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05 00:31:45

DR뮤직/논란 및 사건 사고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베이비복스
,
,
,
,
,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DR뮤직.png


[ 소속 아티스트 ]
||<-3><width=1000><tablewidth=100%><tablebgcolor=#fff,#1c1d1f><bgcolor=#DCDCDC,#383b40> Group ||
파일:블랙스완(아이돌) 로고.svg파일:블랙스완(아이돌) 로고 화이트.svg
Solo
나태주 강예슬 김의영
[ 관련 문서 ]
||<tablewidth=100%><width=1000><tablebgcolor=#fff,#1c1d1f> 논란 및 사건 사고출신 아티스트 ||

1. 개요2. 소속 연예인에 대한 횡포
2.1. 혹사2.2. 정산 문제2.3. 과도한 섹시 컨셉 강요
3. 악질적인 언론플레이4. 이하늘과의 법적 공방5. 베이비복스 상표권 강탈 시도

1. 개요

DR뮤직의 논란 및 사건 사고를 정리한 문서.

2. 소속 연예인에 대한 횡포

베이비복스 해체의 표면적인 이유는 이하늘의 망언으로 인한 멤버들의 스트레스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DR뮤직의 불공정한 횡포때문이다.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베이비복스 멤버들은 당시 자신의 모습들을 로봇에 비유했고, 본인들의 의사는 단 한 번도 수용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이 시기에 받은 스트레스가 워낙 커서 간미연, 윤은혜는 베이비복스 활동 내내 원형탈모를 겪었다.

2.1. 혹사

우리는 김밥도 안 줬다. 아예 밥을 안 줬다. 황보가 "네가 못 먹어서 이렇게 마른 거냐"고 물었고, 당시 (소속사가) 스케줄 갈 때 시간이 있으면 밥을 사줬고, 시간이 없으면 안 사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했다.
간미연
원래는 사장님이 여자판 룰라를 만들자며 랩하는 친구, 흑인 노래하는 친구, 그리고 저랑 한 명 더 해서 네 명이서 나오려고 했는데 제가 춤추다가 잘못 일어나 크게 다쳐서 그룹으로는 못하고 밴드 객원보컬이나 하려고 했는데 "자기만 믿으라" 하고는 한참 어린 동생들 사이에 넣어버리셨어요.

이리봐도 저리 봐도 애기들 사이에 아줌마인데 "너는 남들이 보면 스무 살이다. 나이 속이는 거 다들 하는 거고 이거 하면 몇 년이나 하겠냐, 조금 하다가 어차피 나가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라"래서 했는데 춤을 추라니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못하겠다 하니 "다음 앨범에서는 건반만 치고 노래만 해라" 그랬는데 사람이 죄를 짓고는 못 산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못 가린다는 말이 있듯이 걸려서 나왔네요.
이가이
1집 멤버로 활동했던 차유미는 한국말이 매우 서투른 상태로 베이비복스의 메인보컬로 캐스팅되어 1997년 7월에 데뷔했는데, 하루종일 빡빡한 스케줄을 뛴 후에도 7~8시간동안 안무 연습을 하는 등 혹사를 당하다가 발목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지만 정작 DR뮤직에서는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않아 갈등을 빚었고 결국 같은 해 10월에 베이비복스를 탈퇴했다.

2집 멤버로 활동했던 이가이는 1집 멤버로 재데뷔할 예정이었으나 발목 부상으로 고사한 후 밴드의 객원보컬로 전향하려 했으나 생활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걸밴드 컨셉으로 기획된 2집에서 키보드와 보컬을 담당하는 멤버로 합류했지만 컨셉을 슈가 팝으로 바꾸면서 예정에 없던 안무 연습까지 하게 되었는데 조금만 무리해도 발목에 염좌가 생기거나 2집 후속곡인 'Change'의 안무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등 탈퇴 직전까지 부상 후유증에 시달렸다.

