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島女性教員宅便槽内怪死事件(福島便槽内変死事件)
1. 개요
1989년 2월 28일 일본 후쿠시마현에 위치한 교직원 숙소의 정화조 안에서 시신이 발견된 미제 의심 사건.2. 사건 발생
1989년 2월 28일, 일본 후쿠시마현 타무라군(現 타무라시) 미야코지무라(都路村)[1] 산간의 조용한 마을의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23세 여성 A교사는 저녁 5시 10분경에 일을 마치고 학교 옆의 교직원 숙소[2]로 향했다. 용변을 보기 위해 숙소 안의 재래식 화장실로 향한 교사는 무심코 변기 안[3]을 들여다보았는데, 그 안에 신발 한 짝이 보이자 화들짝 놀라서 집 외부로 나가 뒤편 정화조[4] 쪽을 살펴보았고, 의심스럽게 열려 있던 정화조의 철제 뚜껑 안쪽으로 사람의 다리 같은 것을 발견했다. 당시 A교사가 거주하고 있던 교직원 숙소 (오른쪽 창문 아래에 시신이 발견된 정화조가 있다) |
A교사는 당장 학교로 뛰어가서 남아 있던 교감과 동료 교사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저녁 6시 20분경에 학교 측의 신고를 받은 경찰과 마을의 자치 소방대원들이 급히 출동했다. 정화조 안에 사람의 다리가 보이는 것을 확인한 경찰과 소방관들은 발을 잡아당겨 꺼내려 했으나 구멍이 너무 좁아서 실패했고, 결국 중장비를 동원해서 정화조 주변의 흙을 파낸 뒤 드러난 정화조를 부수고[5] 나서야 시신을 꺼낼 수 있었다.
시신은 남성이었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윗옷을 벗은 채로 정화조 안에 있었다. 입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후드 달린 점퍼, 운동복, 상의 속옷 2점을 가슴에 돌돌 말아 굳게 움켜쥐고 팔꿈치를 접어, 약간 왼쪽으로 기울인 얼굴을 위로 향하게 하고 있었고, 머리맡에는 신발 한 짝이 놓인 상태였다. 시신은 꺼내져서 호스물로 오물을 씻어낸 뒤에 다시 소방서로 옮겨져서 한 번 더 씻어낸 후 의사가 시신을 부검했다. 시신은 무릎과 팔꿈치에 긁힌 찰과상(표피 박탈)을 제외하면 별다른 외상이 없었고, 의사가 내린 사인은 동사 및 흉부순환장애[6]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즉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는 상태로 좁은 정화조에 들어가서 겨울의 추운 날씨 가운데 몸을 웅크린 자세가 지속되면서 호흡 기능에 장애가 발생하여 얼어 죽었다는 것이다.
2.1. 변사자
칸노 나오유키 |
경찰은 초기에는 변사 사건으로 수사를 시작했으나 수사를 진행할수록 사건성이 없다는 견해를 강화해갔고, 더 나아가서는 의사가 내린 사인을 근거로 청년이 어떠한 목적으로 A교사 숙소의 정화조에 들어갔다가 막상 정화조가 좁아서 빠져나오지 못해 그곳에 갇혀서 얼어 죽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경찰의 결론에 유가족과 마을 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왜냐하면 A교사가 혼자 사는 숙소의 정화조에 들어갈 만한 목적이라면 A교사가 용변을 보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밖에 없을 텐데, 이 청년의 평소 모습으로 보면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사망한 청년인 칸노 나오유키는 생전에 감수성이 풍부하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밴드 활동도 했으며 이후에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유지보수 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마을 청년회의 오락부장이었다. 활달하고 예의 바른 청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나오유키는 마을 주민들의 인기도 높았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행사가 있거나 결혼식을 할 때 이 청년에게 사회를 곧잘 부탁했고, 마을의 촌장 선거[9] 때는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덕에 찬조 연설을 부탁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따라서 평소 성실하고 예의 바르며 인품이 좋기로 소문난 청년이, 남이 용변하는 모습을 훔쳐보려고 정화조로 들어가는 행동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경찰의 주장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오죽하면 마을 주민 4천여 명이 재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서를 경찰에 제출할 정도였다.[10]
하지만 경찰은 타살 혐의점이 나오면 수사를 재개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타살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재수사를 사실상 거부했다. 최종적으로 해당 사건은 경찰에 의해 자신의 의지로 정화조에 들어갔다가 동사했으며 범죄와 관련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사고사로 종결되었으며, 공식적으로는 미제 사건조차 아닌 셈이다.
2.2. 의문점
굳이 청년의 평판을 따지지 않더라도, 그가 A교사를 훔쳐보기 위해 정화조 안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당시는 겨울인 2월 말이었고 인간이 충분히 동사할 정도로 추운 환경에서, 그것도 오물이 차 있는 정화조였다는 점
타무라시의 2월 평균 기온은 0.0℃, 평균 최저 기온은 −4.4℃이다. 또한 정화조는 비어 있지 않았으며 수분을 포함한 오물이 잔뜩 차 있었다. 물은 콘크리트(고체)보다 접촉 면적이 넓고 공기보다 열전도율이 높기 때문에 물에 완전히 젖거나 빠졌다면 더욱 체온을 쉽게 잃게 된다.
- 사망자의 신발 한 짝은 숙소의 정화조 안에서 시신의 머리맡에서 발견되었는데, 다른 한 짝은 숙소 근처 하천의 제방에서 발견되었다는 점
아래의 지도에서 Ⓐ는 변사자의 자택이고, Ⓑ는 변사자가 발견된 교직원 숙소이며, Ⓒ는 마을 하천의 제방이다. Ⓐ~Ⓑ간 거리는 7.5㎞(자동차로 10분)이며, Ⓑ~Ⓒ간 거리는 1.5㎞(도보로 20분)이다.다른 신발 한 짝이 발견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방
청년의 사망 전 행적도 의문이다. 시신의 검안 결과 사체의 강직 정도로 보아 청년의 사망 시기는 시신 발견 이틀 전인 2월 26일 정도로 추정되었는데,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청년이 사망하기 전의 행적은 24일부터 불분명하다. 청년은 23일에 선배의 송별회에 참석해서 그 다음 날 새벽 1시에 술집을 나섰다. 이후 집으로 돌아간 청년은 24일 오전 10시쯤에 아버지에게 잠시 외출한다고 말한 뒤 사라졌는데, 이는 보통 구체적으로 어디에 갈 것인지 말했던 평소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고 한다. 이날은 임시공휴일로서 쇼와 덴노의 국장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많은 기업체와 정부 청사들이 추모를 위해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후 청년이 집에 돌아오지 않자 이상함을 느낀 가족이 수색원을 냈으며, 27일에 청년의 승용차[11]가 교사 숙소 근처의 농협 정문 주차장에서 장시간 주차를 할 생각이 없는 비스듬히 주차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평소와 다르게 차 안에 열쇠가 꽂힌 상태였다. 따라서 청년이 적어도 이 근방에 잠시 볼일이 있었거나, 누군가를 만나려고 했고 사망하기까지 이틀간 행방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시신을 발견한 A교사는 24일부터 27일까지 휴가로 같은 현의 친가에 가 있었고, 사망자와 A교사는 서로 지인 관계였기 때문에 휴가에 대한 정보는 죽은 청년이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A교사를 관음하기 위해서라면 숙소 주인인 A교사가 부재중인 휴가 기간 중(추정 사망일인 26일)에 정화조에 며칠 전부터 미리 들어가 있다가 사망했다는 점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
19일(일) | 촌장 선거 |
23일(목) | 선배의 송별회 |
24일(금) | 금년 1월 7일에 사망한 쇼와 덴노의 국장에 의한 임시공휴일 오전 1시경 청년이 술집을 나서 귀가함 오전 10시경 청년이 자택을 나감(마지막 목격) A교사가 휴가를 내고 현내의 친가로 귀성함 |
26일(일) | 청년의 사망 추정일 |
27일(월) | 현장 근처의 농협 주차장에서 청년의 자동차 발견 |
28일(화) | A교사가 휴가를 마치고 출근 오후 5시 10분경 퇴근한 A교사가 청년의 시신 발견 오후 6시 20분경 교직원이 주재소에 신고 |
3. 잘못된 정보의 범람
30여년 전에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보니 이 사건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나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가 많이 떠돌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건 현장인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인 화변기로 착각하고, 시신이 위나 아래에서 절대 보일 수가 없는 구조라는 등의 오해가 떠돌고 있다.국내에서 이 사건에 대해 소개한 프로그램은 대부분 우리나라나 일본의 2차 출처를 참고하여 제작된 것인지 정보가 다소 부정확하고 오류가 존재한다. 예외적으로 2021년에 방영된 당신이 혹하는 사이 파일럿 2화의 경우 일본의 원 출처(보도 기사)를 직접 해석해서 자료로 사용하고 현지 답사와 사건 현장 구현까지 한 데다 법의학 교수와 인터뷰하는 등 정보의 신뢰성이 높으니 이것을 참고하는 것을 추천한다.
3.1. 개략도의 종횡비의 부정확성
해당 사진은 아사히 신문 계열 주간지 AERA 1989년 7월 4일호에 삽화로 게재된 개략도로, 사람들이 해당 사건을 소개하면서 가장 먼저 사용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대표적으로 쓰이는 사진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정화조가 원래의 축척과 다르게 그려진 것을 알 수 있다. 실제 정화조의 규격이 가로 125㎝, 세로 107㎝(60+47㎝)로 가로가 세로보다 길지만, 개략도를 육안으로 보면 세로가 가로보다 길게 나타나 있어서 종횡비가 크게 어긋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사망한 청년의 체격이 과장되다 못해 체형도 상당히 심하게 왜곡되어 그려졌는데, 개략도에서 몸과 닿아 있는 125㎝의 바닥과 육안으로 비교해봐도 상반신과 하반신이 각각 125㎝는 족히 되어보여 총합 250㎝의 거인처럼 보일 정도로 크게 그려졌고, 팔이 심하게 짧은 육식공룡 같은 이상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길이도 제대로 맞지 않게 그린 이유는 신문의 지면 구성상의 문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위의 개략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이렇게 좁은 장소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상상할 수 없게 하고, 강한 힘에 의해 무리하게 정화조에 갇혀버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개략도는 자연히 온갖 엉터리 음모론과 루머를 낳게 되었다. 일례로 미스터리 관련 내용을 다루는 한 인터넷 방송인은 이 허술한 개략도만 보고 사건의 신빙성을 의심해,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이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 아닌 일종의 도시전설이었으리라 짐작하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2017년에도 부정확한 개략도에서 비롯된 잘못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기존 개략도에서 그려진 상태를 보면 바닥에 놓인 신발이 아니라 벽에 기댄 머리가 먼저 보여야 하는데 이것이 '화장실에서 변기 아래를 내려다보니 신발 같은 것이 보였다'는 A교사의 진술 및 '신발이 머리맡에 있었다'는 경찰의 진술과 상충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A교사는 사실 발에 신겨진 신발을 화장실에서 내려다본 것이고 경찰의 진술은 왜곡된 것이며, 이에 따라 실제 개략도를 그려보면 위의 사진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전술했듯이 이는 기존 개략도의 부정확성에 따른 오해에 불과할 뿐이며, A교사의 다른 진술인 '정화조 입구에서 내려다보니 사람의 다리 같은 것이 보였다'를 빠뜨리고 있다.
