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 FIFA 월드컵 서독 | ||
조별 라운드 | 1조, 2조 | 3조, 4조 |
결승 라운드 | 8강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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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6강 3조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네덜란드 | 3 | 2 | 1 | 0 | 6 | 1 | +5 | 5 | |
2 | 스웨덴 | 3 | 1 | 2 | 0 | 3 | 0 | +3 | 4 | |
3 | 불가리아 | 3 | 0 | 2 | 1 | 2 | 5 | -3 | 2 | |
4 | 우루과이 | 3 | 0 | 1 | 2 | 1 | 6 | -5 | 1 |
1.1. 1경기 우루과이 0 vs 2 네덜란드
경기장 | 니더작센 슈타디온 하노버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15일 16:00 (1974년 6월 16일 00:00) | |
국 가 | 우루과이 | 네덜란드 |
득 점 | 0 | 2 |
득점자 | 렙(7'),(86') |
1.2. 2경기 스웨덴 0 vs 0 불가리아
경기장 | 라인슈타디온 뒤셀도르프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15일 16:00 (1974년 6월 16일 00:00) | |
국 가 | 스웨덴 | 불가리아 |
득 점 | 0 | 0 |
득점자 |
1.3. 3경기 불가리아 1 vs 1 우루과이
경기장 | 니더작센 슈타디온 하노버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19일 19:30 (1974년 6월 20일 03:30) | |
국 가 | 불가리아 | 우루과이 |
득 점 | 1 | 1 |
득점자 | 보네프(75') | 파보니(87') |
1.4. 4경기 네덜란드 0 vs 0 스웨덴
경기장 | 베스트팔렌슈타디온 도르트문트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19일 19:30 (1974년 6월 20일 03:30) | |
국 가 | 네덜란드 | 스웨덴 |
득 점 | 0 | 0 |
득점자 |
1.5. 5경기 불가리아 1 vs 4 네덜란드
경기장 | 베스트팔렌슈타디온 도르트문트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23일 16:00 (1974년 6월 24일 00:00) | |
국 가 | 불가리아 | 네덜란드 |
득 점 | 1 | 4 |
득점자 | 크롤(78')(자책골) | 네스켄스(5' PK), (44' PK) 렙(71') 더용(88') |
1.6. 6경기 우루과이 0 vs 3 스웨덴
경기장 | 라인슈타디온 뒤셀도르프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23일 16:00 (1974년 6월 24일 00:00) | |
국 가 | 우루과이 | 스웨덴 |
득 점 | 0 | 3 |
득점자 | 에드스트룀(46'),(77') 산드베리(74') |
1.7. 3조 총평
톱시드는 우루과이. 하지만 뚜껑을 열자 가장 강력한 팀은 네덜란드였다. 우루과이는 전 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지만 세대 교체 실패로 전력이 크게 주저앉으며 조 꼴찌로 광탈했고, 네덜란드는 아약스에서 시작된 토탈 풋볼이라는 혁신적인 전술이 대표팀에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지역예선과 평가전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다크호스 떠오르고 있었다. 74년 월드컵 이전만 하더라도 네덜란드는 유럽의 축구 변방에 불과한 나라로 취급 받았지만, 본선 진출로 화제를 모으더니 정작 월드컵 막이 오르자마자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형의 축구를 선보이며 네덜란드의 독주 시대를 연다. 요한 크루이프를 주축으로 탄탄한 미드필더를 구축하며 공격과 수비의 구분 없이 왕성한 플레이를 보인 네덜란드에 상대팀들은 속절없이 무너졌고, 첫 경기부터 톱시드팀 우루과이를 2:0으로 간단히 누르며 순조로운 출발을 한다. 서로 1승 상대로 여겼던 스웨덴과 불가리아는 무재배를 기록함으로써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두 번째 경기 우루과이 vs 불가리아전에선 우루과이가 쉽게 이길 것이란 예상을 깨고 불가리아가 선제골, 우루과이가 종료 직전 동점골로 따라잡으며 1:1 실망스런 무재배를 펼친다. 그땐 몰랐겠지만 실제 당시 대회 최강 전력이던 토탈 풋볼의 네덜란드에게 밀린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조 최하위 전력의 불가리아전마저 무재배를 기록한 우루과이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에 많은 비난을 받았고, 스웨덴 또한 네덜란드와 0:0으로 비기며 예상 외로 선전한다. 마지막 경기에선 네덜란드가 불가리아를 4:1로 누르며 손쉽게 1위로 직행, 스웨덴은 우루과이를 3:0으로 대파하며 2위로 8강에 오른다. 아무리 하락세라지만 8강엔 어렵지 않게 오를 것이라 봤던 우루과이는 1무 2패의 처참한 성적을 안고 쓸쓸히 귀국했으며 이후 두 대회 연속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는 등 완전히 중위권 실력으로 내려앉게 된다. 스토이치코프 이전까지 최고의 선수였던 보네프를 주축으로 한 불가리아는 이번에도 승리를 거두진 못했지만, 상대적 꿀조였던 지난번과 비교하면 훨씬 나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당시 기준으로 역대 월드컵 최고 성적 승점 2점 2무 1패 74월드컵 12위를 기록,[7] 나름대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귀국길에 올랐다. 본선 조별리그 3경기에서 크루이프가 터뜨린 골은 단 한 골도 없었지만, 경기 내내 그라운드를 조율하며 페이스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녹여냈던지라 골 없이도 엄청난 찬사를 받아내며 2라운드에서의 대활약을 다시 예고하고 있었다.2. 16강 4조
