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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타케 카카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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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생으로서2. 호카게로서
2.1. 뿌리2.2. 은퇴 이후
3. 중급닌자 본선 때 근무 태만4. 작품 외적 평가

1. 선생으로서

처음 등장한 상급닌자며 큰 임팩트를 날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선생으로서는 좋은 선생님과 그렇지 않은 선생님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사실 중닌 시험 시점의 교육을 제외하면 카카시가 셋을 차등 대우하지는 않았고 성심성의껏 보살폈다. 파도 나라 편에선 아무 차별 없이 잘한 걸 칭찬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고치도록 만들어 주었다. 3명 중 차크라 컨트롤이 최고인 사쿠라를 서슴 없이 칭찬해주었고,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사스케와 나루토의 잠재력에 기대를 가졌고 특히 나루토의 잠재력이 엄청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가장 많이 성장했다며 칭찬해주기도 했다. 사스케에겐 사쿠라보다 나무 타기 진전이 느린 걸 보고 그 엄청난 우치하 일족보다도 사쿠라가 호카게에 가까운 것 같다고 농담을 한 적도 있다. 중급닌자 시험에선 차등 대우를 하긴 했지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고, 나뭇잎 부수기를 시작으로 한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지 않았다면 다시 그전처럼 가능한 선에서 공평한 가르침을 주었을 것이다. 나루토의 회상에서 그렇게 라멘만 먹다간 정말로 죽는다며 야채 광주리를 전해주거나, 애니 오리지널 장면에선 우닥투닥 같이 임무를 다니며 즐겁게 지내는 등,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개인의 삶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로치마루의 나뭇잎 부수기와, 직후 이타치와 키사메의 만남과 츠나데의 5대 호카게 취임식이 있고 난 후 차 나라의 임무 후에 사스케는 병원에서 퇴원한 동시에 마을을 탈주해버려 모든게 물거품이 되었다. 지라이야는 아카츠키 상대로는 카카시한테도 짐이 무거울지 모른다며 나루토를 맡기로 자청했고, 사쿠라는 스스로도 강해지고 싶다는 생각에 츠나데를 찾아가서 제자로 삼아달라 간청했다.

1.1. 우즈마키 나루토

나루토 아버지의 제자였으면서도 그의 아들인 나루토를 팀을 맺기 전까지 관심이 전혀 없었다. 작중 반복적으로 나오는 문구 중 하나가 불의 의지이고 나뭇잎 마을 인물들이 후대를 위해 배려하고 희생하는 모습은 여러 차례 나온다.[1] 하지만 이 부분을 지적하기엔 또 애매한 게 초반부에 카카시와 나루토 사이 접점에 관한 명확한 설정이 없었고[2] 급하게 갖다 붙이며 생긴 일종의 설정 오류다. 아키미치 쵸자 건도 그렇고 졸지에 아동 학대자 및 횡령범이 된 히루젠도 그렇고 이 부분은 작가의 깔끔하지 못 한 설정 및 연출이 문제가 된 케이스지만, 그게 작품 내적으로는 변명거리가 못되니.

또한 당시 카카시는 전쟁에서 얻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자기 자신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상태이기도 했고 암부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루토의 아버지인 미나토가 사용했던 나선환을 사용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왜 나루토에게 알려주지 않은 거냐며 논란이 생겼는데 사스케의 경우는 당시 상황이 매우 급박해서 치도리를 알려줬지만 나루토에겐 늘 구미호 폭주라는 잠재적인 위험은 존재하지만 당시엔 아직 아카츠키의 미수 포획 같은 외부의 위협은 없던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힘들고 어려운 술법을 어린 아이에게 알려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 내용은 지라이야가 나루토에게 나선환을 가르칠 당시 나루토는 아직 어리다고 카카시가 지라이야에게 충고하는 대화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애초에 카카시는 사륜안의 능력으로 술법을 카피해낸 것이지, 지라이야처럼 기본 단계부터 천천히 익히면서 획득한 것이 아니다. 지라이야가 나루토에게 나선환을 가르칠 수 있었던건, 지라이야 본인이 그 기술을 처음부터 수련했기 때문이며, 그만큼 원리나 어떻게 해야 쉽게 익힐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설령 카카시가 나선환 수련법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중급시험 당시의 나루토는 기술적인 문제는 둘째치고, 제대로된 차크라 활용조차 못하던 시기였다. 처음부터 A랭크에 속하는 나선환을 가르치기가 불가능했던 셈.[3]

그래도 나름 주인공 아버지인 4대 호카게의 직계 제자인데 스승님의 아이에게 끼친 영향이 불우한 어린 시절에 유일한 빛이었던 스승소중한 사람을 잃는 고통을 알려준 스승에 비해 너무 미미하다. 이 둘에 비해 나루토와 카카시의 관계는 좀 더 사무적이다. 사실 원래부터 카카시는 스승으로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7반 삼인조가 시험을 치를 때 3대 호카게와 이루카의 대화에서 드러나지만, 지금껏 카카시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없었다. 뒤집어 말하자면 카카시는 암부 생활만 10년을 하며 상하 관계와 리더로서의 전투 지시에만 익숙해져있지 누굴 제대로 가르친 적이 없었다는 소리다. 카카시가 7반을 맡은 이유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사륜안을 사용 가능한 인물로서 사스케에게 사륜안 사용법을 가르치고, 나루토 안의 구미를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단행본 2권 카카시가 처음 등장할 때 3대와 함께 나루토의 집을 방문해 생활을 알아보면서 3대가 카카시에게 나루토를 감시하라는 표현을 쓴다.[4]

1부에서 (심각한 장면은 아니지만) 나루토가 요즘 카카시가 사스케만 편애한다고 툴툴거렸다. 자신도 강해지고 싶은데 카카시가 변태 안경이나 붙여주고 자신은 사스케만 가르쳐주니 뾰루퉁해져서 한 말이다.