사망자의 키는 169.2㎝인데, 170㎝라고 가정하고 종횡비를 알맞게 그린 위의 컬러 사진[12]이 더 정확하다. 화장실에서 변기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 얼굴이 아니라 머리맡에 있는 신발이 먼저 보인 이유도 이 사진으로 설명이 가능한데, 머리가 벽이 아니라 바닥에 닿아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3.2. 경찰의 입장에 대한 왜곡
마치 경찰이 '청년이 A교사를 훔쳐보려고 정화조에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어 동사했다'고 수사 결과를 냈으며, 경찰이 직접적인 증거도 없는데 청년을 관음증 환자로 몰아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잘못된 정보가 떠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경찰의 공식적인 결론은 '청년이 A교사 숙소의 정화조에 무언가의 목적으로 자의로 들어갔다가 나갈 수 없게 되어 동사했으며 범죄와 관련이 없다'이다. 즉 청년이 정화조에 들어간 목적에 대해서는 경찰도 알 수 없기에 자세한 이유를 언급하지 않았다.다음은 위 개략도 사진이 실린 AERA 1989년 7월 4일호 기사문의 일부분이다.
警察は、A子先生宅の便槽に何かの 目的で入って、そのまま出られなくな って凍死したのではないかとみてい る。何かの目的というのは「のぞき」 以外には考えにくい。
경찰은 A교사의 집의 정화조에 무언가의 목적으로 들어가 그대로 나갈 수 없게 되어 동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무언가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엿보기 이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경찰은 A교사의 집의 정화조에 무언가의 목적으로 들어가 그대로 나갈 수 없게 되어 동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무언가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엿보기 이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
여기서 앞의 문장은 경찰의 입장인데, 뒤의 문장인 '무언가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엿보기 이외에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글은 기사문을 쓴 기자가 덧붙인 사견에 불과하다. 저 부분이 마치 경찰의 입장인 것처럼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1994년에 해당 사건을 다루는 한 방송에서 인터뷰에 응한 관할 경찰은 재차 '자신의 의지로 정화조에 들어가 동사했으며 범죄와 관련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엿보기', '관음증'과 같은 말은 나오지도 않는다.
따라서 기자가 붙인 사족을 경찰의 견해로 잘못 해석한 것이거나, 아니면 수사기관에 대한 지나친 불신이 확대 해석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부 매체에서도 이러한 잘못된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내보냈다.
4. 사고사설
다음과 같은 근거로 청년이 스스로 정화조에 들어가 사고사한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가설이다.- 타살 혐의점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 A교사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을 당시 정화조 뚜껑이 닫혀 있지 않고 열려 있던 상태였다.[13] 만약 살인 사건이라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거나 피해자가 나오는 행위나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려 소리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뚜껑을 닫아버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하지만 정화조 뚜껑은 열려 있었다. 이는 피해자가 자의로 정화조에 들어가서 나중에 나올 의도[14]가 있었으며, 범죄와 무관함을 알려준다.
- 강제에 의한 범행으로 보기에는 상처가 너무 적은 시신으로, 부검 결과 피해자의 시신에서 무릎과 팔꿈치에 살짝 까진 상처 외에 별다른 외상이 없었다.[15][16] 만약 살인 사건이라면 저항흔이나 사후에 생긴 상처가 발견되어야 한다. 법의학의 영역인 부검에서 상처가 생전에 발생한 것인지 사후에 발생한 것인지 정도는 생체반응의 유무로 쉽게 알아낼 수 있다.
- 입구가 내경 36㎝[17]의 원통형이고 ㄷ자로 꺾인 정화조는 성인 1명이 척추와 관절을 움직여 자기 의지 하에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이다. 타인이 욱여넣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의로 하는 것조차도 유연성과 근력이 모두 뛰어나고 정신적인 각오와 행동 계획도 미리 단단히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억지로 하는 과정에서 신체의 여러 부위에 상처가 많이 나기 십상인데, 시신은 상처가 너무 적었기에 생전에 본인의 뛰어난 신체 능력과 행동 계획을 믿고 충실히 수행하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 피해자가 정화조 내부에서 옷을 끌어안은 자세로 발견되었다. 이는 피해자가 정화조에 들어간 이후에도 일정 시간 동안 의식이 있는 상태로 살아있었음을 시사한다.
- 피해자가 지인 관계에 있는 A교사의 숙소 정화조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아래에서 설명할, 선거 관계자나 원전 관계자 같은 A교사와 관련이 없는 자들에 의한 타살설을 반박한다.[18]
정화조에 들어간 목적이야 어찌되었든 상관없고, 타살 혐의점이 없고 모든 증거가 사고사를 가리키고 있다면 사고사로 사건의 방향을 가닥 잡는 것이 합리적인 행위이며, 실제로 당시 경찰은 그렇게 사건을 처리했다. 살인, 납치 등의 범죄나 범죄일 가능성이 보이는 경우라면 범죄자의 범행동기이건 범행루트이건 피해자의 사건 당일 동선이나 그 동선을 택해 움직인 사유건 범죄자와 피해자의 당시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을 최대한 조사하는게 맞지만, 범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된 사건에서는 범죄 피해자가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사망자에 불과하다고 확신받는 사람의 행위동기까지 조사해야 할 필요나 의무가 없다. 특별히 동기가 단순하고 쉽게 확인되는 케이스가 아니라면, 범죄가 아닌 형태의 변사사건에 대해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수사기관이 이러한 매뉴얼대로 사건을 처리한다.
4.1. 설명 가능한 의문점
이 사건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의문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사고사라면, 피해자는 어떻게 스스로 정화조에 들어갔는가?
출처: 당신이 혹하는 사이 파일럿 2화
유튜브 영상 9분 15초경
해당 GIF 사진의 시뮬레이션에 나와 있는 방식을 통해 피해자가 스스로 정화조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조금 더 보완하자면 해당 시뮬레이션처럼 물구나무를 서서 바로 들어가면 머리나 손목이 다칠 수 있으므로, 몸을 ㄱ자로 꺾은 채로 옆으로 조심스레 들어간 뒤 손을 정화조 바닥에 짚고 물구나무를 선 채로 변기가 있는 앞쪽으로 몸을 틀어서 들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하면 누군가가 손으로 발목을 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좁은 정화조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대신 옆으로든 아예 아크로바틱처럼 뒤로 들어갔든 어떤 식으로 들어갔더라도 상당한 유연성과 기초 근력은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평범한 성인에게는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할만큼 매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신체 능력과 유연성이 상위권이 아닌 평범한 성인은 이렇게 했다가 허리 관절이나 머리 등에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 쉬운 자세이고, 피해자처럼 별다른 부상도 당하지 않고 들어가려면 들어가는 방식에 대한 계획도 잘 짜고 그에 맞는 연습도 많이 해야 하기에 굉장히 유연하고 튼튼한 몸으로 수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 피해자는 정화조에 끼었는데 왜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는가?
우선 피해자가 주거침입이나 관음과 같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정화조에 침입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주변에 소리를 질러 도움을 청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정화조에서 농축된 대소변이 썩으면 메탄을 포함한 다량의 가스가 발생하는데 이러한 가스는 사람에게 강력한 환각 효과를 부여하며 심하게는 기절을 유발하기도 한다.[19] 환각 또는 기절 상태에서 도움을 요청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그대로 저체온증으로 이어져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 피해자는 왜 A교사의 숙소 근처에 자동차를 세워두고 차 안에 열쇠를 꽂고 떠났는가?
A교사의 숙소 그 자체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랬을 수 있다. 또한 외부인이 별로 없는 시골이기 때문에 도난 위험성이 적은 데다가, 숙소가 바로 근처라서 굳이 열쇠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 또한 자동차가 비스듬히 주차된 사실로 볼 때 애초에 장시간 주차를 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화조에 머무를 시간을 그렇게 길지 않게 잡아두었거나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씻으러 바로 떠날 의도를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 피해자는 왜 정화조 안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로 발견되었는가?
저체온증이 장기간 지속되면 추운데도 옷을 벗어버리는 이상 탈의(Paradoxical Undressing)[20] 행동을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는 피해자가 상의를 탈의한 채로 발견된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피해자가 정화조에 들어갈 때 내경이 36㎝에 불과한 좁은 정화조 입구를 감안하면 물리적인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자신의 부피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미리 상의를 벗은 채로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참고로 2004~2006년에 일본 경제산업성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25~29세 남성의 평균 어깨너비는 40.4㎝이며, 피해자는 신장 169.2㎝, 체중 69.5㎏으로 결코 왜소하지 않은 체구이다. - (음모론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경찰은 왜 소극적으로 수사를 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경찰은 기본적인 수사는 모두 했으며 사고사라는 공식 입장도 내놓았기에 기실 미제 사건으로 분류하기도 어렵다. 경찰은 본디 여론에 민감한 편이며 수사를 다 해보았고 타살 혐의점도 없었으니 '피해자가 어떠한 이유로 자발적으로 들어가서 발생한 사고'라고 수사 결과를 밝혔는데, 피해자의 아버지와 마을 주민 수천 명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탄원서까지 제출하는 상황이니 이러한 여론의 눈치를 안 볼 수는 없기에 피해자의 명예를 최대한 지켜주고 마을 주민들을 더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사건을 끝낸 것이고, 이것이 다소 와전되어 소극적으로 수사하고 마치 사건을 조작이라도 하는 것처럼 비춰졌을 가능성이 크다.[21]
4.2. 갖가지 추측이 무성한 의문점
'피해자가 왜 정화조에 자발적으로 들어갔는가?'와 '왜 신발 한 짝이 마을 하천의 제방에 떨어져서 발견되었는가?'라는 의문점은 나름대로의 사고 정황을 추정하는 여러 시나리오가 제기될 뿐, 피해자가 고인이 된 이상 확실한 이유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4.2.1. A교사 숙소의 정화조에 들어간 목적?
먼저 '피해자가 왜 정화조에 자발적으로 들어갔는가?'에 대한 의문점인데,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정화조를 통해 A교사의 숙소에 침입하려고 했다면 그냥 문을 따고 숙소에 들어가는 것이 더 깨끗하고 빠르다. 정화조에 빠진 물건을 꺼내기 위해 들어갔다고 생각하기에는 정화조에서 발견된 물건들 중 특별한 것이 없었기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게다가 A교사가 집을 비운 날 굳이 정화조에 들어가면서까지 몰래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경찰은 수사가 시작된 지 일주일쯤 지난 날에는 실족 사고[22]로 정화조에 빠진 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지만[23], 이후 입장을 선회해서 청년이 정화조에 자발적으로 들어갔다가 사망했으나 그 동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밝혔다.
