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14:53:58

피트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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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fff> 피트 베스트
Pete Best
파일:A-337031-1528424483-8124.jpeg.jpg
본명 랜돌프 피터 스캔랜드
Randolph Peter Scanland
출생 1941년 11월 24일 ([age(1941-11-24)]세)
영국령 인도 제국 타밀나두 주 마드라스
(現 인도 타밀나두 주 첸나이)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직업 드러머, 공무원
장르 팝 록, 로큰롤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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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i.telegraph.co.uk/pete-best_1517274c.jpg

비틀즈의 전 드러머. 1962년부터 그의 자리는 링고 스타가 대신하게 된다.

1941년 11월 24일 출생. 현재 여든이 넘은 나이임에도 정정하다.

2. 생애

비틀즈가 함부르크로 가게 될 때 합류한 드러머. 원래는 그의 어머니 모나 베스트가 영업하던 카스바 클럽에서 the Black Jacks라는 그룹의 드러머로 활약하고 있었다.

함부르크 투어 당시 5인조 밴드를 만들어 오라는 매니저의 요구에 따라 급하게 비틀즈에 합류한 이후[1], 쭉 같이 활동하다가 비틀즈가 메이저로 데뷔하기 직전에 잘렸다. 일단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베스트를 해고할 때 그에게 "너는 너무 상투적이라서 애들이 네가 나오는 걸 원하지 않아. 그리고 존 레논과는 친하지만 & 조지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했지만......[2]

밴드 주변인들의 증언이나 머지 비트의 기사들을 보면 피트 베스트의 팬도 많았고[3], 무엇보다 피트 베스트 본인이 자신이 잘린 이유를 지금까지 얘기하지 않고 있기에 여러 가지 설이 많다.

뒷이야기에 따르면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핑계였을 뿐, 그 실질적인 이유는 오리지널 멤버들[4]과의 불화였다고 한다. 피트 본인 말로는 폴이 가장 열성적으로 자길 해고하자고 했다고 한다.[5]

이들 세 명은 학창 시절부터 함께해 왔기에 피트와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있었고 오리지널 멤버들은 이를 계속 불편하게 생각하며 메이저 데뷔 직전 조지 마틴에게 피트의 탈퇴를 부탁했고 그것을 받아들인 마틴이 연주를 핑계로 피트를 링고로 교체시킨 것이다. 이외 피트의 어머니였던 모나 베스트도 불화와 해고의 원인으로 꼽힌다. 상술했듯이 모나는 클럽 운영주여서 리버풀 무대에서 어느 정도 권력이 있었다. 때문에 비틀즈의 매니지먼트에도 관여를 했는데, 이게 엡스타인과 다른 멤버들 간의 불화로 번졌다는 증언도 있다.

다른 일설로는 존 레논, 조지 해리슨, 폴 매카트니보다 잘 생겨서 밴드의 초창기에는 관중들 중에 그의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 때문에 셋의 시기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거기에다 눈치 없이, 자신이 받은 인기를 밴드 전체에다 돌리지를 않고 혼자서 누리고 있어서 미운 털이 박혔다고 한다.

비틀즈에서 잘린 뒤로도 드러머로 활동을 계속했으나[6] 자신이 잘린 뒤로 링고 스타가 들어와 '매혹적인 4인조'라 칭해지고 비틀즈가 크게 활약한 것을 보고 자살까지 기도했다고 한다. 그 뒤에 음악을 그만두고 평범한 하위 공무직으로 살아가다가 1995년에서야 비틀즈의 초창기 시절의 음원을 담은 "The Beatles Anthology"가 나오면서 그가 참여한 앨범들이 세상에 빛을 보면서 알려지게 된다. 당연히 관련 앨범 수익을 같이 받게 되었는데 평생 일해오던 공무직 수당보다도 훨씬 많은 돈을 단기간에 벌어들였다고 한다.

