적 반물질주의, 이슬람의 자카트 개념 등, 사회 및 경제적 정의에 대한 이들의 관점은 종교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어떤 선언문보다 지속 가능한 기반을 제공한다 |
5.6. 공상적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세상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폭력적인 냉소주의자들과 촉진주의자들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사회주의 인류의 진정한 형제애 모든 지구민의 기쁨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바로 그것이다. 런던의 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독일의 이론가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공상적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는 아직 살아있다. 그것은 지금 막 깨어나고 있을 뿐이다. 공상적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는 사실 샤를 푸리에의 정력적인 팔랑스테르주의, 앙리 드 생시몽의 윙윙대는 산업주의 등 다양한 학설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모든 해당 이념은 인류 자체의 완벽함을 향한 단일한 비전으로 결합되어 있다. 유토피아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며 폭력적인 혁명을 거의 주장하지 않으며, 부지런한 노동의 힘으로 자본주의의 부당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강력한 도덕적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상적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의 반대자들은 이러한 감정을 순진무구하고 이러한 망상은 현대의 강철과도 같은 시련 속에서 검증될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높은 이상은 여전히 추종자들을 모으고 있다. 인간이 작은 욕심에서 벗어나 서로 완벽한 조화로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봄의 상상은 계속해서 현대사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의 불씨를 불러일으키며 독자들을 매료 시키고 있다. 세계적으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 지구상의 인류에게 있어서 공상적 사회주의(Utopian Socialism)가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향하게 될 운명인가? 아니면 언젠가 그 꿈이 환상에 머무르지 않고 인류가 평화와 장관의 새로운 시대로 우아하게 걸어 들어 갈 수 있는 날이 올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