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3 12:06:57

황진생

파일:황진생.jpg
<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창원 황씨[1]
출생 1914년 5월 2일
경상남도 진주군 대평면 신풍리 992번지[2][3]
사망 1989년 3월 15일
경상남도 진주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870호
상훈 건국포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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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14년 5월 2일 경상남도 진주군(현 진주시) 대평면 신풍리에서 아버지 황윤조(黃潤祚)[4]의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진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0년 1월 11일, 그는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호응할 목적으로 교내 동맹휴학을 주도했다가 약 1개월간 정학 처분을 받았다.

그 뒤 복학한 그는 1932년 11월에는 진주군 진주읍에 있던 자신의 하숙집에서 이증삼(李曾參)[5]·한계수(韓桂壽)·전사옥(全駟玉) 등 친구들과 함께 비밀결사 학생협의회를 조직했다. 그는 회원들과 함께 사회과학 서적을 윤독하며 동지 규합 및 조직 확대를 위해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미결수로 9개월간 옥고를 치른 뒤 1934년 8월 3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1년형,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출옥했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89년 3월 15일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별세했다.

199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2008년 5월 30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되었다.

[1] 공희공파-좌윤공파(左尹公派)-회와공파(晦窩公派) 25세 진(鎭) 항렬.[2] 창원 황씨 집성촌으로, 황남팔 전 국회의원과 황산성 전 환경처 장관도 이 마을 출신이다.[3] 출생지 신풍리 992번지는 1969년 남강댐 공사로 인해 현재 진양호에 수몰되어 있다.[4] 족보명은 황순규(黃淳圭).[5] 진주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이기윤으로 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