4.2.1.1. 도착증 보유자의 자기색정사 설
피해자가 일종의 도착증을 앓고 있다는 가정 하에 성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 정화조에 스스로 들어갔다가 자기색정사를 했다는 주장이며, 이렇게 놓고 고찰하자면 몇 가지 가능성이 생긴다. 하단의 '유사 사건' 문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제로도 관음과 같은 목적으로 정화조에 들어간 다른 범죄 사례가 있어서 이 사건도 그랬을 가능성이 재조명되었다.피해자는 생전에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활달하고 예의 바른 청년으로 명성이 자자하기는 했으나, 애초에 본인의 성벽이나 도착증을 아무에게나 터놓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며 개인의 인품과 도착증은 상관관계가 전무하다. 더욱이 이러한 도착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특이 취향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두려워, 소위 일반인 코스프레를 함으로써 자신의 도착증 및 특이 취향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이중삼중으로 숨기기 때문에 청년의 인품을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청년이 평소에 예의 바르고 인성이 좋기로 알려졌다는 것과 별개로 A교사를 훔쳐보기 위해 정화조에 침입했다가 자기색정사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색정사로 사망하는 사람들 중에도 주변의 평판이 좋거나 사회적 위치가 높은 이가 여럿 확인되었으며, 이러한 사건들 중에는 워싱턴주 이넘클로 수간 사건처럼 본 사건보다 더욱 황당한 사례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이 가설도 이시이 마이 실종 모친 공모설과 마찬가지로, 수사기관이 아닌 일반인들이 내놓은 추론이며 피해자가 특정 도착증의 보유자였음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으므로 어디까지나 정설이 아닌 가설의 영역에 지나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수사 및 사건에 대한 추론은 사례를 바탕으로 통계를 내어 유형과 특징을 추려내는 것이 원칙이다. 아무튼 이 가설에 입각하여 추론할 때 가능성이 있으리라 사료된 도착증은 다음과 같다.
- 관음증(이성의 나체를 훔쳐보면서 성적 흥분을 느낌)
피해자가 A교사의 나체 상태의 하반신을 보려고 정화조에 들어갔다는 추측이다. 당초에 언급된 ① 겨울의 추운 기온, ② 오물의 존재, ③ 숙소 주인인 A교사의 부재를 생각해보면 얼핏 이 가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온이 낮을수록 기체의 확산 속도가 느려져 유해 성분이 가득한 정화조의 악취가 덜 나기 때문에 일부러 피해자가 ①의 날씨에 정화조에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순히 피해자가 본인의 성욕 때문에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①, ②의 사실을 간과했다고 볼 수도 있다. 애초에 관음증과 같은 이상성욕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이성적으로 행동했다면 자기색정사 사례는 전 세계에서 보고되지도 않았을 것이다.[24] 마지막으로 A교사와 지인 관계였다고 해도 A교사의 모든 일과를 파악할 수는 없으며, ③의 정보를 모르고 들어갔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가 ③의 정보를 이용하여 A교사가 부재중인 2월 24~27일 사이에 일부러 정화조에 들어가 일종의 예행 연습을 한 것일 수도 있다. A교사가 숙소 안에 있는 상태에서 사전 준비도 없이 무작정 정화조 안으로 들어간다면 A교사에게 발각될 확률이 높다. 피해자는 평소에 주변의 평판을 좋게 관리해왔기 때문에 자신의 범죄와 이상성욕이 드러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서 행동을 할 필요가 있었고, A교사가 부재중인 기간에 들어가 예행 연습을 하고 실제 관음 행위는 A교사가 숙소에 돌어온 28일 이후에 행할 계획을 세워두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는 A교사의 휴가 시작일과 피해자의 실종일이 24일로 동일한 점 역시 설명한다.
관음증이 있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보면, 피해자는 정화조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더 나은 방법들을 이전에 생각해보았을 수도 있다. 예컨대 주택의 욕실을 엿보는 것이나, 온천이나 수영장 등의 불특정 다수가 모인 장소에서 엿보는 것 등이다. 하지만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인 미야코지무라에서 공중화장실은 거의 없었을 것이고, 바다까지는 편도 1시간 이상이 걸리며, 목욕탕이나 온천도 근처에는 없으며, 주택의 창문을 엿보는 것은 들킬 위험을 수반한다. 또한 불특정 다수보다는 평소 자신이 알고 있으면서 이상형에 가까운 특정인을 엿보는 것이 아무래도 더욱 선호되기 마련이다. - 스카톨로지(이성의 분뇨를 탐닉[25]하면서 성적 흥분을 느낌)
이성이 용변을 보는 장면을 훔쳐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성의 용변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가설로, 이는 도착증의 일종으로 일명 스카톨로지(스캇)라고 한다.[26] 피해자는 지인 관계인 A교사의 개인 숙소 내부 변기와 연결된 정화조에서 발견되었다. 다인 숙소가 아닌 개인 숙소이므로 정화조에는 타인의 분변이 섞이지 않은 A교사의 분변만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는 어쩌면 스카톨로지 취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A교사에게 성적으로 호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A교사에게 대소변을 달라고 직접 요구할 수는 없었을 테니, 정화조에 직접 들어갔다는 것이다. A교사가 휴가로 부재중일 때 피해자가 정화조로 들어간 것도 A교사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말이 되는데, A교사의 휴가 시작일(24일부터 부재중)과 피해자의 실종일(24일 오전 10시부터)이 공교롭게도 일치한다. 어쩌면 피해자는 예전에는 정화조에 있는 배설물을 삽 등의 도구로 훔쳤을지도 모르지만, 정화조에 직접 들어갈 정도라는 것은 조금 더 높은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기 위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마치 일반인이 음란물을 보다가 더욱 큰 쾌락을 향해 점점 자극적인 영상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정화조 바닥에서 변기 쪽 부분에는 아무래도 형체가 상대적으로 온전한 고형물이 쌓여 있을 확률이 높으므로 그것을 목적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다. 또는 변기 구멍으로 얼굴이 향한 피해자의 자세를 볼 때 A교사의 배설 행위를 관람하면서 대소변을 실시간으로 받아먹으려고 그랬을 수도 있다. 정화조 바닥에서 썩은 분뇨는 세균이 극도로 증식해 있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갓 배출된 신선한 대소변이 요구된다. 굳이 A교사가 부재중일 때 들어간 이유는 위의 관음증 설처럼 A교사의 부재를 몰랐거나 아니면 예행 연습을 하려고 그랬다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27] 또한 스카톨로지 취향을 가진 자들만의 은어로 분변을 몸에 바르는 행위를 소위 '똥팩'이라고 하는데, 맨몸의 상반신에 '똥팩'을 하려고 상의를 미리 벗고 정화조에 들어갔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 BDSM의 마조히즘(이성의 분뇨에 괴로워하면서 성적 흥분을 느낌)
좁은 정화조에 스스로 들어가 자신을 구속시킴으로써 BDSM의 본디지를 스스로 구현하는 동시에 이성의 오물에 둘러싸임으로써 본인의 피학적 또는 피지배적 성향에 따른 쾌락을 느끼는 효과가 있다. BDSM에서도 마이너한 것이기는 하지만 소위 스캇플이라고 도미넌트(주인)가 서브미시브(노예)의 얼굴에 대고 배설하거나 먹게 하는 일종의 상황극 같은 소위 수치플레이가 있다. 실제로 BDSM은 호흡 조절을 하다가 실패해서 질식사하는 경우를 포함하여 약물중독사, 익사, 감전사 등 다양한 방식의 자기색정사 사고가 발생하는 도착증이다. 이러한 사고는 원인을 규명하기 힘든 경우가 많고 범죄나 미제 사건으로 오인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폐소기호증(밀폐된 공간에서 성적 흥분을 느낌)
좁은 공간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폐소공포증과 정반대로 좁은 공간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폐소기호증(claustrophilia)[28]이라는 도착증이 있다. 이것이 성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크기인 정화조에 들어간 것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
4.2.1.2. 저체온증으로 인한 Terminal Burrowing 설
한편, 위에서 언급된 도착증 설과 별개로 피해자가 어떠한 이유로 길거리에서 저체온증에 걸렸으며 저체온증에 수반되는 이상 탈의나, 후술할 Terminal Burrowing과 같은 이상 행동을 본능적으로 했다는 가설이 있다.상술했다시피 저체온증이 장기간 지속되면 정상적인 판단력이 극도로 떨어지면서 추운데도 옷을 벗어버리는 이상 탈의 행동을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는 피해자가 상의를 탈의한 채로 발견된 것과 관련이 있을 수 있고, 얼어 죽기 직전까지 가면 좁은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Terminal Burrowing(터미널 버로잉)'[29]이라는 행동을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는 피해자가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크기인 좁은 정화조에 들어간 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즉 정화조에 들어간 이후에 저체온증에 걸린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미 저체온증에 걸려 있었고, 이것이 좁은 정화조에 들어가는 행동으로 귀결되었다는 추측이다.
하지만 저체온증으로 인해 생명이 위험해지기 전에 자신의 자동차로 돌아가거나 귀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더욱이 사건 발생 장소는 오지도 아닌 피해자의 연고지였기에 위의 도착증 가설에 비하면 다소 미흡한 구석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지 멀쩡한 청년이 연고지인 길거리에서 저체온증에 걸리게 된 이유는 만취나 약물 복용 등의 원인으로 심신 미약 상태에 이른 경우를 예시로 들 수가 있을 텐데[30], 부검 결과 피해자에게 혈중 알코올이나 약물 성분이 검출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가장 결정적으로 이 가설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여러 번 언급되었듯이 사망자의 시신에 외상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도저히 저체온증으로 의식이 흐려지면서 벌인 충동적 행위로 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동기 같은 부수적인 것을 제외하고 이 사건의 핵심은 결국 2가지인데, 첫째로 시신의 자세를 취하기 위해 정화조에 들어가는 동작이 충동적인 일회성 행위가 절대 아니라 고도로 계획된 복잡한 여러 구분 동작들의 효율적이고 연속적인 수행이라는 점이며, 둘째로 그를 통해 피가 어느 정도 나는 상처나 멍이 들 가능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시신은 뚜렷한 상처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화조 입구 앞은 막힌 벽이었기에, 그 자세로 들어가려면 뒤로 아크로바틱을 하듯이 들어가거나 옆으로 들어가서 오물이 들어 있는 바닥을 짚고 물구나무 선 자세에서 조금씩 돌면서 각도를 틀어야 하는데, 이는 일반인 수준의 근력 및 유연성과 집중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고 신체 단련과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하며, 그런 단련이 되어 있는 신체여도 구분 동작을 하다 보면 긁히거나 부딪혀서[31] 뚜렷한 멍이나 상처가 여러 군데에 생기기 십상인데도 시신은 외상이 극히 적었다.
