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8:21:12

프린세스 로열 루이즈

<colbgcolor=#1353b4> 파일:Coronet_of_a_Child_of_the_Sovereign.svg (1).png
프린세스 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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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DFDF><colcolor=#000> 프린세스 로열 루이즈
Louise, Princess Royal
파일:1901-princess-royal-louise.jpg
이름 루이즈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다그마
(Louise Victoria Alexandra Dagmar)
출생 1867년 2월 20일
잉글랜드 런던 말버러 하우스
사망 1931년 1월 4일 (향년 63세)
잉글랜드 런던 포트먼 스퀘어
배우자 제1대 파이프 공작 알렉산더 더프
(1889년 결혼 / 1912년 사망)
자녀 알라스테어, 알렉산드라, 모드
아버지 에드워드 7세
어머니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
형제 앨버트 빅터, 조지 5세, 빅토리아, 모드, 알렉산더 존
종교 성공회
서명 파일:프린세스 로열 루이즈 서명.svg
1. 개요2. 작위3. 생애
3.1. 어린시절3.2. 결혼3.3. 사망
4. 가족관계
4.1. 조상4.2. 자녀

[clearfix]

1. 개요

영국인도 제국공주. 에드워드 7세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의 셋째이자 장녀이다.

2. 작위

<colcolor=#000> 파일:Coat_of_Arms_of_Louise,_Duchess_of_Fife.svg.png
문장
  • 웨일스의 루이즈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Louise of Wales (1867년 2월 20일 ~ 1889년 7월 27일)
  • 파이프 공작부인 루이즈 공녀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Louise, Duchess of Fife (1889년 7월 27일 ~ 1901년 1월 22일)
  • 파이프 공작부인 루이즈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Louise, Duchess of Fife (1901년 1월 22일 ~ 1905년 11월 9일)
  • 프린세스 로열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Royal (1905년 11월 9일 ~ 1931년 1월 4일)

3. 생애

3.1. 어린시절

<colbgcolor=#FFDFDF><colcolor=#000>
파일:164997-1297675016.jpg
파일:Princess Louise young.jpg
어린 시절
1867년 2월 20일에 당시 웨일스 공이였던 에드워드 7세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의 장녀이자 6남매 중에 셋째로 태어났다. 이름은 외할머니인 헤센카셀의 루이제에서 따와서 지어졌다. 손주들의 이름에 관심이 많았던 빅토리아 여왕은 이러한 결정에 대단히 불만스러워했다.[1] 오죽하면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의 큰딸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어떻게 장남 부부는 딸의 이름을 영국 왕실과 자신의 이름인 빅토리아로 짓지 않을 수가 있냐며 섭섭함을 토로할 정도였다.(...)

루이즈는 다른 자매들처럼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소녀였다. 이러한 성격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져 평생 공적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대중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다.

3.2. 결혼

<colbgcolor=#FFDFDF><colcolor=#000>
파일:258471-1330681299.jpg
결혼 사진
1889년에 제5대 파이프 백작 제임스 더프의 아들이자 아버지의 측근이었던 제6대 파이프 백작 알렉산더 더프[2]와 결혼하겠다고 하였다. 자신의 딸이 신하와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은 에드워드 7세와 딸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는 장녀의 결혼이 탐탁지 않았다. 그러나 빅토리아 여왕의 허락으로 두 사람은 1889년 7월 27일에 버킹엄 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렸다.[3] 여동생 웨일스의 빅토리아 공녀와 웨일스의 모드 공녀, 7촌 테크의 메리[4] 등이 신부 들러리로 참석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백작이었던 손녀 사위를 파이프 공작과 맥더프 후작에 임명했고, 루이즈도 이에 따라 파이프 공작부인이 되었다.

부부는 나이 차가 18살이나 났지만 서로 사랑했다. 스코틀랜드에 살림을 차린 두 사람은 세 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아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었고, 두 딸인 알렉산드라와 모드만 성인으로 자랐다. 빅토리아 여왕은 파이프 공작위를 루이즈의 딸들이 계승할 수 있도록 특명을 내렸다.
<colbgcolor=#FFDFDF><colcolor=#000>
파일:1280px-Princess_Louise,_Duchess_of_Fife,_and_daughters_Princesses_Maud_and_Alexandra.jpg
장녀 알렉산드라, 차녀 모드와 함께
1911년 겨울, 루이즈와 그녀의 가족은 겨울을 이집트에서 보내기 위해 향해하던 중 배가 모로코 근처에서 난파되는 사고를 당했다. 부부와 아이들은 구조되었지만 물 속에 오래 있었던 알렉산더는 늑막염에 걸려 1912년 1월에 사망하였다.