4집 활동 당시에는 중국 공연과 대한해협 횡단을 위한 제주도에서의 수영 연습, 각종 방송 촬영, 안무 연습까지 하루 수면 시간이 30분 남짓되는 살인적인 혹사를 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가수들도 베이비복스와 비슷한 스케줄을 소화했다고 반론할 수 있지만 멤버들을 혹사시킨 동시에 정산도 제대로 안 해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e5sthNV7f1sq377wo1_540.jpg
2002년 무렵부터 나이트클럽 행사를 다닌다는 의혹이 생겼는데, 나이트클럽 특성상 인기 연예인이 진짜 출연한 것처럼 낚시를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이 나이트클럽 행사에 투입된 것이 확실한 건 아니지만 꾸준히 증언이 나왔다는 점이 이러한 의혹에 힘을 실었다.[1] 이 때문에 중국 활동 당시에도 나이트클럽 행사 장면이 찍혀 몇몇 사이트에 조롱조로 올라오기도 했었다.

2004년에는 한 미용실에서 개업 이벤트로 사인회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하늘 망언 사건이 한창 진행 중임에도 홈쇼핑 광고까지 시키는 등 이미지 관리는 내다버린 DR뮤직의 기행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이외에도 보컬 트레이닝 등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지 않아 심은진은 사비로 받아야 했으며 간미연은 아예 독학으로 때웠다.

2.2. 정산 문제

그런 감정들 때문에 베이비복스를 관뒀다. 나 혼자 살아남겠다고 한 것보다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못 버틸 만한 상황을 멤버들이 아닌, 소속사에서 만들었다.

아직도 미수금이 있다. 사장님도 괴롭게 하고, 매니저들도 힘들고. 버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남들은 건물 몇 채 지은 줄 아는데 우린 받은 게 없었다. 삶도 궁핍해져가고, 상황이 안 좋았다. 이런 사람들과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싶었다.
...
행사도 많이 하고 공백기가 없었다. 해외 스케줄 때문에 준비를 해야 하니까 공백기라는 게 없었다.

하지만 정산을 받지 못했다. 수입은 1/n이었는데 (소속사에서는) 자꾸 "중국에서 사기를 당했다"며 우리는 돈을 못 받았다. 근데 그게 진위여부가 파악이 안 됐다.
심은진
데뷔 후 6년간은 얼굴이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없었다.
윤은혜
먼저 DR뮤직은 당시 직원이 열 명 남짓한 규모의 중소 연예 기획사로 베이비복스가 활동하는 동안 A4, Snazzy, PLT 등을 줄줄이 데뷔시켰지만 모두 실패했고, 이때문에 베이비복스는 졸지에 회사를 연명시키는 생명줄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인지 2000년대 초반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애즈원을 2004년에 영입했지만 이 시기에 발표한 앨범은 홍보나 뮤직비디오 하나 없이 이전 앨범과 비교해 초라한 성적을 내었고 이후 다른 소속사로 이적할 때까지 앨범도 못 내면서 중화권, 동남아 순회만 했다.

물론 중소 연예 기획사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쳐도 회사의 기둥이었던 베이비복스 멤버들에게 수입 정산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 실제로 베이비복스 해체 이후 윤은혜는 2011년 방송을 통해 "활동 기간 내내 수익이 0원이었다"라고 밝혔고, 심은진은 2016년 인터뷰에서 "수입도 수입이지만 아직까지 받지 못한 미수금이 있다"고 밝혔다. #

베이비복스의 음반 판매량은 총 100만장이 넘어가고, 당시 기사를 통해 밝혀진 중국, 태국 등지에서의 수입에 더해 국내 광고 개런티까지 합하면 최소 수십 억에 달하는 수입을 올렸음에도 정산을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90년대 연예 기획사에 대한 썰이 아닌 멤버들이 직접 밝힌 사실이라는 것부터 DR뮤직이 소속 연예인들을 얼마나 착취했는지 알 수 있다.

2.3. 과도한 섹시 컨셉 강요

3집을 기점으로 섹시 컨셉으로 인기를 끌자 실력보단 비주얼로 어필한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를 의식했는지 2001년 5집 앨범 'Boyish Story'의 타이틀곡인 'Game Over'에서는 섹시 컨셉을 배제했으나 부진한 반응을 얻자 DR뮤직에서는 '가까이'를 후속곡으로 다시 노골적인 섹스 어필을 표방하려하자 팬클럽의 공개 성명으로 후속곡을 '인형'으로 변경했다.