사스케의 당시 상황이 너무나 급박했기 때문에[5] 최선을 다해 사스케를 도와주어야 했다. 게다가 자신과 비슷한 타입이기도 해서 더욱더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마주친 오로치마루가 여전히 자신보다 강한 것을 실감한 데다가, 카부토 수준의 닌자가 오로치마루의 부하로 있는 걸 보고 자신도 현재 상태로는 부족하다는 걸 자각하는 장면이 있다. 사스케를 만날 때 보면 오랜만에 절벽 타기 수련을 하다가 사스케가 기다리는 것을 보고 "이제야 왔군"이라고 하는데, 카카시 본인도 수련을 했음을 보여주는 부분. 즉 자기와 닮은 꼴인 사스케를 키워주는 한편 자신도 더 강해지기 위한 폐관 수련 같은 시기였다.

네지와 붙게 된 나루토도 물론 큰일이었지만 당시 나루토는 최악이라 해봤자 시험의 탈락이었지, 사스케처럼 최종 보스급 인물에게 노려지고 있거나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지는 않았다. 당시는 갓 루키가 된 하급 닌자들이 곧바로 중급 닌자 시험을 죄다 받겠다고 응시한 것부터가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떨어지는 게 그렇게까지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었고[6], 이루카와 가볍게 말다툼을 할 때에도 반 농담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7반 멤버, 특히 나루토가 임무에 불만이 많아 어느 정도는 경험 삼아보라는 뜻도 담겨있었다. 그러니 에비스를 붙여주는 선에서 타협했다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루토에게 붙혀준 에비스 역시도 교육 면에서는 호카게의 손자를 전담 교육할 정도의 인재로, 카카시 본인이 가르켜 주는 거 자기보다 뛰어났다고 말 할 정도로, 나루토처럼 기본기가 부족한 인재에게 기초를 다져주기 적합한 교사였다.

어쨌든 사스케의 엄청나게 높은 중요도 및 자기 자신의 수련, 정서가 불안하고 사스케와의 경쟁 욕구 및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강한 나루토에게는 카카시의 대처는 나름대로 고려 끝에 나온 판단일 수도 있는 것이다. 굳이 지적하자면 사스케와 짱박혀서 수련해줄 때에도 가끔은 나루토를 보러 와줬어야 했는데 시험 직전까지 한 번도 내려온 적이 없다는 건 지나치게 무심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사스케 수련이 빡샜어도 수련을 무슨 24시간 하는 것도 아니고 휴식기 동안 한 두 번이라도 충분히 체크 겸 찾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2부에서는 나루토를 상당히 신경 써줬다. 한 예로 작중에서 나루토가 사스케를 따라잡기 위해 카카시와 고안한 술법인 나선수리검을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 사람은 카카시다. 책을 보면서 나루토 수련을 지켜보고 구미를 억누를 수 있는 야마토를 데려오는 식으로 내내 나루토 곁에서 조용히 도와주었다.

1.2. 하루노 사쿠라

그나마 나루토에게는 호카게 손자를 지도할 정도로 엘리트 교사인 에비스를 붙여주긴 했고, 2부에서 나선수리검 개발에 필요한 교육이라도 시켜줬지 사쿠라는 파도 나라에서 7반 공통으로 배운 나무타기와 서바이벌 연습 때 기초적인 환술 말고는 가르쳐 준 것이 없고 다른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지도 않았다. 나루토에게 에비스를 붙여준 것처럼 사쿠라에게도 다른 중급 닌자나 상급 닌자 교사를 붙여주거나 수련 메뉴얼 정도는 만들어줬어야 했는데 아예 케어를 하지 않았다. 사쿠라는 이제야 기초적인 환술을 배운 상태이니 고급 인술을 가르쳐 줘야하는 것도 아닌데다 나뭇잎마을 최고의 교사 중 한 명인 에비스를 섭외한걸 보면 가르쳐줄 닌자를 구하는 게 어렵진 않을 텐데도 말이다. 사쿠라는 이노와 동반 탈락해서 따로 준비할 게 없었으니 나루토나 사스케를 두고 굳이 그 시기에 사쿠라를 집중해서 봐줄 필요 없었지만 사쿠라에게 아무런 신경을 써주지 않았으니 이는 카카시가 잘못한 것이다.

