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7-18 21:46:18

험프리 네빌

<colbgcolor=#ACB8C4><colcolor=#000000> 험프리 네빌
Sir Humphrey Neville
성명 험프리 네빌
Humphrey Neville
출생 1439년
잉글랜드 왕국 노스요크셔 라이데일 슬링스비
사망 1469년 9월 29일
잉글랜드 왕국 노스요크셔 요크
아버지 토머스 네빌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몬트
형제 찰스
자녀 아서
지위 브렌스페스의 기사

1. 개요2. 생애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장미 전쟁 시기 가족들과 함께 랭커스터 왕조의 편에 서서 요크 왕조에 대적했으며, 토우턴 전투 이후 다른 가족들이 귀순한 뒤에도 동생 찰스와 함께 에드워드 4세에 끈질기게 맞섰다. 그러나 끝내 체포된 뒤 동생과 함께 처형되었다.

2. 생애

초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의 손자이자 제2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의 동생인 브렌스페스 성의 기사 토머스 네빌과 제5대 보몬트 남작 헨리 보몬트의 딸인 엘리자베스 보몬트의 장남이다. 장미 전쟁이 발발했을 때 아버지와 삼촌들과 함께 랭커스터 왕조에 가담했으며, 1457년 3월 리치몬드 백작 헨리 튜더의 영지에 대한 보호권을 얻었지만, 제5대 솔즈베리 백작 리처드 네빌이 리치몬드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수입을 얻지 못했다. 1458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브렌스페스 성과 주변 영지를 승계받았으며, 1459년 솔즈베리 백작이 잉글랜드에서 추방된 뒤 미들햄 영지의 카펠뱅크를 받았다.

1461년 5월 6일, 삼촌 존 네빌의 뒤를 이어 헥삼의 집행관이 되었다. 토우턴 전투에서 존 네빌이 죽은 뒤, 그는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가문의 사실상 수장이 되었다. 제2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존 네빌의 아들인 랄프 네빌은 아직 어렸기 때문이다. 그는 로스 남작 토머스 로스와 함께 더럼 일대를 습격했다가 브랜스페스 인근에서 체포된 뒤 런던 탑에 갇혔고, 11월에 요크 의회는 그에게서 모든 권리를 박탈했다.

1462년 2월, 험프리는 에드워드 4세의 사면을 받고 목숨을 건졌지만, 억류 생활을 계속해야 했으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은 반환되지 않았다. 1년 후 탈출한 험프리는 노섬벌랜드로 가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1463년 6월 친척인 몬터규 남작 존 네빌의 중재로 에드워드 4세와 화해했고, 에드워드 4세는 험프리에게 토머스 네빌의 영지를 돌려줬다. 또한 왕은 험프리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그러나 험프리는 내심 에드워드 4세를 몰아내고 랭커스터 왕조를 부활하겠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1464년 봄, 험프리는 헨리 6세를 추종하는 제3대 서머셋 공작 헨리 보퍼트와 함께 노섬벌랜드에서 군대를 모았다. 두 사람은 알닉과 뱀버러 성 주변에 거점을 세웠다. 그 해 4월, 뱀버러 성에서 창병과 궁수 80명을 거느린 험프리는 스코틀랜드 사절들을 따라 국경으로 향하던 몬터규 남작을 뉴캐슬 북쪽의 함정으로 유인해 사살하려 했지만, 몬터규 남작은 사전에 경고를 받고 다른 길을 선택해 함정을 피했다. 험프리는 헥섬 전투에서 헨리 보퍼트가 패사할 때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6월에 몬터규 남작에게 포위된 벰버러 성에서 랄프 그레이 경과 함께 있었다. 공성포가 투입되어 성벽 일부가 파괴되고 랄프 그레이가 부상을 입자, 험프리는 자신과 수비대의 자유를 약속하는 조건으로 항복하겠다고 제안했다. 몬터규 남작은 이를 받아들였고, 험프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험프리는 에드워드 4세에게 충성하길 거부하고, 헥섬셔의 외딴 계곡으로 가서 5년간 강도짓을 했다. 그러던 1469년, 험프리는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이 에드워드 4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면서 잉글랜드 정계가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스코틀랜드 왕국과의 변경 지대에서 추종자들을 끌어모은 뒤 동생 찰스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당시 에드워드 4세를 억류하고 집권한 워릭 백작은 반란 진압에 애를 먹다가 9월에 에드워드 4세와 평화 협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에드워드 4세는 워릭 백작과 함께 북상하여 반란을 진압했고, 험프리와 동생 찰스는 체포된 뒤 요크로 압송되어 9월 29일에 참수되었다.

험프리는 생전에 알려지지 않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외아들 아서를 낳았다. 아서는 위어데일의 스콜 에이클과 코브스하우스에 사는 랄프 네빌과 홈사이드 출신의 로랜드 템페스트의 딸 앤과 결혼한 랜슬롯 네빌이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 랄프 네빌의 손자 랄프 네빌은 1615년에 딸 앤만 남기고 사망했으며, 앤과 함께 네빌 가문의 이 분가인 위어데일 네빌 가문도 단절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