순위 | 국가 | 경기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
1 | 폴란드 | 3 | 3 | 0 | 0 | 12 | 3 | +9 | 6 | |
2 | 아르헨티나 | 3 | 1 | 1 | 1 | 7 | 5 | +2 | 3 | |
3 | 이탈리아 | 3 | 1 | 1 | 1 | 5 | 4 | +1 | 3 | |
4 | 아이티 | 3 | 0 | 0 | 3 | 2 | 14 | -12 | 0 |
2.1. 1경기 이탈리아 3 vs 1 아이티
경기장 |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15일 18:00 (1974년 6월 16일 02:00) | |
국 가 | 이탈리아 | 아이티 |
득 점 | 3 | 1 |
득점자 | 리베라(52') 베네티(66') 아나스타시(79') | 사농(46') |
2.2. 2경기 폴란드 3 vs 2 아르헨티나
경기장 | 네카어 슈타디온 슈투트가르트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15일 18:00 (1974년 6월 16일 02:00) | |
국 가 | 폴란드 | 아르헨티나 |
득 점 | 3 | 2 |
득점자 | 라토(7')(62') 샤르마흐(8') | 에레디아(60') 바빙톤(66') |
2.3. 3경기 아르헨티나 1 vs 1 이탈리아
경기장 | 네카어 슈타디온 슈투트가르트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19일 19:30 (1974년 6월 20일 03:30) | |
국 가 |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 |
득 점 | 1 | 1 |
득점자 | 하우스만(20') | 페르푸모(35')(자책골) |
2.4. 4경기 아이티 0 vs 7 폴란드
경기장 |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19일 19:30 (1974년 6월 20일 03:30) | |
국 가 | 아이티 | 폴란드 |
득 점 | 0 | 7 |
득점자 | 라토(7')(62') 데이나(18') 샤르마흐(30'),(34'),(50') 고르곤(31) |
2.5. 5경기 아르헨티나 4 vs 1 아이티
경기장 |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23일 16:00 (1974년 6월 24일 00:00) | |
국 가 | 아르헨티나 | 아이티 |
득 점 | 4 | 1 |
득점자 | 야살데(15'),(68') 하우스만(18') 아얄라(55') | 사농(63') |
2.6. 6경기 폴란드 2 vs 1 이탈리아
경기장 | 네카어 슈타디온 슈투트가르트 - 서독 | |
경기일[A] | 1974년 6월 23일 16:00 (1974년 6월 24일 00:00) | |
국 가 | 폴란드 | 이탈리아 |
득 점 | 2 | 1 |
득점자 | 샤르마흐(38') 데이나(44') | 카펠로(85') |
2.7. 4조 총평
16강 조별리그 4조 톱시드는 이탈리아. 카테나치오 전술로 전 대회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부활을 알렸고, 예선에서도 압도적인 성적으로 무실점 본선행에 올랐던지라 강력한 우승후보로 발군의 성적을 내줄 것으로 기대되었다. 남미의 전통 강호 아르헨티나와 36년만에 본선에 오른 폴란드는 여기에 맞설 상대로 보여지지는 않았고, 특히 아르헨티나는 직전 대회에서 지역예선 탈락이라는 영 좋지 않은 기록이 있는지라 우승 후보로 분류되지도 않을 정도였다. 북중미예선에서 무려 멕시코를 탈락시키고 74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한 아이티는 말할 것도 없는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위의 세 조와 마찬가지로 예상과는 다른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탈리아 vs 아이티 전에서 이탈리아가 3:1로 승리하기는 했지만 완전한 듣보잡이었던 아이티에게 먼저 한 골을 내주고 역전승한 것이다. 전설의 카테나치오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겼음에도 각종 언론에서는 이탈리아를 향한 비난의 화살을 날려댔다. 폴란드 vs 아르헨티나 전에서는 골잡이 라토의 대활약으로 폴란드가 3:2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무언가 폭발할 조짐이 보였고, 두 번째 경기에서 이에 대한 판가름이 난다. 아르헨티나 vs 이탈리아 전에서 양측이 1:1로 소모전을 펼치는 동안 폴란드가 아이티를 7:0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천하의 이탈리아가 3:1로 역전승하며 졸전했는데 폴란드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골차이를 벌림으로써 2연승으로 8강 진출을 확정해버렸고, 남은 한 자리를 놓고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의 싸움이 시작됐다. 아르헨티나는 예상대로 약체 아이티를 상대로 4:1로 승리했지만, 이미 2승으로 8강을 확정지은 폴란드가 이탈리아를 2:1로 잡아버림으로써 골득실에 밀려 이탈리아가 대회 10등으로 8강 진출 실패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탈리아는 2차대전 이후 월드컵에서 1950 월드컵 7등으로 4강 리그 진출 실패하였고, 1954 월드컵 10등, 1962 월드컵 9등, 1966 월드컵 9등으로 모두 8강 진출 실패했고 1958 월드컵은 아예 16개국 본선진출마저 하지 못했던 악몽의 시간이 그대로 되살아난 셈이었다. 더불어 폴란드는 골잡이 라토를 앞세운 1972 뮌헨 올림픽 우승이 이변이 아니었음을 여기서 다시 한 번 증명하게 되었고, 브라질의 독주를 막자던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에 골득실 차로 겨우 앞서 8강에 오르긴 했지만 역시 예전의 영광을 찾기에는 많이 역부족이었다.[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7] 불가리아의 올타임 월드컵 최고 성적은 1994년 미국 월드컵 4위이다.[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A] 괄호 안은 한국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