사쿠라가 츠나데의 제자로 들어간 후엔 카카시 본인은 어떻게 지냈는지는 불명인데 나루토와 사스케 2명이나 없어졌으니 7반이 소대적 기능을 못 하게 된 건 맞는데 일단 사쿠라가 중급 닌자가 되기 전까진 카카시가 담당 상닌이 맞음에도 둘의 교류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쿠라는 마을에 쭉 있었는데도 카카시는 사쿠라가 츠나데의 괴력을 이어 받았음을 모르고 있었으니...[7] 결국 사스케는 탈주했고 나루토와 사쿠라는 담당 스승이 있음에도 그 담당 스승이 아닌 각각 지라이야와 츠나데라는 다른 스승을 만나 교육을 받음으로서 카카시의 선생으로서의 역할도 붕 떠버렸다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선생으로서 확실히 까는 사람들이 많다. 하다못해 소년전의 사스케 탈주 직전 시기까진 발등에 불 떨어진 게 많아서 상대적으로 무난한 사쿠라에겐 큰 관심이 안 갈 수 있었다 쳐도 제자 건에서 여유가 좀 생겼을 소년전과 질풍전의 사잇구간에서도 사제지간으로서 사이만 우호적이지 교습 진도 면에선 전혀 발전조차 없었기 때문. 이쯤되면 가르친 건 아카데미 교사들보단 낫지만 닌자로서 기본기 발전형밖에 없는 셈. 선생과 제자 관계가 애정 있다고 제대로 되는 건 아니라는 점과 다른 두 제자와 사쿠라의 취급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점에서 결국 지적을 피할 수 없는 셈이다. 게다가 선생이 제아무리 초보에 방임형이라 해도 그건 결국 선생 개인의 사정이지 제자들이 일일이 배려해줘야 할 문제도 아니다. 거기에 더해 그런 태도에 대한 피해 여파는 고스란히 제자가 본다는 점에서 이런 전투 교습 관련으로 무책임한 측면은 문제가 있다.

다만 카카시에 대해서 변명하자면 사쿠라는 이미 이노와 무승부로 동반탈락한 상태였다. 따라서 나루토와 달리 선생을 무조건 붙여줘야만 하는 명분은 없었다. 나루토와 사스케가 시험대비에 열중하는 동안 사쿠라는 1달간의 휴가를 받은 것이다. 사쿠라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했을 수도 있겠으나 1달간의 휴가 이후 다시 천천히 가르칠 예정이었다고 보면 큰 문제는 없다. 어쨌건 자부자와의 피튀기는 혈전을 겪은 이후 3차시험까지 진출했으니 휴가를 줄 만도 한 것이다. 무신경했던 것, 차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만화적 연출과 더불어 상황이 얄궂게 돌아간 부분이 더 크다.

1.3. 우치하 사스케

결국 사스케가 제일 어긋나고 있을 때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다. 사스케가 마을을 탈주할 당시에는 임무 때문에 마을 밖에 있던 터라 불가피하게 사스케를 막지 못 했지만, 그 이전에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이타치를 만나 복수심에 이성을 잃은 사스케에게 "복수따윈 무의미하다"는 충고를 했다. 그러나 극도로 불안정해진 사스케는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죽여줄까? 그럼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이 얼마나 헛소리인지를 알 수 있을 테니"라는 스승에게 차마 할수 없는 패륜적인 막말로 반박하는데... 이에 "내 소중한 사람은 이미 전부 내 손에 죽어버렸는걸? 우리가 행운아는 아니지만 최악의 케이스도 아니지. 우리 둘 다 소중한 동료가 생겼잖아? 치도리는 네게 소중한 사람이 생겼기에 전수한 힘이다. 그건 동료에게 겨눌 것도, 복수를 위해 쓰여야 할 것도 아니지. 너라면 어떻게 쓰여야 할 것인지를 알고 있을 거다. 내 말이 정말 헛소리인지 아닌지, 잘 생각해 봐라."라고 말하고 자리를 뜬다.

사스케도 그의 말에 동요하긴 하지만 친형에게 일족이 몰살당하는 참사를 겪고 복수를 위해 살아온 어린 사스케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애초에 13살의 아이에게 치기를 버리고 어른스럽게 판단하기를 바랐다는 건 너무 무리한 요구였다. 더군다나 그 시기 사스케의 정신 상태를 보아하면 애초에 사스케를 설득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이후 사스케 탈주라는 결과를 낳자 S랭크 임무도 미루고 쫓아가면서 자신이 너무 어려운 요구를 했다는 걸 깨닫고 한탄하였다.

그런데 이건 전지적 시점에서 너무 결과론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이 될 수 있다. 카카시는 그저 복수 하지 마. 수준으로 가볍게 넘어가지 않았다. 나뭇잎 마을에서 사스케에게 훈계를 할 만한 인물 중에 카카시만큼 비극적인 삶을 산 인물도 없다. 어지간한 설득엔 니가 뭘 알겠냐며 코웃음을 치던 사스케가 "내 소중한 사람들은 이미 다 죽어 버렸어"부터 시작해 놀란 이후 한 마디도 논박하거나 대들지 않고 고민하는 얼굴로 듣고 있게만 됐던 것도 그래서였다. 카카시는 스스로의 경험을 나누며 사스케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었고 특히 최근에 개인적으로 오래 지낸 제자인 만큼 사스케를 믿었다고 볼 수 있다.[8] 사스케도 거듭 나루토와 사쿠라를 떠올리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고, 사쿠라에게도 7반 생활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대답을 보면 소리 4인방이 훼방만 안 놨어도 사스케는 마음을 돌이켰을 가능성이 높다. 나뭇잎 부수기의 여파 때문인지 허술해져서 침입자들도 파악못한 나뭇잎 보안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카카시는 최대한 할 수 있을 만큼 했으나 여러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더 챙겨줄 수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정서와 심리가 불안한 제자를 한적한 곳에 혼자 생각해서 옳은 답을 이끌어 내라고 냅둔 것은, 제자인 사스케의 영특함만을 과신했던 카카시 역시 선생으로서 서툴었던 인물이라는 점을 잘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소리 4인방의 침입이란 예상 불가능한 요소를 제외하면 카카시의 계산은 맞아떨어지긴 했고, 사스케 스스로 생각해서 깨우친 편이 아무래도 효과는 더 컷을 것이다.

