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3-24 01:00:52

한식

1. 한국 요리를 칭하는 말 韓食2. 한국식(韓國式)의 줄임말 한식(韓式)3. 한국의 명절 중 하나

1. 한국 요리를 칭하는 말 韓食

한국 요리 문서 참조.

2. 한국식(韓國式)의 줄임말 한식(韓式)

韓式

한국식(韓國式)이라는 단어 중에서 국(國)자를 생략한 단어. 중국에서 한국식의 무언가를 한식이라고 표현한다. 실제 중국에서는 간체자를 쓰는 관계로 "韩式"이라고 쓴다.

3. 한국의 명절 중 하나

寒食

한국의 명절 중 하나. 동지의 105일 후로서(그래서 요일이 같다.) 보통 4월 5일이나 6일 쯤이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24절기청명과 날이 자주 겹친다. 그래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있다. 주로 나쁜 일이 조금 일찍 일어나거나 늦어도 별 차이 없다는 뜻. 오십보 백보.

4대 명절 중 하나인데, 나머지 셋인 설날, 단오, 추석은 모두 음력으로 날짜를 정하지만, 한식은 양력 기반인 24절기로 정한다.[1]

3.1. 유래

한식이라는 명칭은 이 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인데,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국고사에 이 날은 비바람이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晉)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물론 중국에도 있는 날이지만 한식에 하는 일을 지금은 다 청명에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현재 중국의 한식은 청명 하루 전날로 정해진다.

개자추진문공(文公)과 19년간 망명생활을 함께하며 충심으로 보좌하였으며, 식량이 없어 문공이 굶주리자 자기 허벅지살을 도려내어 먹인 일도 있었다. 하지만 문공은 군주의 자리에 오른 뒤 일 탓에 그를 잊어버리고 등용하지 않아 실망한 개자추는 면산(緜山)에 은거했고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문공이 불러도 나아가지 않았다.제대로 삐졌다[2]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서 불을 질렀으나, 끝끝내 그는 어머니와 산을 나오지 않았으며 불이 꺼진 후 나무를 끌어안고 숨진 채 발견되었다. 이를 개자추의 포목소사(抱木燒死)라 한다. 이에 진문공이 그를 애도하여 한해에 이날 하루는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겠다고 영을 내려 사람들이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는 것이 한식의 유래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보다는 고대에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나라에서 새 불(新火)을 만들어 쓸 때 이에 앞서 일정 기간 예전에 쓰던 묵은 불(舊火)의 사용을 금지하던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본다.

3.2. 세시풍속

민간에서는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사초(莎草)하는 등 묘를 돌아보는 일을 한다.

과거 식목일법정 공휴일이었을 때 한식이 식목일과 날짜가 같거나 하루이틀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기 때문에 식목일에 한식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식목일이 법정 기념일로 바뀌면서 이러한 풍속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 물론 식목일에 쉬지 않아도 그 주의 주말 즈음 해서 성묘를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한식과 단오가 추석, 설날과 같은 급의 명절이었다. 1960~70년대에 간소화되서 추석과 설날은 명절의 지위를 지키고 한식과 단오를 더 이상 명절로 쇠지 않게 된 것. 단오는 사실상 명절로써의 지위가 없어졌으나 한식은 아직도 식목일, 4월 첫째 주말 전후로 성묘를 한다든지 그러는 집안들이 은근히 있다.

동학(천도교)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가 1860년 음력 4월 5일에 동학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원래는 그래서 동학/천도교에서는 음력 4월 5일을 기념하였으나, 1908년에 천도교 4대 교주 춘암 박인호가 천도교의 기념일을 음력 날짜에서 그대로 날짜만 양력으로 옮겨 기리기로 정한 이후, 양력 4월 5일에 최제우가 계시받음을 기념한다. 그래서 천도교에서는 한식은 주요 명절이고, 식목일이 휴일 지정이 해제될 때도 이 때문에 천도교 측에서 반대가 있었다.


[1] 24절기는 전통 역법에 포함되어 있어 음력에 기반한 요소로 착각할 수 있으나, 실은 음력을 사용할 때 알기 어려운 태양의 이동과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24절기이므로 태양력에 기반한 요소이다. 애당초 조선 후기 청나라로부터 시헌력을 받아들인 이후로는 책력이 엄밀히 말하면 태음력이 아닌 태양력으로 바뀌었다. 태양력에 근거하되 태음력의 형식을 따를 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헌력 이후로의 음력을 태음태양력이라고 하는 것이다.[2] 또 다른 일화에 따르면 문공을 따라 그 고된 생활을 한 건 뭔가를 노리고 한게 아니라 마땅히 그리 해야 했을 일이기 때문에 한 것인데, 그걸 빌미로 관직을 얻고 떵떵거리는 과거 동료들의 모습에 회의를 느꼈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