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24:58

파울루 벤투/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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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3.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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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울루 벤투의 선수 경력에 대해 다루는 문서.

2. 클럽

파일:84 Academico de Alvalade.jpg
1984년 알바라데 유소년 클럽 시절, 주장 완장을 찬 15세의 파울루 벤투
리스본 출신의 벤투는 선수 시절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하부리그 팀인 CF 벤피카[1]에서 성인무대에 데뷔한 벤투는 이 팀에서의 활약을 통해 아마도라로 이적해 서서히 출전시간을 확보했다. 이 시기에 국내 컵 대회 우승에 기여하는 등 본격적으로 커리어도 향상되었다.
파일:89 90 P. Bento Estrela 2.jpg
89-90 시즌 CF 이스트렐라 다 아마도라 시절
그 뒤 1991년부터 94년까지 뛴 비토리아 SC에서 본격적인 선수 인생의 꽃을 피웠다. 비토리아에서 보낸 세 시즌 동안 벤투는 리그 95경기에 출전해 13골을 기록하는 등 우수한 기량을 보여주었고, 대표팀에도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파일:91 92 P. Bento.jpg
91-92 시즌 비토리아 SC 시절
1996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벤투는 SL 벤피카로 이적했다. 비토리아 시절만큼 부동의 주전까지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시즌 당 30~40경기를 뛸 정도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었고, 두 시즌 간 리그 49경기에 나와 2골을 기록했다.
파일:95 96 Varios 2.jpg
95-96 시즌 SL 벤피카 시절
두 시즌을 보낸 후 벤투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 오비에도로 이적했다. 벤투는 네 시즌 동안 오비에도의 핵심 미드필더로 기용되었다. 매 시즌 30경기 이상을 리그에서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총 리그 136경기 4골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우루과이 출신의 명장 오스카르 타바레스 감독 밑에서 뛰기도 했다.
파일:99 00 P. Bento Oviedo.jpg
99-00 시즌 레알 오비에도 시절
어느덧 선수 생활의 말년으로 접어든 벤투는 2000년 고향팀인 리스본의 스포르팅 CP로 이적했다. 스포르팅 합류 이후에도 벤투는 기량을 한동안 유지했다. 이전까지는 국내 컵 대회에서의 두 차례 우승을 제외하면 우승과 인연이 적었던 벤투지만, 스포르팅에서는 2001-02 시즌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과 컵 대회 우승의 더블을 이룩하는 데 핵심 선수로 활약하면서 마침내 리그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아직 어린 유망주였으나 훗날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함께 뛰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노쇠화가 되는 건 막을 수 없었고, 2003-04 시즌에 기회가 확연히 줄어들자 시즌이 종료된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파일:파울루 벤투 포르투갈 국대.png
포르투갈 대표팀 공식 사진
파일:BENTO_Paulo_20000617_NF_L.jpg
UEFA 유로 2000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한 모습
파일:2002년 벤투 VS 박지성.jpg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전에서 박지성과 경합하는 모습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는 1992년 1월 15일,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총 35경기에 출전했다. 루이스 피구, 파울루 소자, 후이 코스타, 주앙 핀투 등과 같은 포르투갈 골든 제네레이션의 일원이긴 하지만, 피구 및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선수 생활 초기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골든 제네레이션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메이저 대회가 1989, 1991 피파U20월드컵인데,[2] 이 때 벤투는 선발되지 못했다. 포르투갈 골든 제네레이션이 처음 성인팀으로 등장한 유로 1996에도 출전하지 못했는데, 아마도 벤투가 20대 후반에야 실력이 만개한 대기만성형이라서 그런 측면도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 황금세대의 정점이었던 유로 2000에 당당히 국대로 선발되었다. 이 때가 사실상 선수 시절 벤투의 최전성기.