이는 명백한 계획성과 높은 집중력이 있었다는 방증이므로, 저체온증처럼 집중력과 판단력을 떨어뜨리는 증상으로 인한 이상행동 겸 충동행동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만큼 지극히 어렵다. 만약 사망자가 아크로바틱을 직업적으로 하던 사람이라 해도, 평소 해당 대상인 정화조에 대한 계획된 연습도 없는 상태인 판에 저체온증 등으로 집중력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멍이나 상처도 별로 안 내면서, 좁아터지고 구조물 소재가 까끌까끌한 정화조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데, 일반인이라면 더더욱 불가능하다. 차라리 시신의 여러 피부 부위에 멍과 상처라도 많았다면 사건 전 상황에 대한 가능성의 범위와 추측에서 이야기가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상처가 너무 적고 그나마 있는 극소수의 상처도 너무 작은 상처라는 부분이 전반적인 가능성을 많이 좁힌다.
4.2.2. 신발 한 짝이 제방에서 발견된 이유?
두 번째로, 피해자의 신발 한 짝이 교직원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하천의 제방에서 발견된 이유를 놓고도 갖가지 추측들이 무성하다. 신발이 실수로 벗겨졌다고 하더라도 그걸 가져가지 않은 것은 확실히 일반적인 행동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공격당해 흘렸다고 판단하면 얼핏 보기에는 타살설이 더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나, 부검 결과 피해자의 시신에서 범죄가 의심되는 외상(저항흔이나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타살설 역시 한계가 있다.- 사건과 관계없이 우연히 떨어뜨려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우연히 떨어뜨렸다'고 발표를 했다. 경찰의 견해대로 피해자가 사건과는 관련없는 이유로, 잠시 볼일이 있어서 제방으로 갔다가 신발을 가지고 올 수 없는 이유가 생겨[A] 어쩔 수 없이 두고 갔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제방은 청년의 자택과 차로 10분 이내의 거리에 있어서 언제든지 다시 가서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과 관련이 없었다고 생각해보면 편하게 해결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근거가 빈약하다는 한계점이 있다.
- 씻을 곳을 찾기 위해서?
정화조에서 나왔을 때 더러워졌을 몸을 씻을 곳을 찾을 의도로 여러 장소를 물색해 보다 제방이 있는 하천 부근을 정화조에 들어가기 이전에 한 차례 방문했을 수도 있다. 그곳에서 본인의 실수 등 모종의 이유로 신발 한 짝이 벗겨졌는데, 그걸 바로 찾지 못할 이유가 있었고[A], 어차피 나중에 씻으러 다시 방문할 거니까 신발을 어떻게 찾을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는 식으로 놔두고 갔을 수도 있다. 피해자의 자택과 A교사의 숙소를 이은 일직선상에 제방이 있어서 동선도 일치한다. 참고로 굳이 집이 아니라 다른 장소에서 씻으려고 했던 이유는 당시 피해자가 혼자 살지 않고 부모 및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성인 남성이 며칠 동안 야외에 있다가 갑자기 온몸에 분뇨를 바른 채로 집에 귀가하면 가족은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가족이 잠든 시간대를 틈타 집에 몰래 들어와 씻는다고 하더라도 온 집안에 분뇨와 악취가 남을 가능성이 크다.
- 들개 같은 야생동물이 물고 가서?
피해자가 어떠한 이유로 신발 한 짝은 정화조 입구나 숙소 근처에 두고 다른 한 짝은 정화조 안에 같이 들고 갔는데, 시골에 흔히 있는 들개나 기타 야생동물이 정화조 입구 근처에 놓인 신발 한 짝을 제방까지 물어다가 가져갔다는 추측이다.[34] 만약 관음과 같은 불순한 의도로 정화조에 들어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추후 타인에게 들켰을 때 이를 무마하기 위한 용도로 신발 한 짝을 정화조에 일부러 같이 들고 간 것일 수도 있다. 타인에게 들켜도 실수로 정화조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찾으려고 들어갔다는 식으로 둘러대면 되기 때문이다. 아래의 유사 사건의 이른바 '배수구남'도 최초 검거 당시에는 배수구에 떨어진 100엔 동전을 찾으려고 들어갔다는 말로 경찰에게 얼버무렸다. 또는 훔쳐보려고 들어간 것이라면 변기 바로 아래쪽에 상대적으로 많이 쌓여 있는 분변을 신발로 퍼내서 공간을 확보할 목적으로 신발 한 짝을 정화조에 같이 들고 간 것일 수도 있다. 피해자의 자세와 머리맡에 놓여 있던 신발이 이를 뒷받침한다.
5. 타살설
만약 피해자가 누군가에 의해 타살당했다면, 일단 사인은 얼어 죽은 것이기 때문에 감금시켜 얼어 죽게 하고 시신을 정화조에 욱여넣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있다. 하지만 부검에서 사후에 발생된 상처는 발견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정화조 내에서 상의를 끌어안은 자세로 발견되었기에 개연성이 다소 떨어진다. 입고 있던 옷을 끌어안은 자세로 발견되었다는 것은 정화조에 들어간 후에도 일정 시간 동안 의식이 있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혹은 기절시키고 누군가가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 있다. 아니면 범인은 최소 2명 이상이 될 가능성도 있는데, 일단 피해자를 기절한 상태로 데리고 가서 정화조에 욱여넣어야 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에서 서술한대로 정화조는 성인 1명이 자기 의지 하에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이며, 타인이 사망 또는 기절한 피해자를 욱여넣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이다. 피해자가 스스로 들어가는 경우는 시뮬레이션으로 증명되었지만 타인이 욱여넣어서 들어가는 경우는 시뮬레이션으로도 증명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를 세워보자면 2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범인(들)이 피해자를 신체적/정신적으로 제압한 뒤, 굴욕감을 주거나 자살당하게 하기 위해 정화조로 기어들어가라고 강요하는 시나리오이다. 이 경우에라도 범인(들)이 장갑을 끼고 피해자를 뒤에서 밀어주거나, 발목을 붙잡고 받쳐주는 등, 기어들어가는 것 자체는 도와주었을 수 있고 2021년 국내에서 방송된 당신이 혹하는 사이에서도 이 사건을 다룰 때 누군가가 그런 식으로 도와줬을 가능성은 부정하지 않았다. 범인(들)도 얼른 도망쳐야 할 텐데, 강요해놓고는 뒤에서 팔짱 끼고 보고만 있거나 먼저 그 자리를 떠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칼 등으로 협박당해 옷을 벗고 정화조에 들어갔다고 해도, 마을 주민들이 증언하는 평소 피해자의 성격대로라면 저항 한 번 없이 순순히 들어갈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피해자는 정화조 내에서도 일정 시간 동안 의식이 남아 있던 상태였는데, 주변에 다른 교사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범인이 떠난 뒤에도 소리를 지르면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저항흔이나 혈흔도 발견되지 않았고, 주위에 살고 있는 교사들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이상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범죄자들에게 갑자기 강요를 당해서 정화조에, 그것도 일반 정화조보다도 작고 좁고 피부도 까지기 쉬운 그 정화조에 억지로 들어갔다면 왜 이렇게 시신의 상처가 적은지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강요로 그랬다면 실제 시신처럼 무릎과 팔꿈치의 작은 상처들로 끝날 수가 없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머리, 허리, 어깨, 가슴, 팔, 허벅지, 엉덩이 등 피부에 멍이나 뚜렷하고 알아보기 쉬운 크기의 까진 상처가 생길 부위가 너무 많고, 손가락 및 손목 관절을 다치거나 허리관절을 다칠 가능성도 너무 많다. 그런 큰 상처 하나라도 나왔다면 경찰이 당연히 범죄 가능성을 버리지 않고 많은 수사를 했을 것이고, 그전에 시신을 꺼내는 과정에서도 경찰의 통제에 의해 멀리 떨어져서 보던 동네 주민들 눈에도 물에 씻긴 시신의 피부외상이 잔뜩 보여서 후에 상처를 많이 봤다는 증언이 남았을 것이다. 하다못해 기자들이라도 나서서 뭔가 캐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증언 기록은 없다.
두 번째로는 제방에서 신발 한 짝이 발견된 점을 근거로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에 공격당하거나 쫓겨 도망치는 과정에서 신발이 벗겨지고 이후 숙소의 정화조에 들어가게 되었을 것이라는 시나리오이다. 하지만 바로 근처에 열쇠가 꽂힌 채로 주차되어 있는 자신의 자동차에 피신할 수 있거나 살려달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굳이 남의 숙소의 정화조에 들어가서 자기 스스로 독 안에 든 쥐가 되어야 했는지 알 수 없다. 굳이 피신하려고 정화조에 들어갔다면 발각되지 않기 위해 정화조 뚜껑을 스스로 닫거나 발각되더라도 손으로 최소한의 저항을 할 수 있는 바로 선 자세로 들어가지, 완전히 무방비한 물구나무 자세로 들어갈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이렇게 보면 교직원 숙소 근처에 열쇠가 꽂힌 채 피해자의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던 점도 어느 상황을 가정하든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 누군가 제방에서 청년을 제압해 신발이 벗겨졌으며, 이후 청년을 싣고 청년의 자동차를 몰아 숙소로 이동한 것이다?
의문점: 청년의 시신에서 범죄로 의심될 만한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자동차에서 용의자의 DNA나 지문(또는 지문을 닦는 등 인멸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 청년이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제방에서 신발이 벗겨졌으며, 이후 급하게 뛰어가 숙소로 달아난 것이다?
의문점: 숙소 근처에는 정화조보다 더 안전한 자가용이 주차되어 있는데 왜 자가용으로 피신하지 않은 것인지 의문이다. 또한 왜 하필 그곳에 열쇠가 꽂힌 채 자가용이 주차되어 있었을까? - 청년이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제방에서 신발이 벗겨졌으며, 이후 자동차에 타서 운전해 숙소로 달아난 것이다?
의문점: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이후 자가용을 타고 이동한 것이라면 왜 경찰서나 자택으로 가지 않고 숙소 부근에 주차해서 내린 후 정화조에 들어가 스스로를 다시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했을까?
한편 후술할 배후설들은 그 근거의 대부분을 페이크 다큐멘터리인 '바리조곤'에 의거하고 있는데, 대부분 음모론의 영역에 지나지 않고 있다.[35] 또한 일부 음모론자들이 수사기관을 맹목적으로 불신하면서 기본적 사실조차 왜곡하고 있는 점은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5.1. A교사에게 걸려온 장난전화와 관련되었다는 설
시신을 처음 발견한 A교사와의 관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었다.사망한 청년과 A교사는 생전에 알던 사이였는데, 청년이 A교사의 애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A교사는 평소 의문의 장난전화에 시달려서, 청년과 A교사의 애인이 함께 장난전화를 녹음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청년은 A교사에게 장난전화를 건 사람에 대해서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 청년이 장난전화를 건 사람에게 따지러 갔고, 궁지에 몰린 용의자가 청년을 제압한 후, 자신의 범죄 의심을 청년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일부러 A교사의 집 정화조에 강제로 밀어 넣어 굴욕적으로 죽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했다.
