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4 22:44:04

펑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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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봉양부 중국.png
명나라의 초기 수도로 계획되었던 봉양부 (대도)

1. 개요2. 갤러리

凤阳
영어 Fengyang

1. 개요

중국 안후이성 동부 추저우시에 속한 현.

관할 지급시인 추저우 시내보다도 벙부시와 훨씬 더 가까우며, 후자에서 동쪽으로 10km 떨어져 있다. 명나라를 세운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고향으로 유명하며, 명대에는 봉양부(鳳陽府)가 설치되어 중시되었다. 주나라 ~ 춘추시대에는 동이의 일파인 회이족이 세운 서나라(徐)에 속했고, 그 번국인 종리국(鍾離)이 위치햤다. 2005년과 2008년 인근에서 그 분묘가 발굴되었다. 초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에도 종리현은 진•한대 구강군의 주요 도시였고, 점차 한족에 동화되었다. 서진 말기에 일어난 영가의 난으로 버려졌다가 동진화이허(회하) 방어선을 확립하며 신설된 종리군(鍾離郡)의 치소가 되었다. 507년에는 비수대전에 이은 남조와 북조의 대격돌인 종리 전투가 벌어졌고, 양무제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그후 당나라 ~ 원나라 시대에는 호주(濠州) 종리현이었다. 1328년에는 상술한 대로 이곳에서 명나라의 창건자였던 주원장이 태어났고, 1368년 중국을 통일한 그는 같은해 9월 중원강남 사이에 위치한 고향을 수도로 선포했다. 황릉의 형식으로 부모의 능을 조성한 홍무제는 1370년부터 중도(中都)라 명명된 궁전도시의 건설에 나섰다. 1374년까지 황성에 해당하는 원조 자금성이 완공되었으나 이듬해(1375년) 외성을 축조하던 중 고역에 반발한 장인들이 봉기를 일으킨 결과, 다음해(1376년)에 공사가 중단되었다. 새로운 수도의 건설을 포기하고, 기존의 남경을 증축하여 도읍한 홍무제는 대신 종리를 '봉황 언덕의 햇빛'이라는 뜻인 '봉양'으로 개칭했다. 2006년작 드라마 <주원장>에 명나라 건국 이전에도 '봉양'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재현 오류이다(...) 이후로도 공사는 조금씩 진척되어 1397년까지 성벽 자체는 완공되었다.

다만 실제로 수도가 되지는 않았고, 관리하기에 지나치게 넓었기에 중도성은 점차 방치되었다. 특히 명나라가 남경에서 북경으로 수도를 옮긴 후로 무관심이 더욱 심해져, 1459년 성의 일부가 허물어져서 인근 롱싱사 재건의 자재로 쓰이기도 했다. 격변의 시대였던 명청교체기장헌충의 반란군이 봉양부를 점령하고, 명태조 부모의 황릉을 파괴했다. 이후 1755년에는 외성이 허물어졌다. 1966년에는 주민들이 황성의 성돌을 가져다 우물을 수리하고 댐을 건설하는데 사용했으며 1968년에는 지방 정부가 벽돌을 가져다 팔며 크게 파괴되었다. 특히 외성의 동벽과 북벽은 거의 사라졌다. 1982년에 들어서야 정부 차원의 관리와 보호가 시작되었다. 한때 수도로 계획되었으나 방치되었다는 점에서 계룡시의 신도안과 유사하다.

2. 갤러리

파일:펑양 중국 고루.jpg
명대에 세워진 고루
파일:중국 봉양릉.jpg
주원장의 부모가 모셔진 명황릉
파일:중국 봉양.png
내성과 자금성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