1.4. 원인

등장하는 아이들이 벌써부터 대인배 행각을 하고 있는 데다가 워낙 카카시가 지금 자리에 서기까지 상당한 고통과 상실을 겪어서 잘 잊혀지는 부분이지만, 카카시는 아직 작중에서 등장 나이가 26-31세밖에 안될 정도로 매우 젊다. 주인공 대의 아이들보다야 연륜은 많겠지만 그것은 전장에서, 닌자로서의 얘기고,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로서는 신입이었다.

당시의 카카시는 본인도 힘든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동기인 유우히 쿠레나이의 말을 빌리자면 "죽고 싶어 안달 난 사람". 암부에서 본인을 혹사시키며 지독한 우울증을 겪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암부에서 나와 담임 상급닌자를 맡았을 때도 지속되던 문제로 추정된다. 카카시 본인에게도 7반을 담임한 것은 PTSD에서 벗어난 이후 거치게 된, 일종의 사회적 재활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학생의 역량은 생각하지 않고 교육자 멋대로의 엄격한 기준을 하급 닌자들에게 제시하고 통과 못하면 아예 손절시켜버리고 지각과 냉대를 일삼는 카카시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결격 사항도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7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애니 오리지널 에피소드를 포함해서 카카시를 포함한 7반의 모습을 살펴보면 카카시는 티 안 내고 은밀히 도와주는 타입인데, 그런 보이지 않는 배려가 철 없는 7반 멤버들에게는 와닿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사스케의 아픔을 섬세하게 보듬어주는 부분이 미약했던 것은 어떻게 보면 제3차 닌자대전을 어린 나이에 겪은 세대로서의 카카시의 한계라고도 볼 수 있다. 즉, 카카시의 캐릭터성이 바뀌면 그건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라는 말이다. 심지어 지라이야조차 나루토에게 자신의 과거의 예(오로치마루)를 들며 사스케같은 타입은 내가 잘 안다며 그만 포기하고 잊으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9]

타고난 성격 탓도 있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제자들을 자신의 페이스로 끌고가는 지라이야나 가이와 달리 카카시는 어느 정도 자유 방임형에 가깝다. 카카시는 전쟁 트라우마도 있지만 원래의 유년기 성격을 봐도 그렇게 싹싹한 성격은 아니었고, 자기 소개에서도 무심하고 거리를 좀 두는 식이었다. 이름 밖에 안 말해줬고 당당하게 이젠 너희 차례라 한다.[10] 사쿠라가 이름 빼고는 아무것도 말한게 없지 않냐고 태클걸고 나루토도 공감.

게다가 스승도 인성이 괜찮은 것과는 별개로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쏟아주는 모범적인 담임 계통이라기보단 전시에 흔한 교관 타입이어서 최소한만 가르치고 나머진 그냥 웬만해선 냅두는 타입의 교관형 교사였다. 그 스승에게서도 너무 짧은 기간만 배우다 스승의 사망으로 헤어졌기에 무언가를 배울 틈도 없었다.

실제로 카카시가 애들에게 초기에 하는 꼴을 보면 교사인데 그런 포지션에 대한 자각이 부족해 선생이 아니라 교관 짓을 하는 부적절한 태도가 그대로 드러나있다. 평소엔 그리 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사스케 같은 극단적으로 어둡고 꽁한 성격의 아이에겐 이는 큰 차이를 낳을 수 있는 것.[11] 카카시는 부모, 스승, 동료들을 먼저 보냈고 오비토의 죽음으로 자책하기 시작한 뒤로는 팀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강박 관념 수준이 되었다. 그 탓인지 팀워크 상관하지 않는 아이들 보고 자기 자신을 떠올려 일종의 자기 혐오로 인해 미숙한 아이들의 치기를 고려해주지 않고 사정 없이 불합격을 주기도 했다.[12] 본인도 상급 닌자가 된 후에도 아픈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을 막 아카데미 나와서 튀고 싶어하는 애들이 자동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너무 관용이 없어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 그나마 나루토에게 도시락을 먹이는지 마는지 기회를 1번 더 준 것이 미나토가 자신의 결점을 알고도 믿고 기다려준 것을 듣고 감화된 결과물이다. 거기다 오비토와 묵은 이야기를 풀고 나루토의 영향을 받고 나이도 꽤 먹은 보루토 시점에서도 닌자가 되기 위해 팔을 부러뜨릴 각오가 있냐고 묻는다던지 당신은 언제나 너무 엄격[13]하다고 이루카에게 한 소리 듣는 거 보면 타고난 성품은 역시 죽을 때까지 잘 안 고쳐지는 것 같다.

