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9-24 15:51:10

포로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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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포로수용소인 거제 포로수용소 모습

1. 개요2. 역사3. 목록

1. 개요



포로를 강제 수용하는 시설로 보통 교전국의 영토에 설치된다.

주 대상은 전쟁에서 체포된 적성국 군인이며 적대국 국적의 민간인이 수용될 때도 있다.

2. 역사

고대에는 포로가 전리품으로 취급받아 잡자마자 죽여 버리거나 노예로 판매했기 때문에 장기간 포로를 억류할 시설이 딱히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한 중근세 이후부터는 서양의 기사도 정신, 한국사세속오계 등 전사의 명예를 강조하는 불문율이 생겨나면서 포로 학살은 비난받는 요소가 되었고, 그에 따라 포로를 수용할 시설이 필요하게 된다.

낡은 요새나 건물을 개조해서 쓰기도 했으며 전쟁이 잦은 국가에선 그냥 대놓고 포로수용소를 건설하기도 했다. 영국처럼 폐선에 포로들을 욱여넣은 곳도 있었다고 한다.[1] 원래는 장기간 억류할 생각은 없었는데, 포로들에게 밥 주고 숙소 줘서 먹여살리는 것도 돈이 꽤 드는 데다 특히 장교 포로들[2]은 정기적으로 식사 초대 등의 사교행위가 필요하고 관습상 외출도 허가되기 때문에 관리도 힘들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포로 교환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정식 포로 교환이 있기 전까지는 서류상 포로 신분이니 싸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무기만 압수한 뒤 그냥 풀어주는 선서석방까지 해 가면서 포로 수를 최대한 줄였는데, 나폴레옹이 포로 교환 금지를 하면서 양국간 포로가 썩어넘치는 대참사가 터져서 포로 수용소의 수요가 늘어나서 생긴 일이다.

현대전에서는 이전 시대들과 달리 개인화력의 비약적인 증가로 인해 무장한 병사 한 명당 제압 가능한 포로의 수가 크게 늘었고, 제네바 협약 등 포로에게 부당한 처우를 하는 것 자체가 전쟁범죄로 명시되었기 때문에 포로의 인권을 보장하고 안전하게 수용할 목적으로 포로 수용소가 대형화되었고 빠르게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임시 시설의 성격이 강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군사경찰이 포로 관리를 전담한다.

비유적인 의미로 완전히 포위되어 말라 죽어가는 적군을 거대한 포로 수용소라고 비웃기도 한다.

3. 목록


[1] 일명 '프리즌 헐크'라고 불렸다. 안 그래도 낡아빠진 폐선들은 관리를 하지 않아 위생 상태가 극도로 안 좋았는데, 거기다가 포로들을 마구 욱여넣다 보니 살아남으면 용한 곳이 되었다고 한다.[2] 당시까지만 해도 장교는 봉건제, 신분제 국가에서 귀족이나 상류층의 자제들이 주로 하던 것이었기 때문에 적국 군인이라고 할지라도 막 대해서는 안 됐다. 기사도 문화와 같은 맥락이다.[3] 원래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제2공화국 망명객 및 패잔병들을 수용하기 위해 관리하던 곳으로, 이후엔 비시 프랑스가 자발적으로 4천여명의 독일발 유대인 난민들 및 정치범, 공산주의자들을 잡아 수용했다. 비시 프랑스가 무너지고 프랑스가 해방된 후에는 반대로 나치 협력자들과 독일 포로들을 가두는 데 이용되었다. 1946년 폐쇄되기 전에는 반독 투쟁을 하던 스페인 제2공화국 인사들에 대한 경계심 때문에 애먼 스페인 투사들이 다시 잡혀 들어가기도 했다. 5,500명의 수감자가 아우슈비츠로 보내져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