유로 2000 16개국 본선에 진출하여 포르투갈은 죽음의 조인 A조(유로 디펜딩챔피언 독일, 루마니아, 잉글랜드)에 3번 포트로 속해 있었지만, 강호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조 1위로 올라가서 8강에서 터키까지 꺾고 4강에 올라갔다. 이 당시 유로에 거의 무관심했던 대한민국에서도 새벽에 중계되는 포르투갈 경기를 챙겨본 축구팬들이 많았을 정도로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했다. 벤투도 매 경기 주전으로 풀타임 출장했다.

포르투갈은 4강에서 마찬가지로 당시 최정점의 전력[3]을 가졌던 프랑스를 만났는데, 1-1의 팽팽한 승부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지네딘 지단의 페널티킥 골든골을 허용하면서 아쉽게 탈락했다. 벤투는 이 경기에서 61분경 교체 출장했으나, 포르투갈의 아벨 사비에르가 핸들링 반칙을 해서 문제의 페널티킥을 먹었고, 벤투는 누누 고메스와 함께 이에 거칠게 항의해 심판을 모욕했다가 5개월 출장 정지 처분을 받은 바 있다.[4]

이렇게 포르투갈의 붙박이 주전이었기 때문에, 33세의 노장이었음에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도 참가했다. 인천에서 열린 32강 본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한국전에서 후반 이영표가 골 에어리어로 넘겨주는 크로스를 막지 못하고 보고만 있다가 박지성이 이걸 받아 골로 연결, 포르투갈이 대한민국에 0-1로 패배하고 조 3위로 월드컵 21등으로 16강 실패한 바가 있다.[5] 전반전에 박지성에게 거친 태클을 걸어 레드카드를 받은 당시 소속팀 스포르팅 CP의 팀 동료 주앙 핀투 옆에서 벤투가 핀투를 말리는 장면이 나간 건 덤.[6] 이 경기를 끝으로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파일:파울루 벤투 인터뷰 1.gif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당시
파일:파울루 벤투 인터뷰 2.gif
한국전 종료 후 포르투갈 방송과의 인터뷰
한국전 종료 후 포르투갈 방송과의 인터뷰 영상 [7]
기자: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건 아마 지금 포르투갈 선수들의 심정일 것입니다. 벤투 선수를 격려하고 싶은데요. 혼자 남아서 인터뷰에 응해주셨습니다. 파울루, (포르투갈 대표팀의) 꿈이 깨졌네요.

벤투: 깨졌어요, 끝났습니다. 이런 옛 말이 있지요. '비뚤어진 묘목이 비뚤어지게 자란다.' 시작도 안 좋았고[8], 끝도 안 좋았습니다. 중간에 우리가 우세했던 상황도 있었지만, 결국 여기까지네요. 이제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플레이가 어땠는지를 말입니다. 이번 월드컵 막바지에 우리의 플레이를 말이예요. 그리고 오늘... 특정한 상황들(핀투와 베투가 연속적으로 퇴장당한 것을 의미함)이 일어났고 운은 없었지만, 9명만으로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는 끝이 났고, (토너먼트의) 기회는 한국에게 돌아갔습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국과 미국을 축하해 주는 것입니다. 그들이 전반적으로 우리보다 강한 팀들이었으니까요. 이제는 유로 2004[9]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요.

기자: 고마워요, 벤투. 고통에 잠겨 있는 우리에게 하기에는 쉽지 않은 말이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포르투갈의 꿈은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리고 16년 뒤인 2018년에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그 인연을 이어 가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선수로서 최초이자 마지막이었던 월드컵이 끝난지 정확히 20년만에 국가대표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상대했던 팀을 감독으로서 이끌고 월드컵 본선에 가게 되었다. 한국 축구계와 팬들은 물론이고 벤투 본인조차도 이렇게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갈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20년 뒤인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포르투갈과 대한민국의 대결이 또 성사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 포르투갈의 편이었던 20년 전과는 다르게 이번엔 벤투가 모국 앞에서 대한민국의 감독으로 경쟁하게 되었고[10], 이겼다. 벤투 자신도 KBS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로드 투 카타르'에서 이런 심경을 술회했다."날 은퇴시킨 한국팀 이끌고 월드컵, 믿기지 않는다" 감회 젖은 벤투