피해자의 시신이 A교사의 숙소에서 발견된 이유는 그럭저럭 설명이 되지만, 여전히 아무런 근거가 없고 장난전화를 한 인물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부 상상에 맡겨진다는 한계가 있다.
5.2. 미야코지무라 촌장 선거와 관련되었다는 설
마을에서 인망 높던 청년의 죽음에 미야코지무라 주민들 사이에는 당시 유례없던 열기의 촌장 선거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한다.당시 재임 중이었던 와타나베 유이시로 촌장은 마을에 원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원전파였고, 연임을 위해 차기 촌장 후보에 등록한 상태였다. 같은 원전파였던 청년은 선거 운동 마지막 날인 2월 18일에 와타나베 촌장 측으로부터 투표 당일인 19일에 찬조연설을 해 달라고 부탁받았지만 이후 부탁을 거절했는데, 당일 오전에 친구 집에 찾아가 말하기를 '(연설) 부탁을 받았지만 눈이 와서 가기 싫어 (연설을) 안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촌장 선거로부터 9일이 지난 28일에 청년은 A교사 숙소의 정화조 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따라서 일련의 일로 원한을 품은 선거 관계자가 청년에게 굴욕적인 죽음을 선사한 것이 아닌가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한편 후술할 페이크 다큐멘터리인 '바리조곤'은 부정한 금품이 오고 가면서 혼탁한 과열 양상을 띄는 선거판에 청년이 염증을 느껴 찬조연설을 거절했으며, 선거 운동의 핵심 인물인 분뇨수거차 기사가 분뇨수거차를 끌고 와서 현장을 파헤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작 촌장 선거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는 것은 너무 무리한 일일 뿐더러, 설사 살인과 그에 따르는 시신 은폐를 할 이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냥 야산에 묻어버리는 것이 안전하지 굳이 피해자의 지인의 영역에 억지로 욱여넣는 무리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음모론자들이 가해자로 지목한 촌장 후보의 가족들은 이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 등 하도 시달린 탓에 이제는 이 사건을 떠올리기도 싫다고 한다. 무고한 피해자를 위해 음모론자들이 한다는 행위가 오히려 또 다른 무고한 피해자들을 만들어내는 격이다.
5.3.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관련되었다는 설
이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이 발생하고 22년이 지난 2011년, 사건이 발생한 장소와 가까운[36] 곳에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자 이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왜냐하면 죽은 청년이 생전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하청회사의 영업사원이었기 때문이다.[37]1989년 1월 6일에 후쿠시마 제2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재순환 펌프의 부품이 깨져서 깨진 부품의 일부가 원자로 안에 끼어 들어갔는데,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1988년 연말부터 이미 재순환 펌프에 이상이 있다는 경보가 울렸지만 이를 무시하고 원자로를 계속 가동한 결과 레벨 2에 해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 원자로를 책임지고 있던 도쿄전력의 보수과장은 본래의 책임자들이 신년 휴가를 가는 바람에 대신 원자로를 책임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 사람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도쿄전력 본사에 소환되어 책임을 추궁받은 뒤 후쿠시마로 돌아가는 길에 우에노역에서 투신자살했다. 그런데 원전을 반대하는 단체 측은 정화조에서 의문사한 청년이 이 투신자살한 직원의 동료였는데 동료의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다가 도쿄전력을 적으로 돌리게 되었고, 결국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 아니냐고 주장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폭발이 일어나기 전부터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이 발전소에서 현장 감독을 역임했던 히라이 노리오에 의해 폭로된 바 있다. 히라이 노리오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결함에 대해 폭로한 것은 이 청년이 정화조에서 의문사를 당하고 7년이 지난 1996년이다. 히라이 노리오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는 중대한 결함이 있는데, 발전소 측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조치를 취하기는커녕 쉬쉬하고 은폐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청년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결함을 언론에다 폭로하려다 의문사를 당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다만 이 경우라도 청년이 가까운 지인이었던 A교사의 숙소 정화조에 산 채로 들어가게 된 이유와는 크게 연관되는 설명을 할 수 없다. 또한 주변에는 다른 교사들도 살고 있었고 정화조 뚜껑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하면 높은 확률로 구출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도쿄전력이 비도덕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왔고 그로 인해 블랙 기업이라는 악명을 써 온갖 추문의 중심에 섰던 것은 사실이나 본 사건과는 별개의 사실에 불과하다. 또한 발전소의 결함을 폭로한 현장 감독 히라이 노리오는 당시에 암살되지 않고 버젓이 살아있었으며 도쿄전력의 정직원도 아니고 하청업체의 일개 말단 영업사원에 불과한 청년을 왜 정화조에 욱여넣는 수고를 들여 큰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암살하느냐는 반론도 있다.
그리고 도쿄전력 보수과장과 하청업체 영업사원이 동료였다는 주장도 반원전 단체 측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며 설득력이 떨어진다. 직장도 원청과 하청으로 다르고, 직무도 유지보수와 영업으로 다르다. 단순히 같은 분야에 종사했다는 이유로 큰 접점도 없는 두 명의 사람을 동료로 엮은 것처럼 보인다.
6. 매체에서
사망한 청년의 아버지는 1994년에 후지 테레비의 프로그램인 '초상현상을 보았다'에 출연해 아들의 의문사에 대해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영상 중반 즈음에 정화조의 레플리카에는 정화조의 내경 36㎝보다 더욱 좁은 내경 30㎝의 금속 프레임이 입구에 붙어있는데, 출연진이 들어가는 과정을 재현해보려고 하자 금속 프레임이 빠져버리기까지 했다. 실제 정화조에도 저러한 금속 프레임이 존재하거나 접합되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바리조곤 포스터 |
1996년에 일본의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와타나베 이츠키(渡邊文樹)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모큐멘터리)인 '바리조곤(バリゾーゴン)'[38]을 제작했다. 바리조곤은 이 의문사한 청년의 죽음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어두운 부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으며, 의문사한 청년이 우에노역에서 투신자살한 원전 직원을 살해한 암살자가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즉 진상을 알아 위험해진 암살자를 다시 암살자를 고용한 혹은 지시한 쪽에서 살해했다는 주장이다. 각종 음모론들도 대부분 이 바리조곤을 근거로 하고 있다.
유튜브에 게재된 1시간 55분 분량의 영상을 통해 확인되는 바리조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A교사는 수줍음이 많고 칸노 나오유키를 사랑하는 여자친구였지만 다른 남자들과 성관계를 하는 천박하고 헤픈 여자였다. 당시 나오유키는 후쿠시마 제2 원자력 발전소에서의 잦은 사고 때문에 원전 사업을 권유하는 촌장의 행태에 크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후 뇌물이 오고가는 부정선거의 전말을 알게 된 정의로운 청년이 폭로를 준비하다가 백주대낮에 촌장에게 사주를 받은 다수의 청년회 원전파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뒤 A교사가 보는 눈 앞에서 정화조에 머리부터 처박히는 일종의 물고문을 당하다가 의도치 않게 사망하게 되는데, 촌장과 유착 관계였던 경찰서장이 이를 은폐하는 과정에서 청년회 원전파들의 알리바이를 조작하고 분뇨수거차 기사를 매수한 뒤 현장을 파헤치게 하고 부검에서 진실을 알게 된 부검의를 윗선을 통해 압박한 뒤 사직하도록 종용하고 입막음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 특성상 이 사건을 소재로 차용한 뒤 각색했을 뿐 실제 사건 내용과는 큰 관련이 없으며, 정보로서의 가치도 많이 떨어진다. 당장 민주국가의 경찰이 특정 세력만을 비호하면서 목격자, 구타자, 운전기사, 부검의를 모두 입막음할 수 있는 절대권력을 가진 집단처럼 묘사되는데 현실성이 많이 떨어지며, 음모론도 유효한 주장이라기보다는 별다른 근거 없는 피해망상에 가깝다. 그나마 유용하다고 할 수 있는 정보는 재현된 장면이 아닌, 유가족인 아버지와 어머니와 실제로 인터뷰하는 부분이다. 어디까지나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본 다큐멘터리에서 유래한 선거 음모론이나 원전 음모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
2013년 3월 10일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사건에 대해 다루었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가 이 청년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식의 가정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는데, 비슷하게 내용을 다룬 바리조곤과는 조금 다르게 투신자살한 동료와 의문사한 청년 둘 다 원자력 발전소 측에서 입막음으로 살해했다고 이야기를 펼쳤다.
2016년에 용감한 기자들 시즌 2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다루었으나, 잘못되거나 출처를 알 수 없는 정보나 많으므로 참고에 유의를 해야 한다. 사건 현장이 재래식 화장실임에도 불구하고 수세식인 화변기 사진을 갖다 쓰는가 하면, 경찰의 주장을 청년이 훔쳐보기 위해 들어갔다는 식으로 전달했는데 실제 청년의 동기는 경찰도 모른다.
2016년에 잡식남들의 히든카드 M16 15회에서도 해당 사건을 기반으로 한 에피소드를 방영하였다.