그리고 츠나데에게 사쿠라를 맡겨놓고 2년 반동안 신경을 안 쓰던 모습이나, 사스케에게 열중할 때 사쿠라와 나루토를 신경 쓰지 않던 모습, 그리고 자신의 관심이나 애정이 학생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교감하는지에 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등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방임주의적인 모습 또한 가지고 있기에 애초에 카카시는 선생님을 해선 안되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1.5. 총평

사실 이렇 듯 완벽한 선생은 아니고 서툰 부분도 많았다. 사정이 있긴 했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할 만한 부분에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 끝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카카시 본인도 카구야 전에서 '너희들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지 못했다.'고 독백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교육자로서 7반을 맡아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맺고, 제자가 성장하고 삐뚤어지는 모습이나 교사로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는 것은 카카시에게도 크게 성장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쨌든지 간에, 제4차 닌자 대전에서 육도선인에게도 7반을 잘 이끌어준 것이 굉장한 업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선생으로서도 인정받았다.

카카시가 7반을 대하는 모습에서 야마토가 선배치고 무르다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이는 암부 출신들의 한계를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동기인 아스마나 가이, 쿠레나이는 제자들이 이렇게 복잡한 일에 얽히고 속 썩이는 일이 네지의 일탈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었기에 카카시가 말썽꾸러기들을 맡은 것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카카시 동기들은 초기의 카카시에 비하면 교사로서도 인격적으로도 더 성숙된 인물들이기도 했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7반 교사로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사회적으로 결격 사항이 많았던 카카시가 과연 호카게가 될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며[14][15][16] 호카게가 되었다하더라도 호카게로서 훌륭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다. 그렇지만 카카시 역시 초보 교사였고, 7반을 담당함으로 교사로서는 물론 인격적으로도 성장하며 그야말로 나루토의 주제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줬다.

종합하면 카카시는 뛰어난 교수력과 학생 각각의 장단점을 파악할수 있는 안목도 있으며, 다소 섬세하지 못한 부분은 있었으나 제자들 모두에게 골고루 신경과 애정을 쏟은 선생이다.

2. 호카게로서

파일:external/img2.wikia.nocookie.net/Konohagakure_Post_War.png

나루토 700화와 극장판 나루토 더 라스트 그리고 나루토의 후속작 보루토에서 엄청나게 발전된 나뭇잎 마을의 모습을 보여주어 카카시의 마을 발전 능력이 매우 높이 평가되었다! 팬들에게는 경제 호카게, 금둔(金遁)의 카카시라는 칭호로도 불리며[17] 전무후무하게 평화로운 외적 환경에 힘을 입긴 했지만 카카시는 제4차 닌자대전 이후의 피해를 모두 수습한 것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발전까지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나뭇잎 마을에 스마트폰[18]이나 노트북 컴퓨터 등을 들여와 전자 행정을 가능케 하고 낡은 건물들을 현대적으로 재건한 것은 물론, 영화관[19], 패스트 푸드점, 편의점 등 마을의 내수 시장도 발전시켰다. 물론 나루토가 막 하급 닌자가 되었을 시점에서도 교통 수단을 제외하면 한국의 80년대 후반 정도의 모습이긴 했다.[20] 그러나 그 이후 세 번이나 마을이 괴멸적 타격을 입었으며 특히 두 번째인 페인전 때는 신라천정 MAX 파워로 마을이 거의 포맷되었다. 카카시는 이러한 상황에서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수습하고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이다. 다만 안개 마을 역시 기술적으로 대폭 발전한 모습이 나왔기에 세계관 과학 기술의 발전은 단지 카카시 혼자의 업적은 아니고 세계관 전체적으로 기술이 크게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나뭇잎 마을은 페인신라천정으로 초토화되고 제4차 닌자대전을 연이어 맞이했음에도 이렇게 중흥에 성공함은 물론, 크게 발전시킨 것을 보면 본인의 능력이 대단한 것은 맞다.

보루토 서두에 나온 나뭇잎 마을 괴멸 사태를 참고할 때, 가장 평화롭고 굴곡 없는 시대에 호카게로서의 재임을 마친 운이 좋은 호카게다. 초대 때는 구미를 대동한 마다라의 습격,[21] 2대는 제1차 닌자대전, 3대는 제2, 3차 닌자대전과 오로치마루와 모래 마을의 나뭇잎 부수기, 4대는 토비와 구미의 습격, 5대는 페인 침공과 제4차 닌자대전 등 마을이 괴멸 직전까지 갔던 대타격을 겪었고, 평화를 이끌어 온 인물인 7대의 재임기에도 마을이 박살이 났다... 가장 평화의 혜택을 크게 누린 시대였다. 물론 그렇다고 마냥 평화롭기만 했던 건 아니고, 오오츠츠키 일족의 행패로 히나타가 납치당하고 운석이 날아와 격추시키려 했지만 실패해 마을이 멸망할 뻔한 위기를 겪은 바는 있다. 그마저도 다행히 지나가던 사스케가 윤회안으로 컨트롤해서 없애버렸으니 결과론적으로는 마을에는 흠집 하나 안 난 셈이다.

