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3월 28일 ~ 1945년 8월 15일
1. 개요
일본 제국의 군인. 쇼와 덴노의 옥음방송을 막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2. 생애
1912년 일본 교토부에서 태어났으며, 1934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육군대학 교관 생활을 하던 중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제3군 참모로 참전하여 필리핀에서 연합군과 전투를 벌였다. 1942년 8월 소좌[1]로 진급하면서 육군성 군무국의 간부로서 일을 시작하였다.시간이 흘러 1945년 8월,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자, 혼란에 빠진 일본 정부와 군의 수뇌부는 항복 문제를 두고 격렬히 논쟁하였다. 당시 총리 스즈키 간타로와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 등은 더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해 최대한 빠른 항복을 주장하였으나, 육군대신 아나미 고레치카는 결호작전을 주장하며 항복을 극구반대하였다.
하지만 대세는 총리와 외무대신 쪽으로 기울었고, 8월 13일 각료회의에서 항복이 최종 결정되었다. 이를 감지한 육군성 내의 항전파 장교들은 아나미에게 병력동원계획의 발동을 요청하였는데, 이중에는 하타나카 소좌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타나카를 비롯한 몇몇 장교들은 15일 새벽, 1사단장 모리 다케시(森赳)를 살해하면서 쿠데타를 실행에 옮겼다. 쿠데타의 자세한 과정은 궁성사건 참고.
하지만 이는 실패로 돌아갔고, 좌절한 하타나카는 함께 쿠데타를 모의했던 시자키 지로(椎崎二郎) 중좌와 함께 고쿄 앞에서 권총으로 자살하였다. 그는 자살 직전 '요시다 쇼인의 뒤를 따라 자결하여 무사시의 들판에 버려지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3. 매체에서
2016년 개봉한 일본 영화 일본 패망 하루전에서 배우 마츠자카 토리(松坂桃李)가 하타나카 소좌 역할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