2021년 2월 24일 S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인 당신이 혹하는 사이 파일럿 2화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내용이 방영되었다. 취재진이 직접 사건 현장인 타무라시를 방문했는데 현지 경찰과 주민들은 대체로 이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렸으나 우연히 당시 동네 소방대를 한 주민이 실제 현장을 목격한 것을 증언했고 또 다른 동네 주민을 통해서 피해자의 집을 방문해 피해자의 어머니를 만나는 데도 성공했다. 중간에 전화 연결을 한 서울대학교 법의학 교수 유성호는 피해자가 살해당하고 정화조에 집어넣어졌다면 신체에 더욱 많은 손상이 있어야 하는데 관절 부위에 긁힌 상처만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스스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답했다. 해당 방영분에서는 누군가가 발목을 잡고 도와주지 않았을까 등의 여러 가능성과 의혹을 제기했다.[39]
또한 영상 말미에 나오는 시는 칸노 나오유키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 지은 자작시라는 거짓 정보가 떠돌기도 했으나, 해당 시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사망한 일본 제국 해군 중위가 연인에게 쓴 시이며, 이후 1976년 2월에 발매된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 '하얀 훈장(白い勲章)'으로 각색된 것이다. 아마도 칸노 나오유키가 개인적 흥미로 필사한 '하얀 훈장' 가사의 일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7. 유사 사건
이 사건이 발생한 후 일본에서는 유사 사건이 약 4건 정도 더 일어났는데, 그중 2건은 관음 목적의 범죄로 밝혀졌고 나머지 2건은 타살 혐의점이 없는 의문사 사건으로 남았다. 본 사건을 모방한 것인지, 아니면 본 사건의 존재를 모르고 단순히 행한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도쿄 공중화장실 정화조 의문사 사건(東京公衆便所便槽内遺体事件, 1990년 4월 17일)
도쿄도 아다치구의 스와기히가시(諏訪木東) 공원에서 작업자가 공중화장실의 정화조 내에서 옆으로 쓰러져 있는 한 남성의 시신을 발견했다. 시신은 스웨터와 바지 위로 점퍼 2장을 겹쳐 입은 상태였다. 연령은 30~50세, 신장은 165㎝, 사후 1~2개월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신원은 확인할 수 없었다.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고, 사인은 메탄 가스로 기절한 뒤 오물에 얼굴을 박아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 아키타 공중화장실 정화조 침입 엿보기 사건(秋田公衆便所便槽内覗き目的侵入事件, 1999년 6월 13일)
아키타현 아키타시 시모하마 해수욕장의 남녀공용화장실에 있던 여성으로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정화조 안에 있던 코스케가와 마사유키(42세, 남)를 체포했다. 정화조는 어른 한 명이 들어갈 정도의 크기고 변기 3개와 연결된 구조였다. 시내에 거주하면서 운전기사 일을 하고 있던 이 남성은 훔쳐보려고 낚시용 허리장화를 입고 공구로 변기를 제거해 침입했으며, 사람이 10명 정도 들어왔지만 절반은 남자였고 냄새가 심해 죽을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 니가타 공원 공중화장실 정화조 의문사 사건(新潟公園公衆便所便槽内怪死事件, 2010년 5월 19일)
니가타현 조에츠시의 가미이나다(上稲田) 공원에서 청소업자가 정화조 내에 시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변사자는 시내에 사는 42세의 무직 남성으로, 친구와 헤어진 이후 약 2주일간 행방을 감추어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한 상태였다.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고, 식도와 위에서 분뇨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살아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되었다. 사인은 분뇨로 인한 익사 또는 산소결핍으로 인한 호흡기능장애로 추정되었다.
- 효고 배수구 침입 엿보기 사건(2013년 6월 5일 및 2015년 8월 16일 및 2023년 9월 15일)
효고현 고베시 도로 옆 배수구에서 몸을 숨긴 채 여성의 치마 속을 훔쳐보다가 배수구 덮개에 머리카락이 삐져나온 점 때문에 눈이 마주쳐 발각된 히라이 야스오미(28세, 남)가 2015년에 경찰에 체포되었다. 배수구는 폭 55㎝, 깊이 60㎝ 정도로 성인 남성이 들어가기에는 매우 협소하며, 더러운 폐수가 흐르고 각종 오폐물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게다가 수사 결과 청년은 인적이 뜸한 오전 3시경에 뚜껑을 열고 배수구에 들어가 무더운 한여름 날에 5시간 가량 잠복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청년의 휴대폰 속에서는 몰래카메라 사진과 영상 수십 개가 발견되었다. 같은 혐의로 2년 전에도 체포된 바[40]가 있는 청년은 "연간 80번 정도 배수구에 들어갔다"면서, "다시 태어나면 길이 되고 싶다"는 진술까지 했다.
청년은 평범한 회사원으로 범행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급 주택가에 살고 있었으며, 경제적으로 꽤 유복한 편이었다고 한다. 해당 청년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에 대해 '상냥하고 친절한 청년'이라고 입을 모았으며, "2년 전 사건도 알고 있지만, 얌전한 청년으로 도저히 그런 짓을 할 것 같지 않다"면서 놀라워했다. 청년은 어린 시절에 배수구에 숨었다가 얼굴을 내밀며 행인을 놀라게 할 목적으로 배수구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여성의 속옷을 보게 됐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배수구에서 여성을 훔쳐보는 성적 취향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청년은 "배수구는 안식처와 같다"면서 "나의 장점은 어디서나 잘 수 있는 것으로 단점은 배수구에 들어가는 것이다. 배수구에 들어가면 흥분을 멈출 수 없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또한 한 일본 언론사의 인터뷰에 응한 청년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려서부터 배수구나 좁은 곳에서 숨어 놀기를 좋아했다. 이러한 습관은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고쳐지지 않았는데 이후 나이를 먹고 성적인 흥미와 결부되어버린 것 같았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해당 청년은 일본 웹상에서 일종의 밈이 되었는데, 일본 변태 4대천왕 중 1명인 '배수구남'으로 불린다고 한다. 참고로 나머지 3명은 각각 한 여자고등학교에 침입해 여학생 학교 수영복을 입은 채로 똥을 싸다 체포된 남성, 여고생과 여중생 실내화 50켤레를 훔쳐 편의점에서 복사기로 복사하다가 점원에게 신고되어 체포된 남성[41], 17년간 4,000여 명의 여아에게 접근해 침 500인분과 동영상 200인분을 수집한 아저씨라고 한다.[42] 이 밖에도 남자 중학생들에게 "자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100엔을 주겠다"며 덤벼든 83세 할아버지 등이 있었으나 후보에 머물렀다.
청년이 들어간 배수구 |
배수구남의 근황이 8년 만에 전해졌는데, 2023년 9월 15일에 배수구에 스마트폰을 설치해 18세 여고생의 치마 속을 도촬하다가 발각되었으며 이번이 3번째 체포라고 한다.
8. 참고 링크
-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을 다룬 홈페이지 1(일본어)
-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을 다룬 홈페이지 2(일본어)
-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을 다룬 홈페이지 3(중국어)
- AERA 1989년 7월 4일호 기사문 발췌본(일본어)
- 리얼라이브 2020년 5월 2일 기사문(일본어)
[1] '미야코지촌'이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는 행정구역 단위인 촌(村)을 '무라(むら)' 또는 '손(そん)'으로 읽는다.[2] 사건 현장인 교직원 숙소는 마을 중심부인 후루미치초등학교(古道小学校)에서 바라볼 수 있었고, 운동장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판자로 된 단층집으로 뽕나무밭을 등지고 비탈길에 4채가 나란히 서 있었다. 후루미치초등학교는 현재 미야코지초등학교(都路小学校)로 개명되었다.[3] 당시 숙소의 화장실은 일본 특유의 욕실과 별개로 되어 있는 독립식 실내 변소이고 수세식이 아닌 재래식 화장실(일명 푸세식)이라서 변기 구멍을 통해 아래 정화조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사건 직후에 해당 교직원 숙소 4채 모두 수세식으로 교체되었다.[4] 당시 일본의 시골에서는 오물을 하수도로 곧장 보내는 설비가 구비되지 않아 정화조를 마련하고 주기적으로 분뇨수거차가 와서 진공으로 빨아들이는 구조의 화장실이 많았다.[5] 사망한 청년의 아버지는 억울한 마음에 이 부서진 정화조를 다시 복원해서 사건의 증거물로 자택의 정원에 보관했다고 하며, 이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여기서 흉부는 가슴을 의미하며, 순환장애는 조직 또는 장기의 혈액 순환이 정상이 아닌 경우를 의미하는데, 좁은 공간에 갇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자세로 인해 심장으로 향하는 혈류의 흐름이 저해됨으로서 발생하는 자세성 질식사(Positional Asphyxia)에서 나타나는 소견이다.[7] 1962~1963년생[8] 국내에서는 TV로 보도된 여러 방송에서 '야마모토 기요시'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가명이었고, 당신이 혹하는 사이 파일럿 2회(2021년 2월 24일 방송분)에서 취재를 가며 국내에도 본명이 알려졌다. 고인의 명예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오랫동안 본명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9] 일본은 시정촌의 장을 선거로 뽑는다. 그러므로 촌장 선거는 대한민국으로 치면 소규모 군의 군수 선거에 해당된다.[10] 마을의 한 여성은 2020년에 일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숨진 칸노 씨는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열심히 도와주고, 아이들과 함께 체조를 하고 있었던 것이 인상 깊게 남아 있어요. 경찰은 허술해요. 현장도 출입 통제를 하지 않고 정화조를 부수면서 전혀 수사하지 않았아요. 재수사를 바라는 서명도 4천 명을 넘겼고 칸노 씨의 친척에는 경찰 관계자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위로부터 무언가를 들은 것 같아서 결국 침묵해버렸어요. 칸노 씨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좀 더 노력해도 좋았지 않았어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라고 말했다.[11] 흰색 토요타 크라운 세단[12] 이 파생 사진의 출처는 불분명하나, 일본의 한 인터넷 유저가 기사에 나온 수치상 비율에 맞게 사진을 다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13] 앞서 A교사는 의심스럽게 열려 있던 정화조의 철제 뚜껑 안쪽으로 사람의 다리 같은 것을 발견했다고 증언을 했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다.[14] 다만, 정화조에서 나오는 것은 들어가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비교도 안 되게 더 어렵기는 하다. 실제 사건에서 경찰은 시신을 꺼내는 데에 실패하여 아예 전문적인 해체 공사를 하고 정화조 자체를 부숴서 꺼냈는데, 이는 사후강직 때문에 밖에서 도구로 다리를 잡아 펼 수 없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상당한 유연성이 없으면 그대로 머리가 박혀 기절해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스스로 들어가는 것은 일반적으로 너무 위험한 행동이므로, 이를 큰 상처도 없이 성공한 청년이 선천적으로 일반인 중에서는 유연성이 평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고 평소에 유연성을 기르는 운동도 꾸준히 했을 가능성이 높아, 나오는 것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탈출 가능성과 상관없이 사망자 본인의 예측에서는 스스로 나갈 자신이 있었을 수는 있다. 미리 정화조 전체 구조와 각 부위별 길이에 대한 자료를 연구하고 공부했을 가능성도 있다.[15] 관절 부위(무릎과 팔꿈치)와 닿는 부위에만 발견되는 찰과상은 정화조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된 상처이고 표피의 상처라 소위 말하는 까진 상처 수준이지 심각한 상처가 아니었다.