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9 21:52:20

홍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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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봉오동 전투 · 청산리 전투 · 대중매체 · 육군사관학교 독립유공자 흉상 철거 논란
관련 인물 김좌진 · 지청천 · 이범석 · 나운규
가족 아버지 홍윤식 · 아내 이옥구 · 아들 홍양순 · 아들 홍용환 · 외손녀 김알라
대중매체 봉오동 전투 · 까레이스키 · 우둥불 · 홍여천 범도
관련 단체 대한독립군 · 대한독립군단 · 소련 공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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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2년[1]
함경도 북청도호부
(現 함경남도 북청군)
사망 1908년 6월 16일 (향년 16세)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배기
본관 남양 홍씨 당홍계 [2]
부모 아버지 홍범도, 어머니 단양 이씨[3]
형제자매 남동생 홍용환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
2.1. 사후
3.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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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2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92년, 함경도 북청도호부(現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홍범도와 어머니 단양 이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7년 11월 아버지 홍범도북청군 후지령에서 산포수들과 청년 200명을 모아 의병을 일으키자, 그도 가담하여[4] 아버지와 함께 북청군, 삼수군 등에서 일본군 북청수비대와 토벌대를 상대로 분전했다.

그 뒤 그는 아버지 홍범도로부터 소규모 부대의 중대장으로 임명되어 독자적으로 유격전을 전개하다가 1908년 6월 16일, 함경남도 정평군 정평배기에서 일본군 토벌대와 교전 중에 16세의 어린 나이로 전사했다. 이 일은 '홍범도 일지' 필사본에 기록되었다.

2.1. 사후

2021년 3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열린 제102주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해 홍범도의 부인 단양 이씨와 아들 홍양순 등 독립유공자 7명에게 건국훈장 및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현대 홍범도 장군의 생존하는 유족이 없어, '여천 홍범도장군 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과 해군 잠수함사령부 '홍범도함'에서 근무하는 여명훈 중위가 대리 수상했다.

3. 참고 문헌



[1] 1908년에 16세 였으니.[2] 남양군파 봉교공(牵教公) 문중 18代孫, 시조 32世孫[3] 본명이 이옥구, 이옥녀 등 여러 설이 있으나 공식적으로 확인된건 단양 이씨 사람이라는것 뿐이다.[4] 원래는 어머니와 함께 일제의 회유 협박의 대상이 되었다. 일제는 "가서 너희 아버지더러 투항하라고 해라"며 그를 홍범도에게 보냈고 홍양순도 홍범도에게 "이제 그만 투항하시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홍범도는 그 자리에서 아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면서 "네가 지금 왜놈들 앞잡이가 돼서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러 왔느냐"고 일갈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