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23:28:01

테쿤 우만

파일:Tecun_Uman.jpg
과테말라 산마르코스주 아유틀라 지방에 있는 테쿤 우만의 동상

Tecun Uman
(1500~1524)

1. 개요2. 생애3. 사후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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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6세기 과테말라 지역 마야인(키체족) 추장. 콩키스타도르를 상대로 벌인 투쟁이 유명하다.

2. 생애

1500년경 오늘날 과테말라 서부 고원지대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522년 에르난 코르테스의 원주민 동맹군 정찰대가 오늘날 멕시코-과테말라 접경지대 치아파스 저지대의 소코누스코를 정찰하였다. 고원지대의 쿠마르카흐, 이심체, 투스판 왕국의 대표단은 스페인 국왕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으며, 또한 코르테스에게 키체족과 칵치켈족은 반스페인적이라고 전했다. 코르테스는 심복 페드로 데알바라도에게 원주민 동맹군 수천여명을 붙여주어 소코누스코로 원정군을 파견했다.

1523년 소코누스코에 도착한 원정군은 태평양 해안을 따라 진격하다가 사말라 강변에서 키체족 쿠마르카흐 왕국의 군대와 싸웠다. 적군을 박살낸 원정군은 1524년 2월 8일 셰툴룰(현 과테말라 수치테페케스 주 산프란시스코사포티틀란)을 점령하고 강의 상류로 진격, 키체족 왕국의 중심부로 접근했다. 12일 원정군은 키체족 전사의 기습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기병대의 돌격으로 적군을 혼비백산에 몰아넣어 승리했다. 원정군은 주민들이 도망가 텅 빈 셸라후(현 과테말라 케찰테낭고 주 케찰테낭고)에 입성했다.

케찰테낭고에서 가까운 올린테페케에서 전사한 것으로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테쿤 우만은 페드로 데알바라도가 직접 창을 찔러 죽였다고 하는데 그의 실재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1]

3. 사후

1854년 8월 21일 라파엘 카레라 대통령이 과테말라 대원수 계급을 추서하고, 1960년 2월 20일 미겔 이디고라스 푸엔테스 대통령이 과테말라 명예 시민권을 수여했다.

그리고 1975년 2월 24일 루이스 에체베리아 대통령이 멕시코 명예 시민권을 수여했다. 마야인과 관련 있는 인물이라 그런 모양인데, 그를 기려 유카탄 주 일대에서 해당 지명을 쓰는 곳이 있다. 테쿤 빼고 "우만"이라고 쓰는 곳도 있는데[2] 그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4. 여담

1821년 과테말라 독립 당시부터 현재까지 독립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그래서 과테말라 일대에는 그의 이름을 딴 지명을 쓰는 곳이 매우 많다. 예를 들어 멕시코 국경과 접해있는 테쿤 우만.


[1] 데알바라도는 코르테스에게 키체족 장군을 죽였다고 보고했는데 이 장군이 테쿤 우만인지는 불명이다.[2] 유카탄 주의 메리다 광역권이다.