[16] 건장한 성인 남성을 별다른 흔적이나 외상도 남기지 않고 기절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가해자가 손이나 팔뚝으로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면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저항흔이 남거나, 손톱에 가해자의 DNA가 남거나, 목에 액흔(졸린 흔적)이 남거나, 얼굴이나 장기에 울혈(괴어있는 정맥혈)이 남는다. 만약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경계를 전혀 하지 않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가해자가 수면제를 몰래 섞은 음료를 피해자에게 먹이고 재웠더라면 부검에서 약물 성분이 조금이라도 검출되었어야 했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피해자를 기절시켰다면 정화조에 거꾸로 집어넣는 것까지만 가능하고, 시신이 취한 자세인 몸을 웅크린 채 팔을 감싼 자세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행위는 자발적으로 유연성이 있는 동작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거꾸로 집어넣고 깨우거나 해서 바로 넣어도 상처가 적은 상태의 실제 시신과 달리 긁힌 상처가 어깨나 머리 등 여기저기에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본인이 각오하지 않고 저러한 상태까지 타의로 가게 한다면 그 과정에서 신체 곳곳에 외상이 많아야 한다.[17] 이것이 얼마나 짧은 길이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2010년 자료 기준으로 대한민국 성인 남성의 평균 어깨너비는 40.189㎝이다.[18] 시골 동네이면 한두 다리만 거쳐도 다들 지인으로 엮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있으나 이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우선, 후술할 장난전화 일화로 미루어보아 A교사는 자신의 사생활 문제를 스스럼없이 청년에게 털어놓을 정도로 평소 청년에 대한 신뢰가 두텁고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같은 마을에 살면서 몇 번 대화만 해본 상대에게는 이러한 행동을 할 리가 없다. 또한 해당 마을에는 당시 약 4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시골에 산다고 4천 명의 면면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19] 아프리카의 최빈국에서 젊은이들이 직접 제조해서 흡입하는 젠켐이라는 길거리 마약의 원리와 동일하다. 국내에서도 정화조나 맨홀 같은 환경에서 질식 사고로 숨지는 노동자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된다.[20] 이상 탈의의 원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체온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간뇌의 시상하부에 기능 장애가 생겨서 일어난다는 가설과 말초혈관을 수축하는 근육이 갑자기 이완되어 혈류량이 늘어나 사지에 열이 늘어나서 일어난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벌어진 후 도피했다가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이 있는데, 시신에서 양말이 벗겨지고 상의가 올라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저체온증과 이로 인한 이상 탈의가 사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법의학자들은 의견을 제기했다.[21] 대한민국에서도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이라는, 수사 결과에 따라 고인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고 유가족과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런 비슷한 사건이 있다. 해당 사건도 고인과 같이 있던 친구가 죽인 것인데 친구의 아버지가 사회 고위층이라서 사건을 덮으려고 한다는 등 여러 거짓 음모론과 루머가 나돌았다.[22] 조금만 생각해보면 해당 사건이 실족 사고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발을 헛디뎌 정화조 구멍으로 빠졌다면 찰과상보다 훨씬 심한 상처가 몸에 남게 된다. 게다가 사망한 청년의 체격을 고려했을 때 지름이 36㎝에 불과한 좁은 정화조 입구에 몸이 통째로 빠져 실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경찰이 청년의 명예를 생각해서 수사 초기에 일부러 이러한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23] 후쿠시마현 최대의 지역신문인 후쿠시마민보(福島民報)의 1989년 3월 2일자에 수사 관계자가 밝힌 내용이다. 그래서 사건 발생 직후부터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던 사건이었는데, 약 4주 정도 지난 1989년 3월 29일에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은 한동안 다른 곳에서 취재하기 전까지 거의 묻혀버렸다.[24] Sauvageau, A. (2014). "Current Reports on Autoerotic Deaths—Five Persistent Myths"이라는 정신의학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자기색정사 현장에서는 탈출 메커니즘(Escape Mechanism)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탈출 메커니즘이란 본인이 치명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준비하는 최소한의 안전 대비(장치 등)를 말한다. 그 이유로는 사망자의 낮은 위험 인식 수준과 탈출 메커니즘 설계의 복잡성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추운 날씨에 훔쳐보려고 탈출이 불가능한 정화조에 들어갔다가 끼어서 동사했다는 시나리오도 일반인들에게야 부자연스럽겠지만 정신의학적 관점에서는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25]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오감과는 다 관련되어 있다고 보면 되는데, 예컨대 이성의 대소변을 관찰하거나, 용변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삼키거나, 몸에 바르는 것 등이다.[26] 예를 들어 2013년에 한 여성이 자신의 배설물을 팔아 1억 2,000만 원의 부당수익을 벌어들인 혐의로 체포된 사건이 있었는데, 해당 여성에게서 배설물을 구입한 사람들은 대부분 스카톨로지(스캇)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27] 2019년에 일본의 한 블로거가 스카톨로지 설을 제기했으며, 여러 자료와 매체를 토대로 사건을 검토하다가 글 말미에는 미제 사건이 아니라 사고라고 본인은 확신한다고 한다.[28]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감금되거나, 모든 문이나 창 등을 닫고 싶어하는 병적인 선호'라고 설명한다.[29] 이는 죽기 직전에 뇌간이 인체에 내리는 최후의 통첩으로, 인간은 정온동물이기 때문에 정온동물에게서만 나타나는 겨울잠과 같은 행동 양상이 본능으로서 남아 있다고 한다.[30] 실제로 취객이 저체온증으로 객사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만취나 약물 복용 등의 이유로 판단력이 떨어져서 길거리에서 저체온증에 걸려 이 같은 행동을 했다고 추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근처에 있는 자신의 자동차로 돌아가거나 귀가를 하지 않고 정화조에 들어간 점, 신발 한 짝이 뜬금없이 사건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제방에서 발견된 점도 술이나 약물로 정상적인 판단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에서 벌어진 비이성적인 행동의 일환이었을 수 있다.[31] 물구나무 자세로 도는 것도 어렵지만, 가장 어려운 동작은 팔을 굽히고 머리를 바닥에 대면서도 수그려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작이다. 이 과정에서 머리 두피나 목 관절을 다치기 쉽고 손의 피부와 손목 등의 관절도 다칠 확률이 높다. 게다가 머리와 목에 집중하다가 다리 동작을 집중하지 않으면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굽혀져서 통로에 무릎뼈 근처 부위를 강하게 부딪혀서 멍이 들기도 쉽다. 뛰어나지 않은 유연성으로는 꿈도 못 꾸고, 각 구분 동작들에 대해 숙달할 만큼의 예행 연습도 반드시 필요하다.[A] 신발이 돌이나 틈에 끼었거나 우거진 수풀이나 구덩이에 들어갔다든지, 아니면 어두운 밤중이라 신발이 어디로 굴러떨어졌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든지[A] [34] 이 가설을 조금 변형하여, 근처에 살고 있던 초등학생이 학교 쉬는 날에 숙소 근처에 놓인 신발을 발로 차며 가지고 놀았다는 추측도 존재한다. 사건 발생 장소 옆에 초등학교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도 가능성이 있다.[35] 마을 촌장과 원전 관계자는 각각 '청년이 찬조연설을 부탁받았으나 거절했다는 사실'과 '청년이 도쿄전력 하청업체의 영업사원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해당 사건의 가해자로 오해받은 것에 불과하다. 또한 다른 근거로 마을 부정선거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이 집단이 나쁜 짓을 했으니까 다른 나쁜 짓도 했을 것이다'는 논리적 오류에 불과하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적어도 사실이기라도 하지, 마을 부정선거는 사실인지조차 확인되지도 않는다.[36]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이 발생한 타무라시 미야코지무라는 오쿠마마치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점과 약 21㎞ 떨어져 있다. 현재도 정화조 사건이 발생한 타무라시의 동쪽 일부는 사고가 발생한 원전으로부터 30㎞ 이내에 위치한 지역으로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지정한 출국권고구역에 속한다.[37] 우츠에밸브서비스주식회사(ウツエバルブサービス株式会社)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다고 하며, 해당 회사는 원전 직속 회사가 아닌 우츠에밸브주식회사(ウツエバルブ株式会社)의 자회사이다. 우츠에밸브서비스주식회사는 밸브, 배관 등의 유지보수 및 설치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고 한다.[38] '악다구니'라는 뜻의 일본어 단어이다.[39] SBS 공식 홈페이지에서 전체 영상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40] 최초로 경찰에 검거된 초범이었을 당시에는 '배수구에 100엔 동전을 떨어뜨려 찾고 있었다'는 식으로 무마하려고 했었다.[41] 여학생의 실내화 냄새를 맡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며, 훔친 뒤 집에 가지고 돌아가지는 않고 화장실 등의 공공시설에서 냄새를 맡고 버렸다고 한다. 또한 오염도가 심한 실내화를 유독 특별하게 여겨 이를 편의점에서 복사기로 복사한 뒤 보면서 즐겼다고 한다.[42] 하교 중이던 초등학생 여아들에게 접근해 "침의 연구를 하니 침을 주지 않겠냐"며 능숙하게 말을 거는 식으로 필름 케이스에 침을 뱉게 하고 여아의 혀 등의 구강 내부의 모습이나 침을 내뿜는 모습을 촬영했다고 한다. 주변에 살던 여자아이들은 해당 남성을 '츠바쿠레 오지상(침줘 아저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데려갈 수 없었기 때문에 분신으로서 타액을 가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2011년 뉴스 기사
