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3-27 10:49:31

폭주 기관차

폭주기관차에서 넘어옴

1. 1985년작 영화2. 아이큐 점프에 연재했던 조재호의 축구 만화3. 프로게이머 방태수의 별명

1. 1985년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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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away Train

1985년에 제작한 미국이스라엘 합작 영화.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Andrei Konchalovsky) 감독 작품으로, 존 보이트, 에릭 로버츠, 레베카 드 모네이가 출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으며 오쿠니 히데오와 폴 진델이 공동으로 각본에 참여했다. 원래 아키라 감독이 미국에서 만들려고[1] 기획하던 것이 흐지부지되어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당시 갓 헐리우드에 입성한 콘찰로프스키가 참여하면서 만들게 된 것. 캐논 그룹에서 제작, 배급을 맡으며 이스라엘 자본이 들어갔다.

매니와 버크는 미국 알래스카(州)에 위치한 스톤헤이븐 중범형무소에서 교도관들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간신히 탈옥한다. 두 사람은 황야를 헤매다가 조차장에서 대기중인 기차[2]에 올라타고는 꿈에 그리는 고향을 향해 달린다. 그런데 갑자기 기관사가 심장마비로 죽고난 후 기차가 점점 빨라지자 철도회사는 대형사고[3]를 막기 위해 기차를 탈선시키려 하다가 여승무원의 기적소리를 듣고 취소한다.[4] 매니는 필사적으로 기차를 멈추려고 한다.[5] 한편 헬리콥터로 추적하던 래켄 형무소장은 매니를 죽이기 위해 목숨을 건 채 사다리를 타고 기차로 내려온다. 매니는 선두차량으로 가 래켄 소장과 사투를 벌이다가 결투 끝에 소장을 사로잡고, 버크와 여승무원 사라가 탄 안전한 차량을 분리시키고는 온몸이 묶인 래켄 소장과 함께 기차와 함께 죽음을 항하여 달리면서 버크와 사라의 슬픔에 찬 절규를 뒤로 하고 눈 속으로 사라지며 영화는 끝난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황야에서 질주하는 기관차의 폭주를 통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존 보이트, 에릭 로버츠가 추위와 싸워가며 열연을 했고, 1986년 아카데미상에서 남자주연상, 남자조연상, 편집상 부문 후보로 올랐으며, 골든글로브상에서는 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심지어 개봉한 뒤인데도 1986년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9백만 달러로 만들어졌으나 흥행은 기대 이하...전세계적으로 가까스로 1,900만 달러 정도 벌며 본전치기 수준이었다. 한국에서는 공권력 무시에 탈옥하는게 문제가 되어 수입금지이보쇼 빠삐용은 잘만 70년대에 개봉했...아 그건 억울한 옥살이라 그랬나되었는데 85~88년 당시 전두환 군부가 사회적으로 안 좋은 영화라며 마구잡이로 수입금지를 먹이던 시절[6]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전두환 군부가 막을 내리자마자 1989년 1월 21일에서야 개봉하였고 KBS-1에서 더빙하여 방영하기도 했다.

대니 트레호의 데뷔작이기도 하다.[7]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실화를 베이스로 만든 작품이다. 1962년 10월 26일 뉴욕 센트럴 철도의 4대의 GP20 기관차가 4대가 입환중 기관사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열차에서 떨어진후 그대로 폭주한 사건이라고 한다.#

안드레이 감독은 이후에 탱고와 캐쉬를 감독하다가 도중에 잘렸으며 소련이 무너진 다음에 러시아로 돌아가서 지금까지도 활동 중이다.

2. 아이큐 점프에 연재했던 조재호의 축구 만화

폭주 기관차(만화) 항목 참조.

3. 프로게이머 방태수의 별명

방태수 항목 참조.
[1] 실제로 붉은 수염 차기작이 될뻔했다. 허나 모종의 이유로 촬영이 지연되다가 토라 토라 토라에 참여하다가 문제의 자살 사건이 일어나 흐지부지된 것.[2] 기관차 기종은 선두차부터 GP40-2, F7A, GP7, GP7이다.[3] 결국 동부행 화물열차 끝부분 차장차(Caboose)와 충돌한다.[4] 그러나 결국 방법이 없는지 사용하지 않는 측선으로 열차를 넣고 탈선시키기로 한다.[5] 이때 사용한 방법이 바로 각각 기관차 간의 총괄제어 케이블을 끊는 것으로 4, 3번째 차량까지는 괜찮았지만 2번째 차량이 유선형인데다가 충돌로 문이 열리지 않았다.[6]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백 투 더 퓨쳐 1편이나 폴리스 스토리가 상영금지당했던 시절이니 말 다했다...물론 겉으로는 한국영화 보호라는 핑계를 대며 외화 규제라는 명목을 들이댔다.[7] 원래는 자선행사를 하던 대니가 우연히 촬영장을 방문하게 되었을때 그를 알아본 각본가가 주연들의 복싱 트레이너를 해줄것을 부탁하였는데(대니 트레호는 과거 교도소 복역당시 교도소내 복싱 챔피언을 한 적이 있었다. 각본가가 대니를 알아본 이유도 그 역시 같은 교도소에서 복역한 적이 있어 대니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었기 때문.) 감독은 한술 더 떠 대니의 무시무시한 외모를 보고 감탄해 트레이너가 아니라 아예 복싱 상대역으로 그 자리에서 캐스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