여하튼 늦깎이 나이로 비틀즈의 또 다른 멤버로 알려져서 2012년 나이 71살인 현재까지 비틀즈 관련 사업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희대의 새옹지마 여파로 오래간만에 가족을 모아 밴드를 결성해 앨범을 냈는데, 평가는 평범한 편이다.

2018년 리버풀 엡스타인 극장에서 공연하는 존 레논에 관한 연극 Lennon's Banjo에 출연하여 본인 역할을 연기할 거라고 한다. 다만 개인 일정상 초반 공연 기간에만 출연하고 그 이후부턴 다른 배우가 연기한다고 한다.

3. 기타

비틀즈 탈퇴 이후론 큰 교류는 없었다고 한다. 탈퇴 이후 1965년 베스트의 역할을 폄하하는 뉘앙스를 흘렸던 존과 링고의 인터뷰 때문에 소송이 있었다고 한다. 2007년에 폴 매카트니와의 대화를 원한다고 밝혔으나 폴 쪽에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넷플릭스로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 '50년 전 오늘의 비틀즈: 서전트 페퍼와 그 너머'에서 인터뷰를 했다. 피트 베스트의 외할아버지는 인도에서 근무한 창기병대 소령이었는데, 그 때 받은 훈장이 피트 베스트의 집안에 있었다고 한다. 피트의 어머니는 비틀즈 멤버들에게 그 훈장(메달)을 자랑하곤 했고 브라이언 엡스타인도 67년도에 그걸 봤다고 한다. 서전트 페퍼 앨범 제작 중 여러가지 컨셉을 위해 장식품들을 떠올리던 존 레논은 마음에 들어했던 그 메달을 생각해냈고 서전트 페퍼 앨범을 제작할 때 피트에게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피트의 어머니는 '꼭 돌려받아라'라는 조건으로 빌려 주었고 앨범 커버 제작에 쓰고는 피트에게 다시 돌려줬다고 한다.[7] 또 피트 베스트의 아버지가 리버풀 복싱 스타디움 관계자로 근무할 때 받았던 컵이 있었는데 그것 또한 앨범 커버 제작을 위해 빌려갔다고 한다. 이런저런 언급들을 보면 존하고는 소송이 있었음에도 물건도 선선히 빌려줄 정도로 사이가 나쁘지 않던 것으로 보인다.


[1] 당시 리버풀에 개인 소유의 드럼킷을 가진 드러머가 드물어 쉽게 가입할 수 있었다고 한다.[2] 이는 존의 예전 부인인 신시아 레논의 저서에서도 나온 바 있다.[3] 피트가 링고로 교체되고 반발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때문에 초창기엔 링고가 적응하지 못할법도 했지만, 탁월한 드럼 실력과 입담으로 이런 비관적인 전망을 몰살시켰다.[4] 피트 베스트는 다른 멤버들이 모두 머리를 내릴 때 본인만 올림 머리를 유지했고 조지 해리슨과 마찰이 잦았다고 한다. 조지는 실제로 링고의 밴드 가입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고, 피트가 밴드에서 쫒겨나자 분노한 피트 빠순이들에게 링고 영입의 주범으로 주목되어 계란세례를 받기도 했다.[5] 아이러니하게도 로열티 건으로 피트에게 연락을 취한 사람 역시 폴이었다고 한다. 그럴만도 한게 앤솔로지 발매 당시인 1995년 당시엔 존은 사망한 상태였고, 링고는 피트의 후임이라 안면식도 있을지도 미지수였던데다 조지는 링고랑 절친한데다 마찰이 제일 심했으니 연락하긴 어색한 사이였을 것이다. 결국 소거법으로 폴이 남은데다 밴드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리더이기도 해서 연락하게 된 듯하다.[6] 실제로 자기 밴드를 만들어 데뷔할 뻔했지만 무산되었다. 나중에 미국에서 밴드를 한 번 더 만들었지만 이쪽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무너졌다. 정작 두 번째 밴드에 참가한 다른 멤버들은 음악가로서 피트보다 성공해버렸다.[7] 피트는 돌려받은 것이 정말 아름다운 일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