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0 21:04:45

토펫

Tophet 혹은 Topheth

1. 고대 유다 왕국에서 인신공양이 벌어지던 곳2. 고대 가나안계 종교의 성소
2.1. 인신공양이 실제로 벌어졌는가?2.2. 미디어에서

1. 고대 유다 왕국에서 인신공양이 벌어지던 곳

야훼 신앙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진 남유다 왕국의 왕들이 몰렉바알에게 인신공양으로 어린이들을 바치던 곳. 어원은 불확실하지만 대체로 '불타는 곳'이라는 뜻이라고 여긴다. 토펫은 예루살렘의 게힌놈(Gehinnom), 즉 '힌놈 골짜기'에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게헨나이다. 게힌놈을 그리스어로 음역한 단어가 게헨나.
임금은 '벤 힌놈 골짜기'에 있는 토펫을 부정한 곳으로 만들어, 아무도 제 아들딸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여 몰록에게 바치지 못하도록 하였다.

2열왕 23,10
그들은 '벤 힌놈 골짜기'에 토펫의 산당을 세우고 저희 아들딸들을 불에 살라 바쳤는데, 이는 내가 명령한 적도 없고 내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는 일이다.

예레 7,31
전통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지옥의 은유로 사용되기도 했다.

2. 고대 가나안계 종교의 성소

유래는 1. 신전은 아니고, 어린이들을 불에 태운 뼈가 담긴 항아리를 묻은 곳이다. 담장으로 둘러친 공간 안에 몰렉이나 바알, 타니트를 상징하는 기호를 새긴 비석을 세우고 그 주위에 항아리를 묻는 식으로 조성했다.

파일:carthage_tophet.jpg
카르타고 시에 남은 토펫.

가장 유명한 것은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서부로 이주해 가서 건설한 카르타고의 토펫이다. 카르타고의 세력이 미쳤던 북아프리카, 시칠리아, 사르데냐 등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현재 카르타고 시에 있는 토펫이 가장 유명하다. 아무래도 중심도시다 보니 크기도 크고, 아래에서 설명할 이유로 보존도 잘 되었기 때문이다.

2.1. 인신공양이 실제로 벌어졌는가?

오래 전부터 인신공양된 어린이들이 묻힌 곳이라고 알려졌다. 카르타고 시의 토펫이 잘 보존된 이유도 기원전 146년 제3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군 병사들이 저주를 받을까봐 손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로마 치하에서 재건될 때도 토펫만은 건드리지 않아서 2천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었다.

고대 로마인들이 남긴 기록이 하도 악의적이라 인신공양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았다. 로마인들이 '카르타고인들은 이렇게 사악한 풍습을 유지하는 놈들이었으니 멸망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우겼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토펫을 두고 인신공양된 어린이들이 묻힌 곳이 아니라, 영아사망률이 높던 고대에 어려서 죽은 아이들이 묻힌 묘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설을 주장한 학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토펫 유적을 발굴하고 과학적인 연구를 실시한 뒤로, 인신공양으로 죽은 어린이들을 묻은 장소가 맞다는 설이 정설이 되었다. 이렇게 판단한 근거에는 몇 가지가 있다.

1. 상당수 항아리에서 동물의 뼈가 함께 나왔다는 점: 토펫에서 발견된 항아리에는 생후 반 년이 안 된 아이들의 뼈가 가장 많이 나왔지만, 양과 같은 짐승의 뼈도 함께 나왔다. 전세계의 어떤 무덤도 죽은 사람과 제물로 바치는 동물을 한 납골함에 담지 않는다.[1]

2. 발굴된 어린이의 뼈에서 질병의 흔적이 없다는 점: 고대에 영아 사망률이 높았던 주된 이유는 질병 때문이다. 그런데 발굴된 어린이들의 뼈에는 질병의 흔적이 없다. 만약 병사했다면 화장해서 뼈만 추렸다고 해도 질병의 흔적이 어느 정도는 남기 마련인데, 발굴된 인골에는 하나같이 질병의 흔적이 없었다. 이는 토펫에 묻힌 어린이들이 질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죽었음을 암시한다.

만약 신에게 인신공양을 바쳤다면 당연한 일이다. 신에게 짐승을 제물로 바칠 때에도 병에 걸리지 않고 사지가 온전하며 살이 잘 오른 것을 고른다. 만약 인간을 제물로 바친다면, 같은 이치로 잘 먹고 깨끗하게 양육되었으며 건강한 이를 골라야만 한다. 온전치 않은 것이나 나쁜 것을 제물로 바치면 오히려 신을 우롱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2.2. 미디어에서

토탈 워: 로마 2에서 카르타고의 최종 테크 신전으로 등장한다. 아이콘에 묘사된 것은 타니트. # 실제로도 카르타고의 토펫에 가장 많이 새겨진 것이 바알타니트의 문양이니 적절한 고증. 페니키아인의 특성에 맞춰 전 지역의 해운 수입을 증가시켜 준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도 '토페'라는 이름을 달고 고고학 발견물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옛날 게임이다보니 당시에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상황인데다가, 아무래도 게임 심의상 아이를 제물로 바쳤다는 내용이 좀 그래서인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구체적인 조사 퀘스트는 이러하다. 토페가 인신공양의 산물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를 주장한 플루르타르코스가 제정로마 시절 사람이니 아무래도 기록이 의심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실제 조사 결과 아이의 뼈가 다수 출토되긴 했지만, 동물의 뼈가 있으니 제물로 바쳐진 건 아이가 아니라 동물 쪽이지 아닐까 하면서 이견의 여지를 남긴 채로 종료한다. 흥미롭게도 아이의 뼈와 동물 뼈가 함께 출토되었다는 이 역사적 사실을 보고 인게임 퀘스트와 실제 역사가들의 연구들은 서로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개발 당시 토펫에 대한 해석과 오늘날의 해석의 차이를 알 수 있다.


[1] 죽은 사람이 저승에서 먹으라고 음식이나 동물을 같이 묻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이 경우에도 묻힌 사람과 그 사람이 먹을 음식은 엄격하게 구분해서 묻는다. 즉 이 항아리에서 나온 어린이들과 동물 모두 제물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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