2.1. 뿌리

그러나 보루토 애니메이션에서 사실상 내란사범들이자 불법 사조직인 뿌리의 잔당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아예 본인 입으로 "철저하게 수사하지 않은 건 5대와 나지만 말이야"라고 말했다. 추정컨대 이는 카카시 본인이 한때 호카게 직속 암부 소속이었고, 제자인 사이는 반대로 뿌리 소속이었으며, 카카시 재임 당시 또다른 제자인 나루토가 7대 호카게 최유력 후보였기 때문이었을 공산이 크다. 뿌리 자체야 호카게 직속 암부와 뿌리가 견원지간인 데다가 뿌리의 수장인 단조가 저지른 짓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숙청하기 딱 좋은 먹잇감이다. 그러나 이 때 수사를 엄격하게 했다면 카카시의 출신 탓에 "경쟁 조직 탄압하는 거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고, 여기서 또 사이에 대해서만 예외로 했으면[22]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었다. 나루토 앞날을 위해 과잉 진압한다는 의심을 사는 건 덤.[23] 무엇보다 전쟁의 여파로 마을이 뒤숭숭한 상황에서 무턱대고 수사를 진행하다가 마을 내에 의심암귀가 퍼져 개판이 일어날 수 있으니 이를 우려해서 사실상 포기한 것이다.

결국 이렇게 놓아준 뿌리의 잔당은 7대 재임기 때 사달을 일으키고 말았다. 적폐청산 실패가 왜 위험한지 보여주는 예시 그래도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이유라서 작중 인물들이나 독자들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편.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공개수사를 하지 않아도 은밀하게 수사를 진행하며[24] 문제를 일으킬 잔당들을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색출하는 방법을 쓰려는 시도조차 안 하고 대외적으로 공개수사하긴 꺼려지니 무작정 방치행으로 갔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여지는 있다.

그러나 결국 자기 처신 때문에 일어난 테러범에 대한 반응이 하필이면 시카마루가 아무리 애라도 봐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 것에 대해 오히려 정론을 말한 시카마루를 이상한 놈 취급하는 것(...)이어서 은근 캐붕 논란이 생기긴 했다. 따지고보면 제아무리 이유가 있다 해도 결국 자기 대 적폐청산 실패로 나타난 테러범 덕에 제자 임기 시절 피해가 났는데 그 테러범을 처벌하긴커녕 오히려 감싸려는 이해 안 되는 언행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그리고 캐붕 논란 이전에 생각해봐야 할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뿌리는 단조의 사병 노릇을 하느라 사실상 불필요한 악행을 자행하던 합법(…) 범죄조직에 가까운 성질을 지녔기에 이런 조직 소속원들을 갖다가 사전에 미리 문제될 군상들을 색출해내서 골라낸 다음 해체하려는 시도조차 안 하고 그냥 다 마을에 풀어버리고 10년간 방치한 것은 변호의 여지가 낮다.

마을 사람들이 뿌리 잔당이었던 타누키에게 좋지 않게 반응한 것도 마을에 문제를 벌려놓은 범죄조직 소속의 범죄자라 볼 수 있는 인물이 민간인 사이에 버젓히 끼어있으니 좋지 않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런 사람들은 풀어두기보단 차라리 사회적으로 미리 격리를 시키는게 훨씬 더 낫다. 괜히 현실에 교도소가 있겠냐

그리고 목표였던 마녀사냥 방지도 사실상 실패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상층부가 작정하고 진상은폐를 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뿌리에 대한 진상과 소속원들에 대한 정보까지 자기들이 결국 알아내서 뿌리 조직원들을 박해하는데 성공했으며, 연좌제로써 뿌리 소속원의 호적상 부인일 뿐 쌩 일반인까지도 함께 타깃으로 찝어서 마녀사냥을 기어이 했다. 소설판에 따르면 분명 상층부가 처벌 없이 풀어준 뿌리 조직원들 중 제법 되는 숫자들이 지들 딴엔 억울하게 죽어나간 걸로 보이는데 상층부가 건드리지 않은 한 결국 건드릴건 진상을 알아채고 뿌리에게 적대적이 된 같은 마을 사람들밖에 없어보인다(…) 결국 이 뿌리 인원들에 대한 노처벌과 작정하다시피 진행한 진상은폐는 철저히 실패로 돌아갔으며, 조치에 대한 의도만 좋았다지 결과물만 보면 그 의도조차 지키지 못한 셈. 막으려 했던 사적제재도 못 막고 유사정2구현도 마을 사람들이 알아서 해버렸다 어찌보면 상층부가 노처벌로 뿌리 구성원들을 대충 마을에 풀고 손 놔버린 건 처리하기 껄끄러운 뿌리 구성원들 처분에 대해 욕도 안 먹고 손도 안 더럽힌 채로 마을 사람들이 나중에 못 잡아서 귀찮아진 한 놈 빼곤 알아서 다 처리해주는걸 노린게 아니었을까란 드립도 존재하지만, 시카마루도 카카시의 의도에 대해 마녀사냥 방지라고 언급하며 그건 올바른 대처였다고 말하는걸로 봐서 신빙성은 낮다. 그리고 정말 그걸 노렸다면 못해도 6대 시절에라도 일단 마을 내부에서 알아서 처리되었을 이들은 그렇다 치고, 박해를 피해 밖으로 도망간 구성원들까지 몰래 철저하게 추적해서 조져버렸을 확률이(…) 그냥 의도만 좋았지 실상은 생각없는 조치였던거다 게다가 7대 나루토는 이 건에 대해 고스트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알게 된 모양인데 그렇다면 후대에게 일을 넘기면서 제대로 전해줘야 할 정보까지 불필요하게 은폐해버린 셈.[25]

결국 고스트 건만 없었으면 재임시기를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못해 발전까지 대폭 시키는 식으로 잘 갈무리한 훌륭한 호카게라 볼 수 있으나 고스트 건이 얽히면서 결국 적폐청산 실패로 인해 후대까지 큰 피해를 미치게 했다는 점에서 평가에 어느 정도 하자가 생기는걸 피할 수 없게 되었다.