2002년 베이비복스 단독 콘서트에서는 물랑 루즈 컨셉으로 선정적인 란제리 의상을 입고 'Lady Marmalade'를 불렀는데 미성년자인 윤은혜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간미연은 갓 성인이 된 때에 이런 퍼포먼스를 해야만 했다. 당시 기자들에 의해 적나라하게 찍혔던 멤버들의 노출 사진은 아직까지 여러 사이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3. 악질적인 언론플레이

정산 문제만으로도 연예 기획사로써 개념을 말아먹은 것을 알 수 있지만, 베이비복스의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자 멤버들 사이에 이간질을 시켰다.

2010년 강심장에 출연해 밝힌 바로는 심은진이 2004년 12월에 계약을 해지했을 당시 윤등룡과 소속사 직원들이 "심은진이 리더를 하고 싶어서 언니 둘(김이지, 이희진)의 퇴출을 요구했다"며 이간질해 멤버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안 그래도 더 잘 될 수 있는 이들을 괜히 선동하고 싶지 않아서 탈퇴를 고민하던 때에 동생들에게만 의견을 잠시 내비쳤을 뿐 멤버들에게도 탈퇴를 결정한 당일 직접 만나 얘기했는데 소속사에서 이를 날조해 이간질을 한 것이다. 당시 탈퇴 기사에서 심은진이 배신한 것처럼 보도한 것은 덤이다.

심은진이 탈퇴한 이후 윤은혜도 탈퇴하는데, 당시 윤은혜는 X맨 등에서 소녀 장사 이미지로 주가가 올라가던 상황이었는데 계약이 만료되는 2005년 초까지 베이비복스 태국 스케줄을 뛰어준 윤은혜가 재계약을 하지 않자 부친까지 끌어들여 "윤은혜와 부친이 독단적으로 매니지먼트를 하고 싶어하는 입장"이라며 대놓고 배신을 한 것처럼 보도했다. @

2006년 배우로 전향한 윤은혜가 ''으로 스타덤에 오르자, 스페셜 방송에 나와 자신이 윤은혜를 캐스팅했던 당시를 뿌듯해하며 인터뷰까지 했었다. 계약 종료 당시 회사의 압력에 못 이겨 뛰쳐나간 심은진을 끝까지 언론플레이를 통해 배신자로 만들려 했지만 실패하자 홈페이지에 "베이비복스 멤버 5명이 모두 딸 같은 존재"라며 꼬리자르기를 시도했다.

2007년 2월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윤등룡은 "베이비복스의 해체는 이하늘 때문"이라며 분개했는데, 물론 이하늘이 해체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해체에 자신의 책임도 상당수 있음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베이비복스의 후속 그룹이랍시고 베이비복스 리브를 홍보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4. 이하늘과의 법적 공방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하늘 베이비복스 비하 사건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베이비복스 상표권 강탈 시도

DR뮤직 대표인 윤등룡 명의로 2003년 11월 11일에 베이비복스의 상표를 출원했으나 2004년 11월 15일에 거절된 바 있다. 이후 2024 KBS 가요대축제를 계기로 베이비복스가 다시 주목받자 2024년 12월 27일에 DR뮤직 명의로 '베이비 복스', 'BABY VOX' 상표 출원을 재시도했으며 2025년 1월 8일 K-TIGERS[2]에서도 'BABYVOX' 상표 출원을 시도했다. 베이비복스 팬들 사이에선 활동 당시 베이비복스를 돈줄로만 생각하는 행보[3]로 인식이 매우 나빴던지라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숟가락만 얹으려 한다."며 빈축을 샀다.

[1] 물론 무대 자료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홍보를 위해 사기를 쳤다고 해도 아이돌, 특히 걸그룹의 상표가 무단 도용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방치한 게 되므로 문제가 된다.[2] 2024년에 DR뮤직으로 이적한 나태주의 전 소속사다.[3] 상술했지만 스케줄을 과도하게 잡아서 혹사당한 멤버들이 활동 중 부상당하거나 쓰러지는 일이 잦았으며 계약 만료 전까지 수익을 정산해주지 않는 식의 착취도 빈번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240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240 (이전 역사)
문서의 r96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