3.3. 사망

남편이 죽고 루이즈는 외출과 공적 활동을 극히 꺼렸다. 죽기 몇 년 전부터 심장병과 위병으로 고생하던 루이즈는 1931년 1월 3일에 자택에서 수면 중에 숨을 거두었다. 그녀의 유해는 윈저 성의 세인트 조지 예배당에 묻혔다가 넉 달 뒤에 세인트 니니언 예배당에 안장된 남편 옆으로 이장되었다.

4. 가족관계

4.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프린세스 로열 루이즈
(Louise, Princess Royal)
<colbgcolor=#FFF3E4,#331c00> 에드워드 7세
(Edward VII)
<colbgcolor=#FFFFE4,#323300>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공자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colbgcolor=#E4FFEC,#00330f>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에른스트 1세
(Ernest I, Duke of Saxe-Coburg and Gotha)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루이제 공녀
(Princess Louise of Saxe-Gotha-Altenburg)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켄트와 스트래선 공작 에드워드 왕자
(Prince Edward, Duke of Kent and Strathearn)[5]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녀
(Princess Victoria of Saxe-Coburg and Saalfeld)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
(Princess Alexandra
of Denmark)
크리스티안 9세
(Christian IX)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공작
프리드리히 빌헬름

(Friedrich Wilhelm,
Duke of 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
헤센카셀의 루이제 카롤리네 공녀
(Princess Louise Caroline of Hesse-Kassel)[6]
헤센카셀의 루이제 공녀
(Princess Louise of Hesse-Kassel)
헤센카셀의 빌헬름 공자
(Prince William of Hesse-Kassel)
덴마크의 샤를로테 공주
(Princess Charlotte of Denmark)[7]

4.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1남 맥더프 후작 알라스테어 더프
(Alastair, Marquess of Macduff Duff)
1890년 6월 16일 1890년 6월 16일
1녀 제2대 파이프 여공작 알렉산드라 공녀[8]
(Princess Alexandra, 2nd Duchess of Fife)
1891년 5월 17일 1959년 2월 26일 코넛의 아서 공자[9]
슬하 1남[10]
2녀 사우세스크 백작부인 모드 카네기
(Maud Carnegie, Countess of Southesk)
1893년 4월 3일 1945년 12월 14일 제11대 사우세스크 백작 찰스 카네기
슬하 1남[11]

[1] 이 때문인지 빅토리아 여왕의 손자들은 대게 퍼스트나 미들네임에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 공에게서 딴 앨버트가 들어가고, 마찬가지로 손녀들은 여왕 본인에게서 딴 빅토리아가 퍼스트 네임과 미들네임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다.[2] 그의 어머니는 윌리엄 4세의 사생아인 엘리자베스 피츠클래런스의 딸로, 알렉산더 더프는 윌리엄 4세의 외증손주이다.[3] 알렉산더 더프는 에드워드 7세 측근 중 빅토리아 여왕이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했던 신하였다.[4] 1893년 조지 왕세손과 결혼하여 루이즈의 올케가 되었다.[5] 조지 3세의 4남이다.[6] 프레데리크 5세의 손녀이다.[7] 프레데리크 5세의 손녀이다.[8] 국왕의 외손녀로서 Princess 작위를 받았다. 모드는 결혼하면서 지위가 박탈됐지만 알렉산드라는 영국 왕자와 결혼했기 때문에 혼후에도 HRH 경칭과 princess 작위를 유지했다.[9] 1883~1938, 빅토리아 여왕의 3남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의 외아들. 즉, 루이즈의 친사촌이자 알렉산드라에게는 5촌 외당숙이 된다. 아버지가 90세까지 장수하고 자신이 먼저 죽는 바람에 공작이 되지 못했다.[10] 알라스테어(1914~1943). 할아버지 아서가 1941년에 사망하자 코넛 공작위를 물려 받았으나, 미혼인 상태로 불과 1년 반 만에 캐나다에서 급사해 코넛 공작은 남계가 단절되었다.[11] 제3대 파이프 공작 제임스 카네기 (1929-2015). 파이프 공작위는 알렉산드라·모드의 세대만 여계를 통한 계승이 가능해 큰이모의 작위를 상속받았다. 여담으로, 니콜라이 2세의 신원을 확인할 때 DNA를 제공하기도 했다. 제4대 파이프 공작은 장남 데이비드 카네기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