2.2. 은퇴 이후

호카게에서 은퇴한 후에는 호카게 상담역으로서 현 호카게인 나루토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비록, 은퇴했지만 나루토 보조도 하고 그 외 간단한 잡일 정도는 하는 편인데, 그 중 하나가 닌자 아카데미 졸업 시험관 일을 하고 있다. 다만 아카데미 졸업 시험관은 매년 하는 게 아니고 보루토 세대가 문제아가 많은 집단이라 이때만 특별히 참관해줬다고 말한다.

3. 중급닌자 본선 때 근무 태만

사스케를 가르칠 때 나루토와 사쿠라는 물론이고 시험장에도, 호카게인 히루젠에게도 연락을 전혀 취하지 않았다.[26] 정 마을로 가기 싫으면 파쿤을 소환해서 보내던가 하는 등 얼마든지 방법이 있었는데도 그냥 말 그대로 잠수를 타 버렸다. 이건 선생으로서도, 닌자로서도 책망받을 행동이다. 이 때문에 암부 한 팀이 사스케의 행방을 쫓았으며 사람들은 사스케가 정말 오로치마루나 그 부하에게 잡혀 갔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져야 했다. 본선 시험관인 시라누이 겐마도 언급했듯 항상 늦고 무심한 그 성격 자체가 문제. 히루젠의 호위였던 나미아시 라이도 또한 시간을 가벼이 여기는 행동은 중급닌자에 부적합하다고 지적했으며 카제카게로 변장했던 오로치마루가 없었다면 얄짤없이 지각으로 실격했을 것이다. 사쿠라는 카카시가 관객석에 왔을 때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고 이노도 사쿠라가 화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쿠라가 그런건 이제 됐다고 넘어갔지만.

작품 외적으론 독자가 일일이 수련의 중간 경과를 전해 듣는 것보다 어디로 사라진지 안 보이던 사스케가 극적으로 등장해 성장을 보여주고 새로운 필살기를 보여주는 게 더 멋있겠지만, 내적으로는 사실 카카시가 주변 사람들한테 있는 대로 꾸중 들어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다.

4. 작품 외적 평가

작품 외적으로 보면 카카시는 지라이야, 이타치를 제외한 아카츠키 멤버들[27], 우치하 마다라, 그리고 라이벌인 마이트 가이 등과 함께 나루토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캐릭터들 중 하나라고 평가받는다. 자부자와의 싸움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왼쪽 눈에 사륜안을 이식받게 된 과거 이야기 역시 가족사와 엮어 흥미롭게 풀었으며, 내용이 진행될수록 공기화되는 다른 나뭇잎 동료들과는 달리 가이와 함께 꾸준히 마을의 강한 전력으로 활약하였다. 게다가 점점 마법사화되어가는 닌자들의 싸움에서 카카시는 특유의 닌자스러운 전략과 다채로운 싸움 스타일을 고수했고[28], 죽은 줄만 알았던 동료의 진실까지 흥미롭게 풀어냈으며,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둘의 전투를 엄청난 작화와 연출로 나루토 애니메이션 전체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명전투로 만들어주었다.[29]

당장 7반을 봐도 나루토는 잘 가다가 4차 닌자대전에 와서 치명적인 캐릭터 붕괴가 일어났고, 사스케는 이해할 수 없는 행적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으며, 사쿠라는 3대 닌자의 후계자이자 히로인임에도 나루토와 사스케에 밀려 입지를 굳히지 못했고, 사이와 야마토는 공기화된 것을 생각하면 카카시는 파워 인플레와 작가의 타 캐릭터 편애에 다소 피해를 보긴 했지만 막판까지 일관되게 잘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할 만하다.

