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05:19:45

파비안 카리니


우루과이의 前 축구 선수
파일:Fabian_Carini_574263.jpg
<colbgcolor=#7fb5ff> 이름 파비안 카리니
Fabián Carini
본명 헥토르 파비안 카리니 에르난데스
Héctor Fabián Carini Hernández
출생 1979년 12월 26일 ([age(1979-12-26)]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국적
[[우루과이|]][[틀:국기|]][[틀:국기|]]
신체 190cm | 체중 84kg
주발 오른발
직업 축구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colbgcolor=#7fb5ff> 선수 다누비오 FC (1997~2000)
유벤투스 FC (2001~2004)
스탕다르 리에주 (2002~2004 / 임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4~2007)
칼리아리 칼초 (2005~2006 / 임대)
레알 무르시아 CF (2007~2008)
아틀레치쿠 미네이루 (2009~2010)
CA 페냐롤 (2011~2012)
데포르티보 키토 (2013)
CA 후벤투드 (2014~2017)
국가대표 74경기 (우루과이 / 1999~2009)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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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루과이의 前 축구선수. 페르난도 무슬레라 이전 우루과이 대표팀의 수문장으로 활약했다.

2. 클럽 경력

파일:Carini_Juve_1.jpg

다누비오 FC 소속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주전으로 발돋움하며 남미 최고의 골키퍼 유망주로 성장하였다. 그리고 2001년 1월,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이탈리아의 명문 유벤투스 FC에 입단하였다. 하지만 당시 유벤투스 골문은 네덜란드 국가대표 에드빈 판데르사르가 버티고 있었고, 2001-02 시즌이 끝난 뒤 판데르사르가 풀럼 FC으로 떠나면서 마침내 기회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곧이어 지안루이지 부폰이 들어오면서 주전 경쟁은 더욱 험난해졌다. 결국 두 시즌간 서브로 머물다가 벨기에의 스탕다르 리에주로 2년간 임대되어 주전으로 활약했다.

2004년, 임대에 복귀하고 돌아온 카리니는 파비오 칸나바로와 트레이드 되며 인테르에 합류했다.[1][2] 인테르에서도 줄리우 세자르, 프란체스코 톨도에 밀려 서드 키퍼에 머물렀고, 반년 뒤 칼리아리 칼초로 임대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인테르로 돌아왔지만 벤치는 물론이고 1군에도 쉽사리 들지 못하면서 한창 많은 경기를 뛰어야할 시기에 뛰지 못하고 성장은 정체되고 있었다.

결국 기회를 찾아 스페인의 레알 무르시아로 떠났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2008년 브라질 클럽인 아틀레치쿠 미네이루와 3년 계약을 채결하면서 남미 무대로 복귀했다.

이후 미네이루를 떠나 CA 페냐롤, 에콰도르 팀인 데포르티보 키토를 거쳐 자국의 CA 후벤투드로 이적하여 3시즌간 뛴 뒤 2016 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선언했다.[3]

3. 국가대표 경력

파일:Carini_National_1.jpg

청대 시절부터 우루과이의 차세대 수문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4], 1999년 6월 17일, 파라과이를 상대로 성인 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리고 1999 코파 아메리카에 주전 골키퍼로 발탁되어 대회 기간 선방 퍼레이드를 보여주며 파라과이, 칠레를 상대로 연이은 승부차기 승리를 거두고 결승전에 진출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리고 이후 소속팀과는 달리 대표팀에서는 오랜기간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2002 FIFA 월드컵, 2007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였다.

그러다 2009년, 혜성같이 등장한 페르난도 무슬레라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대표팀 경력을 마감했다.

4. 여담

  • 현역 시절 잘생긴 외모로 많은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한국 올드 축구팬들에게는 1999년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 조별라운드 2라운드 대한민국 vs 우루과이 경기에서 수 많은 선방으로 대한민국 대표팀과 팬들에게 좌절을 안긴 골키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이동국, 김은중 등 대한민국의 공격진들이 골문을 열기 위해 시도했지만 끝내 골문을 열지 못하며 0:1으로 패했고, 1차전 포르투갈전에 이어 2패를 기록하면서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 현재는 자국에서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으며, 종종 자국의 축구 관련 프로그램에 패널로 참가하고 있다.

[1] 이 스왑딜은 인테르의 대표적인 호구딜로 알려져있다.[2] 하지만 인테르 시기 칸나바로는 말 그대로 못했다. 단지 유벤투스 가서 월클급 활약을 보인게 컸을 뿐.[3] 은퇴 직전 몬테비데오 원더러스에서 제의가 왔으나 고질적인 요추 통증으로 거절하고 은퇴를 선언했다고 한다.[4] 1999 FIFA 월드 유스 챔피언십에 참가하여 대표팀이 4위를 거두는데 기여했고, 대회 최우수 골키퍼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