[6] 여기서 흉부는 가슴을 의미하며, 순환장애는 조직 또는 장기의 혈액 순환이 정상이 아닌 경우를 의미하는데, 좁은 공간에 갇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자세로 인해 심장으로 향하는 혈류의 흐름이 저해됨으로서 발생하는 자세성 질식사(Positional Asphyxia)에서 나타나는 소견이다.[7] 1962~1963년생[8] 국내에서는 TV로 보도된 여러 방송에서 '야마모토 기요시'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가명이었고, 당신이 혹하는 사이 파일럿 2회(2021년 2월 24일 방송분)에서 취재를 가며 국내에도 본명이 알려졌다. 고인의 명예가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오랫동안 본명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9] 일본은 시정촌의 장을 선거로 뽑는다. 그러므로 촌장 선거는 대한민국으로 치면 소규모 군의 군수 선거에 해당된다.[10] 마을의 한 여성은 2020년에 일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숨진 칸노 씨는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도 열심히 도와주고, 아이들과 함께 체조를 하고 있었던 것이 인상 깊게 남아 있어요. 경찰은 허술해요. 현장도 출입 통제를 하지 않고 정화조를 부수면서 전혀 수사하지 않았아요. 재수사를 바라는 서명도 4천 명을 넘겼고 칸노 씨의 친척에는 경찰 관계자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도 위로부터 무언가를 들은 것 같아서 결국 침묵해버렸어요. 칸노 씨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좀 더 노력해도 좋았지 않았어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라고 말했다.[11] 흰색 토요타 크라운 세단[12] 이 파생 사진의 출처는 불분명하나, 일본의 한 인터넷 유저가 기사에 나온 수치상 비율에 맞게 사진을 다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13] 앞서 A교사는 의심스럽게 열려 있던 정화조의 철제 뚜껑 안쪽으로 사람의 다리 같은 것을 발견했다고 증언을 했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이다.[14] 다만, 정화조에서 나오는 것은 들어가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비교도 안 되게 더 어렵기는 하다. 실제 사건에서 경찰은 시신을 꺼내는 데에 실패하여 아예 전문적인 해체 공사를 하고 정화조 자체를 부숴서 꺼냈는데, 이는 사후강직 때문에 밖에서 도구로 다리를 잡아 펼 수 없던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들어가는 행위 자체가 상당한 유연성이 없으면 그대로 머리가 박혀 기절해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스스로 들어가는 것은 일반적으로 너무 위험한 행동이므로, 이를 큰 상처도 없이 성공한 청년이 선천적으로 일반인 중에서는 유연성이 평균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고 평소에 유연성을 기르는 운동도 꾸준히 했을 가능성이 높아, 나오는 것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탈출 가능성과 상관없이 사망자 본인의 예측에서는 스스로 나갈 자신이 있었을 수는 있다. 미리 정화조 전체 구조와 각 부위별 길이에 대한 자료를 연구하고 공부했을 가능성도 있다.[15] 관절 부위(무릎과 팔꿈치)와 닿는 부위에만 발견되는 찰과상은 정화조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된 상처이고 표피의 상처라 소위 말하는 까진 상처 수준이지 심각한 상처가 아니었다.[16] 건장한 성인 남성을 별다른 흔적이나 외상도 남기지 않고 기절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가해자가 손이나 팔뚝으로 피해자의 목을 졸랐다면 이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저항흔이 남거나, 손톱에 가해자의 DNA가 남거나, 목에 액흔(졸린 흔적)이 남거나, 얼굴이나 장기에 울혈(괴어있는 정맥혈)이 남는다. 만약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경계를 전혀 하지 않을 만큼 가까운 사이였고, 가해자가 수면제를 몰래 섞은 음료를 피해자에게 먹이고 재웠더라면 부검에서 약물 성분이 조금이라도 검출되었어야 했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피해자를 기절시켰다면 정화조에 거꾸로 집어넣는 것까지만 가능하고, 시신이 취한 자세인 몸을 웅크린 채 팔을 감싼 자세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행위는 자발적으로 유연성이 있는 동작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 거꾸로 집어넣고 깨우거나 해서 바로 넣어도 상처가 적은 상태의 실제 시신과 달리 긁힌 상처가 어깨나 머리 등 여기저기에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본인이 각오하지 않고 저러한 상태까지 타의로 가게 한다면 그 과정에서 신체 곳곳에 외상이 많아야 한다.[17] 이것이 얼마나 짧은 길이인지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2010년 자료 기준으로 대한민국 성인 남성의 평균 어깨너비는 40.189㎝이다.[18] 시골 동네이면 한두 다리만 거쳐도 다들 지인으로 엮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있으나 이는 합리적이라고 볼 수 없다. 우선, 후술할 장난전화 일화로 미루어보아 A교사는 자신의 사생활 문제를 스스럼없이 청년에게 털어놓을 정도로 평소 청년에 대한 신뢰가 두텁고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같은 마을에 살면서 몇 번 대화만 해본 상대에게는 이러한 행동을 할 리가 없다. 또한 해당 마을에는 당시 약 4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시골에 산다고 4천 명의 면면을 모두 알지는 못한다.[19] 아프리카의 최빈국에서 젊은이들이 직접 제조해서 흡입하는 젠켐이라는 길거리 마약의 원리와 동일하다. 국내에서도 정화조나 맨홀 같은 환경에서 질식 사고로 숨지는 노동자 사례가 심심찮게 발견된다.[20] 이상 탈의의 원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체온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간뇌의 시상하부에 기능 장애가 생겨서 일어난다는 가설과 말초혈관을 수축하는 근육이 갑자기 이완되어 혈류량이 늘어나 사지에 열이 늘어나서 일어난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벌어진 후 도피했다가 변사체로 발견된 유병언이 있는데, 시신에서 양말이 벗겨지고 상의가 올라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저체온증과 이로 인한 이상 탈의가 사인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법의학자들은 의견을 제기했다.[21] 대한민국에서도 한강 의대생 실종 사건이라는, 수사 결과에 따라 고인의 명예가 실추될 수 있고 유가족과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런 비슷한 사건이 있다. 해당 사건도 고인과 같이 있던 친구가 죽인 것인데 친구의 아버지가 사회 고위층이라서 사건을 덮으려고 한다는 등 여러 거짓 음모론과 루머가 나돌았다.[22] 조금만 생각해보면 해당 사건이 실족 사고라는 것은 말이 안 되는데, 발을 헛디뎌 정화조 구멍으로 빠졌다면 찰과상보다 훨씬 심한 상처가 몸에 남게 된다. 게다가 사망한 청년의 체격을 고려했을 때 지름이 36㎝에 불과한 좁은 정화조 입구에 몸이 통째로 빠져 실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 경찰이 청년의 명예를 생각해서 수사 초기에 일부러 이러한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23] 후쿠시마현 최대의 지역신문인 후쿠시마민보(福島民報)의 1989년 3월 2일자에 수사 관계자가 밝힌 내용이다. 그래서 사건 발생 직후부터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던 사건이었는데, 약 4주 정도 지난 1989년 3월 29일에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자마자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은 한동안 다른 곳에서 취재하기 전까지 거의 묻혀버렸다.[24] Sauvageau, A. (2014). "Current Reports on Autoerotic Deaths—Five Persistent Myths"이라는 정신의학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자기색정사 현장에서는 탈출 메커니즘(Escape Mechanism)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탈출 메커니즘이란 본인이 치명적인 상태에 이르는 것을 막기 위해 사전에 준비하는 최소한의 안전 대비(장치 등)를 말한다. 그 이유로는 사망자의 낮은 위험 인식 수준과 탈출 메커니즘 설계의 복잡성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추운 날씨에 훔쳐보려고 탈출이 불가능한 정화조에 들어갔다가 끼어서 동사했다는 시나리오도 일반인들에게야 부자연스럽겠지만 정신의학적 관점에서는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25]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오감과는 다 관련되어 있다고 보면 되는데, 예컨대 이성의 대소변을 관찰하거나, 용변 소리를 듣거나, 냄새를 맡거나, 삼키거나, 몸에 바르는 것 등이다.[26] 예를 들어 2013년에 한 여성이 자신의 배설물을 팔아 1억 2,000만 원의 부당수익을 벌어들인 혐의로 체포된 사건이 있었는데, 해당 여성에게서 배설물을 구입한 사람들은 대부분 스카톨로지(스캇)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27] 2019년에 일본의 한 블로거가 스카톨로지 설을 제기했으며, 여러 자료와 매체를 토대로 사건을 검토하다가 글 말미에는 미제 사건이 아니라 사고라고 본인은 확신한다고 한다.[28]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감금되거나, 모든 문이나 창 등을 닫고 싶어하는 병적인 선호'라고 설명한다.[29] 이는 죽기 직전에 뇌간이 인체에 내리는 최후의 통첩으로, 인간은 정온동물이기 때문에 정온동물에게서만 나타나는 겨울잠과 같은 행동 양상이 본능으로서 남아 있다고 한다.[30] 실제로 취객이 저체온증으로 객사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만취나 약물 복용 등의 이유로 판단력이 떨어져서 길거리에서 저체온증에 걸려 이 같은 행동을 했다고 추측하는 것은 가능하다. 근처에 있는 자신의 자동차로 돌아가거나 귀가를 하지 않고 정화조에 들어간 점, 신발 한 짝이 뜬금없이 사건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제방에서 발견된 점도 술이나 약물로 정상적인 판단력이 극도로 떨어진 상태에서 벌어진 비이성적인 행동의 일환이었을 수 있다.[31] 물구나무 자세로 도는 것도 어렵지만, 가장 어려운 동작은 팔을 굽히고 머리를 바닥에 대면서도 수그려서 안쪽으로 들어가는 동작이다. 이 과정에서 머리 두피나 목 관절을 다치기 쉽고 손의 피부와 손목 등의 관절도 다칠 확률이 높다. 게다가 머리와 목에 집중하다가 다리 동작을 집중하지 않으면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굽혀져서 통로에 무릎뼈 근처 부위를 강하게 부딪혀서 멍이 들기도 쉽다. 뛰어나지 않은 유연성으로는 꿈도 못 꾸고, 각 구분 동작들에 대해 숙달할 만큼의 예행 연습도 반드시 필요하다.[A] 신발이 돌이나 틈에 끼었거나 우거진 수풀이나 구덩이에 들어갔다든지, 아니면 어두운 밤중이라 신발이 어디로 굴러떨어졌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든지[A] [34] 이 가설을 조금 변형하여, 근처에 살고 있던 초등학생이 학교 쉬는 날에 숙소 근처에 놓인 신발을 발로 차며 가지고 놀았다는 추측도 존재한다. 사건 발생 장소 옆에 초등학교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도 가능성이 있다.[35] 마을 촌장과 원전 관계자는 각각 '청년이 찬조연설을 부탁받았으나 거절했다는 사실'과 '청년이 도쿄전력 하청업체의 영업사원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해당 사건의 가해자로 오해받은 것에 불과하다. 또한 다른 근거로 마을 부정선거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이 집단이 나쁜 짓을 했으니까 다른 나쁜 짓도 했을 것이다'는 논리적 오류에 불과하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적어도 사실이기라도 하지, 마을 부정선거는 사실인지조차 확인되지도 않는다.[36] 후쿠시마 정화조 의문사 사건이 발생한 타무라시 미야코지무라는 오쿠마마치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지점과 약 21㎞ 떨어져 있다. 현재도 정화조 사건이 발생한 타무라시의 동쪽 일부는 사고가 발생한 원전으로부터 30㎞ 이내에 위치한 지역으로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지정한 출국권고구역에 속한다.[37] 우츠에밸브서비스주식회사(ウツエバルブサービス株式会社)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다고 하며, 해당 회사는 원전 직속 회사가 아닌 우츠에밸브주식회사(ウツエバルブ株式会社)의 자회사이다. 우츠에밸브서비스주식회사는 밸브, 배관 등의 유지보수 및 설치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었다고 한다.[38] '악다구니'라는 뜻의 일본어 단어이다.[39] SBS 공식 홈페이지에서 전체 영상을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40] 최초로 경찰에 검거된 초범이었을 당시에는 '배수구에 100엔 동전을 떨어뜨려 찾고 있었다'는 식으로 무마하려고 했었다.[41] 여학생의 실내화 냄새를 맡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하며, 훔친 뒤 집에 가지고 돌아가지는 않고 화장실 등의 공공시설에서 냄새를 맡고 버렸다고 한다. 또한 오염도가 심한 실내화를 유독 특별하게 여겨 이를 편의점에서 복사기로 복사한 뒤 보면서 즐겼다고 한다.[42] 하교 중이던 초등학생 여아들에게 접근해 "침의 연구를 하니 침을 주지 않겠냐"며 능숙하게 말을 거는 식으로 필름 케이스에 침을 뱉게 하고 여아의 혀 등의 구강 내부의 모습이나 침을 내뿜는 모습을 촬영했다고 한다. 주변에 살던 여자아이들은 해당 남성을 '츠바쿠레 오지상(침줘 아저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데려갈 수 없었기 때문에 분신으로서 타액을 가지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2011년 뉴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