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토 이탈리아어 : Prato | |||
국가 | 이탈리아 | ||
지역 | 토스카나 | ||
면적 | 97.35km2 | ||
인구 | 198,034명[1] | ||
시장 | 일라리아 부게티 | ||
시간대 | UTC+1 (서머타임: UTC+2) | ||
1. 개요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에 위치한 도시로 이탈리아 중부에서 로마, 피렌체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2. 역사
프라토는 에트루리아인이 만든 도시이다. 이 도시는 기원 전 5세기 까지 사람이 거주하였으나 원인 불명의 이유로 쇠퇴하였다. 이후 프라토는 로마의 차지가 되었다. 로마는 프라토에 도로는 뚫었지만 정착지를 건설하지는 않았다. 그 이후 프라토가 다시 나타난 것은 10세기 경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임명을 받은 프라토성의 군주 알베르티가 알 코르니오와 카스트룸 프라티라는 두 개의 마을을 합치면서 였다. 이렇게 탄생한 프라토는 2세기만에 상업과 모직물 제조업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 때 인구가 무려 15,000명이 되었다.1326년, 피렌체의 공격적인 확장과 가장 부유한 가문들 간의 행정 통제권을 둘러싼 내부 갈등을 피하기 위해 프라토는 나폴리의 국왕인 로베르토의 아래에 들어갔다. 하지만 나폴리의 여왕 조반나 1세는 피렌체로부터 17,500 플로린을 받는 대가로 프라토를 피렌체에 매각해버렸다. 이 시기 프라토는 도나텔로, 산드로 보티첼리, 프라 필리포 리피 등이 활동해 수많은 예술 작품을남겼다. 이후 프라토는 피렌체와 한 몸이 되었으며 교황 율리오 2세와 스페인이 주도한 신성 동맹군대가 1512년 8월 29일 프라토를 정복하고 황폐화시켰다. 이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도시는 약 2세기 동안 지속된 쇠퇴되었다.[2]
그러나 산업 혁명이 시작되자 한 인물의 지휘로 프라토는 다시 부흥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오반니 바티스타 마조니로 프라토의 몰락한 섬유 산업을 다시 부흥시킨 인물이다. 지오반니 바티스타 마조니는 덕분에 도시의 인구는 급증했으며 프라토는 백개의 굴뚝이 있는 토스카나의 맨체스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섬유산업의 발전으로 외국인들이 프라토에 많이 정착했으며 특히 중국 저장성 원저우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이 정착했다. 그래서 음력 1월 1일이면 다양한 중국의 신년 축제가 열리며 전통 용춤을 추는 숙련된 무용수와 무술가들이 조작한 여러 마리의 용과 사자 인형이 퍼레이드를 펼친다.
3. 경제
역사적으로 프라토의 경제는 섬유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섬유 산업은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프라토의 섬유 지구는 약 7000개의 패션 회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도시 수출의 약 20억 유로에 달한다. 또한 토스카나주 정부 주최로 열리는 프라토 엑스포는 직물전시회로 남녀, 아동용 옷감을 주로 발표한다.4. 랜드마크
- 프라토 대성당 (Duomo di Prato) : 1500년 경 만들어진 프라토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프라 필리포 리피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외부에는 도나텔로와 미켈로초가 만든 성당 외벽 설교대가 있다.
- 프레토리오 궁전 (Palazzo Pretorio) : 13세기에 붉은 벽돌 건물로 과거에는 옛 시청이 있었으나 지금은 프라토 시민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프라 필리포 리피, 프라우 안젤리코 같은 르네상스 시기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 다티니 궁전 (Palazzo Datini) : 1383년 이탈리아의 상인 프란체스코 다티니의 거주지로 시작된 건물로 대립교황 알렉산데르 3세와 앙주 공작 루이 2세가 방문하였다. 다티니가 남긴 서류가 15만건의 서류가 건물 벽 사이에 보관되어있었고 이 서류는 19세기에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 팔라초 델리 알베르티 (Palazzo degli Alberti) : 지역 은행의 미술관으로 카라바조의 대표작 가시로 대관식을 소장하고 있다.
- 카스텔로 델 임페라토레 (Castello dell'Imperatore) : 13세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가 지은 성으로 꼭대기에서 프라토 시내 풍경을 볼 수 있다.
- 프라토 섬유 박물관 (Museo del tessuto) : 프라토에 위치한 섬유 박물관으로 전통 직물부터 현대 패션까지 섬유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 산타 마리에 델레 카르세리 교회 (Santa Maria delle Carceri) :건축가 줄리아노 다 상갈로가 설계한 교회로 원래 이 곳은 감옥이었는데 감옥 벽에 있던 마리아 성화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5. 여담
- 칸투치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칸투치는 중세 프라토에서 시작된 이탈리아 아몬드 비스킷으로 직사각형 모양으로 건조하고 바삭 바삭하다. 중세 라틴어 비스코커스(biscoctus)는 '두 번 요리' 한다는 뜻으로 비스킷의 어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