[1] 나라 시카마루 같은 경우엔 나라 시카쿠(나라 시카마루의 아버지)의 아내인 나라 요시노가 아이를 얻자 아스마는 이 아이를 책임지겠다며 제자로 찜한 나라 시카마루가 그 예다.[2] 초기 설정에 따르면, 원래 사스케와 사쿠라는 없었고 나루토의 새 선생님으로 카카시가 온다는 설정이었다.[3] 실제 나선환의 수련 단계에는 나무 타기와 수면 보행이 포함되어있고 나루토가 나선환을 배우는 계기가 되는 지라이야와 만날 때도 딱 이 수련을 하던 도중이었다. 이때부터 카카시는 사스케에게 집중하고 나루토는 지라이야에게 맡기는 상황이었으니 카카시가 나선환을 가르쳐줄 시기는 없던 것.[4] 이 표현만 봐도 위에서 언급한 설정 오류 문제임이 드러난다. 나루토와 미나토의 부자관계에 얽힌 주변 설정이 대체로 허술하고 후반부에 급하게 떼운 느낌이 강하다. 나루토가 4대 호카게의 아들이고 카카시는 4대 호카게의 제자라는 설정이 연재 초기부터 잡혀있었다면 과연 카카시와 3대 호카게가 나루토를 이렇게 대우했을까.[5] 죽음의 숲에서 오로치마루에게 주인을 얻었고, 봉사법인을 거는 현장에 그가 직접 나타나기까지 했다. 게다가 카카시는 병원에 앓아 누운 사스케를 죽일까 고민하던 카부토까지 막은 적이 있다. 거기다 중급닌자 시험 예선에서 팔문둔갑의 5문까지 사용한 리를 처참하게 리타이어시켜버린 가아라가 매치업되어 그가 중급닌자 시험 본선에서 사스케를 죽여주겠다고 벼르고 있었다.[6] 실제로 결과는 오직 시카마루만 중급닌자로 진급.[7] 외적으로 보면 사실 그 대사는 해설에 가깝긴 했지만.[8] 바로 위에서 "너라면 알고 있을 거다."라고 말했듯이.[9] 물론 이미 탈주한 시점에서 돌릴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지 그냥 처음부터 저렇게 될 놈이었단 이야기는 아니었다.[10] 카카시: 내 이름은 하타케 카카시.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너희들에게 가르쳐줄 마음은 없다. 장래희망이라고 해도... 뭐 취미는 여러가지다![11] 그늘진 성격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만나서 밝게 변하는 것은 나루토에 많이 묘사되었으나 카카시는 그런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다.[12] 그걸 보고 3대와 친구들은 카카시 마음의 상처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된다.[13] 전쟁세대인 카카시가 겪어낸 과거를 봤을때 엄격할 수 밖에 없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구가 둘이나 죽은 데다가 스승마저 얼마 못 가 죽었다. 제자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는 팀워크, 동료애가 실전에 갔을때 얼마나 절실한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후대에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그들을 강하게 가르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6.25 세대 어른들이 후대에 가난을 물려주지 않게 하기 위해 엄격히 가르치고 쉬지 않고 일해왔던 점에 일맥상통한다.[14] 오리지널 멤버부터 사이까지 말썽쟁이들을 끝까지 책임을 지고 가르치면서, 실패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성장시킨 경험은 아주 크다. 만약 카카시에게 이 경험들이 없었다면 단순히 일 잘하고 강한 것만으로 마을의 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15] 다만 결격 사항이 많은것과 별개로 7반의 교사를 맡지 않더라도 카카시가 호카게가 됐을 가능성은 농후했다. 당장 영주가 하타케 사쿠모의 아들이라며 좋아라 했던 것과 7반 교사 이전에도 나뭇잎에서 카카시에 대한 평판이 나쁘지 않았음을 생각 하면 충분히 호카게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16] 물론 7반과의 경험이 없었다면 카카시가 호카게 가능성이 미지수인 것도 맞고 됐어도 높은 평가를 받았을지는 의문이다. 작중 보여준 호카게들은 초창기부터 온갖 문제가 암습해있던 나뭇잎 마을을 이끌면서 강함 못지않는 인격적 성숙함이 필요했기 때문. 당장 카카시의 스승인 미나토의 경우 3차 닌자대전에서의 공이 컸지만 강경파가 껄끄러웠던 불의 영주와 미나토의 올곧은 인격성에 높은 평가를 준 3대 호카게, 평소 행실로 높은 마을 내 인기가 결합되며 취임한 케이스이며 이후 나루토 역시 비슷한 케이스임을 감안하면 7반 교사로 경험은 카카시에게 필요했다.[17] 다만 공식 설정에서는 별로 부각되지는 않는다.[18] 정작 보루토에선 등장하지 않지만 더 라스트 엔딩 신에서 히나타의 결혼식에 이노와 사쿠라, 친구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19] 사실 나루토의 첫번째 극장판에서도 옛날식 영화관은 존재했다.[20] 상하수도와 전기 등의 기본적인 인프라 시설은 다 깔려있었고 CCTV및, TV 방송도 있었다. 허나 마을 일부에 그런 거 깔렸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다 균등하게 깔리지 못했을 것이다. 번화가와 외곽도 차이가 있으니까[21] 마을 외곽에서 잘 막아내서 마을에는 아무 피해도 없긴 했다.[22] 적나라하게 말해 봐주기 수사를 했으면.[23] 이렇게 인맥이 연결되어 적폐 청산에 실패하고 마는 건 의외로 현실 정치계와도 꽤 유사하다.[24] 암부를 대처하는 기관(정부)도 있으니 그걸 굴려도 상관 없었을 것이다.[25] 다만 이건 고스트 사건에서 스미레 옹호 전개에 뿌리를 부적절한 방식으로 엮어대며 가해자 범행 은폐라는 식으로 증오의 연쇄를 잘못된 방식으로 끊는 짓을 옳다는 식으로 시전한 시나리오 전개 문제에 카카시와 츠나데 같은 전 세대 호카게들까지 이상하게 동원된 것에 가깝다. 즉 문제 각본의 폐해(…). 실제로도 이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설정을 짜둔 각본과 제작진들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26] 사스케도 이런쪽으로는 완전히 무심한 성격이기도 했고.[27] 이타치는 완결이 된 지금은 부정적인 반응이 매우 많다. 자세한 것은 우치하 이타치/비판 문서를 참고[28] 비록 마지막 오오츠츠키 카구야와의 전투에서 양눈 카무이와 스사노오를 사용하며 카카시 역시 다른 캐릭터들같은 마법스러운 싸움 스타일을 보여주긴 했지만 나루토나 사스케처럼 아예 버프를 받은 것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오비토의 차크라를 받아 잠깐동안 그러했을 뿐이다.[29] 정작 또다른 당사자인 오비토는 억지 미화 논란에 휩싸여 그전까지 보여준 포스와 역대급 반전은 잊혀지고 캐릭터 자체의 평가도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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