[1] 우리가 아는 SL 벤피카와는 전혀 다른 팀이다.[2] 1991년 포르투갈 대회에서는 남북 단일팀(아시아예선에서 한국이 우승, 북한이 준우승하여 남북단일팀은 한국이 계승)이 포체티노가 있던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이겼으나, 포르투갈과 대결해서 16강 조별리그에서 1-0로 패한적이 있다.[3] 유로 2000의 프랑스는 많은 축구 전문가들에 의해 축구 역사상 최강의 전력을 가졌던 팀의 하나로 꼽힌다. 1998년 월드컵 우승 멤버가 고스란히 스쿼드에 들어간데다가 1998년 당시에는 유망주였던 앙리가 아스날에서 1999/00 시즌에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4] 참고로 이 당시 심판이 바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의 한국 - 멕시코 전에서 멕시코 선수에게 백태클을 가했던 하석주에게 다이렉트 레드카드를 명령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귄터 벤쾨 주심이었다.[5] 다만 당시 벤투와 함께 이영표를 막지 못한 또다른 선수가 포르투갈의 레전드 선수 루이스 피구라서 보통 피구만 언급되지 벤투는 딱히 주목받지 않았다. 이영표의 전방에 있던 피구와 달리 벤투는 후방에 있어서 애초에 막기 어렵기도 했고.[6] 다만 핀투를 말린 다음 벤투도 항의에 가세하기는 했다.[7] 이 인터뷰는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이후에 재발굴되었다.# 당시 벤투는 한국에게 져서 16강 진출에 실패했음에도 한국의 16강 진출을 축하해 주었다. 충격적인 패배로 멘탈이 나간 포르투갈 선수들이 모두 빠르게 경기장을 빠져나갔던 상황에서 벤투는 필드에서 언론 인터뷰에 응한 포르투갈의 유일한 선수였다. 또한 한 수 아래로 얕봤던 상대였던 대한민국에게 패배해 16강 진출이 좌절된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상황임에도 승리한 상대를 축하해주고 유로 2004를 준비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벤투의 프로의식과 성숙한 인격을 재평가하고 있기도 하다.[8] 당시 포르투갈 대표팀의 기강은 허술하다 못해 한심한 수준이었다. 월드컵 베이스캠프를 본인들에게 친숙하다는 이유에선지 한국이 아닌 마카오에 차렸다가 미국과의 1차전을 3:2로 말아먹은 것부터 시작해서, 벼락치기로 폴란드를 4:0으로 잡아놓고는 또 군기가 해이해져 한국전 바로 전날에 몇몇 선수들이 술먹고 놀러다니는 일도 있었고, 한국과의 경기에서 한국의 조직력이 생각 이상으로 탄탄하단 걸 느끼고는 그제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황금세대라는 세간의 평가가 무색하게 온갖 추태를 남발했다. 참고로 홍석천이 당시 포르투갈 선수들의 술자리에서 관광 가이드 역할을 자처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9] 때마침 유로 2004는 벤투의 조국인 포르투갈에서 열렸기에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술했다시피 이 경기는 현역 선수로서는 벤투의 대표팀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10] 또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페르난두 산투스는 클럽 감독 시절 벤투를 지도했던 경험이 있었다. 특히 주장 호날두는 위에 서술되었다시피 선수로서의 벤투, 감독으로서의 벤투 모두와 한솥밥을 먹어봤으며 벤투 역시 유스 출신 유망주 시절의 호날두를 선수 시절 말년에 팀 내 대선배로서 곁에서 지켜보았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한 전성기 시절의 호날두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직접 지도했으며, 거듭된 부진과 갖은 논란 속에서 대표팀 은퇴를 앞두고 있는 말년의 호날두를 적장의 자격으로 바라봤다. 벤투 자신도, 상대도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얄궂은 인연들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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